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주 상산고등학교(상산고)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상산고는 20일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점(80점)에 0.39점 미달한 79.61점을 받았다. 전북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경우, 상산고는 16년 만에 자사고 지위를 잃게 된다.
상산고는 《수학의 정석》 시리즈로 유명한 홍성대 이사장이 1979년 설립, 1981년 개교한 전주의 명문 사학이다. 홍성대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으로 사재(私財)를 아낌없이 투자해 단시일 내에 상산고를 전국에서 손꼽는 명문학교로 만들었다. 홍성대 이사장은 10년 전인 2009년 《월간조선》7월호 ‘김성동의 인간탐험’에서 자신의 삶과 교육철학에 대해 털어 놓은 적이 있다. 홍 이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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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東의 인간탐험] <수학의 定石> 저자 洪性大 상산학원 이사장
“교육과학부가 수학과 기초과학 망쳐 국가 발전 가로막아”
김성동
“좋은 책 쓰기와 건강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좋은 책 쓰기를 선택하겠다.
그것이 4000만 독자에 대한 나의 의무”
⊙ <수학의 정석> 판매량을 두께로 환산하면 에베레스트산 135개 높이
⊙ 내신 위주 전형이 과열 과외 더 부추겨
⊙ “<수학의 定石>이 표절이라고? 외국 책하고 한 페이지만 같은 게 있어도 가져와 보라.
내가 포상해 주겠다”
⊙ “나는 1등 지상주의자 아닌 완벽주의자. 되지 않을 일은 하지 않는다”
⊙ “어렸을 적 아버지의 칭찬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홍성대
⊙ 1937년 전북 정읍 출생.
⊙ 남성고·서울대 수학과 졸업. 전북대 명예이학박사.
⊙ 성지출판(주) 회장. <월간수학세계> 대표. 한국사립중고등학교 法人협의회 명예회장.
現 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
⊙ <수학의 定石> 시리즈 저술.
취재지원 : 李玲朱 月刊朝鮮 인턴기자
그것이 4000만 독자에 대한 나의 의무”
⊙ <수학의 정석> 판매량을 두께로 환산하면 에베레스트산 135개 높이
⊙ 내신 위주 전형이 과열 과외 더 부추겨
⊙ “<수학의 定石>이 표절이라고? 외국 책하고 한 페이지만 같은 게 있어도 가져와 보라.
내가 포상해 주겠다”
⊙ “나는 1등 지상주의자 아닌 완벽주의자. 되지 않을 일은 하지 않는다”
⊙ “어렸을 적 아버지의 칭찬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홍성대
⊙ 1937년 전북 정읍 출생.
⊙ 남성고·서울대 수학과 졸업. 전북대 명예이학박사.
⊙ 성지출판(주) 회장. <월간수학세계> 대표. 한국사립중고등학교 法人협의회 명예회장.
現 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
⊙ <수학의 定石> 시리즈 저술.
취재지원 : 李玲朱 月刊朝鮮 인턴기자
<수학의 定石(정석)> 시리즈가 처음 發刊(발간)된 때는 1966년 8월이다. 발간 후 43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여전히 대학입시 필독 참고서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에는 한 해에 150만~180만 권이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도 매년 100만 권 이상이 팔린다. 국내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셈이다.
<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성지출판(주)이 지난 2006년 8월 발간 40주년을 맞아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그때까지 총 3700만 권이 팔렸다고 한다. 책의 두께를 평균 3cm로 계산하면 팔려나간 책을 쌓아 놓을 경우 에베레스트산(8853.5m) 125개 높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판매 추세로 볼 때 2009년 현재까지는 4000만 권 이상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다 쌓으면 지금까지 팔린 책은 에베레스트산 135개 높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학의 정석>을 팔아서 번 돈은 에베레스트산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네 야산 높이만큼은 쌓이지 않았을까. 책 판 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면 아마 그 정도는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洪性大·홍성대)는 책으로 번 돈을 차곡차곡 자신의 곳간에 쌓아 놓는 대신 교육과 기부를 통해 사회로 돌려주는 길을 택했다.
그는 1979년에는 형제들과 함께 고향인 정읍시 태인에 부친(洪洙杓·홍수표)을 기념하는 명봉도서관을 건립했고, 1981년에는 전북 전주시에 象山高(상산고)를 설립했다. 지금 그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다. 상산고는 2003년에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됐다. 자립형 사립고 전환 이후에만 상산고에 털어 넣은 그의 사재가 35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칭찬으로 만난 수학
홍 이사장은 재산, 지식, 경험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산고에 쏟아 붓고 있다. 상산고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05년 8월에 홍 이사장은 경추(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그 보름 전에는 담낭제거 수술도 받았다. 상산고의 자립형 사립고 전환 이후 여학생 기숙사, 체육관 건립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던 무렵이었다. 매달 들어가는 학교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경추 수술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대수술이었다. 홍 이사장은 수술을 앞두고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를 걱정하다가 이에 대비해 상산고 법인에 私財(사재) 150억원을 보냈다. 그 정도면 혹시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학교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의 기부는 상산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998년에는 40억원을 들여 母校(모교)인 서울대에 3600㎡(1089평) 규모의 초현대식 연구동인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했고, 매년 1억원 이상의 사재를 들여 진돗개 보존사업도 벌이고 있다.
홍 이사장의 고향은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다. 그곳에서 그는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00년생인 그의 부친은 일제하에서 중동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교복 입은 학생을 마을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부친의 칭찬 때문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홍 이사장이 부친이 가르쳐 주는 <샘본>의 계산법과 응용문제를 척척 풀어내면 부친은 “잘했다. 아주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부친의 칭찬이 오늘의 홍 이사장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홍 이사장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家勢(가세)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서 태인국민학교와 태인중학교를 졸업한 후 전북 익산(이리)에 있는 남성고로 진학했다.
남성고에 진학했지만 학교까지의 통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태인에서 신태인까지 8km를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신태인에서 익산까지는 기차를 타고 통학했다. 무더운 여름이나 겨울에는 자취하는 친구들의 신세를 지거나 가정교사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거처를 옮긴 횟수만 열다섯 차례라고 한다.
외국 자료에서 아이디어 얻어
홍 이사장은 고교 졸업 후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軍(군)에 다녀온 후 그는 본격적인 과외에 나섰다. 등록금, 하숙비, 책값, 용돈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사대부고 3학년 女(여)학생 6명으로 시작한 과외는 50명으로 불어났다.
