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상장(上場)기업 경방, 한국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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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직의 역사를 다룬 주익종 박사의 <대군의 척후>

100년 역사의 경방(경성방직)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긴다고 한다. 광주시의 첨단 면사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데, 55000추의 설비중 절반인 25000추가 한국에서 나가게 된다고 한다. 한국탈출의 직접적인 계기는 최저임금 인상과 앞으로 닥칠 전기료 인상 등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산업기반이 취약한 광주는 경방 이전 소식에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경성방직은 191925만엔의 자기 자본으로 출범했다. 국내 상장(上場) 기업1호다.경성방직을 만든 사람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생인 수당 김연수 선생이다경성방직의 역사는 개명한 토착 지주계층이 어떻게 근대산업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그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기업을 일구었는지를 잘 보여준다.이후 1943년 말에는 1150만엔의 자기자본을 가진 국내 제일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출범 당시에는 100대의 직기(織機)를 가진 작은 회사였지만, 일제 말에는 1120대의 직기와 방기(紡機) 3200추를 갖춘 큰 회사가 됐다. 만주에도 국내와 같은 규모의 자회사를 두었다.

혹자는 일제말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일제에 헌금을 하는 등의 행적을 가지고 김연수를 '친일파'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경성방직이 없었으면 우리나라에 초기 방직-섬유산업은 없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 기술자들이 돌아간 후 방가진 우리나라 방직-섬유산업을 다시 일으킨 것은 경성방직에서 훈련받은 기술자와 중간관리자들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1950년대의 전후(戰後) 부흥이 가능했다. 1960년대 경제발전이 섬유 수출로 시작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춘원 이광수는 1930년대 중반 경방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군(大軍)의 척후(斥候)'라는 표현을 썼다. 전장(戰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척후병은 몇 명 안 되지만, 그들의 출현은 곧 대군이 오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듯, 최초의 민족기업인 경방의 출현은 지금은 미미하지만 그 뒤를 잇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언젠가 조선의 산업이 흥성하리라는 예고편이라는 예언이었다. 그의 예언처럼 개발연대를 지나면서 기업들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산업국가로 우뚝 섰다. 경제사학자 주익종 박사가 경방에 대한 책을 쓰면서 <대군의 척후> 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래서였다.

모든 기업이, 산업이 영원할 수는 없다. 경방이라고 해서, 이 나라 섬유산업이라고 해서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방이 이 나라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씁쓸하다초창기 경방이 기업국가-산업국가 대한민국의 출현을 예고한 '대군의 척후'였다면, 지금 경방은 기업국가-산업국가 대한민국의 쇠락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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