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같은 IMF 위기 극복
「파블로프의 개는 이보다 더 빨리 배웠다. 그들은 배우기 전에 얼마나 많이 고통받아야 할까?」(Pavlov’s dog learned much faster than this. How many more must they suffer before they learn)
최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아시아 경제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 경제에 대하여는 「要注意(요주의)」라고 경고하면서 석유가격의 상승과 전자제품의 수요 감퇴로 최대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기가 더 위축되면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했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60여 조원의 회사채가 큰 부담이 될 것이고 포드의 大宇자동차 인수포기로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내년에는 1990년대 후반보다는 낫지만 상당한 동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현대건설은 벌써 두 번째 사실상의 부도를 냈다. 大宇자동차와 東亞건설은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때 39만원까지 올랐던 皇帝株(황제주) 삼성전자와 코스닥 주가는 폭락하고 소비자의 체감 경기는 계속 위축되고 있는 중에 모든 연구기관들의 내년도 경제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 『우리 경제는 IMF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했는데 국민들은 모두가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신기루를 보는 기분이다.
『경기는 뱀같이 움직인다』
살아 있는 경제의 모든 지표는 상향하든, 하향하든 「스네이크 스타일」(Snake Style)로 반복적으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景氣(경기)도 뱀이 움직이는 것 같이 항상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도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197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거의 5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우리 경제의 GDP(국내총생산) 잠재성장률이 6~7% 이하로 떨어진 경기의 底點(저점)은 1970년 이후 1975년(6.5%), 1980년(-2.1%), 1985(6.5%)년으로 정확히 5년 週期(주기)를 계속해 왔다. 우리 경제가 개방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4년 정도의 週期로 1989년(6.1%), 1992~1993년(5.4%, 5.5%) 1997~1998년(5.0%, -6.7%)을 底點으로 경기가 순환하여 왔다.
이러한 底點의 중간인 1973년(12.3%), 1976년(11.2%), 1983년(10.7%), 1991년(9.2%), 1995년(8.9%)에는 GDP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올라가는 頂點(정점)이 있었고 그 정점의 성장률은 1973년의 12.3%를 최고로 하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1%, 10%, 9%, 8%대로 낮아져 왔다.
1999년은 IMF 사태에 따라 -6.7%를 기록한 전년의 영향으로 10.7%의 高성장을 보였지만 2000년의 성장률이 예측대로 8.9%가 된다면 과거의 정점들의 추세를 볼 때 올해가 현재 주기의 景氣 頂點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중 산업활동 동향」에서 8월에 비하여 생산은 4.3% 줄고, 설비투자와 소비의 증가율도 급격히 하락하여 경기同行지수와 先行지수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을 보면 우리 경제는 올해 중반에 경기의 頂點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4년 주기로 볼 때 2001~2002년에 우리의 경제는 바닥을 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원유가격이 30달러代를 유지하고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위축되고 반도체 등 전자제품의 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민간연구소들은 대부분 내년에 경제성장률은 6% 전후로 둔화되고 경상수지도 급속도로 악화되어 20~30억 달러의 흑자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경기순환은 세계의 경기순환, 특히 미국과 일본의 경기와 상 당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같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지난해와 올해의 경기는 1997년과 1998년에 경제가 바닥을 친 다음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리바운드이지 구조적 위기의 극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와 동행하는 景氣循環
우리 경제는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1979년 朴正熙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로 정치사회의 모든 부문이 흔들리면서 경제도 1980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1985년에는 세계 경기의 하락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그리고 중국의 시장경제 참여로 경기는 바닥을 쳤지만 低유가, 低달러, 低금리의 「3低 現象(현상)」으로 11%대의 고도성장을 회복하면서 全斗煥 대통령 시대는 1988년 막을 내렸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 된 盧泰遇 대통령과 金泳三 대통령 시대에는 대통령의 임기와 경기순환이 거의 일치하였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경기는 활성화되었고 말기에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
1970년대 이후 세계 경기나 미국과 일본의 경기순환과 비교적 일치해 오던 우리의 경기순환도 1990년대 후반부터는 10년 간의 「신경제」 호황국면에 들어선 미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고 특히 1997년 IMF 사태 전후에는 더욱 괴리가 심했다.
1970년 이후 우리 경제의 순환은 크게 보아 대통령의 임기와 경기의 순환이 同行하여 왔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의 분석들을 찾아보아도 맞아떨어지는 경제적 분석은 찾을 수 없다. 어쩌면 非경제적인 요인인지도 모른다.
경기순환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 중 「心理說(심리설)」에 의하면 경제는 인간의 합리성에 의하여 움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심리에 의하여 경기순환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낙관할 만한 새로운 여건이 형성되면 상품의 판매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도 생산과 투자를 증가시키고 금융기관도 낙관적인 분위기에 따라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을 늘리게 됨으로써 경기는 확장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朴正熙 대통령 이래, 특히 盧泰愚 대통령 이래는 거의 정확하게 대통령의 임기를 주기로 하여 경기가 순환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경기순환은 심리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있고 심리적 「大統領 週期 景氣循環(대통령 주기 경기순환)」이었다.
