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三星의 8000억원 사회기금 헌납을 보고 : 월간조선

얼마 전 三星그룹 총수인 李健熙(이건희) 회장과 그의 가족이 8000억원의 사회기금을 내놓은 일이 큰 화제가 되었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이번 기부는 三星그룹이 집권세력과 左派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나왔으며, 기부 액수가 전에 없이 큰 데다가 기부자가 기부금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많은 뒷말을 낳고 있다.

어떤 기부금이든지 기부자의 목표와 관리방안과 같은 사항들이 뚜렷이 제시된다. 이번에는 기부자가 기부금이 쓰일 구체적 목표들을 제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부금에 대한 관리권을 포기했다. 「관리의 三星」이라는 호칭이 무색하다.

요즈음엔 기부자들이 기부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의 특집 「기부 사업」에서 『큰 부자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자선은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부자들은 그들의 돈이 쓰이는 방식에 대해서 훨씬 더 사업적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기부하고 그 목적을 위한 기구를 운영해 온 李회장이 모를 리 없다.

이번 기부금은 집권세력과 左派단체들의 공격에 시달린 李회장 일가와 三星그룹이 그들에게 굴복해 치른 「몸값」에 다름 아니다. 三星그룹이 이번 기부와 함께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한 공정거래법에 대한 違憲(위헌)소송을 취하한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몸값을 치른 三星그룹의 처지와 계산은 물론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몸값은 늘 문제를 일으킨다. 먼저, 몸값은 착취에 대한 포상이다. 그래서 그것은 도덕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 도덕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행위는 조만간 당사자에게 해를 끼친다.

다음엔, 몸값은 궁극적으로 착취의 위협을 늘린다. 성공적 착취는 착취자의 입맛을 돋우어 또 다른 착취에 나서도록 한다. 유화정책이 늘 실패하는 사정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용한다. 이번 몸값의 직접적 효과는 左派단체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희생자들을 찾도록 격려하리라는 것과 財閥(재벌)들이 치러야 할 몸값의 단위가 더욱 높아질 것일 터이다.

財閥에 대한 부당한 공격들을 정당화

2005년 8월 삼성본관 사옥 앞에서 삼성규탄 시위를 벌이는 민주노동당원들.

위에서 든 일반적 문제들 말고도, 이번 경우는 특수한 정황 때문에 다른 위험들과 폐해들이 따른다.

첫째, 재벌에 대한 부당한 공격들을 정당화해 주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들은 본질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에 대한 민중주의적 처벌을 겨냥한 것이었고, 그런 공격들은 「사회적 惡漢(악한)」이 된 재벌에 대한 시민들의 막연한 반감과 두려움에서 힘을 얻었다.

이번 몸값과 연계된 三星그룹이나 李 회장 일가의 잘못은 뚜렷이 제시되지 않았다. 만일 三星그룹이나 李회장 일가가 범죄를 저지른 의혹이 있다면, 그것들은 법에 따라 다루어져야 한다. 몸값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엄청난 몸값이 지불되었고, 이제 재벌에 대한 부당한 공격들이 무슨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둘째, 정치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다. 재벌을 공격해 온 세력은 집권세력과 左派단체들이다. 일반적으로 몸값을 요구하는 폭력조직들이나 납치범들과 사뭇 다른 집단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주의·자본주의·시장경제에 적대적이고 그런 이념·체제·정책이 全體主義的(전체주의적) 이념·체제·정책으로 대치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달랠 수 없고 무자비한 세력에게 몸값을 지불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에 운동량을 더해 주어 더욱 큰 몸값을 요구하도록 만들고 저항을 더욱 무자비하게 짓밟도록 만들 따름이다.

셋째, 근년에 꾸준히 진행되어 온 財産權(재산권)의 훼손 과정이 가속될 것이다. 이번 일에서 주체는 정부 기구를 장악한 집권세력이었다. 이 점은 이미 위에서 밝혀졌지만, 기부금의 운용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盧武鉉 대통령의 발언에서 다시 확인된다.

재산권의 훼손은 주로 정상적 수준을 넘는 과세의 형태를 취한다. 우리 사회에선 「準조세」라 불리는 착취가 재산권을 크게 훼손해 왔다. 그것은 法的(법적) 근거가 전혀 없지만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업들은 주기적으로 정치 자금을 내야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었다. 과도한 세금은 형식적으로는 합법적 행위였고, 準조세와 정치 자금은 公共(공공) 목적으로 위한다는 명분과 일회성이라는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몸값은 準조세나 정치 자금이 내세운 명분조차 없고 앞으로도 계속 강요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몸값은 재산권의 훼손 과정에서 또 하나 큰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기부는 三星그룹으로서는 중대한 失策(실책)이었음이 드러난다. 三星그룹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기업이며, 자연히 숨을 곳이 없다. 다른 재벌들은 三星그룹 뒤에 숨을 수 있지만, 三星그룹은 모든 일들에서 앞장서서 비판과 비난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굴복은 당장 닥친 공격을 견디기 어려워서 전략적·전술적으로 더욱 불리한 곳으로 물러난 셈이다.

새로운 형태의 財産權 훼손

게다가 이런 失策엔 공정거래법의 違憲소송을 취하한 失策이 겹쳤다. 法은 사회적 약자가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보호 장치다. 그리고 法은 본질적으로 그것의 보호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들만을 돕도록 설계되었다. 法 체계의 원초적이고 아직도 가장 중심적인 기능이 분쟁의 종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三星그룹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재벌들의 권리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항에 관해 법의 보호를 포기한 셈이다. 이것이 어떻게 현명한 판단일 수 있겠는가?

