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식물학자 마키노(牧野富太郎)와 일제下 신문史 : 월간조선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郎·1862~1957)라는 일본 식물학자가 있었다. 마키노는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면서도 세계적인 식물학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런데 신문과는 관련이 없는 식물학자 마키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반세기가 흐른 후 엄청난 신문 자료를 유산으로 남겨 두고 갔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식물표본을 채집하면서 吸濕紙(흡습지)로 활용했던 廢(폐)신문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마키노의 특이한 개인적 경력도 흥미롭지만, 그가 식물표본 수집용으로 사용한 신문의 분량과 종류, 신문이 발행된 지역 등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수집품 가운데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신문이 적잖아서 우리의 言論史(언론사) 연구에도 자극제가 된다.

2004년 여름, 東京大 총합연구박물관은 특이한 신문 전시회를 열었다. 「프로파간다 1904-1945-신문紙/신문誌/신문史」라는 주제였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紙·誌·史가 동일하다.

전시회 목록 가운데는 일제 치하 한국에서 발행된 신문이 여러 종류 포함되어 있었다. 朝鮮日報·東亞日報·每日申報와 같은 한국어 신문은 도서관이나 해당 신문사에 보관되어 있지만,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이제는 볼 수 없는 일본어 신문이 실물로 선보였다.

지금은 사라진 신문들 다수 발견

식물표본 채집용으로 사용된 신문. 1901년 일본 후쿠지마(福島)에서 발행된 신문이 사용되었다(東京大 신문 전시회 圖錄에서).

朝鮮新聞·京城日日新聞·朝鮮每日新聞·東亞新報는 서울에서 일본어로 발행된 신문들이었고, 釜山日報·鴨江日報(신의주)·元山每日新聞·平壤日日新報·北鮮日報(청진)·北鮮日日新聞(청진) 등도 일본인들이 발행하던 일간지였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구였던 모지(門司)에서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한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되던 일본의 신문들도 있다. 西部每日(오사카 마이니치 조선판), 朝鮮朝日(오사카 아사히 부록), 大阪朝日新聞(北鮮版) 등이다.

전시회의 圖錄(도록)에는 총 562 점이 실려 있는데, 전부가 「마키노 신문」은 아니었다. 다른 식물학자의 수집품 가운데 들어 있는 것도 있었고, 개인 소장품 또는 月刊「中央公論」 출판부가 1920년대에 소장했던 신문도 있었다. 독일신문 「프랑크푸르트 자이퉁」(1925년 1월1일)은 東京대학 신문연구소가 폐기처분해서 古서점의 창고로 흘러 들어가 잠들어 있었는데, 東京대학이 다시 회수해서 전시회에 출품한 경우였다.

「마키노 신문」은 체계적으로 수집된 것이 아니었다. 자연상태에서 채집한 식물표본을 감싸서 누르는 흡습지는 그 무렵 현지에서 발행된 신문을 활용했을 것이고, 시간이 경과한 신문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 신문은 채집의 장소와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간접자료의 구실도 하게 된다.

채집된 식물표본도 중요하지만 폐지로 사용했던 신문이 이제는 귀중한 사료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신문의 역사를 복원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증언하는 일차사료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신문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 주는 東京大 신문 전시회

신문의 다양한 용도. 약병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문을 활용했다(東京大 신문전시회 圖錄에서).

신문은 문자·사진·그림 등을 종이에 인쇄해서 독자들에게 판매하는 商品(상품)이다. 객관적인 사실 보도로 독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달하고, 이를 논평한다. 거기에 광고매체와 오락의 기능도 지닌다. 그러나 신문은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능을 훨씬 뛰어넘는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역할과 함께 의도하지 않은 부차적인 역할도 수행한다.

그런 관점에서 東京大 박물관은 書誌的(서지적) 대상으로 신문을 분류하지는 않았다. 어떤 신문을 언제 누가 창간했는지를 따지는 年代記(연대기) 중심의 분류나, 論調(논조)가 어떠했는지 따위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와는 달랐다.

東京大는 다음 9개 기능으로 분류해 전시했다.