인기강사로 소문이 나면서 대학 4년 때는 본격적인 학원 강사로 나섰다. 당시는 대학교수들도 학원 강사로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학원가에서도 그는 인기강사가 됐다.
인기의 비결은 노력이었다. 과외를 할 때도 그랬지만, 그는 기존에 나와 있는 참고서로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광화문의 외국서적 판매점을 뒤지거나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 수소문해 수학 관련 자료를 모았다. 이런 자료를 통해 아이디어도 얻고 좋은 문제도 모았다.
이런 자료들이 쌓여 가면서 그는 수학 참고서를 직접 써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63년에 그는 수학 참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살 때였다.
홍 이사장은 집필 시작 3년 만인 1966년 8월 31일에 <수학의 정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의 일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43년여 동안 <수학의 정석>은 단 한 번도 1등 자리를 내 주지 않고 있다.
그토록 어렵게 자란 사람이, 어렵게 번 돈을 주저 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는 뭘까. 1998년 서울대에 기증한 ‘상산수리과학관’ 개관식에서 행한 홍 이사장의 인사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인사말 일부를 옮겨 본다.
‘… 솔직히 저는 문리대 수학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의지할 곳이 전혀 없어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서울대학교는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었습니다. … 빈 손 쥐고 수학과에 다니면서 남달리 이 대학에 크나큰 신세를 졌던 저로서는 35년이 지난 오늘에야 모교를 찾아와 특히 수학과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기뻐할 만한 작은 선물을 하나 내놓은 듯하여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가난했던 현실을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많은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산고 설립도 비슷한 이유다. 홍 이사장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베토벤은 가난하고 몸이 약한, 마치 고뇌 그 자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환희와 기쁨을 거절당한 그가 기쁨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스스로 기쁨을 창조했습니다. 나는 대학 다닐 때에는 그런 베토벤의 생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어요. 살면서 원망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뀐 거죠.”
서울 양재동에 있는 홍 이사장 사무실 여직원은 홍 이사장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수학이 논리력·사고력 길러줘
―회장과 이사장 중 어느 호칭이 듣기에 편합니까.
“이사장이 더 낫지 않나요? 내가 사립중·고등학교 법인 협의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고, 성지출판(주) 회장직을 갖고 있어서 회장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이사장이라는 호칭이 편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지금 상산고이고 그곳의 이사장이니까요.”
그는 ‘이사장’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좋은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책을 팔아서 돈 번 사람’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그 방향으로 우리 교육을 이끌어 가는 ‘교육자’로서 世人(세인)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한평생 수학을 안고 살아온 그에게 물었다.
―수학이 왜 중요합니까.
“소수의 학문하는 분들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알면 됩니다. 요즘은 계산기가 있으니까 그마저도 필요 없죠. 계산기 자판을 누를 줄만 알면 되니까. 그런데 뭐 하러 골치 아프게 수학 공부를 하느냐 이러는데,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이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학이 여러 가지 사고력을 길러 준다는 점이에요. 논리적 사고력, 연역적 사고력, 추리적 사고력 등을 길러 주는 거죠. 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사고력들이잖아요? 그냥 수업시간에 삼각함수를 배우고 사인 코사인 등 수학을 배웠다고 칩시다. 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교실 문을 나오면서 다 잊어버려도 그것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한 시간만이라도 깊이 생각하고 따지는 시간을 가졌단 말이죠. 그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거죠. 매사를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니까요. 수학 공식은 다 잊어먹었어도 어쨌든 따져 보고 생각해 봤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수학에서 암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암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죠. 어떤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식이 필요하고 정리가 필요한 것이죠. 모든 것을 다 암기하자는 게 아니고, 구구단처럼 자주 쓰이고 흔히 쓰이는 것을 암기할 필요는 있는 거죠.”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은 어떻습니까.
“계량적으로 나타난 것과 실제 내면적으로 나타나는 것하고 달라요. 오는 2014년에 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국제수학연맹이 개최하는 국제수학자대회)을 우리가 유치했어요. 국제수학연맹은 국가등급을 1그룹에서 5그룹으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4그룹에 속해 있어요. 그룹이 높을수록 수준이 높은 겁니다. 투표권도 1그룹은 1표, 2그룹은 2표 이런 식으로 차별을 두고 있죠. 5그룹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이스라엘, 일본, 중국 등 10개국이 속해 있어요. 4그룹에는 우리나라와 브라질 등 8개국이 있고요. 우리나라는 2007년에 2그룹에서 4그룹으로 두 계단 격상됐어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등에서 우리 학생들이 내는 성적에 비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수학의 수준이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과거 공산권에서 우수 꿈나무들을 집중 육성시켜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렇다고 메달을 딴 개수만큼 그 나라의 국력이 컸던 것은 아니죠. 우리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세계 수준이지만 핸드볼에 대한 국민적 수준은 그것에 크게 못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ICM 얘기를 했습니다만 5지선다형이라는 시험밖에 모르는 나라에서 국제수학자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세계 토픽감이에요. 그만큼 우리 수학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거죠.”
―국제수학연맹이 ICM에서 수여하는 ‘필즈상’은 수학이 노벨상 수상 부문에서 빠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요?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 때 일화 두 가지가 있답니다. 노벨의 애인이 수학자였는데 그 수학자가 배반했다는 얘기가 하나고, 또 하나는 노벨이 자기 애인을 수학자한테 뺏겼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노벨상에서 수학 분야를 빼라고 했다는 이야기죠. 수학자들이 4년마다 한 번씩 대회를 여는데, 그게 ICM이에요. 1910년에 만들어졌어요. 1936년 캐나다 수학자 필즈가 ICM에서 제안해 만든 상이 ‘필즈상’입니다. ‘필즈상’은 노벨상보다 더 권위가 있는 상으로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만 줘요. 이 대회를 치르는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수여하는 게 관례죠.”
―ICM은 몇 명이나 참석합니까.
“보통 6000명 정도의 수학자가 참여하죠. 관광사업 측면에서 봐도 대단한 대회죠.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우리가 치르게 됐죠.”
―우리나라에도 ‘필즈상’ 수상자가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이번에 기대해 봐야죠. 수학자 대회를 개최한 나라의 학자가 수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신 위주 입시가 과외 더 부추겨
―필즈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우리 수학교육의 문제점은 어떤 겁니까.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유형의 문제를 익히는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에요. 2~3분에 한 문제씩 풀어야 하고 문제가 5지선다형이니까요.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연습을 하는 거예요.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 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인데 반복연습으로 논리적인 사고가 길러지겠습니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십니까.
