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철을 타면 젊은이들에게 고함을 쳐서 자리를 빼앗는 노인들을 많이 봅니다.
한번은 노인과 20대 젊은이가 서로 쌍말을 하면서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젊은이가 경로석에 앉아서 졸고 있었는데, 노인은 젊은이가 일부러 졸고 있으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노인의 호통에 놀란 그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했는데도 그 노인은 계속해서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며 나무라는 것입니다. 옆에 서 있던 이 젊은이도 노인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말대꾸를 시작했고 급기야 쌍말이 서로 오갔습니다. 참으로 눈뜨고 못 볼 장면이었습니다.
노인과 싸운 젊은이도 잘못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노인의 잘못이 더 컸습니다. 다행이 우리나라가 경로사상이 발달하여 자리양보가 외국인이 부러워 하는 아름다운 풍속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노인들에게 대중교통의 남의 좌석을 뺏을 권리를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 안동의 시내 버스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버스 노선은 안동 각 지역의 시골로 이어집니다. 승객은 주로 「학생」아니면 「노인」 두 부류로 나누어 집니다.
학생들의 하교시간과 뒤섞여 복잡한 시내버스를 수백 번도 더 타 보았지만 학생들의 자리를 호통쳐서 빼앗는 노인들은 한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시골버스를 타면서 노인들에게 수도 없이 자리를 양보 해 보았습니다.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들은 대게 몇 번이고 괜찮다고 하다가 자리에 앉습니다. 그래도 미안했던지 제가 든 책가방이라도 건네 달라는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 중에는 헛기침 한번 하면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보고는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워 그냥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 보는 것으로 고맙다는 것을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또 1990년부터 대구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서 있는 사람의 의사도 물어 보지 않고 무조건 가방을 낚아 채어 자기 무릎에 올려 놓곤 했습니다.
복잡한 버스에서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거의 뺏다시피 해서 자기 무릎에 놓는 풍경은 저에게 아름다운 대구의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물론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대구에 살면서도 노인들이 호통을 쳐서 젊은이의 자리를 뺏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번도 보지 못하던 자리 뺏는 풍경을 서울 지하철에서 툭하면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손자 뻘 되는 젊은이와 쌍말을 주고 받으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노인이든 젊은이든 최소한의 체통도 권위도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호통을 쳐서라도 자리를 뺏는 노인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장유유서의 권위를 찾고, 젊은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려는 것이 본심일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노인들에게 수 없이 자리를 양보 해 보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주변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아도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당연한 듯이 앉는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통쳐서 자리를 빼앗는 노인들이 늘어난 것은 '아름다운 젊은이는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앉지 않는다'는 어느 TV 광고와 최근 지하철 경로석에 붙은 '자리를 비워 둡시다'하는 캠페인성 문구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경로석이라는 것은 '노인들이 타면 우선적으로 양보해 주세요'라는 계도적 차원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경로석은 비워두세요'는 문구로 대체되면서 노인들에게 '이 자리는 내자리다'하는 인식을 갖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경로석을 '비워 놓으라'고 못 박아 놓으면 반대로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은 노인들보고 '당신 자리는 저쪽(경로석)이니 당신은 저쪽에가서 양보받아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현재 실제로 그런 인식이 퍼지고 있어 지하철을 타는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자리를 양보받기 편한 경로석쪽으로 몰려가 기웃거리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옛날 시골버스에 붙어 있던 '나는 젊었거늘 서서 간들 어떠리'하는 문구가 오히려 현명해 보입니다. 십수년 내에 노인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 날 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험악한 일이 더 벌어질 지 참 걱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