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MC 송해 별세

과거 월간조선 '김성동의 인간탐험' 에서 "희극인의 맥이 끊겼다"고 안타까워해
  • 월간조선 뉴스룸
  • 업데이트 2022-06-08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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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MC 송해씨가 7일 오전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 송씨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8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월간조선> 2009년 4월호에 실렸던 인간탐험 송해편을 다시 소개한다.

金成東의 인간탐험] 현역 최고령(82세) MC 송해

“희극인의 맥이 끊겼다”

김성동    ksd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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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인 KBS 전국노래자랑을 25년째 맡고 있어.
    중간에 쉰적 있지만 시청자들 항의로 복귀
⊙ 영호남 방청객들의 반응이 가장 화끈. 강원도는 조용, 충청도는 느리고, 경기도는 깍쟁이스러워.
    요즘은 지방마다 차이 별로 없어
⊙ 이주일·이낙훈은 국회의원 하고 난 뒤 정신적으로 충격받아.
    이순재는 “국회의원 딱 한번만 한다”는 약속지키며 전성기 구가

송해
⊙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생. 본명 송복희.
⊙ 황해도 해주예술학교 성악과 졸업.
⊙ 창공악극단 가수로 데뷔.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
⊙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보관문화훈장. KBS 바른 언어상.
⊙ 現 원로연예인 상록회 회장.

취재지원 : 張允曦 月刊朝鮮 인턴기자
 
  지난 3월 3일 오전. 낙원상가에 인접해 있는 서울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부근에는 봄비가 내렸다. 작은 가게 창문에 해물칼국수 3000원, 이발 5000원이라고 씌어 있는 싼 가격표가 아니더라도, 그곳의 주변 풍경은 낙원상가가 건축된 196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60세 이상 원로연예인들의 모임인 원로연예인 상록회(이하 상록회)의 사무실은 원로연예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상징하듯 그곳에 있었다. 상록회의 회장이 방송인 宋海(송해)씨다. 필자 일행은 송해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가뜩이나 비가 내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낙원상가 주변을 기웃거리며 상록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을 찾았다. “전철역을 나오면 보이는 부산초밥집 건물 3층에 있다”는 상록회 여직원의 말대로 주변을 뒤졌지만 상록회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다시 상록회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주변 상점들의 간판 이름을 대며 위치를 물었다. 전화를 건 자리에서 불과 2m 거리에 부산초밥집이 있었다. 그만큼 주변 간판들은 복잡했고 허름한 건물들은 고만고만했다.
 
  비좁은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빠끔히 상록회 간판이 달린 문을 열자 상록회 회장 명패가 있는 책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송해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웃었다.
 
  “여길 찾는 게 힘들었나 봐. 여기가 이래봬도 교통도 좋고 무엇보다도 음식값이 싸. 저녁에 낙원상가 지하에 가서 1만2000원짜리 닭도리탕 하나 시키면 대여섯 명이 소주 대여섯 병은 거뜬하지. 허허.”
 
  매주 일요일 낮 12시10분이면 텔레비전을 통해 어김없이 듣던 예의 그 너털웃음으로 송해씨는 필자 일행을 맞았다. 을씨년스러웠던 바깥 분위기를 한순간에 씻어 주는 웃음이었다.
 
 
  소주 반 병으로 만족해야 할 나이지만
 
   상록회 사무실은 송해씨의 책상과 여직원 책상, 손님맞이용 4인용 테이블, 그리고 상록회 사무실을 찾아오는 원로연예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탁자 4개만으로 가득 차 보일 만큼 비좁았다. 상록회 사무실은 원로 연예인들에게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없는 날이면 송해씨는 이곳으로 나와 상록회를 찾아오는 연예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소일한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樂(낙)은 어슴푸레해질 무렵까지 그곳에 남아 있는 원로 연예인 몇몇과 부근 선술집에 가서 소주를 마시는 일이라고 한다. 대화의 출발은 술이었다.
 
  ―요즘도 소주를 좋아하십니까.
 