이러한 대통령 임기와 일치하는 경기순환은 家計의 소비심리보다 기업의 투자심리에 더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조성된 밝은 투자분위기는 경기의 상승분위기를 주도했다. 盧泰愚 대통령의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1989.4.27), 金泳三 대통령의 「신경제 100일계획」(1993.3.22), 金大中 대통령의 「1년 반內에 IMF 극복」 등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촉진시킨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와 반대로 많은 기업인이 구속되는 대형 경제사건이나 기업의욕을 크게 위축시키는 과격한 정책이 나올 때부터 기업의 투자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갔다. 그리고 임기 末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레임덕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아보려는 「司正(사정) 한파」와 새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의 「두고보자(Wait and See)」현상은 경기의 하강을 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盧泰愚 대통령 시절 초법적이었던 「5·8조치」(1990.5.8), 즉 「49개 계열기업군에 대한 부동산 신규 취득금지와 非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조치」에 대하여 대기업은 소송으로 맞섰고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의혹사건」(1991.2) 때에는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이 구속되는 과정에서 기업의 투자분위기는 냉각되었다.
金泳三 대통령 때에는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와 전직 全斗煥·盧泰愚 대통령의 구속까지 연결된 「끊임없는 査正」으로 공무원의 「伏地不動」(복지부동) 속에 기업의 투자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던 중 「한보철강 부도사건」(1997.1.23)으로 경기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우리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인가?
정부는 올해 들어서 많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하여 우려하는 데도 1997년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펀더멘털은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IMF 경제위기는 구조적인 위기와 유동성의 위기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넛크래커(Nutcracker:호두까는 기구)에 끼인 호두」로 표현된 「高비용·低효율」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러한 高비용·低효율 구조를, 논의만 무성한 속에 개혁하지 못함으로써 對外신인도가 떨어진 가운데 1997년 7월 태국의 바트貨 폭락에서 시작하여 아시아에 휘몰 아 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까지 전염되어 발생한 유동성 위기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유동성 위기라는 측면에서 IMF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의 극복은 1997년 12월3일 합의된 총 550억 달러에 달하는 IMF 긴급 유동성조절 자금에 힘입은 것이지 우리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상수지가 1998년에 405억 달러, 1999년에 244억 달러의 흑자로 개선된 것은 달러당 900원 이하에 있던 환율이 1200원대 이상으로 상승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이 올라가고 설비투자의 위축에 의한 자본재수입의 감소가 主요인이지 高비용·低효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수출에 있어서 금년 9월까지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등 3개 전자제품이 53.5%나 증가한 데 힘입어 달성된 총수출 25.9% 증가를 수출호조로 보는 것은 IMF 외환위기 직전의 「평균치의 錯視(착시)현상」과 비슷하다. 1999년의 수출은 달러기준으로는 9.0% 늘었지만 원화기준으로는 6.7%가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또 다른 錯視현상을 일으켰다.
최근의 경제상황에 대하여 여론조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IMF 위기는 계속중이고 위기극복은 쉽게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정부는 지난해 말 「IMF 위기는 극복했다」고 단언하였다. 나는 28년간 재정금융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위기의 지표는 국제收支(수지)와 株價(주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국제수지가 나쁘면 다른 모든 경제지표가 좋아도 그 경제는 건강하지 못하고 국 제수지가 좋으면 다른 모든 경제지표가 나빠도 그 경제는 건강하거나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수지는 그 나라 경제의 「종합성적표」요 「실증적 위기지표」였다.
株價는 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미래 예측 평균치이며, 기업의 투자의욕지수였고 「심리적 위기지표」였다.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될 때 경제위기는 항상 따랐고 株價가 떨어지면 기업의 투 자는 부진하고 경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 3년간 400억 달러, 200억 달러, 100억 달러 대로 급속히 악화되고 내년에는 비관적인 경우 적자로 반전될 수도 있다고 하니 이것을 위기 지표라 생각된다.
株價도 IMF 사태 이후 최고 980포인트까지 올랐다가 지금 500대로 주저앉았고 코스닥 株價도 최고 260포인트까지 갔다가 80대로 폭락했으니 이 또한 위기의 예고지표라 생각된다. 수출시장 점유율을 보면 국제수지와 株價의 위기지표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다.
우리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988년 최고 4.6%에서 2000년 상반기 3.2%로 낮아졌고 일본 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6.3%에서 5.5%로 낮아졌다. 이에 반해 輸入多邊化品目(수입다변화품목)에서 해제된 일제 캠코더는 1년여 만에 국내시장의 80%를 점유해버렸다.
수십년간 키워온 主力산업의 핵심기업들이 중국의 가격과 일본의 기술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지금 부실화되거나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또한 위기지표의 신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제수지와 株價는 우리 경제가 위기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위기 의 실체는 高비용·低효율에 있고 高비용·低효율의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되어야 할 과제이지 짧은 기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
우리 경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朴正熙 대통령시대가 끝난 1980년 이후, 세계 경제의 개방화, 중국의 시장경제 편입,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新경제 조류에 따른 효과적인 구조조정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지 못한 채 「행동은 없고 말만 무성한」 상태를 지속함으로써 對外경쟁력을 잃어갔고 高비용·低효율의 구조적 위기가 배태되어 왔다.
