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자취(跡)를 찾아서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2-12-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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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됐다. 지난 1일 대관령 영하 10도, 서울도 영하 5도로 기온이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그래도 길은 떠나야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꽤나 매서웠다. 인천 공항에 6시 쯤 도착해서 7시 반 후쿠오카(福岡)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 마자 졸음이 엄습했다. 빵 하나, 커피 한 잔- 탑승 시간 55분 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내렸다. 참으로 가까운 이웃나라다. 후쿠오카의 기온은 영상 10도였다. 필자는 이미 서울에서 작별했던 가을과 또 한 번 포옹(抱擁)했다.

한결같은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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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좌)씨와 오츠보(우)씨
입국 수속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여행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72)'씨와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65)'씨가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중 나와 있었다. 강산(江山)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는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백발이 성성했다.

"오랜 만입니다."

불과 4개월인데도 몇 년 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굳은 악수를 나눴다. 후쿠오카의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바람도 시원했고 하늘도 맑았으며, 가로수의 단풍도 아름다웠다. 거리의 현수막이 필자를 환영하는 듯 펄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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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의 도시-하카다
'설렘의 도시, 하카다(博多)'

현수막에 쓰여 있는 글귀가 필자의 마음과 흡사했다. 아무리 자주와도 항상 설레기 때문이다.

시내로 들어서자 '하카다만(博多灣)'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가로수에서 나뭇잎(落葉)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청소부들은 열심히 쓸고, 나뭇잎은 또 떨어지고..... 결론이 나지 않는 싸움(?)을 계속했다. 이러한 싸움으로 인해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다. 사람의 손이 아주 많이 가는 것이다.


니시진(西新)의 구치소를 향해

필자는 '오츠보(大坪)'씨, '와타나베(渡邊)'씨와 함께 '니시진(西新)'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와타나베'씨가 필자에게 물었다.

"어렸을 적부터 제가 후쿠오카 형무소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아직도 형무소의 높은 담벼락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 형무소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1945년의 일입니다. 27세의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한 윤동주 시인(詩人)이 있었습니다. 그의 자취(跡)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러한 아픔이 있었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 형무소는 쇼와(昭和) 40년. 그러니까 1965년에 교외로 이전을 했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단지, 새로 지어진 구치소가 있을 따름입니다."

필자의 설명을 들은 '와타나베'씨의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후쿠오카 구치소를 향해 달렸다. '니시진(西新) 사와라구(早良區) 모모치(百道)'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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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 신축된 구치소
"이 일대가 형무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형무소 터는 너무나 넓었다. 버스 터미널은 물론 아파트, 오피스 빌딩 등 신도시 하나가 생겨난 것이다.

'이토록 넓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죄수들이 갇혀 있었을까.'

구치소(拘置所) 입구 골목에 차를 세우고 정문으로 갔다. 후쿠오카 구치소 간판 앞에서 셔터를 누르자 경비원이 나왔다. 무서운 일본 순사가 나온 것이다.

"여기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네- 서울에서 취재차 왔습니다."

"아무튼,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이미 찍었는데요.)

여기에서 후쿠오카 형무소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후쿠오카 형무소가 하카다(須崎浜)에 세워진 것은 메이지(明治) 4년(1871년)이다. 그 때의 명칭은 도형장(徒刑場). 이름만으로도 공포감이 든다. 이 도형장은 1881년 후쿠오카 감옥소(監獄所)로 명칭이 바뀌었고, 1903년 후쿠오카 감옥(監獄)이 되었다. 그리고, 1916년 이 감옥은 니시진(西新)으로 옮겼다. 6년 후인 1922년(大正 11년) 감옥은 다시 이름을 바꿔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가 되었다. 현재의 후쿠오카 구치소(福岡拘置所)는 1965년 후쿠오카 형무소가 옮겨간 후에 그 자리의 일부에 들어섰던 것이다.

'六疊房은 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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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가 사라졌지만, 우리는 다시 대로(大路)로 나와 차를 세워놓고, 형무소 터를 직접 걸어 보기로 했다. 필자는 겉모양은 달라졌지만, '땅 속에 스며있는 윤동주 선생의 체취(體臭)라도 남아 있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1942년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지은 <쉽게 씌어진 詩>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줄 알면서도
 한 줄 詩를 적어볼까

 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敎授의 講義를 들으려간다

 (......)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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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동주 시인
이 시(詩)는 윤동주가 일본 '릿교(立敎)' 대학(1942년)에 다니던 시절에 쓴 것으로 그의 마지막 5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쉽게 씌어진 詩>를 지은 다음 해(年)인 1943년.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의해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됐고, 1944년 후쿠오카형무소에 투옥됐다(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그의 부친과 아저씨 윤영춘의 증언을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빌어 옮겨 본다.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기는 동주(東柱)가 사망한 지 10일 후였다.....그 길로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주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일본 청년 간수(看守) 한 사람이 따라와서 우리에게 하는 말. "아하, 동주가 죽었어요. 참 얌전한 사람이....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悲鳴) 소리를 높게 지르면서 운명했지요."하며 동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히라누마 도주(平紹東柱), 윤동주!'

그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외마디 소리는 무엇일까. 그가 일본 유학을 결심한 후 창씨개명 서류를 제출하고 썼던 <참회록>을 축약해서 외쳤을까.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시비(詩碑)라도 세우자'

"이곳이 그 당시 후쿠오카 구치소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와타나베(渡邊)'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후쿠오카 경찰서가 서 있었고, 그 옆에 공원이 붙어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키 큰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노란 이파리들이 나비처럼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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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불상
'와타나베(渡邊)'씨와 필자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선(線)을 그으며 걸음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묘원으로 갔다. 묘원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기나긴 세월과 갖가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묘원의 나무들도 모진 세월에 지쳤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와타나베(渡邊)'씨가 나이든 불상(佛像) 앞에서 합장을 하면서 말했다.

"이 곳은 형무소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장소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명복도 아마 여기에서 빌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랬다면, 그나마 고마운 일이지요."

윤동주의 자취(跡)는 어디에도 없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필자가 "언젠가 이곳에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정성을 모아 윤동주 시비(詩碑)라도 세우자"고 했더니, 두 사람 모두 찬성했다.

일본의 과거를 들춰내고, 한국 시인(詩人)의 아픔을 위로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해준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씨와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씨께 지면(紙面)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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