  “다른 건 젊은이한테 져도 소주는 안 져요.”
 
  ―몇 병이나 드십니까.
 
  “몇 병까지는 뭐. 많이는 못해요. 많이 줄었지. 우리 또래는 소주 반 병이면 만족해야 하는데 거기서 끝나지 않아. 한 병 넘는 것은 잠깐이고 두 병 먹으면 그냥 뭐 대화하기 좋고,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또 한 병 더. 그렇게 마셔요. 허허. 요즘 소주는 도수가 내려가서 너무 순해. 25도일 때 소주가 맛있었는데.”
 
  ‘송해’라는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방송 프로그램이 ‘KBS 전국노래자랑’이다. 1980년 11월에 시작돼 3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올해 만 82세인 송해씨는 1984년 봄부터 지금까지 25년째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의 진행을 국내 최고령 MC가 최장시간 맡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MC를 그만두고 쉰 적이 있지만, 시청자들의 항의와 시청률 저하로 인해 수 개월 만에 복귀한 일도 있었다. 그야말로 ‘송해를 위한 송해에 의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몇 세까지 활동하실 겁니까.
 
  “우리야 뭐 정년이 없잖아요? 하면 할수록 관록이라는 게 생기잖아요. 건강만 허락한다면 나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한 계속할 거예요.”
 
  ―은퇴하시면 전국노래자랑도 막을 내리게 되는 건 아닙니까.
 
  “에이, 아니에요. 뭐 그렇게 말씀하는 분도 계시는데 세월이 흐르면 거기에 맞게 새로운 형태로 계속 바뀌어 가잖아요? 그런 흐름에 적격한 사람이 나타나겠죠.”
 
  ―전국노래자랑에 나오는 초대가수는 거의 트로트 가수이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방청객을 보면 다양한 연령층이 오지만 중년이 많아요. 트로트 외의 가수들이 나오면 반응이 별로 없어요. 우리 프로그램은 트로트로 해야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반응이 와요.”
 
  ―초대가수로 나오는 트로트 가수 중에 누가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잘 부르죠. 그때그때 분위기 따라 연령층에 따라 좋아하는 가수가 다르겠지만 최진희 같은 가수는 성량이나 기교가 아주 특이합니다. 목소리가 참 좋아요.”
 
  ―청중을 휘어잡는 마력을 가진 가수는 누굽니까.
 
  “현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을 트로트 4인방이라고 그러는데, 내가 보기에는 현철씨가 청중의 호응도 잘 이끌어내고 분위기를 휘어잡는 힘이 있어요.”
 
 
  KBS 노래자랑 최고령 출연자는 103세
 
  ―방송 초창기와 비교할 때 출연자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한 것 같습니까.
 
  “방청자나 시청자들이 많이들 젊어졌지만 초창기에는 여자 출연자 10명 중에 8명이 한복 입고 머리는 뽀글뽀글 파마하고 나왔어요. 요즘은 한복을 입으라고 해야 입지 스스로 한복 입고 나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노래를 부를 때도 옛날에는 가만히 서서 불렀는데 요샌 가만히 서서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요즘도 전국노래자랑 녹화 때 하루 전에 현지에 가십니까.
 
  “그럼요.”
 
  ―현지에 가면 목욕탕도 가신다면서요.
 
  “목욕탕도 가고 시장도 가 보고 그래요. 그 지방의 분위기를 알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스타로서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준다는 게 쑥스럽지는 않습니까.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요. 내가 뜸을 요즘 뜨는데 몸에 뜸 자국이 나 있어요. 목욕탕에 가면 사람들이 그 자국을 이상하다는 듯이 봐요. 그러면 내가 ‘이상하죠?’라고 하면서 말을 먼저 걸어요. 그러면서 대화가 시작되는 거죠. 그러고 나서 시장 한 바퀴 돌면 그 지방의 분위기가 거의 다 파악돼요.”
 
  ―방청객들의 반응은 지역마다 다르죠?
 
