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다(博多)는 예로부터 대륙을 상대로 무역을 전개했던 항구 도시이다. 하카다(博多)라는 지명도 '바다를 건너온 외래품이 많은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889년. 사무라이(侍) 마을인 후쿠오카(福岡)와 상인(商人)의 마을인 하카다(博多)가 합병되어 오늘의 후쿠오카(福岡)가 탄생하였지만, 신칸센의 종착역이기도 한 하카다(博多)역은 옛 명성을 고수하려는 듯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하카다(博多)역은 지하철, 택시, 버스 등 교통수단이 편리하고, 주변에도 호텔, 쇼핑센타, 서점 등이 즐비해서 이용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필자는 하카다 역 주변의 호텔에 자주 머문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27일 오전. 필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카다(博多)역 앞 택시 정류장에서 순서대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소형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야쿠인(藥院)이라는 곳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운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20분이 채 안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즈니스 파트너인 '오자키 도모키(尾崎朝樹, 63세)' 사장과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마치고 우동 집에서 점심을 했다. 일본의 부동산 경기도 심각하다는 오자키(尾崎)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인들의 한국 투자가 소문과는 달리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중 필자가 항상 들고 다니던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오자키(尾崎)씨의 사무실에 놓고 온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갔지만, 카메라가 없었다. 그렇다면 택시에 놓고 내린 것이다.
<우리는 매일 경쟁과 승리를 좇아 질주합니다. 지나 간 길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분실물이 떨어져 있습니다. 매일 무엇을 떨어뜨리고 다니는 것일까요?>
중국 탄줘잉의 '일생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원본: 99가지)'라는 책의 머리말에 쓰여 있는 글이다. 그의 지적처럼 필자는 분실물을 떨어뜨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택시의 번호는커녕 회사의 이름도, 운전사의 이름도 모른다. 다만, 색깔이 하얀색이라는 것뿐이다. 하얀 색의 택시가 한 두 대인가.
택시 조합에 신고...믿음으로 기다려
하카다(博多)역으로 돌아와 택시 정류소를 찾았다. 안내원은 이곳에 들어오는 택시는 대부분 택시 조합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조합에 전화를 걸고, 파출소에도 신고하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필자는 바로 택시 조합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고,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67세)'씨와 함께 하카다역 파출소에도 신고를 했다.
결국, 필자의 잘못으로 작은 소동이 일었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다. 택시 회사의 이름만 알고 있었어도 쉽게 풀리는데, 일이 참으로 난처하게 되어 버렸다. 더구나 전날, 필자를 위해 손수 차를 몰면서 시모노세키(下關)까지 안내하여 열심히 찍은 사진들이 고스란히 사라져버렸으니, 필자보다도 오츠보(大坪)씨가 더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필자는 '일본인의 친절함과 정직함'을 믿었다. 수 년 전 나고야(名古屋)에서 선글라스를 택시에 놓고 내린 적이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호주머니에서 택시회사의 메모지를 발견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30분 만에 확인이 되었다. 그 후 선글라스를 작은 상자에 넣어 스치로풀을 가득 채워서 우편으로 보내준 정성에 감동했던 일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믿자. 그리고, 기다리자.'
앞에서 언급한 중국의 탄줘잉은 '일생에 해야 할 49가지' 중 열세 번째 할 일이 '사람 믿어보기' 라고 했다. 사람을 믿으면 삶이 행복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는 공기와 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신뢰가 필요합니다. 남을 믿지 않는다면 진심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고 싶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합니다.>
믿고 기다리자고 했지만, 시시각각 확인해도 '분실물 센터에 접수된 카메라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잠시 이러한 생각도 들었다. '다음 손님이 슬쩍 했을까?' '운전사가 집으로 가지고 갔을까?' '카메라가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하카다(博多)를 떠나는 날 아침. 택시 정류장에 다시 가서 두리번거렸다. 혹시 택시 운전사가 대기 하다가 필자를 보고 뛰어 올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바람이었다. 전날 수차례 얘기를 나누던 안내원이 필자를 발견하고 '아- 카메라는 찾으셨나요?'했다. 필자가 고개를 흔들자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결국 뒷일은 오츠보(大坪)씨에게 부탁하고 나고야(名古屋)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달 만에 들려온 카메라 소식
세월이 약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카메라는 점점 필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자주 전화를 하던 오츠보(大坪)씨와의 통화에서도 카메라 문제는 대화의 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지난 주말 오츠보(大坪)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메라를 잃어버린 지 딱 한 달 만의 일이다.
"카메라를 찾을 것 같습니다!!"
오츠보(大坪)씨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택시 조합과 파출소에 하루건너 전화를 하던 중, 하카다(博多)개인택시 조합이 일반택시 조합과 별도로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던 것이다. 그는 개인택시 조합에 여러 차례의 전화 끝에 야마구치(山口)라는 한 여성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분실물 카메라가 하나 있다고 했다. 결국, 필자의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오츠보(大坪)씨는 당장 집을 나서서 조합으로 뛰어 갔다. 그날 필자와 오츠보(大坪)씨의 전화 통화는 십분 간격으로 이어졌다. 분실물 카메라는 필자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그의 말에는 삶의 철학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의 카메라를 통해서 인간의 선의(善意)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람을 믿는 장(張)씨의 마음이 카메라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인 택시조합의 야마구치(山口)씨와 후쿠이(福井)씨라는 운전사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
필자도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먼저 야마구치(山口)씨와 통화해서 감사의 뜻을 표 했다. 후쿠이(福井)씨가 운전 중이라서 전화를 안 받는 것 같아서, 퇴근 시간 후에 다시 통화를 시도 했다. 전화벨이 울리자 필자의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까?
"카메라의 주인입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니, 그런 일로 국제전화까지 하시다니요? 손님이 카메라를 놓고 내리신 즉시 조합에 무전으로 신고를 했습니다만, 한 달이 다 되도록 찾아가시지 않아서 내심 걱정했습니다. 손님이 내리실 때 제대로 확인을 못한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카메라가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대단히 기쁩니다."
"제가 후쿠오카(福岡)에 자주 갑니다. 다음에 가면 연락을 드리고 감사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는 '후쿠이 가츠미(福井一三, 65세)'라고 했다. '카메라를 찾아가지 않아서 본인이 더 걱정을 했다'는 따뜻한 그의 마음이 필자의 가슴에 그대로 전해졌다.
카메라를 찾았다는 소식은 나고야(名古屋)의 지인들에게도 삽시간에 알려졌다. 그들은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일본인의 체면을 세워준 운전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조바심이 더 컸다고 했다. 습득(拾得)한 물건을 중고 시장에 팔아버리는 일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필자의 카메라는 여러 사람의 입과 손을 거쳐서 현해탄을 건너 필자의 손에 돌아오게 되었다. 아끼던 물건을 찾는 것도 기쁨이지만, 카메라 속에 담겨 있는 시모노세키(下關)의 모습들을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달 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기쁨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카메라를 추적해준 오츠보(大坪)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