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주식거래소 NYSE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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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사진=뉴시스/AP

1792년 봄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규칙이 없었다. 거래는 경매장, 사무실, 카페 등 도시 곳곳에서 무질서하게 이뤄졌다. 브로커와 사기꾼을 구별할 방법도 없었고, 계약이 파기돼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불씨는 투기꾼 윌리엄 듀어가 댕겼다. 듀어는 시장이 하락할 것이라 보고 대규모 차입으로 거래를 이어갔지만,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채무 이행을 멈추자 시장 참여자들은 그에게 돈을 빌려준 이들도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질까 우려했고, 패닉 매도가 이어졌다. 1792년 금융 공황이었다. 신뢰가 무너진 시장에는 규칙이 필요했다.


1792년 5월 17일, 상인 24명과 브로커들이 월스트리트 68번지 바깥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이 거래를 해오던 버튼우드(미국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였다.


두 문장으로 이뤄진 이 문서에서 서명자들은 서로에게만 거래 상대를 한정하고, 수수료를 액면가의 0.25% 아래로 낮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신뢰할 수 있는 브로커들끼리만 거래하고, 수수료 출혈 경쟁도 막겠다는 두 가지 원칙이었다.


합의 당시 거래 가능한 주식은 보험사, 뉴욕은행, 미국 제1은행, 그리고 알렉산더 해밀턴이 독립전쟁 부채 상환을 위해 발행한 전쟁 채권뿐이었다. 오늘날 NYSE 상장 기업 수는 2800개를 넘는다.


합의 이후에도 거래는 한동안 거리에서 이뤄졌다. 브로커들은 이내 월스트리트 82번지의 톤타인 커피하우스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수십 년간 임대 공간을 전전했다.


버튼우드 합의 25년 후, 조직이 모습을 갖췄다. 1817년 이 집단은 ‘뉴욕 주식거래위원회(New York Stock & Exchange Board)’로 공식 조직화하고 헌장을 채택했다. NYSE의 공식 출범은 이때다. 헌장은 거래 규정을 상세히 명시하고, 규정을 위반한 브로커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버튼우드 합의 서명자 4명이 1817년 헌장에도 이름을 올렸다. 


거래소는 월스트리트 40번지에 공간을 임대했고, 브로커들은 하루 두 차례 모여 30개 주식과 채권을 거래했다. 의장이 종목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면 브로커들은 지정 좌석에서 호가를 외쳤다. NYSE 회원권을 뜻하는 ‘시트(seat)’라는 표현이 여기서 비롯됐다.


1903년 NYSE는 조지 B. 포스트가 설계한 현재의 건물로 이전했다. 조지아 대리석 벽, 대형 창문, 4층 높이의 금박 천장을 갖춘 공간이었다. 나무 아래 서명한 두 문장짜리 합의서 한 장. 그것이 233년을 거쳐 세계 최대 주식거래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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