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죽자 ?』
「회사를 불지르고 함께 죽자」 「정부와 결사항전을 벌이자」
1997년 가을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부와 채권단의 법정관리방침을 반대하며 파업을 벌일 때 소하리 공장에 걸린 플래카드에 써 놓은 구호들이다.
기아자동차 勞組의 강경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부도와 법정관리는 막지 못하고 결국 기아그룹은 도산되고 말았다. 기아자동차의 도산은 우리의 對外 信認度(신인도)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勞組의 구호같이 격렬하게 싸우다가 모든 것이 勞組의 구호대로 이루어졌다.
기아그룹의 도산과 IMF 사태는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는 「韓國號」(한국 호)라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기아자동차가 스스로 구조조정을 못하여 쓰러지는 결과를 보고 정리해고가 종국적으로는 근로자에게도 得(득)이 된다는 것을 실증해 주었다.
起亞는 결손이 쌓이고 부채가 10조원으로 늘어나는데도 정리해고는 생각도 못했 다. 회사는 기울어 가는데도 오히려 근로자의 임금은 계속하여 올라갔다. 「大馬不死」의 신화에도 불구하고 재계랭킹 8위의 기아그룹은 사라지고 기아자동차는 라이벌이었던 현대자동차로 넘어가고 말았다.
2000년에는 겨울철인데도 부실은행의 지주회사 편입을 계기로 노사간의 갈등이 증폭되어 가더니 끝내 한국전력은 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다. 한국전력의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고 나니까 한국통신이 또 노동쟁의를 결의하고 나서고 데이콤은 한 달이 넘도록 노동쟁의를 벌이다가 사용자의 최후수단인 직장폐쇄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지금 「春鬪(춘투)」에다 「冬鬪(동투)」까지 겪고 있다.
퇴학 위기의 한국
1997년 봄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나는 런던에서 세계적인 금융그룹 HSBC (홍콩 상하이 은행)의 당시 회장이던 윌리 퍼브스씨를 만났다. 한보철강 부도 이후 對外 信認度가 날로 떨어지고 신규 해외차입은 이미 막히고 滿期가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회전이 안 되던 때였다.
내가 『왜 만기만 되면 대출을 회수해 가느냐』고 물었을 때 퍼브스 회장은 『투명성 (Transparency) 결여, 강성 노조(Militant Labor Union), 예측 못할 북한(Unpredictable North Korea)이 세 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첫째, 외국투자가는 공표된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하는데 한보철강 사건이 터졌을 때 200억원의 비자금이 있었다는 것은 한국의 재무제표는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드 러냈다는 것이다. 둘째 영국은 노사분규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져 IMF구제금융까지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격렬한 노동투쟁은 영국 투자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셋째,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는 호전적인 북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이와 같은 세 가지에 이유에 대하여 외국투자가가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 자금회수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후 기아자동차가 부도 났을 때 공표된 것보다 많은 부채가 드러나고 勞組의 투쟁도 격렬하여 對外신인도 는 더욱 떨어졌고 長期(장기) 차입은 이미 중단된 상황에서 短期(단기) 차입마저 끊 어짐에 따라 그해 말에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지난 11월 말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은 한때 IMF의 모범생으로 칭찬받았지만 지금은 성적이 나빠 퇴학당할 위기에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12월 초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 정부는 은행개혁에 착수했고 이제까지 110조원의 돈을 투입했지만 부실여신은 더 늘어나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법안을 통과 시켰다. 급기야 한국 정부는 『지주회사』라는 묘한(?) 아이디어를 짜내 부실은행들을 한데 묶어 지주회사로 편입시킨다는 계획인데 이것은 한국 정부가 노조의 반발이 무서워 이런 방안을 꾀하고 있지만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경제회복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던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S&P도 12월 들어 『한국의 유동성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2001년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999년 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때 약속한 대로 1년 반 만에 『IMF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2000년 들어서는 IMF 차입금의 조기 상환을 정부가 검토한다고 보도됨으로써 지금까지 비교적 인내하던 勞組의 강경투쟁을 불러오는 빌미를 만들었다.