全斗煥 대통령 시절 중국의 시장경제 참여로 우리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4년간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지만 이것은 이 시기에 사회간접자본과 설비투자가 활발치 못했던 것에 기인하였고 이때의 생산능력 증가의 둔화는 우리 경제를 다시 적자로 돌아서게 했다. 朴正熙 대통령 시절의 개발성과에 안주하면서 경제안정과 물가안정에 주력하였고 「중화학 구조조정」이 시작되었지만 전반적인 구조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의 찬사 속에 서울올림픽을 치른 盧泰愚 대통령 시절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노조를 중심으로 「제몫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고 大宇그룹을 위시하여 재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말로만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가 구조조정의 최적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의 때늦은 구조조정 노력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계절의 「리더십 공백」으로 표류하게 되고 IMF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고 경기는 週期에 따라 바닥을 친 다음의 상승으로 이어졌지만 구조개혁 노력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구조적 위기는 아직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못하면 한번 더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한번 더 위기를 맞으면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1997년 말 캉드쉬 IMF 총재는 충고했다. 그리고 멕시코 등 한번 위기를 경험한 나라는 모두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구조개혁이 이루어져도 그 효과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가시적인 효과에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네 번 위기 他力으로 넘겼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주역이었던 「現代」와 「大宇」와 「東亞」가 부도지경으로 몰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 기업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의아해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 기업은 아직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없었다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서강대학교 趙潤濟(조윤제) 교수는 우리 경제도 南美의 여러 나라들과 같이 여러 번의 외환 위기를 맞았는데 그때마다 냉전체제에 의한 「韓·美·日(한·미·일) 특수관계」와 「월남전 특수」 및 「중동건설 특수」라는 外生變數(외생변수)에 의하여 넘겼다는 것이다.
첫번째 외환위기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위한 투자로 경상수지적자가 누적되어 일어났다. 1963년에는 수출이 8600만 달러였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배에 가까운 1억4300만달러에 달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누적적자는 2억2400만 달러였다. 이러한 적자는 미국의 후원으로 韓·日(한·일)국교가 정상화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對日청구권자금 8억 달러(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에 의하여 넘어갔다. 이러한 자금의 규모는 우리의 수출 규모가 1억 달러 전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다.
두 번째 외환위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 기간 중 연간 4~5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어났는데 이때는 「월남전 특수」로 넘겼다. 1965년 「월남파병」으로 체결된 「브라운 각서」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정부 조달은 한국에 우선 배정할 것을 약속하였고 이에 따라 現代건설은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韓進은 월남전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수급의 어려움은 해결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赤字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8·3 조치」에 의하여 우리 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私債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진정한 위기관리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 번째 외환위기는 1973년 10월에 제1차 오일쇼크가 닥침으로써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20억 달러를 넘어서 일어났다. 이때 미국의 시티뱅크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1억 달러의 점보론(Jumbo loan)에 의하여 가까스로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이어서 우리의 건설업이 동남아에 진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 「중동건설 특수」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네 번째 외환위기는 1979년 「10·26 사태」 후에 왔다. 朴正熙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난 정치적인 혼란과 1970년대의 무리한 중화학공업투자로 1979년부터 3년 연속 40~5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증되어 외환수급이 어려워졌다. 이때는 미국의 지원 아래 「어거지」로 이루어진 40억 달러(일본 OECF 자금 18억5000만 달러, 일본 수출입은행 자금 21억5000만 달러)의 「韓·日경제협력자금」이 「보증」 역할을 하여 對外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외환수급의 어려움을 넘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네 번의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노력 없이 모두 다 냉전체제에 의한 「韓·美·日 특수관계」와 「월남전 특수」 및 「중동건설 특수」라는 외생변수에 의하여 他力으로 위기를 넘겼다.
1994년부터 반도체를 제외하면 매년 110억 달러, 220억 달러, 310억 달러씩 3년 동안 700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赤字가 늘어나는 데도 「경쟁력 10% 높이기」라는 허황된 캠페인을 벌이며 절하해야 할 환율을 오히려 절상하였던 「위기불감증」에 걸렸다.
1997년에 와서야 금융감독체제를 개편하고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구조조정으로 떨어진 對外신인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남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自力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IMF자금지원」이라는 他力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고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조치들은 IMF의 자금지원이 있은 후에 IMF 정책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법화되었다.
이제 냉전체제도 사라지고 중국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월남전 특수」나 「중동건설 특수」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8·3조치」 같은 특혜조치도 불가능하다. 오직 기업 스스로 自力에 의한 자본충실과 경쟁력 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구조조정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년도 우리 경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어둡게 보고 있다. 내년의 세계경제 도 어렵고 油價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반도체 등 전자제품의 경기도 어둡다. 그리고 투자신탁 등 채권인수 기반이 무너져버린 상태에서 2001년도에 滿期(만기)가 돌아오는 64조원의 회사채는 태풍의 눈이다. 지난 11월3일 29개社를 정리한다고 발표된 2차 구조조정계획도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받았고 40조원만 하면 된다고 정부가 단언하던 公的資金(공적자금)도 한 달이 못 가 부족하게 되었으니 아직도 위기의 실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고는 公的자금의 소요액을 추정할 수 없다. 지난 2년여의 시간에 치밀한 계획에 의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先行되었어야 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40조원의 추가 公的자금이 충분한지 모자라는지 누구도 모른다. 더구나 대우자동차는 이미 부도가 났고 현대건설도 부도가 난다면 公的자금의 추가소요는 불가피하다. 기업의 잠복된 부실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라야 금융의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그래야,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하여 한빛은행을 만들었는데 다시 평화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을 합쳐 지주회사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시행착오는 막을 수 있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기업 퇴출과 인력 감축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고용증대에 있다. 기업의 퇴출만 있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별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고, 정리해고만 있지 노동시장의 유연성 提高(제고)를 위한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렵게 합의된 「無노동 無임금」 원칙도 흔들리고 있으니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시작일 뿐이고 경쟁력 강화와 고용증대를 위한 구조조정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효과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 간을 정해놓고 서두를 일이 아니다.