“신속하고 공평하게 채점해야 한다는 편리성만 내세워 국가 주도하에 5지선다형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할 교육 방법을 거꾸로 교육과학부가 주도하는 꼴이죠. 결론적으로 교육과학부가 수학과 기초과학을 망쳐 놓은 거죠.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거예요.”
―수학능력시험 같은 국가관리 시험에서 주관식으로 문제를 낸다면 채점에 소요되는 인력 등 물리적으로도 무리가 아닐까요?
“50만명이 응시하든 60만명이 응시하든 수능시험에서 수학을 주관식으로 내도 채점에는 문제가 없어요. 지금 각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치를 때 수학선생님들이 다 채점합니다. 하루면 다 끝나잖아요. 그분들이 있는데 뭐가 문젭니까.”
―교육과학부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과열과외 해소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모든 대학이 학생들을 추첨으로 선발한다면 100% 해소되겠죠. 추첨선발 말고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과열과외는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마치 10차선 차로가 갑자기 1차선으로 줄면 극심한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학생이 고3 문턱에 서서 대학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과학부는 당장의 효율성만을 앞세워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병목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한 군데를 막으면 다른 데가 터지는 풍선효과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장기적인 대책도 함께 세워 근본적인 해소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대학별 고사가 필요하다
―어떤 해소책이 있을까요.
“현행 6, 3, 3, 4 학제부터 다양하게 개편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5년제 마이스터 고등학교(전문적인 분야의 기술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나 5년제 전문학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진로지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수준의 대학이 더 많이 생기도록 대학에 자율과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과 기회를 훨씬 더 넓혀 주어야 합니다.”
―대학에 자율과 경쟁을 더 주어야 한다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를 부활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본고사라는 말은 예비고사가 있을 때의 표현이니까 지금은 대학별 고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겁니다. 대학별 고사가 필요합니다.”
―정책당국자들은 시험을 쉽게 출제하면 과외수업이 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정반대지요. 시험이 쉬우면 쉬울수록 과외는 더욱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대학별고사 전형보다는 수능고사 전형이, 수능고사보다는 내신위주의 전형이 과열과외를 더 부추깁니다. 대학별고사가 없어지고 수능성적이 중요 전형요소가 되면서 과열과외는 더 심해졌고, 수능보다 내신성적이 중요 전형요소가 되면서 과열과외가 극에 달한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쉽고, 점수 따기가 쉬울수록 공부한 효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신 위주의 입시제도가 오늘의 과열과외를 부추긴 꼴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행 입시제도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해서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논술을 중요시한다든가, 통합 교과적 출제를 한다고 하면 학원을 더 찾을 수밖에 없지요.”
방과 후 수업은 어처구니없는 발상
―교육과학부는 ‘공교육 강화’를 내세우면서 정규학교 방과 후 수업에 학원강사를 초빙하자는 방안도 내놓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요. 학원강사가 정규학교 교사보다 인기가 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선 정규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 능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두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 수업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수업으로 수월성 교육을 꾀하는 것은 획일 교육보다는 낫지만 또 다른 문제만 야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학원 수강생들의 학업성취 능력은 비교적 고르죠. 학원 수강생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강사와 강의를 선택할 수 있어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원강사를 초빙하자는 것 아닙니까.
“학교 교사는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열심히 가르치든 게으름을 피우든 누구나 같은 처우를 받을 뿐만 아니라 62세까지 신분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학원강사는 능력이 없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거니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단지 학원강사를 학교 교단에 세우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실시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의 입시제도는 수험생들 입장에서 볼 때 너무 부담이 커요. 내신도 잘 관리해야 하고, 수능시험도 잘 치러야 하고, 논술고사도 준비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부담을 줄여 주면서도 알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내신, 수능, 논술, 입학사정관제 전형, 대학별고사 전형 등 각종 전형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내신성적 위주의 전형이 최선인 양 그쪽으로 쏠리더니 요즘은 입학사정관 전형이 지고지선인 양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입학정원을 기준으로 하여 내신으로 20%, 수능으로 30%,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10%, 대학별고사로 40%를 뽑는다면 수험생들은 이 중 하나를 택해 준비하면 한결 부담이 덜할 겁니다. 과열과외도 상당히 해소될 것입니다. 특히 대학별 고사는 수학의 경우 과거처럼 어렵게만 출제할 것이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교과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출제하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채점 방식을 택하면 변별력 있는 전형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쉽지 않아
―요즘 각 대학이 유행처럼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있는데요.
이 질문에 홍성대 이사장은 올해 울릉도 출신으로 상산고에 입학한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2008년 울릉북중학교 3학년인 박모군은 상산고에 입학하고 싶었다. 박군은 그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고, 인터넷 강의로 영어 실력을 쌓아 텝스 640점, 토익 820점을 받았다. 문제는 박군이 중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것은 맞지만 3학년 학생이 6명뿐이어서 기록만으로는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상산고에 입학을 원하는 박군의 소망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지난해 10월 초 상산고 교감과 교사가 울릉도로 갔다. 승용차와 배를 이용해 9시간 만에 도착한 후 다음날 아침까지 박군의 성장과정, 교우관계 등을 살폈다. 또 4시간에 걸쳐 박군이 배운 범위 내에서 수학실력을 테스트했고, 대학과정 등 박군이 한 번도 학습하지 않은 분야를 강의한 다음, 박군의 이해도를 측정했다.
그 1주일 후에는 박군을 상산고로 오게 해서 국어와 영어 실력을 테스트했다. 상산고는 이런 과정을 거쳐 박군의 입학을 허락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의 말이다.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입학사정관제가 상당히 좋은 방법인 것은 사실이에요. 우리 학교는 박군과 같이 도서벽지에 사는 학생 등을 심층 면접해서 금년에는 10명 정도를 뽑을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늘려도 정원의 10%를 넘게 하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10%면 36명 정도죠. 그만큼 심층면접을 통해서 학생을 뽑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시행 첫해에 30, 40%를 그 제도로 뽑는다고 하고, 심지어 절반을 그렇게 뽑고 나중에는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고 하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첫째는 제대로 정착시키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하고, 제도를 갖추어 가는 그 시기에 맞춘 적정한 비율이 필요한 겁니다. 유행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상산고를 어떤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까.