  “화끈한 건 역시 영남, 호남이죠. 강원도에 가면 그렇게 조용할 수 없고 충청도에 가면 그렇게 느릴 수가 없고, 경기도에 가면 깍쟁이스럽고 그랬죠. 그런데 요샌 그런 걸 못 느껴요. 강원도에 가도 ‘와!’ 하고 크게 환영하고 그래요. 이게 참 묘한 변화예요. 옛날에는 지방마다 차이가 났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엄청 변한 거죠.”
 
  ―최고령 출연자는 몇 살이었습니까.
 
  “103세 된 분이 출연한 적이 있어요. 가장 어린 나이는 세 살짜리였고요. 그런데 그 세 살짜리 아이도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고 103세 잡수신 할머니도 나한테 오빠라고 그래요. 허허.”
 
  ―전국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 중에 변하지 않은 것도 있던가요?
 
  “인정이에요. 각박해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좋은 인심 하나는 아직 안 변한 것 같아요. 어려우면 당연히 각박해지게 마련이지만 지방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접하고 푹 파묻혀 보면 각박함을 못 느껴요.”
 
전국노래자랑 진행 도중 수난(?)을 당하고 있는 송해씨.
 
  100명 이상 바뀐 담당 PD
 
  ―출연자 중에 가장 편한 연령대가 따로 있습니까.
 
  “다 편하죠. 녹화 들어가기 전에 출연자들과 대화를 많이 해요. 방송에는 첫 출연이니까 아무래도 긴장해 있잖아요. 출연자들에게 ‘작가나 연출가나 누가 와서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마음 놓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 주고 대화를 나누면 녹화할 때는 감춰뒀던 끼, 장기가 다 나와요. 출연자들과 친구가 돼 주는 거죠. ‘아무 얘기나 해도 받아줄 테니까 나를 어려워하지 말고 막 데리고도 놀라’고 그래요. 그러니깐 여자 출연자들은 나를 데리고 막 놀아요. 스타킹을 내 머리에 씌우는 출연자도 있었어요. 내가 마다하면 무안해 할까봐 ‘아, 참. 이러니까 좋다’고 그러죠. 스타킹 뒤집어씌우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기분좋게 응해 줘야죠. 그 여자 분도 얼마나 고민을 했겠어. 나한테 스타킹 씌울 생각하느라고. 허허.”
 
  ―방송은 전국노래자랑 하나만 맡고 있죠?
 
  “네. 교통방송에서 개편 때마다 진행을 요청하는데 내가 맡아서 할 수가 없어요.”
 
  ―담당 PD는 그동안 몇 명이 바뀌었습니까.
 
  “100명 이상 바뀌었죠. 하도 바뀌어서 이제는 정확한 숫자도 모르겠어요.”
 
 
 
한국 코미디의 부흥 이끌다

 
  송해씨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다.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단신 월남, 국군에 입대한 후 하사관으로 복무하다 전역했다.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창공악극단에서 그는 사회자와 가수로 활동했다.
 
  방송 입문은 1960년대 초 동아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송해씨는 동아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스무고개’와 ‘재치문답’에 출연, 박시명씨와 함께 콤비를 이뤄 코미디를 했다. 이 인연으로 그는 동아방송 교통프로인 ‘나는 모범운전자’를 진행했다.
 
  TV에 진출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그는 KBS TV의 ‘광일쇼’에 출연해 콩트를 했다. 당시는 프로그램명을 광고를 내는 회사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74년부터는 TBC라디오의 교통 프로그램이었던 ‘가로수를 누비며’를 맡아 17년간 진행했다.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 TBC의 ‘고전 유머 극장’ 등에서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박시명 등과 함께 한국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었다.
 
  ―요즘의 TV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사회자가 여러 명이 등장하는데 혼자서 사회 보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사회자가 많으면 너무 산만해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TV 사회도 오래 봤지만 라디오도 오랫동안 진행했는데 어느 쪽에 애정이 더 갑니까.
 
