[증언] 인민군·빨치산에 맞서 싸운 고창 고교생 백골유격대원들 : 월간조선

전북 고창 학생 「백골유격대」白漢基(백한기·73) 대장. 白대장은 매년 6월이 되면 까까머리 중학생 때 구식무기를 들고 인민군 패잔병과 빨치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그 장소를 찾는다.

전북 고창은 1950년 7월20일 인민군들에 의해 점령됐다. 남한 대부분 지역이 9월26일을 전후해 赤治(적치)에서 벗어났으나, 고창은 1950년 11월에야 겨우 일부지역만 수복됐다. 인민군 패잔병들과 빨치산들이 고창으로 몰려들면서 다음해인 1951년 4월까지 공산당의 장악下에 있었다.

6·25전쟁을 전후해 고창군 지역주민 중 인민군과 빨치산들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는 2300여 명에 달한다(月刊朝鮮이 정부기관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6·25 남침 피학살자 명단」 통계).

그러나 고창지역 주민들은 6·25 때 학살당한 피해자가 4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白대장은 1950년 6·25가 터질 때 17세로 고창중학교 4학년(지금의 고교 1년)이었다. 그는 6·25 이전까지 우익단체인 「고창 전국학생연맹」 감찰위원장과 정보부 차장을 맡아 좌익분자 색출에 앞장섰다.

고창군 일대에서는 여순반란사건 패잔병들의 본부가 있던 전북 영광군과 인접해 있어 빨치산들의 활동이 극렬하게 벌어졌고, 특히 남로당 산하 학생조직인 민주학생동맹(民學)의 활동도 고창중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17명의 학생 유격대

백한기 백골유격대장

白대장은 고창이 인민군과 빨치산의 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고교생 16명과 함께 「백골유격대」를 조직, 인민군과 빨치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백골유격대원 17명 중 생존해 있는 대원은 4명이다.

白대장은 인민군에게 붙잡혀 1개월여 동안 갖은 고문을 당했고, 부친 白南順(백남순ㆍ당시 59세ㆍ한독당 장성군 북일면 위원장)씨는 인민군에 의해 日本刀(일본도)로 목이 잘려 살해당했다.

白대장의 「참전사실확인서」(경찰청장 명의·2006년 4월13일자)에는 1950년 10월∼1951년 2월까지 참전을 했으며, 신분은 학도의용(학생)이며 계급 및 직책란에는 「대장」으로 적혀 있다. 白대장은 2006년 4월24일에서야 정부로부터 「참전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기자는 지난 5월21∼22일, 5월31일 두 차례에 걸쳐 白漢基 대장과 함께 고창을 찾았다. 백골유격대 분대장이었던 陳瑨炯(진진형) 前 서울 관악구청장, 좌익세력들에게 일가족 6명이 몰살당한 金光得(김광득·77) 예비역 대령, 白웅기(76) 前 유공해운 임원, 菊기일(68) 사장, 李汪鍾(이왕종) 前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 등이 동행했다. 6·25 당시 고창경찰서 사찰계분실 형사로 근무했던 李相根(이상근·79)씨, 李기화 고창군 문화원장, 黃석구(60·농업)씨, 李榮(이영·66) 前 국일건설 대표이사 등이 고창 현지에서 합류를 했다.

白대장, 혈서 지원

진진형 백골유격대 벼락분대장

白대장은 전주北중학교(現 전주고교) 4학년 때 6·25을 맞았다. 白대장은 6월29일 자원 입대했다.

『경기도 시흥에 있던 육군 보병학교가 후퇴해 전주로 내려왔어요. 보병학교로 찾아갔더니, 「잘 왔다」고 하면서 입대시켜 주었어요. 그때 제가 「저처럼 혈서 쓰고 입대를 지원한 학생이 고창에 3명 더 있다」고 하자, 「빨리 가서 데리고 오라」고 해, 그날로 고창으로 향했죠』

白대장이 전주를 출발해 걸어서 고창으로 가던 도중, 장성읍에 도착했을 때 장성ㆍ고창군 일대는 이미 인민군 천하가 돼 있었다. 白대장은 이곳에서 인민군의 불신검문에 걸려 유치장에서 이틀을 보냈다.

다음날 左翼이었던 「민주학생동맹」 단원 한 명이 白대장의 얼굴을 알아봤다. 白대장은 右翼단체인 「고창 전국학생연맹」 소속이었고, 反좌익투쟁에 앞장서 왔다.