“우선 학생이 학교에 오면 머무르고 싶은 학교, 일요일 등 공휴일에도 집에 가고 싶지 않고 학교 한구석에 앉아서 책이라도 보면서 머물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해 학교의 모든 시설이 교육하는 데 전혀 지장 없도록 완벽한 시설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있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모시는 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상산고 설립에 1000억원 정도 들어
―모델로 삼는 외국 학교는 영국의 이튼스쿨입니까.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야죠. 이튼스쿨도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도 우리한테 와서 배울 것이 많은 학교를 만들어 나가야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미국, 유럽 다 돌아다닌 사람들도 우리 학교에 오면 자기 평생에 이렇게 훌륭한 캠퍼스를 가진 학교를 못 봤다고들 합니다. ‘상산을 알려면 상산을 가 봐라. 가 보지 않고는 상산을 말하지 마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상산고에 투자한 총 투자액은 얼마 정도입니까.
“대충 이 정도 학교를 지금 세우려면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즘에도 학생들한테 상으로 진돗개를 선물합니까.
“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요즘은 원하는 학생들한테 그냥 나눠 주고 있어요. 발단은 졸업식에서 보니까 공로상, 우등상 등을 받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데 영어사전이나 옥편 이런 거를 줘요. 40년 전에 하던 걸 똑같이 하고 있어요. 뭐 상이라는 게 전자제품도 주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생각난 게 진돗개였어요. 마침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어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진돗개 한 마리씩 안겨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졸업식 치사를 하면서 ‘다음에 이사장이 주는 공로상은 진돗개 한 마리씩 주겠다’고 한 거죠. 이왕 주는 거면 좋은 종자 순종으로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동네방네 전국 돌아다니면서 좋은 종자 구하기 시작했죠.”
인터뷰 도중 홍 이사장은 갑자기, “내가 목소리가 이상하죠?”라고 말했다. 인터뷰 이전에 만났을 때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피곤해 보였다.
―수술받은 후유증입니까.
“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이래요. 옛날에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좋았었는데 말이죠.”
―수술 후 어떤 변화가 왔습니까.
“학교 일을 하는데 자꾸 서두르게 돼요. 내가 건강할 때 기본적인 틀은 다 잡아 놔야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지금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단 서둘러서 다 해 놓자’는 생각이 강해요. 학교는 내 인생의 전부가 담겨 있는 곳이니까요.”
집필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 앓아
―<수학의 정석> 집필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가 온 겁니까.
“그렇죠. 책을 쓰면서 모든 학문하는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12시까지만 쓰고 자야지’ 해도 그게 안되거든요. 쓰다 보면 새벽 3시, 4시. 그것이 습관화돼 버리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그때가 원고가 잘 써져요. 한참 쓰다 보면 새벽닭이 울죠. 밤에 외로우니까 담배가 벗이 돼서 하루에 두세 갑 피웠죠. 공복에 담배 피워 가면서 해결 안되면 그대로 앉아서 꼼짝 않고 있으니 몸이 버틸 수가 없죠.”
―원고 작업은 컴퓨터로 합니까.
“처음 원고를 쓸 때는 PC가 없었어요. 수학은 기호가 복잡해서 손으로 쓰는 것이 편할 수도 있고요. 만약 요즘에 처음으로 집필을 시작했다면 컴퓨터로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습관이 되다 보니 지금도 원고지 위에다가 쓰고 있죠.”
< 수학의 정석> 2001년 개정판의 저자는 여전히 ‘홍성대’지만, 책 뒷면에는 ‘도운이 이창형, 홍재현’이 추가돼 있다. 홍재현씨는 홍 이사장의 딸로 현재 서울대 수학과 교수이고, 이창형씨는 홍 교수의 남편이다.
―언제쯤 따님과 사위에게 <수학의 정석> 저술작업을 넘겨줄 생각입니까.
“이번에 진행 중인 개편작업을 할 때 나는 손 끊고 넘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노파심에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냥 멀찌감치 지켜보다가 본능적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돼요. 가까이 가서 책상에 앉아서 보다 보니 상당히 깊이 관여하게 되는 거예요. 개정 작업은 이번까지만 하고 이제 손을 떼야죠. 그런데 좋은 책을 쓰는 일과 건강을 지키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좋은 책 쓰는 일을 선택할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 책을 읽어 준 4000만 독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번 개정판 작업은 언제 끝납니까.
“올해 말이면 다 끝나요.”
―한때는 <수학의 정석>이 일본 책을 베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우리를 비하하는 말로 소위 엽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엽전이 그렇게 좋은 책 쓸 리가 없다고 본 거죠. 책을 쓸때 수능고사나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국내외 대학에서 출제된 문제중에서 아주 좋은 문제라고 판단되는 것이 있으면 이를 인용하기도 해요. 동일한 기출문제를 각기 다른 저자들이 인용하다 보면 서로 배꼈다는 오해도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이미 출제된 문제라 해서 모두 빼고 나면 좋은 책이 될 수 없지요. 요는 저자의 창의적인 신작문제를 배낀다든가, 그 책만이 지니는 독특한 체재를 그대로 모방하면서 창의적인 해설 등을 배끼는 것이 문제지요. 그런것 없어요.”
수학 잘하는 비결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억울하고 분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싸우지는 않았습니까.
“내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랬어요. ‘외국 책하고 내 책을 비교해서 한 페이지라도 같은 것 있으면 가져와라. 내가 포상을 해 준다’고 말이죠.”
―개정판을 자주 내시는데 주기가 정해져 있습니까.
“원래 교육과정이 5년마다 개편되도록 돼 있는데 교육과학부 사정에 따라 1~2년씩 연기되기도 해요. 6~7년마다 교과서가 바뀐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맞춰서 개정판을 냅니다.”
―원고 집필은 어디에서 하십니까.
“집에서도 해 봤고 사무실, 여관에서도 작업을 해 봤어요. 산속에 가서 해 보기도 했고. 산속에 들어가서 해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외로워서 안돼요.”
―네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습니까.
“집이 제일 좋죠.”
―수학을 잘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눈으로만 읽지 말고 종이에 직접 써 봐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속도도 빨라지고 정확해지고 이해력도 길러집니다. 둘째는 자기 힘으로 풀어야 합니다. 바로 풀이를 본다든지 하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요. 셋째는 복습보다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예습을 하고 나서 강의를 들으면 수학이 훨씬 흥미로워지고 오래 남게 됩니다.”
