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사마(御父様)! 오토사마(御父様)!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2-11-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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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떠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찬바람은 매몰차게 가을을 내몬다.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도 파르르 추워 보인다. 세월은 왜 이렇게 빠른지....

'혼자라는 것'.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터진다. 연말이면 이러한 마음이 더욱 아프게 일렁인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부모가 없고, 가족이 없는 고아(孤兒)들을 돌보며 생을 마친 사람이 있다.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본인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씨-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그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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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 가이치' 씨의 생전의 모습
필자 역시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씨에 대해서 문외한(門外漢)이었다. 마포구 합정동(合井洞) 일대에서 수 십 년 살았음에도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원에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씨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 조차도 최근에 알았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의 업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던 것이다. 일요일 오후 필자는 그의 묘소를 찾기 위해 양화대교를 건넜다.

'참으로 바쁜 서울 사람들-'

휴일인데도 다리 위는 주차장을 능가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하늘의 먹구름이 금방 비를 몰고 올 태세로 숨 가쁘게 다가왔다. 덩달아 한강물도 검은 파도를 일으키며 출렁거렸다.

은인의 나라, 조선을 사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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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드는 '소다 가이치' 선생의 묘소


양화진(楊花津) 묘원은 조선 말 고종 때부터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언론계·교육계·종교계의 외국인 인사 500여 명이 묻혀 있다. 이 묘원은 1890년 7월 제중원의 의사로 일했던 'J. W. 헤론'이 최초로 묻히면서부터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복음을 전파했던 외국인 선교사(일부 가족 포함)들이 안장돼 있는 곳으로, 베델·헐버트·아펜젤러·언더우드 등의 묘소도 있다. 고인들의 비석에는 이방인이면서도 조선 사람 못지않게 조선을 사랑했던 그들의 행적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500여 명의 외국인 중에 유일한 일본인의 묘소가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씨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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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기념비(碑)
그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힌 이유는 무엇일까? 비문(碑文)을 통해 그 사연을 알아본다.

<소다(曾田) 선생은 일본 사람으로 한국인에게 일생을 바쳤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나타냄이라. 1867년 10월 20일 일본국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출생하다. 1913년 서울에서 가마쿠라보육원(鎌倉保育院)을 창설하매, 따뜻한 품에 자라난 고아(孤兒)가 수천이리라. 1919년 독립운동 시에는 구속된 청년의 구호에 진력(盡力)하고, 그 후 80세까지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 종전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에 대한 국민적 참회(懺悔)를 순회 역설하다. 95세 5월.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가마쿠라보육원(鎌倉保育院)자리에 있는 '永樂보린원'에서 1962년 3월 28일 장서(長逝)하니 향년(享年) 96세라. 동년(同年) 4월 2일 한국 사회단체 연합으로 비(碑)를 세우노라. 1950년 1월. 부인 '다키코' 여사도 서울에서 서거(逝去)하다.>

선생의 묘소를 알리는 하얀 안내판에도 '소다(曾田)' 선생의 업적과 함께 그가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상세히 적혀 있다.

<그의 젊은 시절은 방황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소다(曾田)'가 (대만에서) 술에 만취된 채 노상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이 때 무명의 한국사람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05년 '소다(曾田)'는 은인의 나라인 한국에 은혜를 갚으리라 결심하고, 한국에 와 서울 YMCA 일본어 선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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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 선생의 업적이 쓰여 있는 안내판
'성(性)도 이름도 모르는 조선 사람의 은혜를 갚기 위해 조선을 사랑하리라.'

참으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름 모를 한국 사람을 위해 그 나라에 헌신한다'는 마음가짐. 범인(凡人)들이 감히 범접(犯接)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의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사실대로 쓰여 있다.

<다쿠미(巧) 씨의 장례식에서 성경을 읽은 경성 감리교회의 전도사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는 '조선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1867년에 일본의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태어나 1905년 조선으로 건너갔다. 1899년 대만에 있을 때 길가에 쓰러져 있던 그를 조선인이 살려줘서 은인(恩人)의 모국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한국 고아의 아버지(父)

선생의 죽음에 대해 많은 조선인들이 슬퍼했다. 당시 언론들도 그의 죽음을 크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962년 3월 29일자 기사를 이렇게 썼다.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28일 상오 서울 용산구 후암동 370번지 영락(永樂) 보린원에서 별세했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기사에서 그의 죽음과 고아(孤兒) 출신 조문객의 기사를 상세하게 다뤘다.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95)' 옹(翁)이 별세한 이튿날인 29일 상오 그가 잠들어 있는 용산구 후암동 영락 보린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조객들이 드문드문 찾아들고 있다."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 잡은 소다 옹(翁)의 빈소에는 박정희 의장 및 재건국민운동 본부장 유달영 씨의 조화에 쌓여있고, 관은 새하얀 조포(기독교 의식)가 덮여있다."

"이날 상오 10시 이곳 고아 출신의 홍순자(34·연희동 543)씨는 3남 이상모(2)군을 업은 채 빈소에 달려와 통곡했다. '오토사마(아버님의 일본어), 오토사마!..'를 부르며 그칠 줄 모르는 "단장의 통곡"을 했다. 홍(洪)씨는 '소다' 옹(翁)으로부터 생전에 무척 사랑을 받았는데, 옹(翁)의 국경을 넘은 고귀한 박애정신에 추모의 흐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의 장례식은 한국 사회단체연합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정부· 사회단체 관계자 및 시민 2000여명이 참가했다. 그 당시 언론들은 "국경과 민족의 벽을 넘은 진실의 사랑과 봉사자"라고 대서특필했다.

국교 정상화 전 문화훈장 수여


정부는 1962년 '소다(曾田)' 씨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기 전의 일이라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는 생전에 고아들을 돕기 위해 식품이나 의류가 동이 나면 헌옷이나 식료품을 모집하러 다녔다. 지각없는 일부 인사들은 그에 대해 '국가의 수치(羞恥)다'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고아들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는 일에만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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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원에 서있는 고목
"우리에게 무언가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삶을 향해 바르르 떨고 있는 우리를 보소서


 이제 우리는 일어서고 싶습니다.


 한 줄기 빛살처럼, 한 곡의 노래처럼."


릴케의 시(詩) <마리아에게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대로 '소다' 선생은 아이들을 일어서게 했다. '한 줄기 빛살처럼, 한 곡의 노래처럼.' 그래서 하늘이 그에게 96세의 수(壽)를 누리게 했을 듯싶다.
어느새 어둠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필자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善)한 일을 하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선생의 묘지에서 발길을 돌렸다. 묘원의 외로운 고목에서 떨어진 노란 낙엽(落葉) 하나가 필자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는 영원한 한국 고아의 아버지이자 오토사마(御父樣)임에 변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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