白대장은 몽둥이와 삽, 곡괭이 등으로 죽도록 맞았다. 그런 뒤 장성에서 20km 떨어진 敵 치하의 고창경찰서로 넘겨졌다. 白대장은 이날을 1950년 7월26일로 기억했다.

백골유격대 기념사진. 뒷줄 왼쪽부터 송광수·하경곤·백학기(대장)·홍금식(번개분대장)·박종문·이인형·유희종·김문현·진진형(벼락분대장)·조재환.

『진짜 옹골진 놈 왔다』

『고창경찰서 마당에 도착하니, 「진짜 옹골진 놈 왔다」고 하면서 손에 수갑을 채우고 몸을 끈으로 묶은 뒤 여러 명이 그냥 몽둥이로 두들겨 패더군요. 기절을 하면 물을 붓고는 또 패고, 또 기절하면 물을 가져다 붓고….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왼쪽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니까, 단도로 머리 중앙을 내리 찍었는데, 그 사람은 고창의 고향 선배였습니다』

정신을 잃은 白대장은 꿈결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떠보니, 학교 동창생으로 당시 고창군 노동당 위원장의 조카였다. 白대장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저녁 때가 돼서야 의식이 돌아왔는데, 중학교 1년 선배인 유희종(백골유격대 대원)의 집이었다. 민주학생동맹 단원들은 白대장이 죽은 것으로 판단, 유희종씨 집에 내다 버린 것이다.

민주학생동맹 단원들은 白대장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고, 그를 전주형무소로 보내려고 했다. 고창경찰서 감방에 있던 주민들이 『어린 것을 죽이려면 곱게 죽이라』고 반발하자, 8월 초 白대장을 고창읍 소재 白대장의 집에 감금했다.

白대장은 전주北중학교 교사였던 자신의 형(백영기ㆍ前 한양大 교무처장)에게 편지를 썼고, 형의 도움을 받아 인민군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80km의 산길을 걷고 걸어 3일 만에 전주의 형 집에 도착한 白대장은 다락에 숨어 지냈고, 10월1일에서야 9·28 서울 수복 소식을 들었다.

백골유격대와 인민군·빨치산 간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고창군 해리면 나성리 뒷산. 오른쪽부터 기자, 이기화 고창문화원장, 김광득 예비역 대령, 진진형 백골유격대 벼락분대장, 백웅기, 백한기 백골유격 대장.

고창 수복작전의 암호는 「비」, 「바람」

6·25 직전까지 고창경찰서 사찰계 형사로 근무하면서 좌익세력 검거활동을 했던 李相根씨.

1950년 10월2일 오전 10시 白대장은 전주 시내의 전북도청 광장으로 갔다. 軍警(군경)합동 전라북도 수복작전 병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白대장은 고창 수복을 위한 고창경찰서 부대에 배속됐다.

고창 수복 부대는 11사단 20연대 3대대와 함께 11월21일에야 고창경찰서에 태극기를 꽂을 수 있었다.

軍人들은 北上하는 전선으로 떠나고, 고창군에는 치안을 담당하는 70여 명의 경찰과 白대장을 포함한 학도의용대원 20여 명만 남았다. 이들은 고창경찰서 둘레에 고압선을 설치했다. 고창경찰서 주변만 대한민국이었을 뿐, 고창군 일대는 인민공화국이었다.

70여 명의 병력으로는 고창경찰서 건물을 지키기 어려웠다. 고창군 전역을 수복하는 것은 꿈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白대장은 학도의용대원들을 대상으로 전투 참가 희망자를 모집했고, 11명이 지원했다. 선배인 李인영과 洪금식, 宋광수(육군 소령 복무 중 1968년 휴전선을 뚫고 침투한 김신조 게릴라부대와의 전투에서 사망)·金치영, 陳瑨炯(現 진진형세무회계사무소 소장)·朴종문·河경곤·趙재환·金문현 등이었다.

학생들로 구성된 이 전투부대의 명칭은 「서부지구 해안 백골유격대」였다. 대장은 白漢基씨가 맡았고, 번개분대장(1분대)은 洪금식, 벼락분대장(2분대)은 陳瑨炯이 이끌었다.

백골유격대의 활동은 白善燁(백선엽) 장군이 한국일보에 게재한 「實錄智異山」에도 소개돼 있다. 白善燁 장군은 「전쟁과 人民유격대」편(1991년 6월11일字)에서 『17명의 중학생으로 구성된 「백골유격대」가 고창 빨치산 토벌의 선봉에 섰고, 빨치산도 少年 유격대를 두려워했다』고 했다.