경쟁력은 업종별로 다르다. 가격경쟁력은 중국의 종속변수이고 기술경쟁력은 일 본의 종속변수이다. 기업의 퇴출기준도 경쟁력을 이미 잃은 사양산업과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망산업과 그 중간에 있는 현상유지산업별로 달라야 하고 공급능력의 과잉 여부에 따라 방법도 달라야 한다. 산업별로 자금수지와 경쟁력과 시장상황을 분석하여 꾸준하고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분석은 보이지 않으니 지금 구조조정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과 기준이 불분명하다.
1998년 6월에 55개 기업의 퇴출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이벤트성의 일괄퇴출은 없다던 정부가 이번에 또 사실상 이미 퇴출된 20개 기업을 포함하여 29개의 정리 대상기업을 발표함으로써 또 한번 신뢰를 잃게 되었다.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남는 것은?
기업구조조정의 대표적인 경우인 현대그룹의 경우를 보자. 현대에 대하여는 지 난번 경제팀은 『자동차를 계열에서 분리하고, 시장이 받아들이는 自救계획을 세우고, 왕회장 父子는 물러나라』고 하였다. 새 경제팀이 들어오면서 지난 8월의 현대건설 自救계획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면서 현대건설의 협조융자를 권고하여 놓고, 지금 와서는 『원칙 대로 한다, 금융기관의 추가 지원은 없다, 연말까지 스스로 막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들어간다, 현대 정씨 일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올해 봄부터 끌어온 지금까지의 노력은 무엇을 의미하고 지난번 自救案(자구안)을 받아들인 후의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금융기관 사람들은 불안하다. 이렇게 숨바꼭질 같은 처리방법이 계속되는 동안 현대건설의 수주는 막히고 현금 이외의 납품도 어려워 현대건설은 살리려 해도 살아나기 힘들다. 원칙대로 해서 문제가 풀린다면 누군들 못했겠으며 지금까지는 왜 원칙대로 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건설업은 그 자체가 상장 부적격 업종이고 오너가 물러나면 사실상 受注(수주)도 어렵고 그것으로서 사실상 정리로 가는 길이다. 受注가 안 되면 장비는 녹슬고 현장근로자까지 흩어지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된다. 과거 「한양」이나 「동아건설」뿐 아니라 수많은 해외건설을 정리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건설 회사가 6개뿐이고 미국의 최고 건설회사 「벡텔」도 상장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건설 회사가 부도나면 전화기 한 대만 남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부도가 나면 핸드폰 하나만 남는다고 한다.
現代의 신용은 한국의 신용에 중요한 변수이고 現代가 부도나면 한국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現代는 문제를 지금까지 끌어온 현대·채권단·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현대건설의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보아 살리려고 한다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는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대출금은 출자전환되어야 신용이 회복되고 CP(기업어음)가 돌아간다. CP가 돌아가야 돌아오는 회사채의 借換(새로 꾼 돈으로 먼저 꾼 돈을 갚는 것)발행도 가능하고 受注도 이루어진다. 受注가 계속되려면 오랫동안 발주자와 관계를 쌓아온 경영진이 경영을 맡아야 하고 일정한 수준으로 경영을 정상화시키면 출자전환된 주식을 되살 수 있는 옵션이 있어야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다.
동아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신규공사는 하나도 따지 못하고 회사의 경영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멀쩡하던 대한통운까지 함께 법정관리로 끌고 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서울대 송병락 교수는 무리한 계열분리는 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최근에 서울에 온 미국 하버드大 제프리 삭스 교수도 『재벌을 해체하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최근에 와서 대통령의 임기와 週期를 같이하여 움직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대감으로 경기는 상승하다가 정부가 기업의 사기를 죽이고 신뢰를 잃으면 경기는 세계의 경기흐름을 벗어나 하강곡선을 그었다. 이만큼 우리경제의 「정치 종속성」은 강했다.
기업에게 따뜻하고 신바람 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기업인은 뛴다. 기업의 사기가 죽고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기업은 「두고 보자 (Wait and see)」로 가고 경기는 죽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경기가 상승하는 것은 지난 정부의 말기에 있었던 경기하강의 자연反動과 함께 새 정부에 대한 기업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어나는 경기의 상승은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해이하게 만들고 위기는 깊어만 갔다.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IMF의 위기는 계속중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한 번 위기를 맞은 나라는 모두 두 번 위기를 맞았고 우리에게 다시 위기가 온다면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만 무성하고 실천이 없는」 개혁
지금은 누가 맡아도 특별한 대책은 없다. 오직 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직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제시한 후에 기업의 뼈를 깎는 自救노력을 구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비전과 장·단기 정책들을 제시하며 기업의 투자의욕과 사기를 진작시켜 정부와 기업 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한다. 기업의 사기를 죽이면 될 일도 안 되고 신뢰를 잃으면 百藥(백약)이 無效(무효)다.
1997년 동남아에 외환위기가 몰려 올 때 노동시장과 금융개혁에 관한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의 대립으로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IMF 사태를 맞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통합구도로 나가야 경제도 산다. 상대방을 때려잡는 분열구도로 정치가 치달을 때 경제도 망쳤다.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정치도 구조조정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총리가 의장으로 있는 「산업경쟁력회의」에서 「新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15개의 신규 유망성장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한다. 미국도 대통령이 주관하는 「대통령산업경쟁력위원회」를 두고 電子상거래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도 정부주도로 「High-tech Island」를 목표로 10개 유망산업을 선정하여 6개년 계획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위기는 「高비용·低효율의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라는 구조적 위 기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2000년대를 향한 비전과 전략·전술의 제시가 없다는 데서부터 오고 있다. 또 다시 1997년과 같은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없는」(Many words without deeds) 遇를 犯치 말아야 한다.●
최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아시아 경제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 경제에 대하여는 「要注意(요주의)」라고 경고하면서 석유가격의 상승과 전자제품의 수요 감퇴로 최대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기가 더 위축되면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했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60여 조원의 회사채가 큰 부담이 될 것이고 포드의 大宇자동차 인수포기로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내년에는 1990년대 후반보다는 낫지만 상당한 동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현대건설은 벌써 두 번째 사실상의 부도를 냈다. 大宇자동차와 東亞건설은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때 39만원까지 올랐던 皇帝株(황제주) 삼성전자와 코스닥 주가는 폭락하고 소비자의 체감 경기는 계속 위축되고 있는 중에 모든 연구기관들의 내년도 경제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 『우리 경제는 IMF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했는데 국민들은 모두가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신기루를 보는 기분이다.