<▲保存(보존)용지로서의 신문―학술표본과 학술폐기물의 보존
▲造形(조형)소재로서의 신문―假設(가설)미술의 시도
▲前衛(전위)예술로서의 신문―아방가르드 운동의 지원
▲정치매체로서의 신문―이데올로기의 표명
▲광고매체로서의 신문―디자인과 타이포그라피
▲기록매체로서의 신문―사진기사로 본 세상
▲에스페란토 유토피아―세계 공통어에 의한 프로파간다
▲신문지면의 변천―요미우리신문의 사례
▲신문의 국내분포―전국지와 지방지>

9개 분류 항목 가운데 앞의 세 부류는 설명이 필요하다.

첫 번째 부류인 「보존용지로서의 신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결에 자주 활용하는 용도이다. 읽고 난 신문은 다양한 용도의 廢紙(폐지)로 활용된다. 옷이나 구두를 장기간 보관할 때 신문지를 끼워 두는 일은 지금도 흔히 사용한다. 물건을 싸서 보관하는 용도는 다양하다.

헌 신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활용할 용도가 무궁무진한 재료였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엿이나 강냉이를 바꾸어 먹기도 했다. 시골집의 벽이나 천장에 신문이 벽지로 붙어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푸줏간에서는 쇠고기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싸 주었고, 뜨거운 붕어빵을 싸는 종이도 신문지였으며, 길거리에서 팔던 번데기와 땅콩은 깔때기 모양의 세모꼴로 접은 신문지에 담아 어린이의 고사리 손에 쥐어졌다.

과수원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폐신문지였다. 사과·배·복숭아를 싸는 봉지가 신문이었다. 축구나 야구 경기장에서는 신문으로 고깔모자를 만들어 햇빛가리개로 활용되는 멋도 있었다.

두 번째 부류인 「조형소재」와 세 번째 「전위예술」은 신문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인쇄된 신문을 소재로 새로운 수법의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들도 있다. 피카소의 작품이 그런 예의 하나이다.

신문은 정보전달 매체인 동시에 소비재·生活材(생활재)이며 귀중한 역사적인 史料(사료)가 될 뿐 아니라 매력이 풍부한 예술적 표현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신문은 전위예술의 지원자라는 기능도 있다. 수백만 부에 이르는 대량인쇄 신문이 아니라, 대개 전위예술을 표방한 개인 또는 그룹이 발행한 적은 부수의 신문(稀少新聞·희소신문)이 그런 역할을 맡는다. 20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전위예술 운동은 많은 부수를 발행한 신문의 역할도 있었다.

1939년 6월11일자 朝鮮日報(지령6499호) 학예면

조선일보 1939년 6월11일자 학예면.

전시회에는 문학·미술·영화 등 여러 예술 분야의 서양에서 발행된 소규모 주간신문이 출품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지면은 1939년 6월11일자 朝鮮日報(지령 6499호) 학예면 특집이었다. 鄭玄雄(정현웅)의 「초현실주의 개관」, 金煥基(김환기)의 「추상주의 소론」, 崔根培(최근배)의 「조선미술전 評」이 실려 있었다. 전시 圖錄은 『한국에서 모더니즘 미술 동향을 전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신문의 용도가 이런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신문은 시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상품성으로 본 생명력은 하루에 끝난다. 발행되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鮮度(선도)가 떨어져 이튿날이면 「舊聞(구문)」이 된다. 상품성은 소멸되고 흔하고 쓸모없는 폐지로 전락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뒤를 닦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리자. 더 긴 세월이 흐르면 신문은 다시 귀한 보물의 가치를 회복한다.

마키노의 신문이 주목을 끌면서 마키노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식물채집에 사용한 신문의 가치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마키노는 어떤 인물인가.

마키노는 일본 고치현(高知縣)에서 태어났다. 4세 때에 아버지를 잃었고, 6세 때 어머니마저 사망했다. 이듬해에는 그를 돌보던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祖母(조모) 슬하에서 자랐다.

마키노는 서당에서 공부하던 9세 때부터 식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1872년에 서당이 폐지되자 藩校(번교)에 들어가 유럽의 과학을 접하게 됐다. 13세 때 소학교에 입학해 2년간 공부한 그는 15세에 퇴학한 뒤에 母校(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혼자서 식물의 조사와 채집에 열중하던 마키노는 23세 때인 1884년에는 東京大 식물학 교실을 방문해 표본과 해외문헌에 접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理學會(이학회)를 창립하고 과학사상 보급에도 힘썼다. 1888년에는 「日本植物志圖篇(일본식물지도편)」을 출판했고, 식물분류학 연구에 몰두했다.