빨치산도 두려워한 少年 유격대

일가족 8명이 인민군·빨치산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김광득 예비역 대령.

白漢基 유격대장은 당시 유격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 사진은 백골유격대가 구성된 지 120여 일 지난 1950년 12월 말께 찍은 것이다. 고창읍 「정읍사진관」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백골유격대원들은 이때 처음으로 실탄사격 훈련을 했다.

백골유격대는 경찰 15명이 해리면 우체국 건물을 점령해 임시 진지를 구축한 뒤인 12월2일 첫 출전을 했다.

『백골유격대가 해리면으로 들어서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는 살았다」고 해요. 해리면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인 상황이었습니다. 경찰들은 거점인 해리우체국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우글거리는 인민군 패잔병과 빨치산들은 백골유격대가 담당했습니다.

12월10일 인민군 400여 명이 해리면 지서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칫 수십 명의 경찰과 백골유격대원들의 목숨이 다 날아갈 뻔한 사건이었죠』(白漢基 대장)

이날 새벽 5시30분께 「핑」 하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첫 총성이 난 지 20여 분 뒤, 사방에서 기관단총 소리가 진동했다. 인민군 패잔병들과 빨치산들이 해리면 지서를 둘러싸고 총알을 퍼부어 댔다.

당시 경찰과 학생유격대원들에게 지급됐던 실탄은 1인당 20∼30발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총알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었다. 통신線(선)이 끊어져 고창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다. 경찰과 유격대원들은 두 발씩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 중 한 발은 자살용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 한 발을 사용했다.

다음날 아침 7시쯤 고창경찰서에서 병력 10명과 실탄을 지원해 해리면 지서를 지킬 수 있었다.

『매일 밤 우리는 인민군 패잔병과 빨치산 색출작업을 벌였습니다. 검거한 적들은 대부분 경찰에 넘겼는데, 저항하는 적들은 현장에서 처형했습니다. 우리도 악에 받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가운 날씨에다 보급품이 제때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1951년 2월 초, 백골유격대는 경찰로부터 『해리면 동호리 일대를 확보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白대장을 비롯한 백골유격대원 13명은 경찰병력 15명과 함께 해리면 동호리로 출동, 동호지서를 비롯한 동호리 일대를 장악했다.

백선엽 장군이 백골유격대 활동상황에 대해 언급한 한국일보 1991년 6월11일자 보도문.

인민군이 내건 현상금─白대장 쌀 260석, 대원 100석

이왕종씨

『매일 밤 수십km 떨어진 곳까지 수색작전을 벌였습니다. 국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검거했어요. 아군은 모두 전선으로 이동해 국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인민군 또는 빨치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白대장은 1951년 4월 초까지 동호리 일대를 지키다가, 그해 6월 전주北중학교 5학년으로 복학했다.

인민군과 빨치산들은 당시 백골유격대 白대장에게는 쌀 260석, 대원들에게는 100석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삼천리 강산에 우리들은 위대한 강토의 희망봉이고, 불타는 정열에 끓어 넘치는 위대한 전사는 여기에 있다.

백골, 백골, 금수강산의 무궁화 송이송이, 우리들은 백골, 백골, 우리들은 유격대>

황석기씨

저녁식사 자리에서 白대장과 陳瑨炯 벼락분대장은 힘차게 「백골유격대歌」를 들려 주었다. 이들은 지금도 회식을 하거나 행사를 하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白漢基 대장은 『고창에는 지금 우익과 좌익 사이에 총알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現 고창군수의 아버지는 6·25 때 좌익활동을 한 혐의로 처형됐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고창군수 아버지가 학살당한 고창군 공음면 선산마을 야산에 이상한 위령탑이 건립됐습니다.

6·25 때 군인과 경찰에 의해 무고한 마을주민 510명이 잔학하게 학살된 것을 위로하기 위한 탑이라는 것입니다.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양민이란 말입니까? 그들은 모두 빨치산에 가담했거나, 좌익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처형된 것입니다. 이런 좌익들을 기리는 탑이 세워진 것을 보고 숨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이 탑은 철거해야 합니다!』

고창경찰서, 무장면 지서, 해리면 지서, 동호만 입구 야산 4곳만 대한민국이고 나머지 고창군 일대는 인민공화국이었다.