―사학법 再(재)개정과 관련해서 외부에서는 홍 이사장께서 과거보다 소극적이 된 것 같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소극적이 된 게 아니고요. 전에는 내가 사학 이사장들 모임에 책임자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남들 눈에 도드라지게 보인 거죠. 사학법이 재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서울대 폐지론 반대, 상산고 운영 등 그동안 보여 온 행보 때문에 ‘1등 지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나는 자그마한 일이든 큰일이든 꼭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시작합니다. 또 시작했으면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홍성대가 하면 뭐든지 다 성공한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일을 추진합니다. 1등 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죠.”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
―1985년 總選(총선) 때 전국구 의원 제의를 받는 등 정치권에서 많은 손길이 뻗쳐 왔던 걸로 아는데요.
“그런 제의 많이 받았죠. 호남을 배경으로 한 정당에서도 받았고 반대되는 당에서도 받았어요. 심지어 전국구 1번 자리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아요.”
―잘하시는 요리 있습니까.
“없어요.”
―댁에서 주방에 가 본 적은 있나요?
“없어요.”
―담배는 수술 후 끊었습니까.
“학교 설립한 후에 끊었어요. 1985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 한 다섯 번쯤 담배를 끊으려다 실패했는데, 상산고 선생님들 앞에서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그 약속을 어길 수 없었죠.”
―술은요?
“수술 전에는 주량을 잴 수 없었죠. 지금은 분위기에 따라 맞춰서 먹을 수는 있죠.”
홍성대 이사장이 인터뷰 말미에 필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나로서는 아무 계기가 없는데 왜 인터뷰를 하는 거죠?”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이 퍽퍽하고 암울한 세상에 희망을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성지출판(주)이 지난 2006년 8월 발간 40주년을 맞아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그때까지 총 3700만 권이 팔렸다고 한다. 책의 두께를 평균 3cm로 계산하면 팔려나간 책을 쌓아 놓을 경우 에베레스트산(8853.5m) 125개 높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판매 추세로 볼 때 2009년 현재까지는 4000만 권 이상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다 쌓으면 지금까지 팔린 책은 에베레스트산 135개 높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학의 정석>을 팔아서 번 돈은 에베레스트산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네 야산 높이만큼은 쌓이지 않았을까. 책 판 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면 아마 그 정도는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洪性大·홍성대)는 책으로 번 돈을 차곡차곡 자신의 곳간에 쌓아 놓는 대신 교육과 기부를 통해 사회로 돌려주는 길을 택했다.
그는 1979년에는 형제들과 함께 고향인 정읍시 태인에 부친(洪洙杓·홍수표)을 기념하는 명봉도서관을 건립했고, 1981년에는 전북 전주시에 象山高(상산고)를 설립했다. 지금 그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다. 상산고는 2003년에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됐다. 자립형 사립고 전환 이후에만 상산고에 털어 넣은 그의 사재가 35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칭찬으로 만난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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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첫 발간된 <수학의 정석> 표지. |
2005년 8월에 홍 이사장은 경추(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그 보름 전에는 담낭제거 수술도 받았다. 상산고의 자립형 사립고 전환 이후 여학생 기숙사, 체육관 건립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던 무렵이었다. 매달 들어가는 학교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경추 수술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대수술이었다. 홍 이사장은 수술을 앞두고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를 걱정하다가 이에 대비해 상산고 법인에 私財(사재) 150억원을 보냈다. 그 정도면 혹시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학교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의 기부는 상산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998년에는 40억원을 들여 母校(모교)인 서울대에 3600㎡(1089평) 규모의 초현대식 연구동인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했고, 매년 1억원 이상의 사재를 들여 진돗개 보존사업도 벌이고 있다.
홍 이사장의 고향은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다. 그곳에서 그는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00년생인 그의 부친은 일제하에서 중동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교복 입은 학생을 마을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부친의 칭찬 때문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홍 이사장이 부친이 가르쳐 주는 <샘본>의 계산법과 응용문제를 척척 풀어내면 부친은 “잘했다. 아주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부친의 칭찬이 오늘의 홍 이사장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홍 이사장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家勢(가세)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서 태인국민학교와 태인중학교를 졸업한 후 전북 익산(이리)에 있는 남성고로 진학했다.
남성고에 진학했지만 학교까지의 통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태인에서 신태인까지 8km를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신태인에서 익산까지는 기차를 타고 통학했다. 무더운 여름이나 겨울에는 자취하는 친구들의 신세를 지거나 가정교사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거처를 옮긴 횟수만 열다섯 차례라고 한다.
외국 자료에서 아이디어 얻어

인기강사로 소문이 나면서 대학 4년 때는 본격적인 학원 강사로 나섰다. 당시는 대학교수들도 학원 강사로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학원가에서도 그는 인기강사가 됐다.
인기의 비결은 노력이었다. 과외를 할 때도 그랬지만, 그는 기존에 나와 있는 참고서로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광화문의 외국서적 판매점을 뒤지거나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 수소문해 수학 관련 자료를 모았다. 이런 자료를 통해 아이디어도 얻고 좋은 문제도 모았다.
이런 자료들이 쌓여 가면서 그는 수학 참고서를 직접 써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63년에 그는 수학 참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살 때였다.
홍 이사장은 집필 시작 3년 만인 1966년 8월 31일에 <수학의 정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의 일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43년여 동안 <수학의 정석>은 단 한 번도 1등 자리를 내 주지 않고 있다.
그토록 어렵게 자란 사람이, 어렵게 번 돈을 주저 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는 뭘까. 1998년 서울대에 기증한 ‘상산수리과학관’ 개관식에서 행한 홍 이사장의 인사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인사말 일부를 옮겨 본다.
‘… 솔직히 저는 문리대 수학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의지할 곳이 전혀 없어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서울대학교는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 주었습니다. … 빈 손 쥐고 수학과에 다니면서 남달리 이 대학에 크나큰 신세를 졌던 저로서는 35년이 지난 오늘에야 모교를 찾아와 특히 수학과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기뻐할 만한 작은 선물을 하나 내놓은 듯하여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가난했던 현실을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많은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산고 설립도 비슷한 이유다. 홍 이사장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베토벤은 가난하고 몸이 약한, 마치 고뇌 그 자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환희와 기쁨을 거절당한 그가 기쁨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스스로 기쁨을 창조했습니다. 나는 대학 다닐 때에는 그런 베토벤의 생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어요. 살면서 원망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뀐 거죠.”