  “라디오에 더 묘미가 있어요. 라디오는 온 신경이 귀로 가 있잖아요. 청취에만 집중하니까 라디오에서 한 것은 사람들이 잘 잊어버리지 않아요. 하나 텔레비전 방송은 금방 잊어버려요. 시각적인 것들만 남죠.”
 
  ―‘가로수를 누비며’가 가장 기억에 남죠?
 
  “잘 아시네요. 그 당시 서울에 자동차가 20만대도 안 될 때였어요. 교통 프로라 생방송이었는데 한번은 음력 설에 사흘치를 녹화했어요. 일기예보를 참고해서 날씨가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녹화를 했죠. 그런데 정월 초하룻날 눈이 엄청 와서 차가 미끄러지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런데 방송은 차가 쌩쌩 잘 다니고 있다고 나가고 있으니 모골이 송연해지더라고요. 허허. 집에 있다가 방송국으로 달려갔죠. 녹음방송 중단하고 바로 생방송을 했어요.”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1999년 열린 악극 버라이어티쇼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에 출연한 구봉서씨와 배삼룡씨.
  인터뷰 도중 원로 연예인들이 하나 둘 상록회 사무실에 나타났다. 원로 코미디언인 구봉서씨와 배삼룡씨도 상록회 회원이다.
 
  ―구봉서씨도 상록회 사무실에 나옵니까.
 
  “우리 희극계에 내 위로는 선배님이 두 분밖에 안 계십니다. 구봉서 선배, 배삼룡 선배가 바로 제 위 선배입니다. 구봉서 선배는 몸이 불편한 지가 오래됐어요. 아시다시피 젊은 시절에 전쟁영화 찍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발목을 다쳤는데 발목이 자유롭질 못해서 늘 절었죠. 오래됐어요. 아프지 않은 다리에 몸을 의지해서 다니다 보니까 그 다리가 더 아프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요새는 거동하기가 힘드시죠.”
 
  ―배삼룡씨가 병원비를 못 내서 소송까지 당한 일도 있었는데요.
 
  “너무 안타까워요. 배삼룡 선배는 노환 때문에 입원해 있는데 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분이 고생한 지 한 6년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선 가정이 말이 아니고, 본인은 본인대로 저렇게 입원하고 있으니까 힘들겠죠. 후배 코미디언 엄용수가 배삼룡 선배를 위해서 열심히 각계에 호소도 하고 모금도 하는데 그런 일이란 게 쉽게 잘 안 되잖아요. 후배로서 참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희극인이 한 명 나오려면 정말로 수십 년이 걸립니다. 그런 특이한 희극인이 많지 않잖아요. 우리 계통 분들이 단명하는 것 같아요. 서영춘씨도 그랬고 이기동씨도 그랬고.”
 
  서영춘씨는 1928년생으로 송해씨보다 한 살 아래다. 1986년에 사망했다.
 
  ―서영춘씨하고는 오랫동안 같은 코미디 프로에 출연했죠?
 
  “네. 서영춘씨는 자기 맡은 역할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에요. 연기하다가 몸에 상처도 많이 입었고요.”
 
  ―사람들에게 남은 건 까불이 이미지 아닌가요?
 
  “사람들이 이미지만 기억하니까. 그 사람은 방송국에 소품이 없으면 자기가 구해 오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열정적이었죠. ‘웃으면 복이 와요’를 할 때 빚쟁이가 쫓아오니까 도망가려고 독 안으로 숨는 장면이 있었어요. 방송국에는 독이 없는 거예요.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독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서영춘씨는 직접 가마에 가서 큰 독을 사 왔어요.”
 
  ―연기하다가 부상도 많이 당했다면서요.
 
  “네. 그 독이야기의 계속인데 갓 구운 독은 그 안을 보면 여기저기 모래 같은 게 칼날처럼 날카롭게 굳어 있는 게 있어요. 그래서 시중에 내다팔 때는 그 안을 돌 같은 걸로 긁어서 그 날카로운 것들을 없애죠. 그런데 서영춘씨는 가마에 직접 가서 독을 사오다 보니까 독 안에 날카로운 물질들이 그대로 있었던 거예요. 그걸 모르고 서영춘씨가 독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는데 얼마나 아팠겠어요. 꾹 참고 연기한 거예요. 그 장면이 끝나고 독에서 나와야 하는데 들어갈 때는 몸이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어찌된 일인지 항아리 입구에 몸이 걸려서 못 나오는 거예요. 독을 두드려 깨서 나왔는데 온몸에 상처투성이였어요. 그 상처가 잘 낫질 않고 자꾸 터져서 몇 년 동안 고생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한 사람이에요.”
 