재산권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그것은 경제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 주는 핵심적 장치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現 정권 아래서 재산권의 훼손은 급격해졌고,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의 특질들을 점점 짙게 띠어 왔다. 이제 三星그룹의 굴복은 재산권의 훼손 과정에 운동량을 더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이번 일의 본질적 부분이다.

三星그룹이 이번 기부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이 그런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실은 그것 자체가 문제다.

근년에 기업이나 기업가들에게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반 세기 전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유로운 사회를 허무는 아주 해로운 사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는 해롭다

『기업의 요원들이 그들의 株主(사주)들을 위해 되도록 많은 돈을 버는 것 말고 다른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우리 자유로운 사회의 기반 자체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경향들은 드물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顚覆的(전복적)인 敎理(교리)다.

만일 사업가들이 株主들을 위해 최대 이익을 실현하는 것 말고 다른 사회적 책임을 지녔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들이 알 수 있는가? 스스로 선임한 私的(사적) 개인들이 사회적 이익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가? 그들이 그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이나 株主들에게 정당하게 지울 수 있는 짐이 얼마나 큰지 결정할 수 있는가? 과세·지출·그리고 통제라는 이들 公的(공적) 기능들이 전적으로 私的 집단들에 의해 선임되어 당시에 특정 기업들을 맡게 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가? 만일 사업가들이 그들의 株主들의 被고용인이 아니라 공무원들이라면, 민주주의에서 그들은 조만간 선거와 임명이라는 공적 방식에 의해 선임될 것이다』

자선이 이번처럼 힘센 세력이 강요해서 몸값이 아니라면, 물론 좋다. 실은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사회와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인 「상호적 利他主義(이타주의)」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포장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해롭다.

그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지위에 오른 자들은 그런 지위를 가능하게 한 이념과 체제를 지킬 책임이 있다는 인식에서, 자신에게 큰 손해가 따르더라도 그 이념과 체제를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몸값을 내는 것은 그 고귀한 책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대척적이다.

孤立無援의 三星

지난 2월4일 5개월 만에 귀국한 李健熙 회장.

물론 이번 일과 관련해서 三星그룹을 거세게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피해자를 비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세력이 우리 사회의 이념과 체제를 허물고 기업들에 몸값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버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굴복은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三星그룹이 아주 외로웠고, 집권세력과 左派단체들의 거칠고 집요한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는 과정에서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집단들로부터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음을 서글프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三星그룹이 무너지면 다른 재벌들도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더 큰 몸값을 치러야 하리라는 것이 분명한 데도, 다른 재벌들은 몸 사리기에 바빴을 뿐 三星그룹에 대해 도덕적 지지마저 보내지 않았다. 만일 다른 재벌들이 모여서 최소한의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면, 三星그룹에 대한 공격은 상당히 무뎌졌을 터이다. 三星그룹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가장 크게 성공한 재벌이라는 것과 그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에 따라 법의 보호를 구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서로 경쟁한다. 그들의 이익은 합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 따라서 기업들이 연합해서 전선을 이루는 경우는 어느 사회에서나 어렵고 드물다. 우리나라에선 물론 훨씬 그렇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재벌들이 이번에 보여 준 행태는 비루하고 어리석다. 자유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들로서, 그리고 우리의 이념과 체제가 무너지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자들로서, 재벌들은 우리 이념과 체제를 지킬 도덕적·현실적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그들은 늘 無賃(무임)승차를 즐긴다. 그저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념과 체제를 허물려는 세력에게 다투어 몸값을 바친다. 대한민국을 지키려 애쓰는 온라인 사이트들에는 광고 한번 싣지 않으면서, 자신만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다투어 左派 사이트들에 광고를 싣는다. 나라가 위급해도, 힘을 모아서 최소한의 저항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싸움터에서 가장 나쁜 선택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이다. 적군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합리적 선택은 한데 뭉쳐서 저항하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無賃승차와 비겁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믿고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깊이 살핀 조지프 슘페터의 얘기를 늘 기억해야 한다. 그는 『자본주의를 파멸시키려고 나선 사람들은 설득할 수도 뇌물로 달랠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의 공격은 정치적이다. 경제적 이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구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재벌을 공격하는 세력이 내세운 것은 늘 「사회적 손실이나 위협」과 같은 추상적 이유들이었고, 그들이 세력을 늘리는 데 쓴 것은 「三星공화국」과 같은 상징 조작들이었다.

『정치적 공격이 주로 불평에서 나오고 그것을 정당화에 의해서 막아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정치적 비판은 합리적 주장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사형선고를 이미 주머니에 지니고 재판관 노릇을 시작한 세력에 대해 자본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대응은 굳은 마음으로 싸우는 것뿐이다. 과연 그들은 싸울 것인가?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해 슘페터는 비관적 답변을 내놓았다.

『그들은 얘기하고 애원한다 - 또는 그들을 대신할 사람들을 고용한다. 그들은 타협의 기회가 나오면 이내 잡아챈다. 그들은 늘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들과 이익들의 깃발 아래 싸우는 경우가 결코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자유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들의 「理想(이상)의 깃발」을 내걸고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敵(적)과 마주설 수 있을까? 이번에 三星그룹이 내놓은 몸값은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