소학교 2년 中退 학력으로 東京大 박사가 된 마키노

1893년 32세가 된 그는 東京제국대학 理科大學助手(조수)에 임명되었다. 일본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맡게 되었다. 소학교 2년 中退의 학력이었지만 실력으로 학문의 높은 벽을 넘은 것이다.

마키노는 정력적으로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고 命名(명명)·기재하는 업적을 쌓은 끝에 식물분류학의 제일인자로 인정받았다. 1927년에 理學 박사학위를 받았고, 東京大에서 47년간 근속한 뒤인 1939년에 퇴직했다. 1950년 10월 일본학사원 회원에 선임되었고, 이듬해 1월 문부성은 「마키노박사식물보존위원회」를 설치해 표본 정리에 착수했다. 같은 해에 제1회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으며, 1957년 96세로 사망한 뒤에 문화훈장을 받았다.

마키노는 「日本植物志圖篇(일본식물지도편)」, 「大日本植物志(대일본식물지)」, 「日本植物圖鑑(일본식물도감)」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전기(「牧野富太郎自敍傳」, 講談社 학술문고, 2004)에 실려 있는 대표적 저서만 해도 무려 42種(종)이고, 東京大 도서관에 소장된 마키노의 저작물 또는 그와 관련된 저서는 72종에 이른다. 60만 점 이상의 식물을 채집했는데 新種(신종) 1000여 종과 新變種(신변종) 1500여 종 이상의 일본 식물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가 創定(창정)한 新屬植物(신속식물)은 15종이고, 다른 분류학자가 식물의 이름을 새로 命名하면서 학명에 마키노의 이름을 따서 「마키노이(makinoi)」를 넣은 것도 18종이다. 세계적인 식물 분류학자의 명예를 기리고 존경의 뜻을 표하는 後學들의 배려였다.

마키노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세계적인 식물분류 학자로 평가받으며 불후의 명성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가 죽은 후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그가 신문과 연관을 가졌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키노 신문」의 再발견

그가 수집했던 방대한 분량의 식물표본은 東京도립대학 理學部의 「마키노표본관」과 「고치현립마키노식물관」, 東京도립대학 부속고등학교 등 세 곳에 분산 보관되어 있다. 東京도립대학 理學部는 이를 정리하면서 100여 상자에 달하는 표본이 신문지에 눌려 있던 것을 발견한 후, 1975년 이 신문들을 東京大「明治신문잡지문고」로 넘겨주었다.

東京大는 처음에는 明治문고에 소장된 신문과 중복되는 것을 조사해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관할 계획이었으나, 그 가운데 수많은 古신문들이 나오자 그 중요성을 再평가하기에 이르렀다.

東京大 종합연구박물관의 니시노(西野嘉章: 東京大 박물관 공학 전공) 교수는 박물관 식물부문의 직원들이 식물채집 보존용 신문을 정리하는 과정에 나오는 옛날 신문더미에서 나오는 紙面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키노 신문을 연대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 신문들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과학 등 근대생활에 신문이 미치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신문과 직접 관련되는 연구로는 법제사·정치사·경제사·산업사·교육사와 같은 중요 사화과학 계통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연구 분야인 매스 커뮤니케이션론·인쇄사·사회사·풍속사 등에 이르는 여러 학술분야에 걸쳐 다른 자료로서는 대치할 수 없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정착되고 있다(高橋進: 東京大總合연구박물관 관장).

東京大 총합박물관은 2002년부터 식물표본의 건조용으로 사용되었던 신문지의 자료화 사업에 착수해 2004년에는 1만 점이 넘는 신문을 회수했는데, 이는 최종 도달 목표의 5분의 1 정도라고 한다. 무려 5만여 점의 정리가 목표라는 계획이 되는 셈이다.

明治문고가 정리한 「마키노 신문」은 5000여 점인데 개별 신문의 題號(제호)는 517종이다. 이 가운데 日帝 통감부 시기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에 걸쳐 한국에서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京城日報(경성일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신문이 포함되어 있다. 사할린·홋카이도·오키나와·중국·대만·미국 등지에서 발행된 신문도 있다.

마키노는 일본의 국력이 해외로 팽창하던 시기에 식물채집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본토를 중심으로 점령지에 따라 채집의 범위를 한껏 넓힐 수 있었다. 그에게는 행운의 시기였다. 채집을 위한 마키노의 발길이 닫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현지 발행 신문의 종류도 늘어났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의 행보에 비례해 言論史(언론사) 연구의 자료도 풍부해졌다.