서울 양재동에 있는 홍 이사장 사무실 여직원은 홍 이사장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수학이 논리력·사고력 길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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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高학생들이 현미경으로 혈구를 관찰하는 생물실습 실험을 하고 있다. |
“이사장이 더 낫지 않나요? 내가 사립중·고등학교 법인 협의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고, 성지출판(주) 회장직을 갖고 있어서 회장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이사장이라는 호칭이 편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지금 상산고이고 그곳의 이사장이니까요.”
그는 ‘이사장’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좋은 이유를 길게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책을 팔아서 돈 번 사람’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그 방향으로 우리 교육을 이끌어 가는 ‘교육자’로서 世人(세인)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한평생 수학을 안고 살아온 그에게 물었다.
―수학이 왜 중요합니까.
“소수의 학문하는 분들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알면 됩니다. 요즘은 계산기가 있으니까 그마저도 필요 없죠. 계산기 자판을 누를 줄만 알면 되니까. 그런데 뭐 하러 골치 아프게 수학 공부를 하느냐 이러는데,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이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학이 여러 가지 사고력을 길러 준다는 점이에요. 논리적 사고력, 연역적 사고력, 추리적 사고력 등을 길러 주는 거죠. 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사고력들이잖아요? 그냥 수업시간에 삼각함수를 배우고 사인 코사인 등 수학을 배웠다고 칩시다. 한 시간 동안 배운 것을 교실 문을 나오면서 다 잊어버려도 그것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한 시간만이라도 깊이 생각하고 따지는 시간을 가졌단 말이죠. 그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거죠. 매사를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니까요. 수학 공식은 다 잊어먹었어도 어쨌든 따져 보고 생각해 봤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수학에서 암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암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수단이죠. 어떤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식이 필요하고 정리가 필요한 것이죠. 모든 것을 다 암기하자는 게 아니고, 구구단처럼 자주 쓰이고 흔히 쓰이는 것을 암기할 필요는 있는 거죠.”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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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종으로 이루어진 <수학의 정석> 시리즈. |
“계량적으로 나타난 것과 실제 내면적으로 나타나는 것하고 달라요. 오는 2014년에 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국제수학연맹이 개최하는 국제수학자대회)을 우리가 유치했어요. 국제수학연맹은 국가등급을 1그룹에서 5그룹으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4그룹에 속해 있어요. 그룹이 높을수록 수준이 높은 겁니다. 투표권도 1그룹은 1표, 2그룹은 2표 이런 식으로 차별을 두고 있죠. 5그룹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이스라엘, 일본, 중국 등 10개국이 속해 있어요. 4그룹에는 우리나라와 브라질 등 8개국이 있고요. 우리나라는 2007년에 2그룹에서 4그룹으로 두 계단 격상됐어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등에서 우리 학생들이 내는 성적에 비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수학의 수준이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과거 공산권에서 우수 꿈나무들을 집중 육성시켜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렇다고 메달을 딴 개수만큼 그 나라의 국력이 컸던 것은 아니죠. 우리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세계 수준이지만 핸드볼에 대한 국민적 수준은 그것에 크게 못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ICM 얘기를 했습니다만 5지선다형이라는 시험밖에 모르는 나라에서 국제수학자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세계 토픽감이에요. 그만큼 우리 수학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거죠.”
―국제수학연맹이 ICM에서 수여하는 ‘필즈상’은 수학이 노벨상 수상 부문에서 빠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요?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 때 일화 두 가지가 있답니다. 노벨의 애인이 수학자였는데 그 수학자가 배반했다는 얘기가 하나고, 또 하나는 노벨이 자기 애인을 수학자한테 뺏겼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노벨상에서 수학 분야를 빼라고 했다는 이야기죠. 수학자들이 4년마다 한 번씩 대회를 여는데, 그게 ICM이에요. 1910년에 만들어졌어요. 1936년 캐나다 수학자 필즈가 ICM에서 제안해 만든 상이 ‘필즈상’입니다. ‘필즈상’은 노벨상보다 더 권위가 있는 상으로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만 줘요. 이 대회를 치르는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수여하는 게 관례죠.”
―ICM은 몇 명이나 참석합니까.
“보통 6000명 정도의 수학자가 참여하죠. 관광사업 측면에서 봐도 대단한 대회죠.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우리가 치르게 됐죠.”
―우리나라에도 ‘필즈상’ 수상자가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이번에 기대해 봐야죠. 수학자 대회를 개최한 나라의 학자가 수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신 위주 입시가 과외 더 부추겨
―필즈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우리 수학교육의 문제점은 어떤 겁니까.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유형의 문제를 익히는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에요. 2~3분에 한 문제씩 풀어야 하고 문제가 5지선다형이니까요.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연습을 하는 거예요.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 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인데 반복연습으로 논리적인 사고가 길러지겠습니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십니까.
“신속하고 공평하게 채점해야 한다는 편리성만 내세워 국가 주도하에 5지선다형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할 교육 방법을 거꾸로 교육과학부가 주도하는 꼴이죠. 결론적으로 교육과학부가 수학과 기초과학을 망쳐 놓은 거죠.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거예요.”
―수학능력시험 같은 국가관리 시험에서 주관식으로 문제를 낸다면 채점에 소요되는 인력 등 물리적으로도 무리가 아닐까요?
“50만명이 응시하든 60만명이 응시하든 수능시험에서 수학을 주관식으로 내도 채점에는 문제가 없어요. 지금 각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치를 때 수학선생님들이 다 채점합니다. 하루면 다 끝나잖아요. 그분들이 있는데 뭐가 문젭니까.”
―교육과학부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과열과외 해소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모든 대학이 학생들을 추첨으로 선발한다면 100% 해소되겠죠. 추첨선발 말고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과열과외는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마치 10차선 차로가 갑자기 1차선으로 줄면 극심한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학생이 고3 문턱에 서서 대학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과학부는 당장의 효율성만을 앞세워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병목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한 군데를 막으면 다른 데가 터지는 풍선효과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장기적인 대책도 함께 세워 근본적인 해소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대학별 고사가 필요하다
―어떤 해소책이 있을까요.
“현행 6, 3, 3, 4 학제부터 다양하게 개편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5년제 마이스터 고등학교(전문적인 분야의 기술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나 5년제 전문학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진로지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수준의 대학이 더 많이 생기도록 대학에 자율과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과 기회를 훨씬 더 넓혀 주어야 합니다.”