유연성과 안전망
1997년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정책협의에서 IMF는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노동의 再배치를 촉진시키기 위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동시적인 확대를 권고하였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탄력적인 정리해고가 핵심 내용이고 사회안전망은 고용보험과 再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이 주요 내용이다.
IMF가 권고한 대로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가 보장되어야 하고, 정리해고에 대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고용 보험과 再취업 훈련의 확대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그때 서울에 온 캉드쉬 IMF 총재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직접 찾아가 정리해고의 불가피성과 종국적으로 정리해고가 노동자 전체에 得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지난 3년간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9년부터는 고용보험 대상이 모든 사업장까지 확대되고 실업급여의 지급대상과 금액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평생직장의 관념이 강하여 사실상 정리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새로운 인력의 공급도 非탄력적이고, 구조조정이 부진하여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으니 인력의 수요도 非탄력적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리해고되어서 실업자가 되든,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든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회사가 부도가 나는 막다른 골목까지 치달았다. 정리해고가 어려워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결여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결여됨으로써 정리해고가 어려운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는 공직을 떠난 후 勞使협상에 직접 참여하여 「세상만사는 시작도 믿음이요 끝도 믿음」이라는 생각에 대하여 작은 실험을 해보았다.
1999년 한국무역협회의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임금과 단체협약에 관한 노사협상을 할 때였다. 밀고 당기는 협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은 옛날 영국 방직공장에서 노동자가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도록 급식을 할 때 국물을 주지 않았던 시대와 다르고 내 스스로가 사용자이기보다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믿음으로 대화 해 나갔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정신과 같이 勞使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로 협의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노조 간부를 만나 나도 그렇게 성명서로 답변하면 노조가 기분 좋겠느냐고 설득하였다. 어려운 고비도 있었고 약간의 갈등도 표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결국에 가서는 대자보나 꽹과리 소리 하나 없이 勞使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결과적으로 노조의 요구를 별로 들어주지 못하였는데도 서로가 믿었기 때문에 원만한 勞使협상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한국무역협회 노조간부들에게 아직도 고마움과 정을 느낀다.
공공부문의 勞使관계는 사용자의 도덕적 解弛(해이)까지 겹쳐 아예 혼돈상태다. 파업까지 치닫던 것으로 비쳐지던 한국전력의 노사협상이 막판까지 가서 타결되자 국민 모두 박수를 쳤다. 다음날 망원렌즈에 잡힌 노사간의 이면합의서가 공개되자 국민들은 속은 기분으로 실망하게 되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정리해고를 하고 勞使협상을 하던 조폐공사 사장은 불명예로 퇴진하고 이면합의로 적당히 넘어가는 공기업 사장들은 건재하고 있으니 누가 용기 있게 正道(정도)로 勞使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勞使분규 현장에 과연 法이 있나
기업과 금융의 구조개혁은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노동시장의 탄력성은 노사간 모두에게 법을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확립되지 않으면 어렵다.
법이 지배하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하여는 勞使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균 형된 노동관계법의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에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가 이 법 을 지켜야 하고 정부는 위반에 대하여 勞使 모두 엄격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지금의 노동관계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노동자측에 기울어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법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 아니라 힘과 억지가 앞서고 정부는 실효성 있게 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법이 있는 현장에 경찰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현장에 투입된 경찰도 오히려 노동자에게 얻어맞는 광경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니 법의 지배원칙은 언제 이루어질지 아득하기만 하다. 과거 공권력이 때로 正義의 편에 서지 못했던 죄과에서 언제 벗어나 선진 민주국가와 같이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는 경찰이 될 수 있을지….
「국민의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노동시장에는 아직 시장경제도 민주주의도 찾기 힘들다. 옛날의 군사정권과 투쟁하던 때에 우리들은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고 노조를 힘으로 다스리는 것도 반대했다. 지 난번 「문민정부」도 지금의 「국민의 정부」도 민주화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주축이지만 힘과 억지 앞에는 민주도 법치도 무력하다. 군사정부는 힘이라도 있었고, 민주정부는 힘을 못 쓰면 지혜라도 있어야 하는데 힘도 지혜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1997년 가을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부와 채권단의 법정관리방침을 반대하며 파업을 벌일 때 소하리 공장에 걸린 플래카드에 써 놓은 구호들이다.