사라진 총독부 기관지 京城日報 21점 발견

마키노 신문 가운데는 한반도에서 발행된 여러 종류의 일본어 신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는 소실되고 문헌상 이름만 알려진 신문도 적잖다. 가장 중요한 지면으로는 京城日報의 1915년 이전 紙面 21건이 들어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던 시기의 신문이 마키노라는 일본의 식물학자 덕분에 살아났기에 더 큰 관심을 끈다.

京城日報는 일본어로 발행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다.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획책하던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후원으로 1906년 9월1일에 창간되어 일제 통치 기간에 중단되지 않고 발행된 대표적인 신문이었다. 통감부의 기관지로 출발해 합방 이후에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어 일제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홍보, 대변했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한동안 일본어로 발행되다가 1945년 12월12일자로 終刊(종간)되었다.

통감 이토는 이 신문의 창간과 운영을 재정적으로 후원했고, 사장의 임명을 비롯한 인사권을 쥐고 논조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의 거물급 언론인과 외교관·관료 등이 사장을 맡았고,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官報(관보)와 같은 지위를 누리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일본어 신문으로 군림했다.

총독부의 조선어 기관지 每日申報도 京城日報에 통합되어 일본인 사장의 직접적인 지휘下에 발행되다가 1938년 4월에 京城日報의 子會社로 독립되었고, 광복 후에는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서울신문의 前身이 바로 경성일보-매일신보였다.

京城日報는 일본 통감부가 한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시기에 창간된 이래 식민지 기간에도 계속 발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통치를 가장 상세히 기록한 史料이며, 당시의 역사를 일본의 시각과 논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연구의 가치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부터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의 沈漢輔(심한보) 원장이 京城日報의 影印(영인)사업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1920년대까지의 紙面이 출간되었다. 국내보다는 일본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1945년까지의 전체 지면을 影印本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沈漢輔 원장은 이 신문의 影印사업을 위해 京城日報를 소장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도서관 등을 모두 수소문해 보았으나, 1906년 9월1일에 창간된 때로부터 초기 9년 사이의 紙面은 찾을 길이 없었기에 남아 있는 1915년 9월2일자부터 순차적으로 影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키노가 식물표본을 채집하면서 사용했던 수많은 신문 가운데 경성일보 21점이 들어 있었다. 이 가운데는 전체 지면 네 면이 완전한 것도 있고, 두 면은 떨어져 나가고 두 면만 남은 불완전한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지면을 그 정도나마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문의 역사와 일본의 한국 침략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마키노 신문 가운데는 19~20세기 초에 인천과 부산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신문이 특히 관심을 끈다. 「朝鮮新報(조선신보)」는 1890년 1월28일 인천에서 「仁川京城隔週商報(인천경성격주상보)」라는 이름으로 창간되었다가 제호가 바뀐 신문인데 1896년 8월과 11월, 12월에 발행된 지면 6호가 있다.

그밖에 「大韓日報」(인천: 1904년 3월10일 창간), 「조선타임스(朝鮮タイムス)」(서울: 1907년 5월 창간), 「京城新報」(서울: 1907년 11월3일 창간), 「朝鮮新聞」(서울: 1908년 12월1일 창간), 「釜山日報」(1907년 10월1일 창간), 「朝鮮時報」(부산: 1892년 7월 釜山商況→1894년 11월21일 朝鮮時報), 「朝鮮日日新聞」(인천: 1903년 10월 창간), 「大邱新聞」(1908년 10월1일 창간) 등의 지면도 볼 수 있어 장차 우리의 언론사 연구에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키노가 식물채집을 위해서 일본 각지를 여행했고, 대만을 비롯해 만주와 중국에까지 갔던 사실은 그의 年譜(연보)에도 나타나지만, 조선에 왔었다는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식물표본을 감쌌던 신문 가운데는 1890~1920년대 조선의 서울과 지방에서 발행된 지면까지 있기 때문에 그는 한반도의 산하를 누비면서 식물을 채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만·만주와 같이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학술적인 목적으로 여행했던 그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한국에도 당연히 다녀갔을 것이다.