공음면에 들어선 良民 희생자 위령탑

국기일씨

고창군 공음면 선산마을 위령탑은 「6·25 양민희생자 고창군제전위원회」가 정부 예산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지난 4월 세워졌다.

위령탑 왼쪽에 세워진 기념비의 내용이다.

<우리 지역인 고창군 상하면에도 수많은 양민이 학살당하였는데, 집단 학살 장소만 하여도 1951년 1월6일 군 11사단 20연대 6중대 병력에 의하여 상하면 하장리 오룡 부락민 등 20여 명을 상하면 초등학교 옆 공터에서 학살하였으며, 1951년 3월3일 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8중대 병력에 의하여 상하면 자룡리 고리포 해변가에서 60여 명의 지역주민이 학살당하였고, 1951년 3월13일 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8중대 병력이 상하면 용대리 택동부락 주민 등 50여 명을 마을 입구 야산에 모아 놓고 무차별 학살하였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도 군사정권 30여 년 동안 말 한마디 못 하고 한이 맺힌 채 살아왔다. 한 맺힌 56년 만에 고창군에 1700여 분의 원혼이 이곳에 안장됐다. 우리 유족들은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동족 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위령탑과 와비를 세우고 제를 올립니다>

집단학살 현장에 선 白웅기씨

이인화씨

고창군 방문 이틀째인 지난 5월22일, 일행들은 아침식사를 한 뒤 고창읍 내에 있는 낮은 동산을 찾았다. 이곳에는 「6·25 참전 유공자비」가 서 있었다. 유공자 비석이 서 있는 곳은 6·25 때 30여 명의 주민들이 좌익분자들에게 끌려가 집단으로 학살을 당한 장소다.

이곳으로 끌려왔다가 유일하게 살아 남은 白웅기(76)씨는 좌익분자들의 만행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白웅기씨는 6·25가 터졌을 때 고창중학교 6학년이었고, 부친 白남영(당시 43세)씨는 고창중학교 교장이었다.

白웅기씨는 인민군이 고창군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1950년 9월27일 중학교 동기인 좌익계열의 민주학생동맹 고창지역 위원장에 의해 고창지역 정치보위부로 끌려갔다. 고창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부친 白남영씨 역시 이날 저녁 고창경찰서로 붙잡혀 왔다. 白교장은 고창중학교에 다니던 좌익계열의 민주학생동맹 단원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은 후 인근 야산의 오두막집에서 요양하던 중 인민군들에게 발각됐다.

白웅기씨 父子와 함께 붙잡혀 온 30여 명의 주민들은 다음날인 9월28일 새벽 인근 야산으로 끌려갔다.

『아버님과 한 감방에 있었는데, 이날 새벽 1시쯤 정치보위부원들이 모두 마당으로 모이라고 해서 나갔죠. 추석 직후라서인지 하늘에는 둥근 달이 구름 사이로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께서 혼자 경찰서 마당 한구석으로 걸어가시더군요. 아마 그 사람들에게 자식인 저만큼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버님의 그 뒷모습이 생전에 마지막 본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민군들은 주민들을 10여 명씩 세 그룹으로 나눠 묶었다. 白웅기씨는 제일 마지막 그룹에 속했고, 부친은 첫 그룹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게 白웅기씨의 짐작이다.

白웅기씨가 속한 그룹 10여 명은 맨발로 걸어서 1km 정도 떨어진 야산으로 끌려갔다. 白씨는 끌려가는 도중에 양손을 묶은 새끼줄을 손톱으로 조금씩 뜯기 시작했으나, 死地(사지)에 도착할 때까지 다 뜯지는 못했다.

야산 경사진 곳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제일 앞줄에 선 白웅기씨의 눈에 중학교 1년 후배인 李모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李모가 갑자기 몽둥이를 白웅기씨에게 휘둘렀고, 白씨는 그대로 구덩이로 굴렀다.

白웅기씨는 자신의 주변이 죽창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아 죽은 시신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 白씨의 양손을 묶고 있던 새끼줄이 끓어졌고, 白씨는 엉금엉금 기어서 조심스럽게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白씨의 오른쪽 머리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오른쪽 귀를 몽둥이로 맞았기 때문이다.

부친의 시신은 고창군 일대가 완전히 수복된 1951년 상반기에 발굴했다. 이미 시신은 백골만 남은 상태였다.