『경기는 뱀같이 움직인다』
살아 있는 경제의 모든 지표는 상향하든, 하향하든 「스네이크 스타일」(Snake Style)로 반복적으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景氣(경기)도 뱀이 움직이는 것 같이 항상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도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197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거의 5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우리 경제의 GDP(국내총생산) 잠재성장률이 6~7% 이하로 떨어진 경기의 底點(저점)은 1970년 이후 1975년(6.5%), 1980년(-2.1%), 1985(6.5%)년으로 정확히 5년 週期(주기)를 계속해 왔다. 우리 경제가 개방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4년 정도의 週期로 1989년(6.1%), 1992~1993년(5.4%, 5.5%) 1997~1998년(5.0%, -6.7%)을 底點으로 경기가 순환하여 왔다.
이러한 底點의 중간인 1973년(12.3%), 1976년(11.2%), 1983년(10.7%), 1991년(9.2%), 1995년(8.9%)에는 GDP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올라가는 頂點(정점)이 있었고 그 정점의 성장률은 1973년의 12.3%를 최고로 하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1%, 10%, 9%, 8%대로 낮아져 왔다.
1999년은 IMF 사태에 따라 -6.7%를 기록한 전년의 영향으로 10.7%의 高성장을 보였지만 2000년의 성장률이 예측대로 8.9%가 된다면 과거의 정점들의 추세를 볼 때 올해가 현재 주기의 景氣 頂點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중 산업활동 동향」에서 8월에 비하여 생산은 4.3% 줄고, 설비투자와 소비의 증가율도 급격히 하락하여 경기同行지수와 先行지수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을 보면 우리 경제는 올해 중반에 경기의 頂點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4년 주기로 볼 때 2001~2002년에 우리의 경제는 바닥을 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원유가격이 30달러代를 유지하고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위축되고 반도체 등 전자제품의 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민간연구소들은 대부분 내년에 경제성장률은 6% 전후로 둔화되고 경상수지도 급속도로 악화되어 20~30억 달러의 흑자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경기순환은 세계의 경기순환, 특히 미국과 일본의 경기와 상 당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같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지난해와 올해의 경기는 1997년과 1998년에 경제가 바닥을 친 다음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리바운드이지 구조적 위기의 극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와 동행하는 景氣循環
우리 경제는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1979년 朴正熙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로 정치사회의 모든 부문이 흔들리면서 경제도 1980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1985년에는 세계 경기의 하락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그리고 중국의 시장경제 참여로 경기는 바닥을 쳤지만 低유가, 低달러, 低금리의 「3低 現象(현상)」으로 11%대의 고도성장을 회복하면서 全斗煥 대통령 시대는 1988년 막을 내렸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 된 盧泰遇 대통령과 金泳三 대통령 시대에는 대통령의 임기와 경기순환이 거의 일치하였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경기는 활성화되었고 말기에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
1970년대 이후 세계 경기나 미국과 일본의 경기순환과 비교적 일치해 오던 우리의 경기순환도 1990년대 후반부터는 10년 간의 「신경제」 호황국면에 들어선 미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고 특히 1997년 IMF 사태 전후에는 더욱 괴리가 심했다.
1970년 이후 우리 경제의 순환은 크게 보아 대통령의 임기와 경기의 순환이 同行하여 왔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의 분석들을 찾아보아도 맞아떨어지는 경제적 분석은 찾을 수 없다. 어쩌면 非경제적인 요인인지도 모른다.
경기순환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 중 「心理說(심리설)」에 의하면 경제는 인간의 합리성에 의하여 움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심리에 의하여 경기순환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낙관할 만한 새로운 여건이 형성되면 상품의 판매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도 생산과 투자를 증가시키고 금융기관도 낙관적인 분위기에 따라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을 늘리게 됨으로써 경기는 확장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朴正熙 대통령 이래, 특히 盧泰愚 대통령 이래는 거의 정확하게 대통령의 임기를 주기로 하여 경기가 순환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경기순환은 심리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있고 심리적 「大統領 週期 景氣循環(대통령 주기 경기순환)」이었다.
이러한 대통령 임기와 일치하는 경기순환은 家計의 소비심리보다 기업의 투자심리에 더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조성된 밝은 투자분위기는 경기의 상승분위기를 주도했다. 盧泰愚 대통령의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1989.4.27), 金泳三 대통령의 「신경제 100일계획」(1993.3.22), 金大中 대통령의 「1년 반內에 IMF 극복」 등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촉진시킨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와 반대로 많은 기업인이 구속되는 대형 경제사건이나 기업의욕을 크게 위축시키는 과격한 정책이 나올 때부터 기업의 투자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갔다. 그리고 임기 末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레임덕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아보려는 「司正(사정) 한파」와 새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의 「두고보자(Wait and See)」현상은 경기의 하강을 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盧泰愚 대통령 시절 초법적이었던 「5·8조치」(1990.5.8), 즉 「49개 계열기업군에 대한 부동산 신규 취득금지와 非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조치」에 대하여 대기업은 소송으로 맞섰고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의혹사건」(1991.2) 때에는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이 구속되는 과정에서 기업의 투자분위기는 냉각되었다.