 
 
이주일은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KBS ‘전국노래자랑’. 특집방송에서 가수 장윤정과 공동사회를 보고 있는 송해씨.
  ―이기동씨 하면 “닭다리 잡고 삐약 삐약” 하는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내 후배인데 그 친구도 참 재미난 얘기가 많아요. 요즘은 녹화하다 NG 나면 다시 하거나 편집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어요. 예를 들어 옛날에는 9분50초를 녹화했다가 NG 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어요. 편집이 안됐거든요. ‘웃음의 파노라마’ 같은 건 생방송을 했는데, 한 장면이 끝나고 바로 다음 장면에 출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이기동씨가 수염 분장을 해야 했는데, 분장사가 수염을 자르면서 너무 서두르다 보니까 피부를 찔렀어요.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연기를 했죠.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유명해졌어요. 그런데 당뇨를 앓다가 단명했죠.”
 
  ―이주일씨도 단명했죠.
 
  “그렇죠. 이주일이란 사람은 너무 안됐어요. 한때는 세상을 버리려고 약도 먹고 그랬던 사람이에요. 내 생각에는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해요. 나는 극구 말렸는데 안되더군요. 하필 이주일씨가 구리에서 출마할 때는 내가 구리에 있을 땐데 그것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이주일이 출마하기 전에 내가 미리 와서 작업을 했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정치 참여를 말리는 입장이었어요.”
 
  이주일씨의 이야기를 하던 송해씨가 잠시 말을 멈췄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사람은 올라가는 길을 너무 빨리 올라가면 내려갈 때 급한 거지. 그래서 오르내린다는 게 상당히 중요한 거야. 국회의원 안했으면 그렇게 안됐겠지. 끝나고 나니까 그렇잖아.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이낙훈이도 그랬고, 그런 사람 많아.”
 
  ―국회의원을 지낸 탤런트 이낙훈씨는 당뇨 때문에 돌아가신 걸로 아는데요.
 
  “당뇨였죠. 그런데 몸의 이상은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면 급격하게 찾아와요. 그래서 정신력이란 걸로 병도 이기는 건데 이주일씨나 이낙훈씨나 국회의원을 하던 입장에서 환경과 신분이 달라지니까 가지고 있던 병세가 악화된 거예요.”
 
  ―탤런트 이순재씨는 국회의원을 그만둔 후에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속된 말로 가장 약은 사람이 이순재씨예요. 잔꾀를 부린다는 뜻이 아니고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죠. 참 똑똑해. 국회의원으로 나가기 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내 일생 한 번의 경험일 뿐이지 거기(정치)는 내가 길게 머물러 있을 데가 아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이순재씨는 이런 약속도 했어요. ‘난 한 번만 한다. 염려하지 마라.’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한 거예요. 인격이나 마음 씀씀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죠.”
 
 
  숙명적인 콤비
 
  ―배삼룡씨에 대해서는 “천재다”, “진짜 바보다” 하는 평가가 엇갈려왔는데요.
 
  “난 늘 그래요. 망가진다는 것도 똑똑하지 않으면 망가질 수 없습니다. 망가질 수 있다는 건 영리하다는 거 아니에요? 그분은 일본서도 공부를 했고 연예계에서는 정말 제대로 자기 위치를 구축한 분이죠. 정극을 했으니까요.”
 
  ―과거에 활동했던 희극인들 중에는 정극으로 출발한 분들이 많죠?
 