기아자동차 勞組의 강경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부도와 법정관리는 막지 못하고 결국 기아그룹은 도산되고 말았다. 기아자동차의 도산은 우리의 對外 信認度(신인도)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勞組의 구호같이 격렬하게 싸우다가 모든 것이 勞組의 구호대로 이루어졌다.
기아그룹의 도산과 IMF 사태는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는 「韓國號」(한국 호)라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기아자동차가 스스로 구조조정을 못하여 쓰러지는 결과를 보고 정리해고가 종국적으로는 근로자에게도 得(득)이 된다는 것을 실증해 주었다.
起亞는 결손이 쌓이고 부채가 10조원으로 늘어나는데도 정리해고는 생각도 못했 다. 회사는 기울어 가는데도 오히려 근로자의 임금은 계속하여 올라갔다. 「大馬不死」의 신화에도 불구하고 재계랭킹 8위의 기아그룹은 사라지고 기아자동차는 라이벌이었던 현대자동차로 넘어가고 말았다.
2000년에는 겨울철인데도 부실은행의 지주회사 편입을 계기로 노사간의 갈등이 증폭되어 가더니 끝내 한국전력은 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다. 한국전력의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고 나니까 한국통신이 또 노동쟁의를 결의하고 나서고 데이콤은 한 달이 넘도록 노동쟁의를 벌이다가 사용자의 최후수단인 직장폐쇄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지금 「春鬪(춘투)」에다 「冬鬪(동투)」까지 겪고 있다.
퇴학 위기의 한국
1997년 봄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나는 런던에서 세계적인 금융그룹 HSBC (홍콩 상하이 은행)의 당시 회장이던 윌리 퍼브스씨를 만났다. 한보철강 부도 이후 對外 信認度가 날로 떨어지고 신규 해외차입은 이미 막히고 滿期가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회전이 안 되던 때였다.
내가 『왜 만기만 되면 대출을 회수해 가느냐』고 물었을 때 퍼브스 회장은 『투명성 (Transparency) 결여, 강성 노조(Militant Labor Union), 예측 못할 북한(Unpredictable North Korea)이 세 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첫째, 외국투자가는 공표된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하는데 한보철강 사건이 터졌을 때 200억원의 비자금이 있었다는 것은 한국의 재무제표는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드 러냈다는 것이다. 둘째 영국은 노사분규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져 IMF구제금융까지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격렬한 노동투쟁은 영국 투자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셋째,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는 호전적인 북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이와 같은 세 가지에 이유에 대하여 외국투자가가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 자금회수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후 기아자동차가 부도 났을 때 공표된 것보다 많은 부채가 드러나고 勞組의 투쟁도 격렬하여 對外신인도 는 더욱 떨어졌고 長期(장기) 차입은 이미 중단된 상황에서 短期(단기) 차입마저 끊 어짐에 따라 그해 말에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지난 11월 말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은 한때 IMF의 모범생으로 칭찬받았지만 지금은 성적이 나빠 퇴학당할 위기에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12월 초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 정부는 은행개혁에 착수했고 이제까지 110조원의 돈을 투입했지만 부실여신은 더 늘어나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법안을 통과 시켰다. 급기야 한국 정부는 『지주회사』라는 묘한(?) 아이디어를 짜내 부실은행들을 한데 묶어 지주회사로 편입시킨다는 계획인데 이것은 한국 정부가 노조의 반발이 무서워 이런 방안을 꾀하고 있지만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경제회복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던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S&P도 12월 들어 『한국의 유동성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2001년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999년 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때 약속한 대로 1년 반 만에 『IMF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2000년 들어서는 IMF 차입금의 조기 상환을 정부가 검토한다고 보도됨으로써 지금까지 비교적 인내하던 勞組의 강경투쟁을 불러오는 빌미를 만들었다.