金泳三 대통령 때에는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와 전직 全斗煥·盧泰愚 대통령의 구속까지 연결된 「끊임없는 査正」으로 공무원의 「伏地不動」(복지부동) 속에 기업의 투자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던 중 「한보철강 부도사건」(1997.1.23)으로 경기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우리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인가?
정부는 올해 들어서 많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하여 우려하는 데도 1997년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펀더멘털은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IMF 경제위기는 구조적인 위기와 유동성의 위기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넛크래커(Nutcracker:호두까는 기구)에 끼인 호두」로 표현된 「高비용·低효율」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러한 高비용·低효율 구조를, 논의만 무성한 속에 개혁하지 못함으로써 對外신인도가 떨어진 가운데 1997년 7월 태국의 바트貨 폭락에서 시작하여 아시아에 휘몰 아 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까지 전염되어 발생한 유동성 위기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유동성 위기라는 측면에서 IMF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의 극복은 1997년 12월3일 합의된 총 550억 달러에 달하는 IMF 긴급 유동성조절 자금에 힘입은 것이지 우리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상수지가 1998년에 405억 달러, 1999년에 244억 달러의 흑자로 개선된 것은 달러당 900원 이하에 있던 환율이 1200원대 이상으로 상승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이 올라가고 설비투자의 위축에 의한 자본재수입의 감소가 主요인이지 高비용·低효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수출에 있어서 금년 9월까지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등 3개 전자제품이 53.5%나 증가한 데 힘입어 달성된 총수출 25.9% 증가를 수출호조로 보는 것은 IMF 외환위기 직전의 「평균치의 錯視(착시)현상」과 비슷하다. 1999년의 수출은 달러기준으로는 9.0% 늘었지만 원화기준으로는 6.7%가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또 다른 錯視현상을 일으켰다.
최근의 경제상황에 대하여 여론조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IMF 위기는 계속중이고 위기극복은 쉽게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정부는 지난해 말 「IMF 위기는 극복했다」고 단언하였다. 나는 28년간 재정금융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위기의 지표는 국제收支(수지)와 株價(주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국제수지가 나쁘면 다른 모든 경제지표가 좋아도 그 경제는 건강하지 못하고 국 제수지가 좋으면 다른 모든 경제지표가 나빠도 그 경제는 건강하거나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수지는 그 나라 경제의 「종합성적표」요 「실증적 위기지표」였다.
株價는 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미래 예측 평균치이며, 기업의 투자의욕지수였고 「심리적 위기지표」였다.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될 때 경제위기는 항상 따랐고 株價가 떨어지면 기업의 투 자는 부진하고 경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 3년간 400억 달러, 200억 달러, 100억 달러 대로 급속히 악화되고 내년에는 비관적인 경우 적자로 반전될 수도 있다고 하니 이것을 위기 지표라 생각된다.
株價도 IMF 사태 이후 최고 980포인트까지 올랐다가 지금 500대로 주저앉았고 코스닥 株價도 최고 260포인트까지 갔다가 80대로 폭락했으니 이 또한 위기의 예고지표라 생각된다. 수출시장 점유율을 보면 국제수지와 株價의 위기지표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다.
우리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988년 최고 4.6%에서 2000년 상반기 3.2%로 낮아졌고 일본 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6.3%에서 5.5%로 낮아졌다. 이에 반해 輸入多邊化品目(수입다변화품목)에서 해제된 일제 캠코더는 1년여 만에 국내시장의 80%를 점유해버렸다.
수십년간 키워온 主力산업의 핵심기업들이 중국의 가격과 일본의 기술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지금 부실화되거나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또한 위기지표의 신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제수지와 株價는 우리 경제가 위기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위기 의 실체는 高비용·低효율에 있고 高비용·低효율의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되어야 할 과제이지 짧은 기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
우리 경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朴正熙 대통령시대가 끝난 1980년 이후, 세계 경제의 개방화, 중국의 시장경제 편입,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는 新경제 조류에 따른 효과적인 구조조정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지 못한 채 「행동은 없고 말만 무성한」 상태를 지속함으로써 對外경쟁력을 잃어갔고 高비용·低효율의 구조적 위기가 배태되어 왔다.
全斗煥 대통령 시절 중국의 시장경제 참여로 우리 상품은 국제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4년간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지만 이것은 이 시기에 사회간접자본과 설비투자가 활발치 못했던 것에 기인하였고 이때의 생산능력 증가의 둔화는 우리 경제를 다시 적자로 돌아서게 했다. 朴正熙 대통령 시절의 개발성과에 안주하면서 경제안정과 물가안정에 주력하였고 「중화학 구조조정」이 시작되었지만 전반적인 구조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의 찬사 속에 서울올림픽을 치른 盧泰愚 대통령 시절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노조를 중심으로 「제몫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고 大宇그룹을 위시하여 재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말로만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가 구조조정의 최적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金泳三 대통령 시절의 때늦은 구조조정 노력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계절의 「리더십 공백」으로 표류하게 되고 IMF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고 경기는 週期에 따라 바닥을 친 다음의 상승으로 이어졌지만 구조개혁 노력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구조적 위기는 아직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못하면 한번 더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한번 더 위기를 맞으면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1997년 말 캉드쉬 IMF 총재는 충고했다. 그리고 멕시코 등 한번 위기를 경험한 나라는 모두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구조개혁이 이루어져도 그 효과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가시적인 효과에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네 번 위기 他力으로 넘겼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주역이었던 「現代」와 「大宇」와 「東亞」가 부도지경으로 몰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 기업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의아해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 기업은 아직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없었다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서강대학교 趙潤濟(조윤제) 교수는 우리 경제도 南美의 여러 나라들과 같이 여러 번의 외환 위기를 맞았는데 그때마다 냉전체제에 의한 「韓·美·日(한·미·일) 특수관계」와 「월남전 특수」 및 「중동건설 특수」라는 外生變數(외생변수)에 의하여 넘겼다는 것이다.