  “웃기기 위해서는 슬픔을 알아야 해요. 눈물을 알아야 즐거움도 알 수 있는 거죠. 희극을 하기 위해서는 정극을 알아야 하고 그 정극 위에 비극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그렇게 희극이 어려운 겁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나쁘게 평하는 건 아닌데, 드라마 같은 것은 ‘재밌다! 시청률 나온다!’ 이러면 막 늘릴 수가 있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3분 안에 끝을 맺어야 돼요. 그러니까 어렵죠. 일반인들이 우리를 보면 ‘아 웃기는 사람들! 그럼 한번 웃겨 보슈!’이러는데 우리가 듣기엔 굉장히 서운한 얘기예요.”
 
  ―개그맨 최양락씨가 최근 “가수들은 노래 하나로 10년, 15년도 부르는데 우리들은 콩트 한 편 하면 딱 끝이고, 바로 또 아이디어 짜내서 해야 되는데, 그런 고충을 사람들이 몰라 줘 서운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데요.
 
  “김정구씨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평생 부르지 않았수? 우리는 제 아무리 재밌고 배꼽이 몇 개씩 도망가도 다시 하면 재탕이라고 그래요. 그런 어려움이 있다구. 콩트 하나 만들려면 있는 지혜를 다 모아야 하는데, 울리기는 쉬워도 웃기기는 힘든 거예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은 누구라고 보십니까.
 
  “두 분입니다. 구봉서, 배삼룡 두 분이죠. 두 분은 아주 숙명적인 콤비예요. 한때 방송국들 사이에서 코미디언 쟁탈전이 벌어졌을 때, 구봉서씨는 MBC에 있고 배삼룡씨는 TBC로 간 적이 있어요. 갈라졌었죠. 그런데 서로 갈라져서 프로그램을 해 보니까 두 분의 영향력이 후배들만도 못한 거야. 그래서 내가 대놓고 ‘두 분은 숙명적인 라이벌이며 콤비니까 다시 합쳐야 한다’고 그랬죠. 그래서 두 분이 다시 한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일도 있어요.”
 
  ―TBC 방송국은 서영춘씨가 간판스타 아니었습니까.
 
  “작품에 따라 달랐죠.”
 
  ―희극인 중에 라이벌 의식을 가진 분이 있었습니까.
 
  “나는 아까도 구봉서, 배삼룡씨 두 분 평을 할 때 라이벌이면서도 숙명적인 콤비라고 표현했어요. 라이벌이 없으면 발전을 못해요. 같이 발전하려면 서로 호흡이 맞아야 돼요. 남을 찍어 누르고 나가는 건 쉽죠. 서영춘이하고 콩트를 할 때 난 항상 착한 역만 주어졌어요. 서영춘이는 항상 일을 저지르는 역할을 하고. 그렇게 되니까 난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사람이라는 게 가다가 탈선도 하게 되고 실수도 있어야 재미가 있는 건데 말이죠. 그래도 난 서영춘이와 호흡을 맞춰 주었죠. 그런데 조금 언짢은 라이벌이라는 게 상대가 뭘 하려면 ‘에에엑’ 이러면서 소리 높여 말을 끊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안돼요. 우리는 연극을 했으니까 남의 대사를 알아야 내 대사를 하는 거란 걸 알아요. 내가 튀려고 막 떠들면 재미가 없어지는 거죠.”
 
 
  희극인의 맥이 끊겼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와 개그맨 이홍렬씨.
  ―요즘의 후배 코미디언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와 연결이 잘 안돼요. 한 15년 내지 20년의 공백이 생겼다고 보면 돼요. 임하룡, 심형래, 김형곤 세대는 ‘희극이란 게 어렵구나, 역시 개그는 희극이라는 큰 원 안에 있는 한 부분이다’하는 것을 이해하는 코미디언들이었죠. 그런데 그 뒤로는 끊겼어요. 지금 후배들 하는 걸 보면 연기는 중요시 안 해요. 말장난만 하지.”
 
  ―코미디 프로는 안 보십니까.
 
