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桜) 이야기(1)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9-03-3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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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자케들고 기념촬영[1]. 필자(좌)와 오츠보(우)씨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날아 한 달의 세월을 건너뛰었다. 후쿠오카(福岡)거리는 봄 향기가 가득했고, 사람들의 옷매무새나 발걸음도 봄바람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저녁 약속을 위해 호텔로 돌아가던 중 하카다(博多)역 앞에서 우연히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 67세/ 전 언론인)'씨를 만났다. 그는 필자와 20년 지기이고, 필자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아니? 반갑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시간이 되면 꽃구경 갑시다."
"꽃구경이라니요?"

일본 사람들은 봄이 되면 '꽃구경'을 하느라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꽃구경을 일본말로는 '하나미(花見)'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쿠라(桜)를 보러간다'는 것이다. '봄의 꽃은 바로 사쿠라(桜)'로 통할 만큼 일본 국민들은 나라의 꽃인 국화(菊花)보다도 사쿠라(桜)를 좋아한다.
사쿠라(桜)는 일본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로써, 3월 말에서 4월 초에 일제히 피어 일주일을 못 넘기는 짧은 기간에 지는 연유로 일본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왔다. 그래서, 사쿠라(桜)를 사무라이(侍)로 인식하기도 한다. '일제히 피었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사무라이의 정신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그토록 짧은 개화기간과 아름다움 등은 '덧없는 인생에 비유된다'는 점에서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도 빈번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오미겐 헤리겔(Eugen Herrigel)이 일본 도호쿠 제국대학에서 일본의 선(禪)사상을 연구한 후 쓴 '활쏘기 기술에서의 선(Zen in der kunst des Bogenschiepens)'이라는 책에도 사무라이(侍)와 사쿠라(桜)의 연상관계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사무라이(侍)의 정서가 그 가장 순수한 상징으로서 연약한 사쿠라(桜)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쿠라(桜)의 꽃잎들이 아침 햇살에 가지에서 떨어져 팔랑거리며 땅 위로 날리듯이, 두려움이 없는 자는 소리 없이 그리고, 내면의 동요 없이 자신의 현 존재로부터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흐드러진 후쿠오카 성터의 사쿠라

후쿠오카 성터를 덮고 있는 사쿠라

후쿠오카에서 사쿠라(桜)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곳은 후쿠오카의 성(城)터와 '니시고엔(西公園)'이다. 필자와 오츠보(大坪)씨는 하카다(博多) 역에서 가까운 후쿠오카 성(城)으로 결정하고 지하철을 탔다. 후쿠오카 성은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가 1601년에서 부터 1607년에 걸쳐서 축성했다. 성(城)의 이름은 구로다(黑田)의 연고지인 '비젠노쿠니(備前國), 지금의 오카야마(岡山)현 오쿠군후쿠오카(邑久郡福岡)에서 '후쿠오카'를 따왔다고 한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1912) 이후부터 1945년까지는 육군의 주둔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건조물의 대부분은 해체되거나 매각되었으나, 그 흔적은 보존(1957년 사적지로 지정)되고 있다.

금요일 오후인지라 후쿠오카의 성(城)터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 지하철이 붐볐다. 지하철 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신천지가 펼쳐졌다. 만발한 사쿠라(桜)가 성터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터의 담벼락을 따라 사쿠라(桜)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일본인들은 해마다 하나미(花見) 기간이 돌아오면, 가족, 친구, 회사를 비롯해 여러 그룹에서 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생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리를 잡는 일은 조직의 말단 직원의 몫이다.

요자쿠라(夜桜)와 '본보리(ぼんぼり)'

본보리가 매달린 사쿠라 나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봄이 오면 각 지역 별로 사쿠라(桜)가 피리라 예상되는 날을  발표한다. 개화 예상일과 개화 지역을 선으로 이은 것을 '사쿠라 전선'이라 부르며, 일본의 매스컴들이 사쿠라(桜)의 개화시기를 수시로 보도한다. 이 전선은 400여종의 일본 사쿠라(桜) 중 80%를 차지하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의 개화 예상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다. 대체로 사쿠라(桜)의 개화시기가 회사의 경영실적 발표, 인사이동 또는 개학의 일정과 일치기도 한다.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맞지는 않으나,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밤에 하나미(花見)를 하는 경우에는 '요자쿠라(夜桜)를 본다'고 하고, 사쿠라(桜)를 구경하면서 마시는 술을 '사쿠라자케(桜酒)'라고 한다. 일본의 일부 명소에서는 '요자쿠라(夜桜)'를 위해 '본보리(ぼんぼり)'라 불리는 초롱 등(燈)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후쿠오카 성터에도 파란색과 붉은색의 '본보리(ぼんぼり)가 줄에 매달려 봄바람에 흔들리면서 하나미(花見)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李外秀)가 '감성사전'에 썼던 '꽃은 해탈의 등불'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꽃은 초목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위해 신(神)에게 드러내 보이는 마음의 참모습이다. 눈부신 찬양이다. 향기로운 노래다. 피울음 끝에 벙그는 해탈의 등불이다.>

눈부시던 봄 태양이 서쪽 하늘로 기울자 바람이 제법 서늘해 졌다. 오츠보(大坪)씨가 눈치 빠르게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사케(酒) 두 병을 사왔다. 컵까지 붙어 있는 깜찍한 술병이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쿠라가 가장 흐드러진 나무 밑을 찾아서 건배했다.
"아- 맛이 있어요." 오츠보(大坪)씨가 우리말로 크게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필자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셔터를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어느새 불빛이 들어온 '본보리(ぼんぼり)'가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녀는 후쿠오카현 미술협회 사진부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하라쿠치 아스코(原口敦子, 63세)'라는 사람이었다.
하라쿠치(原口)씨는 "사쿠라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매일 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없겠죠? 오직 신(神)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하면서, "저녁노을의 사쿠라(桜)를 찍으러 간다"며 총총걸음으로 서쪽 성터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리 보아도 63세의 할머니로 보이지 않았다.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사쿠라(桜) 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해가 서녘으로 사라졌다.

'사쿠라(桜)도 단풍이 든다'

밤 사쿠라를 즐기는 후쿠오카 사람들

'본보리(ぼんぼり)'의 불빛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모여 들었고, 나무아래에서는 '사쿠라자케(桜酒)'의 냄새가 진동(振動)했다. 사람들은 사쿠라(桜) 향기에, 술 향기에 취해갔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자쿠라(夜桜)'의 아름다움은 불빛을 받으며 더욱 화려해졌다. 화려함이 끝나면 바로 잊혀 질 것이다. 후쿠오카(福岡) 출신 작가 '우타노 쇼고(歌野晶午, 1961- )'의 <사쿠라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소설에 나오는 '사쿠라' 얘기를 흘려보낼 수 없다.
"그래. 꽃이 떨어진 사쿠라(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기껏해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사쿠라(桜)는 살아있어. 사람들이 사쿠라(桜)의 단풍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
사람들은 사쿠라(桜)의 화려한 면만 즐길 뿐, '꽃이 지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일침을 가한 말이다. 어찌 사쿠라(桜) 뿐이랴. 화려한 자리에 있는 권력자에게만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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