첫번째 외환위기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위한 투자로 경상수지적자가 누적되어 일어났다. 1963년에는 수출이 8600만 달러였는데 경상수지 적자는 배에 가까운 1억4300만달러에 달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누적적자는 2억2400만 달러였다. 이러한 적자는 미국의 후원으로 韓·日(한·일)국교가 정상화되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對日청구권자금 8억 달러(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에 의하여 넘어갔다. 이러한 자금의 규모는 우리의 수출 규모가 1억 달러 전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다.
두 번째 외환위기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 기간 중 연간 4~5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어났는데 이때는 「월남전 특수」로 넘겼다. 1965년 「월남파병」으로 체결된 「브라운 각서」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정부 조달은 한국에 우선 배정할 것을 약속하였고 이에 따라 現代건설은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韓進은 월남전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되어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외환수급의 어려움은 해결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8·3 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赤字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8·3 조치」에 의하여 우리 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私債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진정한 위기관리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 번째 외환위기는 1973년 10월에 제1차 오일쇼크가 닥침으로써 적자규모가 1974년에는 최초로 20억 달러를 넘어서 일어났다. 이때 미국의 시티뱅크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1억 달러의 점보론(Jumbo loan)에 의하여 가까스로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이어서 우리의 건설업이 동남아에 진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 「중동건설 특수」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다.
네 번째 외환위기는 1979년 「10·26 사태」 후에 왔다. 朴正熙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난 정치적인 혼란과 1970년대의 무리한 중화학공업투자로 1979년부터 3년 연속 40~5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누증되어 외환수급이 어려워졌다. 이때는 미국의 지원 아래 「어거지」로 이루어진 40억 달러(일본 OECF 자금 18억5000만 달러, 일본 수출입은행 자금 21억5000만 달러)의 「韓·日경제협력자금」이 「보증」 역할을 하여 對外신용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외환수급의 어려움을 넘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네 번의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자기자본을 충실히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노력 없이 모두 다 냉전체제에 의한 「韓·美·日 특수관계」와 「월남전 특수」 및 「중동건설 특수」라는 외생변수에 의하여 他力으로 위기를 넘겼다.
1994년부터 반도체를 제외하면 매년 110억 달러, 220억 달러, 310억 달러씩 3년 동안 700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赤字가 늘어나는 데도 「경쟁력 10% 높이기」라는 허황된 캠페인을 벌이며 절하해야 할 환율을 오히려 절상하였던 「위기불감증」에 걸렸다.
1997년에 와서야 금융감독체제를 개편하고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구조조정으로 떨어진 對外신인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남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自力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IMF자금지원」이라는 他力에 의하여 위기를 넘겼고 구조조정을 위한 개혁조치들은 IMF의 자금지원이 있은 후에 IMF 정책프로그램에 의하여 입법화되었다.
이제 냉전체제도 사라지고 중국이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월남전 특수」나 「중동건설 특수」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8·3조치」 같은 특혜조치도 불가능하다. 오직 기업 스스로 自力에 의한 자본충실과 경쟁력 강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구조조정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년도 우리 경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어둡게 보고 있다. 내년의 세계경제 도 어렵고 油價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반도체 등 전자제품의 경기도 어둡다. 그리고 투자신탁 등 채권인수 기반이 무너져버린 상태에서 2001년도에 滿期(만기)가 돌아오는 64조원의 회사채는 태풍의 눈이다. 지난 11월3일 29개社를 정리한다고 발표된 2차 구조조정계획도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받았고 40조원만 하면 된다고 정부가 단언하던 公的資金(공적자금)도 한 달이 못 가 부족하게 되었으니 아직도 위기의 실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고는 公的자금의 소요액을 추정할 수 없다. 지난 2년여의 시간에 치밀한 계획에 의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先行되었어야 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40조원의 추가 公的자금이 충분한지 모자라는지 누구도 모른다. 더구나 대우자동차는 이미 부도가 났고 현대건설도 부도가 난다면 公的자금의 추가소요는 불가피하다. 기업의 잠복된 부실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라야 금융의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그래야,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하여 한빛은행을 만들었는데 다시 평화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을 합쳐 지주회사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시행착오는 막을 수 있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기업 퇴출과 인력 감축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고용증대에 있다. 기업의 퇴출만 있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별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고, 정리해고만 있지 노동시장의 유연성 提高(제고)를 위한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렵게 합의된 「無노동 無임금」 원칙도 흔들리고 있으니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시작일 뿐이고 경쟁력 강화와 고용증대를 위한 구조조정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효과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 간을 정해놓고 서두를 일이 아니다.
