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해협에서 격랑이 일고 있다. 곧 전쟁이라도 벌어질 것 같다.
지난 해 3월,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 가결 때도 비교적 발언을 자제해오던 일본이 독도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데는 분명 속셈이 있으리라고 본다. 아무튼,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또 일본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일반 기업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왠지 불안하다.
그렇다면,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문화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뮤얼 헌팅턴은 “사회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재벌 회장 부인이 전세기를 타고 온 까닭은?
지난해 가을, 일본의 한 재벌 회장과 계열사 사장 부인 4명이 전세기(Leariget45xRㆍ8인승)을 타고 서울에 왔다. 그녀들은 <겨울연가>의 촬영지였던 춘천 시내와 남이섬, 배용준 씨 소속사 사무실, 배용준 씨가 다니는 스포츠 센터 등을 돌아보기 위해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온 것이다.
얼마 전 필자와 오래 전부터 절친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이노우에 신시(井上伸史, 59세) 오이타현 의원의 부인과 그녀의 친구들이 왔을 때도 똑같았다. 그들은 <겨울연가>의 배경음악까지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으며, 이웃 친구들을 위해 배용준 씨의 사진과 액세서리를 가방 가득히 샀다.
2004년 말 쯤의 일로 기억된다. 일본의 지인(知人)들과 골프를 마치고 후쿠오카(福岡) 시에서 40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개야’라는 시골의 허름한 횟집으로 갔다. 소위 현해탄 끝자락에 위치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오래된 횟집이다. 그날 저녁 식사 때의 일이다. 평소대로 일식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 맥주 한잔을 권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맥주를 거절했다. 이유인 즉, “잠시 후에 NHK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는데 욘사마를 보면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라며 뒷걸음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시골구석까지 욘사마의 물결이 이토록 진하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날 함께 골프를 쳤던 후쿠오카 하얏트호텔 회장 이와타 고하치(岩田耕八ㆍ63세) 씨의 부인, 이와타 게이꼬(岩田 けいこㆍ57세) 씨는 <겨울연가>와 욘사마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겨울연가>의 스토리와 비슷한 빈곤, 불행의 시대에 자랐고, 드라마의 내용이 순애, 순결, 야한 베드신이 없는 깨끗한 분위기이며, 잘생기고 정이 많은 욘사마의 얼굴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후쿠오카지쇼(福岡地所)의 에가시라 씨의 딸인 에가시라 나나코(31세) 씨는 “무엇보다도 한국 드라마가 감동적”이라면서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일본 도쿄의 교도PR 주식회사에서 이사 겸 컨설팅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시노자키 료이치(篠崎良一,61세) 씨가 부인과 함께 서울을 다녀갔다. 그들 부부 역시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시노자키 씨 부부는 <태극기 휘날리며>(일본에서는 'Brotherhood'로 상영)의 장동건, 원빈 등 배우들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는데, 시노자키 씨는 장동건, 부인은 원빈의 열혈 팬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장금 열풍
지난 번 칼럼에서 ‘진정한 사무라이 와타나베 아키라’ 씨를 소개한 바 있다. 그들에게도 한류(韓流)가 넘쳐흘렀다. 와타나베 씨 장남의 결혼식을 마치고 직계 친인척들만 따로 모여 와타나베 씨의 집으로 몰려갔다. 같이 갔던 필자의 아내는 “일본사람 다 되어 버렸네요?” 하면서 웃었다. 그 날 파티에선 필자가 서울에서 사가지고 간 김치와 백세주가 인기였다. 와타나베 씨의 노모(老母)도 백세주를 몇 잔 들이켰다.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 모두 모여 그 날 낮에 촬영한 결혼식 비디오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밤 11시쯤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일어서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하고 물었더니 “NHK에서 <대장금>을 방송할 시간이거든요”면서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한류(韓流)의 현장이구나 하면서 필자의 부부도 호텔로 돌아와 <대장금>을 보았다.
뮤지컬 ‘제비’(쓰바메)에 얽힌 사연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우리의 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다. 이런 내용을 주제로 3~4년 전에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이 <쓰바메>(제비)다. 극의 줄거리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설화로 내려오는 러브스토리인데 <선비와 사무라이>의 저자이신 박승무 씨가 뮤지컬 <쓰바메>에 대해 너무나도 잘 기술하였기에 일부 인용하고자 한다.
<조선통신사 일행 500여 명이 1607년 4월, 에도로 가기 전에 시가현의 비와코 호수 근처 마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그때도 임진왜란 후 국교회복을 위해 일본에서 조선의 통신사들을 초청하였다. 통신사의 상판사인 이경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납치당한 75,000여 명의 동포를 귀국시켜야한다며 일본 측과 신경전을 벌였다. 잠시 후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연회가 벌어졌는데 5명의 여인들이 나와 부채춤을 추었다.
“제비!”
10년 전 임진왜란 중에 행방불명이 된 이경식 상판사의 부인이 부채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으로 돌아갑시다.”
“아닙니다…. 이미 더러워진 몸 인데….”
결국, 불행했던 과거를 모두 잊고 옛 남편과 함께 귀국하여 새 출발을 하려는 들뜬 마음으로 그녀는 일본의 시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너는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어 좋을지는 모르나, 우리 아들은 내일 할복자살을 하게 되었다.”
그 지역의 사무라이인 일본 남편 미즈시마(水島)는 장군이 짝지워준 여자를 지키지 못했으니 불경죄에 해당 된다는 것이다. 조선으로 귀국하는 배위에서 한복을 입고서 춤을 추며 뛰어 올 제비를 기다렸으나 그녀 대신 그녀의 유서 한 장이 날아왔다.
“…먼저 가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미즈시마 님께 할복자살의 명령이 내려진다고 해서….”
통신사 이경식은 절규를 했다.
“제비! 내가 잘못했다! 너를 죽인 것은 나다.”
“아닙니다. 저입니다.”
일본의 남편도 땅을 쳤다. 멀리서 합창이 들려왔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이 없다면
나오는 한탄은 없었을 것을
바다여 잠잠해라, 별이여 빛나라
사랑의 텅 빈 줄기에 생명 불 붙여
소원이 이루어질까, 제비가 고향에 간다.’>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한ㆍ일간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왜 아픈 상처를 또 만들려고 하는 것 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극일(克日)의 길은 문화밖에 없을 것 같다.
장상인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