―대학에 자율과 경쟁을 더 주어야 한다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를 부활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본고사라는 말은 예비고사가 있을 때의 표현이니까 지금은 대학별 고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겁니다. 대학별 고사가 필요합니다.”
―정책당국자들은 시험을 쉽게 출제하면 과외수업이 덜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정반대지요. 시험이 쉬우면 쉬울수록 과외는 더욱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대학별고사 전형보다는 수능고사 전형이, 수능고사보다는 내신위주의 전형이 과열과외를 더 부추깁니다. 대학별고사가 없어지고 수능성적이 중요 전형요소가 되면서 과열과외는 더 심해졌고, 수능보다 내신성적이 중요 전형요소가 되면서 과열과외가 극에 달한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쉽고, 점수 따기가 쉬울수록 공부한 효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신 위주의 입시제도가 오늘의 과열과외를 부추긴 꼴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행 입시제도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해서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논술을 중요시한다든가, 통합 교과적 출제를 한다고 하면 학원을 더 찾을 수밖에 없지요.”
방과 후 수업은 어처구니없는 발상
―교육과학부는 ‘공교육 강화’를 내세우면서 정규학교 방과 후 수업에 학원강사를 초빙하자는 방안도 내놓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요. 학원강사가 정규학교 교사보다 인기가 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선 정규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 능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두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 수업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수업으로 수월성 교육을 꾀하는 것은 획일 교육보다는 낫지만 또 다른 문제만 야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학원 수강생들의 학업성취 능력은 비교적 고르죠. 학원 수강생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강사와 강의를 선택할 수 있어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원강사를 초빙하자는 것 아닙니까.
“학교 교사는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열심히 가르치든 게으름을 피우든 누구나 같은 처우를 받을 뿐만 아니라 62세까지 신분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학원강사는 능력이 없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거니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단지 학원강사를 학교 교단에 세우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실시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의 입시제도는 수험생들 입장에서 볼 때 너무 부담이 커요. 내신도 잘 관리해야 하고, 수능시험도 잘 치러야 하고, 논술고사도 준비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부담을 줄여 주면서도 알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내신, 수능, 논술, 입학사정관제 전형, 대학별고사 전형 등 각종 전형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내신성적 위주의 전형이 최선인 양 그쪽으로 쏠리더니 요즘은 입학사정관 전형이 지고지선인 양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입학정원을 기준으로 하여 내신으로 20%, 수능으로 30%,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10%, 대학별고사로 40%를 뽑는다면 수험생들은 이 중 하나를 택해 준비하면 한결 부담이 덜할 겁니다. 과열과외도 상당히 해소될 것입니다. 특히 대학별 고사는 수학의 경우 과거처럼 어렵게만 출제할 것이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교과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출제하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채점 방식을 택하면 변별력 있는 전형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쉽지 않아
―요즘 각 대학이 유행처럼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있는데요.
이 질문에 홍성대 이사장은 올해 울릉도 출신으로 상산고에 입학한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2008년 울릉북중학교 3학년인 박모군은 상산고에 입학하고 싶었다. 박군은 그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고, 인터넷 강의로 영어 실력을 쌓아 텝스 640점, 토익 820점을 받았다. 문제는 박군이 중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것은 맞지만 3학년 학생이 6명뿐이어서 기록만으로는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상산고에 입학을 원하는 박군의 소망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지난해 10월 초 상산고 교감과 교사가 울릉도로 갔다. 승용차와 배를 이용해 9시간 만에 도착한 후 다음날 아침까지 박군의 성장과정, 교우관계 등을 살폈다. 또 4시간에 걸쳐 박군이 배운 범위 내에서 수학실력을 테스트했고, 대학과정 등 박군이 한 번도 학습하지 않은 분야를 강의한 다음, 박군의 이해도를 측정했다.
그 1주일 후에는 박군을 상산고로 오게 해서 국어와 영어 실력을 테스트했다. 상산고는 이런 과정을 거쳐 박군의 입학을 허락했다고 한다. 홍 이사장의 말이다.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입학사정관제가 상당히 좋은 방법인 것은 사실이에요. 우리 학교는 박군과 같이 도서벽지에 사는 학생 등을 심층 면접해서 금년에는 10명 정도를 뽑을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늘려도 정원의 10%를 넘게 하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10%면 36명 정도죠. 그만큼 심층면접을 통해서 학생을 뽑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시행 첫해에 30, 40%를 그 제도로 뽑는다고 하고, 심지어 절반을 그렇게 뽑고 나중에는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고 하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첫째는 제대로 정착시키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하고, 제도를 갖추어 가는 그 시기에 맞춘 적정한 비율이 필요한 겁니다. 유행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상산고를 어떤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까.
“우선 학생이 학교에 오면 머무르고 싶은 학교, 일요일 등 공휴일에도 집에 가고 싶지 않고 학교 한구석에 앉아서 책이라도 보면서 머물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해 학교의 모든 시설이 교육하는 데 전혀 지장 없도록 완벽한 시설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있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모시는 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상산고 설립에 1000억원 정도 들어
―모델로 삼는 외국 학교는 영국의 이튼스쿨입니까.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야죠. 이튼스쿨도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도 우리한테 와서 배울 것이 많은 학교를 만들어 나가야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미국, 유럽 다 돌아다닌 사람들도 우리 학교에 오면 자기 평생에 이렇게 훌륭한 캠퍼스를 가진 학교를 못 봤다고들 합니다. ‘상산을 알려면 상산을 가 봐라. 가 보지 않고는 상산을 말하지 마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상산고에 투자한 총 투자액은 얼마 정도입니까.
“대충 이 정도 학교를 지금 세우려면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즘에도 학생들한테 상으로 진돗개를 선물합니까.
“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요즘은 원하는 학생들한테 그냥 나눠 주고 있어요. 발단은 졸업식에서 보니까 공로상, 우등상 등을 받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데 영어사전이나 옥편 이런 거를 줘요. 40년 전에 하던 걸 똑같이 하고 있어요. 뭐 상이라는 게 전자제품도 주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생각난 게 진돗개였어요. 마침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어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진돗개 한 마리씩 안겨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졸업식 치사를 하면서 ‘다음에 이사장이 주는 공로상은 진돗개 한 마리씩 주겠다’고 한 거죠. 이왕 주는 거면 좋은 종자 순종으로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동네방네 전국 돌아다니면서 좋은 종자 구하기 시작했죠.”
