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의 잔디장지(葬地)가 1천여 년 동안의 장지(葬地)가 되다!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7-08-14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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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잔디장 조성과 관련하여 감회, 정책 제안 등을 정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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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조선DB

장사
(葬事) 관련 나의 유언
 
내가 제안하여 문중이 조성한 잔디장(葬) 묘원(墓園)에 아내와 함께 묻히게 될 묘를 마련해 놓고 나니 감회가 벅차다. 이제 유언만 남았다. "아들아. 내가 떠나거든 누나를 비롯해 친척들에게, 교회에, 내 친구에게, 내가 몸 담았던 대학에, 몇몇 신문사에 알려라. 사는 동안 세상 빚을 많이 졌지만 갚지 못하고 떠나니 부의금은 받지 말아라. 내 시신은 몸 담았던 대학의 대학병원에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화장한 유해는 마련해둔 잔디장 묘의 표지석을 들고 그 밑에 안치하면 된다."
 
나의 제안으로 ‘문중 잔디장 묘원’이 조성되다 
 
나는 약 25년 전부터 14여 년 동안 배낭을 메고 이산저산을 오르내린 적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볼썽사나운 분묘(墳墓)를 정리하여 아름다운 산을 가꿀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였다. 어떤 산은 분묘 한 기(基)가 200여 평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어떤 분묘는 천년만년을 가도 모서리 하나 부서질 것 같지 않은 화강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어떤 산은 자손을 잃은 듯한 분묘 옆에 3미터가 넘는 비석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우리나라의 산들이 무연고묘(無緣故墓)로 가득차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무연고묘는 현재 900만 기를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문중에 장사문화(葬事文化)를 개선할 수 있는 잔디장 조성을 제안했고, 문중이 이를 받아들여 ‘문중 잔디장 묘원’이 조성되었다.
 
부모님의 뼈, 한 줌도 안 되다
 
부모님 분묘를 잔디장(葬)으로 바꾸려고 파헤쳐보니 남아있는 뼈가 한 줌도 되지 않았다. 큰 아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기3:19).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조상의 육신을 경조사상(敬祖思想)을 내세워 분묘로 장식하고, 수백 년 동안 정성껏 모시는 우리의 관습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불효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세계 3위인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분묘를 고수해야 할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집트 파라오(왕)들은 죽은 후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에서 손수 거창한 피라밋을 세웠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에서 정성껏 분묘를 모셨다. 우리나라처럼 산에 조상의 분묘를 안치하고 정성껏 모시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주은래의 유언으로 중국은 화장법을 도입했다
 
이산저산을 오르내리는 동안에 일어난 일. 나는 톈진에 있는 ‘주은래기념박물관’을 관람하고, 등소평 이야기를 쓸 기회가 생겼다. 중국 톈진에 가면 ‘주은래기념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1층 기념관 관람이 끝나면 복도는 2층으로 이어진다. 2층은 주은래와 그의 부인 등영초의 유물 전시장인데, 2층 중앙 전시실에는 약 30㎝×20㎝×20㎝ 크기의 유골함(遺骨函)이 테이블 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다. 이 유골함에는 주은래 부부의 유골이 들어 있다. 주은래는 죽기 전 자신의 시신(屍身)을 화장하도록 유언했다. 그는 중국은 땅이 좁아 묘지가 부족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화장을 유언했다고 한다. 주은래의 유언으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은 화장법을 도입했다.
 
주은래의 유골함을 보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 한 분이 생각났다. 그는 경기도 용인에 조상 묘를 이장(移葬)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한 지관(地官)의 말을 듣고 용인에 넓은 묘지를 잡았다. 그는 지관의 예언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분묘로 가득 찬 산을 염려하여 이장(移葬) 때 분묘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장사문화는 어떻게 변했을까.
 
등소평의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등소평의 유언은 감동적이다. 그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죽으면 ‘각막과 장기는 기증하고, 유체는 중국 최고 병원인 301병원에 해부 연구용으로 내놓고, 나머지는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는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고,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등소평 묘는 세상에는 없고, 기념비는 고향 스촨성 한 곳에만 있다고 한다.
 
2천㎡의 잔디장지(葬地)가 1천여 년 동안의 장지(葬地)가 되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잦은 개정' 흔적을 통해 역대 정부가 장사문화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정부는 2008년에 ‘자연장(수목장, 화목장, 잔디장)’을 도입했다. 국민의 80% 이상이 화장을 원하지만 화장 후 장사 방법은 마땅치 않다. 정부는 분묘를 금지한다고 하면서도 시골에서는 오랜 관습을 눈감아주는 처지다. 수목장도 문제가 있다. 서울 근교에서 수목장은 2천만 원을 호가하고, 정부가 지정한 수목장 지역은 혐오 대상이 되고, 화목장은 장소 제약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잔디장이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문중 선산(先山)을 잔디장지로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 문중 선산은 조상이 서기 1500년에 정착한 후로 지금까지 잘 유지되어 왔다. 우리 문중은 선산에 600여 평의 잔디장지를 조성한 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상 분묘 300여기를 이장했다. 남은 잔디장지는 살아있는 후손들의 묘지로 배정했다. 대충 계산해보니, 우리 문중 후손이 앞으로 500여 년 동안 안치(安置) 될 수 있는 장지다. 600여 평의 잔디장이 천 년 동안 장지(葬地)로 사용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잔디장에 세워질 큰 돌에 새길 문중 묘원 조성기(造成記)를 썼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520여 년 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영(先塋)들을 한 데 모시어 조상님들을 공경(恭敬)하는 마음을 북돋우고, 앞으로는 좁은 땅에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이곳에 ‘죽산박씨 문정공파 임곡대종중 잔디장(葬) 합동묘원’을 조성하다.” 이 조성기를 쓰면서 나는 등소평의 유언을 생각했다.
 