경쟁력은 업종별로 다르다. 가격경쟁력은 중국의 종속변수이고 기술경쟁력은 일 본의 종속변수이다. 기업의 퇴출기준도 경쟁력을 이미 잃은 사양산업과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망산업과 그 중간에 있는 현상유지산업별로 달라야 하고 공급능력의 과잉 여부에 따라 방법도 달라야 한다. 산업별로 자금수지와 경쟁력과 시장상황을 분석하여 꾸준하고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분석은 보이지 않으니 지금 구조조정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과 기준이 불분명하다.
1998년 6월에 55개 기업의 퇴출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이벤트성의 일괄퇴출은 없다던 정부가 이번에 또 사실상 이미 퇴출된 20개 기업을 포함하여 29개의 정리 대상기업을 발표함으로써 또 한번 신뢰를 잃게 되었다.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남는 것은?
기업구조조정의 대표적인 경우인 현대그룹의 경우를 보자. 현대에 대하여는 지 난번 경제팀은 『자동차를 계열에서 분리하고, 시장이 받아들이는 自救계획을 세우고, 왕회장 父子는 물러나라』고 하였다. 새 경제팀이 들어오면서 지난 8월의 현대건설 自救계획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면서 현대건설의 협조융자를 권고하여 놓고, 지금 와서는 『원칙 대로 한다, 금융기관의 추가 지원은 없다, 연말까지 스스로 막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들어간다, 현대 정씨 일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올해 봄부터 끌어온 지금까지의 노력은 무엇을 의미하고 지난번 自救案(자구안)을 받아들인 후의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금융기관 사람들은 불안하다. 이렇게 숨바꼭질 같은 처리방법이 계속되는 동안 현대건설의 수주는 막히고 현금 이외의 납품도 어려워 현대건설은 살리려 해도 살아나기 힘들다. 원칙대로 해서 문제가 풀린다면 누군들 못했겠으며 지금까지는 왜 원칙대로 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건설업은 그 자체가 상장 부적격 업종이고 오너가 물러나면 사실상 受注(수주)도 어렵고 그것으로서 사실상 정리로 가는 길이다. 受注가 안 되면 장비는 녹슬고 현장근로자까지 흩어지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된다. 과거 「한양」이나 「동아건설」뿐 아니라 수많은 해외건설을 정리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건설 회사가 6개뿐이고 미국의 최고 건설회사 「벡텔」도 상장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건설 회사가 부도나면 전화기 한 대만 남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부도가 나면 핸드폰 하나만 남는다고 한다.
現代의 신용은 한국의 신용에 중요한 변수이고 現代가 부도나면 한국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現代는 문제를 지금까지 끌어온 현대·채권단·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현대건설의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보아 살리려고 한다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는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대출금은 출자전환되어야 신용이 회복되고 CP(기업어음)가 돌아간다. CP가 돌아가야 돌아오는 회사채의 借換(새로 꾼 돈으로 먼저 꾼 돈을 갚는 것)발행도 가능하고 受注도 이루어진다. 受注가 계속되려면 오랫동안 발주자와 관계를 쌓아온 경영진이 경영을 맡아야 하고 일정한 수준으로 경영을 정상화시키면 출자전환된 주식을 되살 수 있는 옵션이 있어야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다.
동아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신규공사는 하나도 따지 못하고 회사의 경영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멀쩡하던 대한통운까지 함께 법정관리로 끌고 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서울대 송병락 교수는 무리한 계열분리는 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최근에 서울에 온 미국 하버드大 제프리 삭스 교수도 『재벌을 해체하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최근에 와서 대통령의 임기와 週期를 같이하여 움직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대감으로 경기는 상승하다가 정부가 기업의 사기를 죽이고 신뢰를 잃으면 경기는 세계의 경기흐름을 벗어나 하강곡선을 그었다. 이만큼 우리경제의 「정치 종속성」은 강했다.
기업에게 따뜻하고 신바람 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기업인은 뛴다. 기업의 사기가 죽고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기업은 「두고 보자 (Wait and see)」로 가고 경기는 죽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경기가 상승하는 것은 지난 정부의 말기에 있었던 경기하강의 자연反動과 함께 새 정부에 대한 기업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어나는 경기의 상승은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해이하게 만들고 위기는 깊어만 갔다.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IMF의 위기는 계속중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한 번 위기를 맞은 나라는 모두 두 번 위기를 맞았고 우리에게 다시 위기가 온다면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만 무성하고 실천이 없는」 개혁
지금은 누가 맡아도 특별한 대책은 없다. 오직 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직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제시한 후에 기업의 뼈를 깎는 自救노력을 구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비전과 장·단기 정책들을 제시하며 기업의 투자의욕과 사기를 진작시켜 정부와 기업 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한다. 기업의 사기를 죽이면 될 일도 안 되고 신뢰를 잃으면 百藥(백약)이 無效(무효)다.
1997년 동남아에 외환위기가 몰려 올 때 노동시장과 금융개혁에 관한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야의 대립으로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IMF 사태를 맞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통합구도로 나가야 경제도 산다. 상대방을 때려잡는 분열구도로 정치가 치달을 때 경제도 망쳤다.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정치도 구조조정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총리가 의장으로 있는 「산업경쟁력회의」에서 「新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15개의 신규 유망성장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한다. 미국도 대통령이 주관하는 「대통령산업경쟁력위원회」를 두고 電子상거래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도 정부주도로 「High-tech Island」를 목표로 10개 유망산업을 선정하여 6개년 계획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위기는 「高비용·低효율의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라는 구조적 위 기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2000년대를 향한 비전과 전략·전술의 제시가 없다는 데서부터 오고 있다. 또 다시 1997년과 같은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없는」(Many words without deeds) 遇를 犯치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