인터뷰 도중 홍 이사장은 갑자기, “내가 목소리가 이상하죠?”라고 말했다. 인터뷰 이전에 만났을 때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피곤해 보였다.
―수술받은 후유증입니까.
“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이래요. 옛날에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좋았었는데 말이죠.”
―수술 후 어떤 변화가 왔습니까.
“학교 일을 하는데 자꾸 서두르게 돼요. 내가 건강할 때 기본적인 틀은 다 잡아 놔야겠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지금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일단 서둘러서 다 해 놓자’는 생각이 강해요. 학교는 내 인생의 전부가 담겨 있는 곳이니까요.”
집필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 앓아
―<수학의 정석> 집필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가 온 겁니까.
“그렇죠. 책을 쓰면서 모든 학문하는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12시까지만 쓰고 자야지’ 해도 그게 안되거든요. 쓰다 보면 새벽 3시, 4시. 그것이 습관화돼 버리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그때가 원고가 잘 써져요. 한참 쓰다 보면 새벽닭이 울죠. 밤에 외로우니까 담배가 벗이 돼서 하루에 두세 갑 피웠죠. 공복에 담배 피워 가면서 해결 안되면 그대로 앉아서 꼼짝 않고 있으니 몸이 버틸 수가 없죠.”
―원고 작업은 컴퓨터로 합니까.
“처음 원고를 쓸 때는 PC가 없었어요. 수학은 기호가 복잡해서 손으로 쓰는 것이 편할 수도 있고요. 만약 요즘에 처음으로 집필을 시작했다면 컴퓨터로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습관이 되다 보니 지금도 원고지 위에다가 쓰고 있죠.”
< 수학의 정석> 2001년 개정판의 저자는 여전히 ‘홍성대’지만, 책 뒷면에는 ‘도운이 이창형, 홍재현’이 추가돼 있다. 홍재현씨는 홍 이사장의 딸로 현재 서울대 수학과 교수이고, 이창형씨는 홍 교수의 남편이다.
―언제쯤 따님과 사위에게 <수학의 정석> 저술작업을 넘겨줄 생각입니까.
“이번에 진행 중인 개편작업을 할 때 나는 손 끊고 넘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노파심에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냥 멀찌감치 지켜보다가 본능적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돼요. 가까이 가서 책상에 앉아서 보다 보니 상당히 깊이 관여하게 되는 거예요. 개정 작업은 이번까지만 하고 이제 손을 떼야죠. 그런데 좋은 책을 쓰는 일과 건강을 지키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좋은 책 쓰는 일을 선택할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 책을 읽어 준 4000만 독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번 개정판 작업은 언제 끝납니까.
“올해 말이면 다 끝나요.”
―한때는 <수학의 정석>이 일본 책을 베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우리를 비하하는 말로 소위 엽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엽전이 그렇게 좋은 책 쓸 리가 없다고 본 거죠. 책을 쓸때 수능고사나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국내외 대학에서 출제된 문제중에서 아주 좋은 문제라고 판단되는 것이 있으면 이를 인용하기도 해요. 동일한 기출문제를 각기 다른 저자들이 인용하다 보면 서로 배꼈다는 오해도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이미 출제된 문제라 해서 모두 빼고 나면 좋은 책이 될 수 없지요. 요는 저자의 창의적인 신작문제를 배낀다든가, 그 책만이 지니는 독특한 체재를 그대로 모방하면서 창의적인 해설 등을 배끼는 것이 문제지요. 그런것 없어요.”
수학 잘하는 비결

“내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랬어요. ‘외국 책하고 내 책을 비교해서 한 페이지라도 같은 것 있으면 가져와라. 내가 포상을 해 준다’고 말이죠.”
―개정판을 자주 내시는데 주기가 정해져 있습니까.
“원래 교육과정이 5년마다 개편되도록 돼 있는데 교육과학부 사정에 따라 1~2년씩 연기되기도 해요. 6~7년마다 교과서가 바뀐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맞춰서 개정판을 냅니다.”
―원고 집필은 어디에서 하십니까.
“집에서도 해 봤고 사무실, 여관에서도 작업을 해 봤어요. 산속에 가서 해 보기도 했고. 산속에 들어가서 해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외로워서 안돼요.”
―네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습니까.
“집이 제일 좋죠.”
―수학을 잘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눈으로만 읽지 말고 종이에 직접 써 봐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속도도 빨라지고 정확해지고 이해력도 길러집니다. 둘째는 자기 힘으로 풀어야 합니다. 바로 풀이를 본다든지 하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요. 셋째는 복습보다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예습을 하고 나서 강의를 들으면 수학이 훨씬 흥미로워지고 오래 남게 됩니다.”
―사학법 再(재)개정과 관련해서 외부에서는 홍 이사장께서 과거보다 소극적이 된 것 같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소극적이 된 게 아니고요. 전에는 내가 사학 이사장들 모임에 책임자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남들 눈에 도드라지게 보인 거죠. 사학법이 재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서울대 폐지론 반대, 상산고 운영 등 그동안 보여 온 행보 때문에 ‘1등 지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나는 자그마한 일이든 큰일이든 꼭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시작합니다. 또 시작했으면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홍성대가 하면 뭐든지 다 성공한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일을 추진합니다. 1등 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죠.”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
―1985년 總選(총선) 때 전국구 의원 제의를 받는 등 정치권에서 많은 손길이 뻗쳐 왔던 걸로 아는데요.
“그런 제의 많이 받았죠. 호남을 배경으로 한 정당에서도 받았고 반대되는 당에서도 받았어요. 심지어 전국구 1번 자리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아요.”
―잘하시는 요리 있습니까.
“없어요.”
―댁에서 주방에 가 본 적은 있나요?
“없어요.”
―담배는 수술 후 끊었습니까.
“학교 설립한 후에 끊었어요. 1985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 한 다섯 번쯤 담배를 끊으려다 실패했는데, 상산고 선생님들 앞에서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그 약속을 어길 수 없었죠.”
―술은요?
“수술 전에는 주량을 잴 수 없었죠. 지금은 분위기에 따라 맞춰서 먹을 수는 있죠.”
홍성대 이사장이 인터뷰 말미에 필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나로서는 아무 계기가 없는데 왜 인터뷰를 하는 거죠?”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이 퍽퍽하고 암울한 세상에 희망을 보여주고 계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