잔디장의 이점은 땅 이용의 높은 효율성과 저렴한 장사 비용이다
 
잔디장은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잔디장은 땅 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 분묘 한 기의 평균 면적이 5평이라고 하자. 우리 문중의 잔디장은 부부합장을 '1기'로 보고 한 평에 2.3기 안치했으므로, 부부합장을 '2기'로 보면 1평에 4기 이상을 안치한 셈이다. 따라서 분묘에 비해 잔디장은 땅 이용의 효율성이 무려 20배 이상 높다.
 
둘째, 장사 비용이 적게 든다. 우리 문중은 표지석 비용을 포함해 관리비 100만 원만 내면 자손은 누구나 부부합장으로 잔디장에 안치될 수 있다. 따라서 안치 비용은 관리비 100만 원에 화장 비용만 추가하면 된다. 화장 비용은 지자체 화장시설의 경우 9만 원 정도이니 장사 비용은 부부 합장의 경우 120만 원이 채 안 든다. 서울 인근의 수목장 비용 2,000만 원의 십분의 일 정도이니 얼마나 싼가! 또 안치는 영구적이지 않은가!    
 
셋째, 지금 시골은 어디서나 돈을 주고도 벌초(伐草)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잔디장의 경우에는 벌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얼마나 큰 이점인가!
 
문중 장학재단 설립하여 ‘문중이라는 혈연공동체’를 존속시켜야
 
내가 문중 선산에 잔디장 조성을 제안한 데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다. 나는 문중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문중 재산을 영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문중 재산은 몇몇 사람의 불순한 생각 때문에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많은 문중이 그런 경험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잔디장 조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당신 문중이 계속  존속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존속하리라”고 대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문중이라는 훌륭한 혈연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장지(葬地)를 중심으로 한 문중 장학재단 설립이라고 믿는다.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문중 재산을 재단에 묶어 두면 문중 재산이 사라질 위험이 없다. 특히 문중 돈은 후진 양성에 보람 있게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에서 한국만이 갖고 있는 ‘문중이라는 혈연공동체’는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제 완화, 인센티브 제공, 가족묘 석재 장식 금지’를 정부에 제안한다
 
정부에 제안한다. 첫째, 규제를 완화하고 둘째, 문중 선산을 잔디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셋째, 외부를 돌로 장식하는 가족묘, 공동묘는 막아야 한다.
 
첫째, 규제 완화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적어도 11개 이상의 규제가 포함되어 있다.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여 규제를 해석할 방법이 없자 나는 2016년 9월 청와대로 민원을 제기했다. 한 달 후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자연장 조성에서는 거리 제한이 없고, (상수원 관련) 수도법, (침수 관련) 하천법, (절대농지 관련) 농지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연장 조성은 가능하다는 회신이었다. 이 같은 내용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었으면 한다. 
 
둘째, 문중 선산을 잔디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에 실시했다가 1년 만에 폐지한 제도를 언급한다. 보건복지부는 납골당 중심의 새로운 장묘문화 확산을 위해 2000년에 ‘장례식장·사설납골시설 설치 지원’을 위해 재정특별회계자금 60억 원을 확보하여 그 중 25억 원을 사설납골 시설자금으로 지원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정부가 납골당과 납골묘의 건축비 또는 설치비를 전체 비용의 70% 범위 내에서 지원하기로 하고, 납골당은 개소 당 5억 원, 납골묘는 개소 당 150만 원까지 지원했다. 지원조건은 변동금리 연 7.75% 적용, 5년 거치 7년 분할 상환이었다. 그런데 이 정책은 시행 1년 만에 중단되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당시는 봉안당(납골당은 봉안당으로 바뀌었음)이 대안이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도입되었을 것이다. 어떻든 잔디장이 장사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 도입은 바람직하다.
 
셋째, 한국은 지금 묘 장수들이 천년만년 가도 부서지지 않을 석재로 장식한 가족묘, 공동묘 등을 열심히 팔고 있다. 한 세대만 지나도 이런 묘들은 산속에 방치될 가능성이 많다. 한 지인의 가족묘 이야기다. 그는 죽기 전 가족묘를 마련했다. 외부는 완전히 돌로 장식되었다. 그의 가족은 대부분 미국에 살고 있고, 미망인과 딸만이 한국에 살고 있다. 미망인과 딸마저 죽고 나면 이 가족묘는 방치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돌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유골 용기는 분해되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유골 용기는 곧 분해되지만 유골을 장식한 석재는 천년만년 가도 분해되지 않는다. 규제는 이런 곳에 머물러야 한다.
 
넷째,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자체 보건복지 관련 공무원들은 하루쯤 전국의 산으로 출장을 나가 돌로 장식된 분묘를 살펴보기를 권한다. 
 
나는 ‘문중 잔디장’ 확산을 위해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나는 ‘문중 잔디장’ 확산을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장사문화 개선은 우리 세대의 빅 이슈이고, 개선의 대안은 잔디장, 특히 ‘문중 잔디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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