80代 마키노의 학문 열정

1939년 5월 78세였던 마키노는 東京제국대학에서 퇴임한 후 이듬해 8월에는 규슈 각지에서 채집했고, 1941년 5월3일 80세의 老軀(노구)를 이끌고 만주국의 벚꽃을 조사하기 위해 고베港(항)을 출발해 5000여 점의 표본을 채집한 다음에 6월15일 시모노세키港 건너편의 모지(門司)를 거쳐 도쿄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당시 조선을 거쳐 철도편을 이용해 만주로 갔을 것이며, 이때 조선에서 식물채집을 했을 수 있고, 조선에서 발행된 신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京城日報는 사료로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 신문에 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자료의 열람이 어려웠다는 점이 연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고, 일본어로 발행된 총독부의 어용신문이라는 이유 등으로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필자가 처음으로 「언론조선총독부」(커뮤니케이션북스)를 출간해 이 신문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첫 업적이 되었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이 8월23일자 미디어 면에 이를 크게 소개한 바 있다.

京城日報의 影印本 제작은, 한국에서는 관심을 가지는 기관이나 도서관이 많지 않은 반면, 일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구입한다는 것이다. 방대한 자료의 影印사업을 개인의 힘으로 시작했으나 완간까지는 몇 년이 걸릴 터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병풍 배접 속에서 찾은 마지막 漢城周報

우리나라에서도 우연한 기회에 귀중한 신문을 발견한 경우가 있었다. 잡지 연구가이자 수집가였던 白淳在(백순재) 선생의 일화이다.

白淳在 선생은 병풍에 褙接(배접)된 「漢城周報(한성주보)」 제106호를 찾아낸 적이 있다. 1970년 5월 어느 날 동대문 근처 골동품상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漢城周報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漢城旬報(한성순보)」(1883년 10월31일 창간)의 後身으로 1886년 1월25일부터 발행되었다. 그러나 유실된 호수가 많아 언제까지 발행되었는지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었는데, 106호의 발견으로 1888년 3월12일까지는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병풍에 배접된 헌 신문지는 작품의 안쪽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병풍을 새로 수리하지 않는 한 다시 햇빛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더구나 병풍을 수리할 때에는 앞쪽의 작품은 조심스레 다루지만 배접된 종이는 뜯어서 폐지로 버리기 쉽다. 하찮은 쓰레기로 사라져 버렸을 신문이라도 전문가의 눈길이 닿으면 가려진 역사적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없어질 운명에 처한 開化史(개화사)의 소중한 자료가 白淳在 선생 덕분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漢城旬報와 周報를 발행하던 박문국은 1888년 7월14일에 폐지되었으므로 그때까지 漢城周報가 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된 마지막 신문인 제106호 이후에도 이 해 7월14일까지 계속 발간되었다면 제123호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유실된 호수가 많아서 남아 있는 실물은 국내에 42호밖에 없다. 제16호는 국내에는 없지만 중국의 후단(復旦)大에 한 호가 보관되어 있다.

과거사 규명의 출발은 자료 발굴·수집

盧武鉉 정부는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겠다면서 여러 위원회를 설치해 조사·해석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16개 위원회에 600여 명의 인원이 1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저 멀리 19세기 말에 일어난 동학혁명(1894년)부터 현대사까지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정권 차원의 조사는 국민을 분열시키므로 민간 연구자 중심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런 활동을 벌이기 전에 우선 과거의 자료를 충분히 복원해 학계와 민간 차원의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지난날의 신문을 影印하고 자료를 복제하는 사업이다.

이웃 나라는 어떤가. 중국 봉천에서 1906~1945년까지 발행된 「盛京時報(성경시보)」(발행인 中島眞雄) 같은 일본인 발행 신문도 影印이 되어 있다. 150여 책의 방대한 분량이다. 대만에서는 일본어로 발행된 「臺灣日日新報(대만일일신보)」(1904~1945)의 영인본이 나와 있다. 160여 책 분량이다.

日帝 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는 影印本이 나와 있지만, 1930년대의 지면은 影印상태가 조악해 자료로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京城日報는 민간업자가 순차적으로 影印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보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분량이 더 많다고 한다.

신문은 역사의 1차적 기록자다. 韓末에서 日帝 식민지 기간을 거쳐 광복 後의 혼란기와 한국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기록한 객관적인 자료가 신문이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자료들을 우선적으로 생산·보급해 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과거사는 저절로 밝혀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