2007년 고창군 공음면 선산마을에 세워진 위령탑. 군인과 경찰에 학살당한 양민을 위로한다는 목적으로 건립됐다.

인민군 치하의 고창은 「인간 도살장」

『인민군과 빨치산들은 부녀자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걸리면 무조건 다 죽였습니다. 고창군 일대는 「인간 도살장」이었죠. 인민군과 좌익의 패륜적 만행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총을 들고 유격대로 나섰던 겁니다.

月刊朝鮮이 발간한 「6·25 피살자 명부」에 의하면, 고창 일대에서 피해를 입은 양민이 2300여 명입니다만, 그 명부에 올라 있지 않은 희생자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6·25 때 공산당에게 희생당한 고창지역 주민의 수가 4000명은 족히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창중학교에 다니다 6·25 때 북한군에게 붙잡혀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던 신연희(76)씨의 증언이다.

『북한군이 물러가고 난 뒤 전주형무소內 벽돌공장 안에서 북한군에 의해 마구잡이로 학살당한 수백 명의 시체가 나왔는데, 그중에는 임신부의 시신도 있었습니다. 인민군들은 임신부의 경우, 배를 갈라 죽였습니다. 정말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신연희씨는 6·25가 터지기 이전에는 우익계열의 전국학생연맹 고창지역 정보부장을 맡았고, 6·25가 터지자 고창지역 학도의용대 대장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신연희씨는 전주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인민군은 두 살짜리 여동생을 죽창으로 죽였다』

백웅기씨가 고창군 고창읍 인근 야산의 집단학살 장소에서 혼자 살아나온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는 6·25참전 유공자비가 세워져 있다.

金光得(77) 前 육군대령이 양민 학살현장을 둘러보는 도중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장교로 복무하던 중 6·25가 터졌고, 6·25 다음 날인 1950년 6월26일 金대령의 부친 金龍洙(김용수·당시 38세)씨는 남한에 침투해 있던 공산당원에게 끌려가 처형됐다.

1950년 9월26일 어머니 崔義姬(최의희ㆍ당시 41세) 씨와 金대령의 남동생 1명과 여동생 5명 등 7명이 인민군들에 의해 죽창과 삽, 곡괭이 등으로 살해당했다. 金대령의 9명 가족 중 金대령 혼자만 살아남았다. 金대령의 부친은 6·25 직전까지 고창군 무장면 副면장으로 근무했다.

『학살 당시 동생들의 나이는 15세(女), 13세(男), 10세(女), 7세(女), 4세(女), 2세(女)였습니다. 이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창으로 찌르고 곡괭이로 두들겨 패 죽인다는 말입니까. 이런 놈들과 어떻게 같은 땅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金光得 대령은 하염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6·25 발발 이전인 1950년 5월27일 남로당원들에 의해 부친과 친인척 7명이 희생당한 黃석구(55)씨는 『도저히 공산당 놈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친이 남로당원들에 의해 희생당했을 때 그는 두 살이었다. 이 사건은 6·25전쟁 이전에 터진 左翼의 양민학살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애비 죽인 원수에게 복수도 못 한 놈』

李汪鍾前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의 가족들도 좌익에 희생됐다. 1950년 7월 초 李감사의 부친 李奎(이규ㆍ당시 42세)씨는 고문을 당한 뒤 도망을 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중 유엔軍의 9·28 인천상륙작전 소식을 미리 듣고 우익청년들을 규합, 「UN 군경 전국환영준비위원회」 결성을 시도했다가 인민군들에게 다시 체포됐다. 李奎씨는 빨치산 高모씨 등 5명에 의해 고창군 성내면 신대리 뒷산에서 총검에 난도질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1951년 3월 李奎씨를 잔학하게 죽인 高모씨가 군경에 체포됐다. 군경은 高모씨를 끌고 李奎씨가 살해됐던 장소로 갔고, 아들 李汪鍾씨에게 칼빈 소총을 주며 그를 죽여 부친의 복수를 하라고 했다.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원수를 어떻게 죽일까 그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간 몸 다시 못 온다. 절대 복수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저는 그 원수 놈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 애비를 죽인 원수도 죽이지 못하는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고 지내기 정말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수는 하지 않더라도 공산당 놈들에게 당한 원한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아버지 두 분을 비롯해 7명의 친척들이 한꺼번에 인민군들에게 살해당한 菊기일(68)씨. 그 역시 『우리 국민 모두 6·25의 아픔을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전북 고창군 일대에서는 6·25가 현재 진행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