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흑역사’, 인터넷에서 지울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6월부터 ‘한국판 잊힐 권리’ 가동
  • 김승열 변호사(대한특허변호사협회 회장)
  • 업데이트 2016-05-23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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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잊힐 권리'가 6월부터 발동한다. 사진은 2015년 5월 19일‘조선 디베이트(debate)’에서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왼쪽) 옥스퍼드대 교수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보를 지지한 킴 타이페일 스틸웰연구센터 창립자 겸 총괄이사.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잊힐 권리’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장 6월부터 잊히고 싶은 사안에, 누구나 잊힐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사실여부가 뒤집어진, 그러나 한번 낙인찍힌 잘못된 정보의 상처에서 헤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잊힐 권리란 무엇인가? 통일된 개념정의는 없다. 2014년 유럽최고사법재판소에서 내린 판결이 시금석이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아니한 정보의 경우, 원본 정보자료는 그대로 유지하되, 검색엔진의 링크에서 삭제할 것으로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판시했다. 즉 해당정보가 신문기사라면 이미 발행됐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검색엔진 상의 링크에서 이를 배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원래 정보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아니다. 잊힐 권리는, 헌법상의 프라이버시 권리이자 ‘빅브라더’인 검색엔진에 대응한 디지털 소비자의 권리의 일종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다. 정보통신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하나만 없앤다고 다 없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검색창(검색엔진)에 등재된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닌 공공의 정보로 볼 수 있다. 그런 공공성격이 강한 정보를 해당게시물의 등재자가 삭제 요청한다고 해서 그대로 삭제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제3자가 올린 정보가 적법하게 표현된 것이라면 별도의 법상 삭제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면 이를 삭제하기 어렵다.
 
2014년 유럽최고사법재판소의 판례로 다시 되돌아가보자. A씨는 잘나가는 CEO다. 한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으나 경영혁신으로 극복했다. 부채도 깨끗이 털었다.
그러나 검색엔진 상에선 여전히 ‘부도’ 혹은 ‘경매위기’ 관련 기사가 노출돼 회사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그래서 사법재판소에 소(訴)를 내며‘신문기사 삭제와 검색엔진인 구글에서의 링크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법재판소는 고민 끝에 신문기사는 이미 발행된 이상 삭제할 수 없으나 기사 링크는 삭제하라고 최종 판시했다. 이 판결의 의미는 전 세계적으로 잊힐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후 각국에서 찬반논란이 뜨거웠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로서의 잊힐 권리와 대중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검열 가능성 등등 많은 법적 논쟁을 불러왔다.
 
검색엔진 IT 회사 본사가 있는 미국은 ‘잊을 권리’에 소극적
 
역사적으로 잊힐 권리 개념은 사생활 보호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프라이버시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미국은 표현의 자유에 좀 더 치중하는 사회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EU에서는 잊힐 권리에 적극적이지만 반면 미국은 신중하다. 이러한 차이는 검색엔진을 지닌 다수의 IT 회사의 본사가 미국에 소재한다는 측면도 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의 경우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반면, 중국은 이를 부정하는 판결이 신문지상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인터넷 업계도 신중하긴 마찬가지다. 잊힐 권리를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기술상의 어려움이 많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막대한 경제적인 비용도 들어 딜레마다.
학자와 일반인도 이견이 많아 합리적인 균형을 이루기란 지난해 보인다. 정서적으로는 잊힐 권리를 인정하고자 하는 분위기이나, 이성적 또는 법리 해석상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 답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잊힐 권리에 대한 좀 더 명쾌하고 정확한 개념설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디지털 소비자의 ‘소비자 권리’ 일환으로, 일정한 경우 링크를 삭제하는 수준의 삭제요청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물론 합리적인 기준은 손질이 필요한데, 사법부에서 좀 더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검색엔진 등의 인터넷 산업의 발전에 장애 내지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잊히는’ 범위를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최종 판단은 개별 법원의 판결에 맡겨야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은 자기 게시물에 한정돼 실효성 여부에 의문이 간다. 제3자가 등재한 게시물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경우 링크삭제 권한에 대한 가이드라인 언급이 전혀 없어 아쉽다.
구글 등 검색엔진의 자율적인 운용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적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 불복 절차도 소비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알 권리 그리고 검열 가능성 등등을 감안해 적정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법원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중시하되 최종 판단은 개별 법원의 판결에 따라야 한다.
또 삭제 범위와 관련하여서는 EU 최고사법재판소의 판시와 같이, 원칙적으로 링크자체만 삭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명예훼손 우려나, 저작권 침해 등의 불법적인 경우는 단지 링크만이 아니라 원본이나, 댓글, 복제 글까지 범위를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따져야할 사안은 많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시행돼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관련 업계 내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좀 더 취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또한 삭제한 게시물을 어디다 보관해야 하는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경우 자기 게시물에 한정되기 때문에 제3자의 게시물과는 달리 잊힐 권리의 악용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제3자의 게시물에 대한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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