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진급에 관심이 없었고, 단지 양묘(養苗) 그 자체를 좋아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임업기수였던 그의 꿈은 오로지 묘목을 기르고, 황폐된 조선의 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든다면,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해왔던 한국 잎갈 나무의 양묘(養苗)도 그의 노력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는 임업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는 등 임업 시험조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한국 잣나무의 양묘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시켰으며, 민둥산 조림에 싸리나무가 적합하다는 사실 중 '참싸리가 가장 적격이다'는 것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가 얻어낸 결론은 단 한 가지- '산과 숲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과 숲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
| 망우리 공원의 단풍 |
<민둥산의 특징은 잔디가 없고, 항상 벌거벗고 있다. 표토가 안정되지 않아 붕괴되기 쉽다. 땅이 얕아서 적당한 습기가 있다. 배수가 잘된다.....그렇다면 싸리나무나 오리나무 종류를 파종하여 조림하거나, 대나무 숲을 조성하거나 고구마나 땅콩을 재배하는 방법이 있다. 벌써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연구해야 할 과제가 더 많이 남아있다.>
'다쿠미(巧)'는 많은 사람들이 벌거벗은 민둥산을 바라보면서 한탄하던 것과는 달리 그 곳을 푸르게 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숲을 빼앗긴 조선에 가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운명처럼 진하게 표출되는 대목이다.
'다쿠미(巧)'가 하는 일 중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또 있었다. 다름 아닌 전국 순회강연이다. 그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2월부터 3월에 걸쳐 전국을 돌며 양묘법(養苗法)에 대해 강연을 했다. 2월 17일 부산, 3월 12일 충북 청주에서 강연을 하고 3월 15일 경성(서울)으로 돌아왔을 때 감기에 걸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3월 18일 감리교 서부 연회에 참석했고, 26일 전국 각지에서 찍은 사전전시회를 열었다. 다음 날인 27일 '다쿠미(巧)'는 급성 폐렴으로 쓰러졌다. 4월 1일 오전 가족들은 '그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전보를 쳤다. 1931년 4월 2일 밤. 그는 조선 땅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고 말았다. 그의 나이 겨우 40세. 안타까운 나이다.
조선의 흙이 되다
| 아사카와 다쿠미의 이력을 새긴 비석 |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에 실려 있는 글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다시금 그려본다.
<'다쿠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이별을 고(告)하러 몰려들었다. 그의 시신을 보고 통곡한 조선인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조선인과 일본인의 반목이 심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다쿠미'는 자신이 사랑한 조선옷을 입은 채 조선인 공동묘지에 묻혔다.>
영화로 탄생한 다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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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의 사람-영화 포스터 |
'아사카와 다쿠미'는 2012년 6월 일본에서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세상을 뜬지 80년 만의 일이다. 원작은 '에미야 다카유키(江宮隆之)'의 소설 <백자의 사람>. 영화 제목은 <길-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이다. 한일합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지난 7월 한국에서도 개봉됐다. 감독은 '다카하시 반메이(高橋伴明)'가 맡았고, '아사카와 다쿠미' 역에 일본 배우 '요시자와 히사시'가, 한국인 친구 '이청림' 역에 '배수빈'이 맡았다.
스토리의 중심은 조선의 산림녹화에 혼신을 다하며 일본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조선의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의 조선인 친구(이청림)와 국경을 초월한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각광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홍보(PR) 부족인 듯싶다. 개봉관도 몇 개 되지 않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아사카와 다쿠미'는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조선에 건너와 18년 동안 총독부 산림과 직원으로 살았다. 그는 자연을 사랑함과 동시에 조선의 예술을 사랑했다. 돈이 되는 골동품(骨董品)을 모으는 지각없는 수집가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 애호가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박봉으로 힘겹게 살면서도 어려운 한국인들을 도왔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조차 벙긋하지 않았다.
한일관계는 진정한 마음이 있어야
'다쿠미' 씨의 묘지는 생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흐름만 달라졌을 뿐 변함이 없는 듯했다.
'그는 참으로 행복하리라.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한국의 산들이 이토록 큰 숲을 이루고 있으니...'
필자는 홀로 되뇌며 발길을 돌렸다. 그가 잠들어 있는 묘소의 주변에도 떡갈나무, 소나무 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한강이 보였다.
| 망우리 공원을 걷는 쓸쓸한 노인의 모습 |
떡갈나무 낙엽들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공중으로 치솟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망우리(忘憂里) 공원에서 걱정을 털어내지 못했을까. 낙엽 떨어지는 산길을 내려가는 어깨가 축 처진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의 모습이 필자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먼 훗날, 저 노인의 묘지는 누가 찾아 줄 것인가!'
석양의 붉은 노을이 나뭇잎들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였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