유연성과 안전망
1997년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정책협의에서 IMF는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노동의 再배치를 촉진시키기 위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동시적인 확대를 권고하였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탄력적인 정리해고가 핵심 내용이고 사회안전망은 고용보험과 再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이 주요 내용이다.
IMF가 권고한 대로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가 보장되어야 하고, 정리해고에 대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고용 보험과 再취업 훈련의 확대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그때 서울에 온 캉드쉬 IMF 총재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직접 찾아가 정리해고의 불가피성과 종국적으로 정리해고가 노동자 전체에 得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지난 3년간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9년부터는 고용보험 대상이 모든 사업장까지 확대되고 실업급여의 지급대상과 금액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평생직장의 관념이 강하여 사실상 정리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새로운 인력의 공급도 非탄력적이고, 구조조정이 부진하여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으니 인력의 수요도 非탄력적이다. 대우자동차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리해고되어서 실업자가 되든,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든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회사가 부도가 나는 막다른 골목까지 치달았다. 정리해고가 어려워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결여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결여됨으로써 정리해고가 어려운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는 공직을 떠난 후 勞使협상에 직접 참여하여 「세상만사는 시작도 믿음이요 끝도 믿음」이라는 생각에 대하여 작은 실험을 해보았다.
1999년 한국무역협회의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임금과 단체협약에 관한 노사협상을 할 때였다. 밀고 당기는 협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은 옛날 영국 방직공장에서 노동자가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도록 급식을 할 때 국물을 주지 않았던 시대와 다르고 내 스스로가 사용자이기보다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믿음으로 대화 해 나갔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정신과 같이 勞使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로 협의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노조 간부를 만나 나도 그렇게 성명서로 답변하면 노조가 기분 좋겠느냐고 설득하였다. 어려운 고비도 있었고 약간의 갈등도 표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결국에 가서는 대자보나 꽹과리 소리 하나 없이 勞使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결과적으로 노조의 요구를 별로 들어주지 못하였는데도 서로가 믿었기 때문에 원만한 勞使협상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한국무역협회 노조간부들에게 아직도 고마움과 정을 느낀다.
공공부문의 勞使관계는 사용자의 도덕적 解弛(해이)까지 겹쳐 아예 혼돈상태다. 파업까지 치닫던 것으로 비쳐지던 한국전력의 노사협상이 막판까지 가서 타결되자 국민 모두 박수를 쳤다. 다음날 망원렌즈에 잡힌 노사간의 이면합의서가 공개되자 국민들은 속은 기분으로 실망하게 되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정리해고를 하고 勞使협상을 하던 조폐공사 사장은 불명예로 퇴진하고 이면합의로 적당히 넘어가는 공기업 사장들은 건재하고 있으니 누가 용기 있게 正道(정도)로 勞使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勞使분규 현장에 과연 法이 있나
기업과 금융의 구조개혁은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노동시장의 탄력성은 노사간 모두에게 법을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확립되지 않으면 어렵다.
법이 지배하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하여는 勞使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균 형된 노동관계법의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에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가 이 법 을 지켜야 하고 정부는 위반에 대하여 勞使 모두 엄격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지금의 노동관계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노동자측에 기울어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법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 아니라 힘과 억지가 앞서고 정부는 실효성 있게 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법이 있는 현장에 경찰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현장에 투입된 경찰도 오히려 노동자에게 얻어맞는 광경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니 법의 지배원칙은 언제 이루어질지 아득하기만 하다. 과거 공권력이 때로 正義의 편에 서지 못했던 죄과에서 언제 벗어나 선진 민주국가와 같이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는 경찰이 될 수 있을지….
「국민의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노동시장에는 아직 시장경제도 민주주의도 찾기 힘들다. 옛날의 군사정권과 투쟁하던 때에 우리들은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고 노조를 힘으로 다스리는 것도 반대했다. 지 난번 「문민정부」도 지금의 「국민의 정부」도 민주화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주축이지만 힘과 억지 앞에는 민주도 법치도 무력하다. 군사정부는 힘이라도 있었고, 민주정부는 힘을 못 쓰면 지혜라도 있어야 하는데 힘도 지혜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