  “보죠.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를 보고 있죠. 꼭 개그콘서트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데 요즘 코미디 프로들을 보면 텔레비전 안에서는 방청객들이 막 웃고 난리인데, 나는 왜 웃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는 코미디 프로를 보고 나면 혼자 가만히 있다가도 그 프로를 생각하면서 혼자 빙그레 웃었는데 요즘은 방송이 끝나면 거기서 끝이에요. 여운을 못 주는 거죠.”
 
  ―요즘은 애드리브(즉흥 대사)를 잘하면 재치 있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재치를 해석하는 게 다를지 모르지만 재치라는 건 필요할 때 부려야지 아무 때나 재치를 부리는 건 일종의 방해죠.”
 
  ―오락 프로들을 보면 사회자 여러 명이 서로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을 주고받으면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데 가끔 좀 심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게 아니라 서로 막 하잖아요. 그런 것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좀 과도하죠. 내가 보기에는 닭장이야. 그 안에서 닭싸움하는 거예요. 편안하면서 재밌어야죠. 서로 할퀴면서까지 재밌게 할 필요 없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에요.”
 
  ―후배 희극인 중에 “아 저 친구는 정통 희극인의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후배는 없습니까.
 
  “있어요. KBS 방송국의 ‘1박2일’에 출연 중인 이수근이가 있죠.”
 
  ―이수근씨는 별로 못 웃기는 개그맨으로 알려졌던데요.
 
  “현장에서 웃는다고 희극이 아닙니다. 소리 지르고 떠들고 넘어지고 그러면 안 웃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쉬운 거예요. 이수근은 굉장히 예리한 사람이에요. 이홍렬도 눈여겨볼 만한 친구고요. 이홍렬은 아주 담백하게 잘하는 사람이에요.”
 
  ―이홍렬씨는 코미디언보다는 방송 진행자로서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데요.
 
  “희극 못하면 방송일 못해요. 아나운서들이 요즘 방송에 출연해 웃기려고 탈선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 다 보이잖아요. 그거는 아니거든요. 보이지 않게 탈선해야 하는데 희극을 해본 사람들이 그걸 잘하죠. 전국노래자랑에서도 아나운서 진행자들이 단명했는데 그들은 튀어나오질 못하고 원고에 씌어진 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죠.”
 
 
  지하철 이용
 
송해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이 건강 비결이자 장수 비결이라고 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따로 하는 운동은 있습니까.
 
  “운동을 따로 하는 것은 없어요. 지하철을 한 20년 전부터 이용하고 있는데 그게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하철을 이용하기 전에는 바닥에 오래 앉아 있질 못했어요. 지하철을 이용할 때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려요.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까 이제는 바닥에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됐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귀찮게 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요.
 
  “저녁에 술 취한 분들이 간혹 그러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가급적이면 시간이 늦으면 지하철을 안 타요. 다들 내가 반갑고 이웃 같아서 그러는 건데 화를 낼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길을 가다가 학생들과 마주치면 내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를 쳐요. 애들이 내 목소리를 흉내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사진 찍자고 하면 다 응해 주죠. 옛날과 달라졌죠. 그 전엔 ‘송해다’ 이러면서 수군수군대고 그냥 지나갔어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주는 분은 많습니까.
 
  “많죠. 전철에서도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담배는 아예 안 배웠습니까, 끊은 겁니까.
 
  “끊었어요. 30대 때였는데 내가 병원에 석 달간 입원한 일이 있어요. 그 이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하고 만나면 하루종일 담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담뱃불이 안 꺼질 정도로 피웠어요. 그런데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하고 있는데 담당 의사가 ‘담배하고 친하든가 나하고 친하든가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러는 거예요. 병원을 나서면서 그 길로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버렸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안 피우고 있죠.”
 
  마지막으로 그에게 “외롭지 않으냐”고 물었다.
 
  “연예계는 너무 외로운 곳이에요. 결국은 혼자죠. 수많은 청중들이 큰 함성을 지를 때는 하늘의 별 같은 느낌이었지만 청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너무 쓸쓸하죠. 하지만 연예인이라면 그런 외로움은 감수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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