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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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동은 마구 헝클어져 나뒹구는 욕망의 실 꾸러미로 싸여진 동네다. 삶이 그렇듯 원미동은 각자의 삶이 요동치는 공간이다. 누가 生活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좋겠다. 生活 만큼이나 엄숙하고도 심오한 말이 없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원미동이 주목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일상의 生活을 굽어굽어 골목길을 찾듯 소시민의 잔영을 그리고 있다. 

  80년대만 해도 골목길에 들어서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궁싯대는 이웃을 만날 수 있었다.

  길 한 켠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서너명의 여자애들 하며, 그 옆에 아랫도리를 드러낸 어느집 아이, 엉거주춤 서서 나누는 아줌마들의 수다, 검은 너울을 뒤집어 쓴 골목 어귀 사진관 아저씨도 만날 수 있다. 복덕방에서 내기 장기를 두던 돋보기 영감들이 수 물리기를 빌미로 핏대를 올리거나, 동네 어귀 백열전구 불빛 아래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혼자 동그마니 앉아있는 취업 재수생, 백수 아저씨와도 조우한다. 동네 목욕탕 앞에서 수건가방을 든 젊은 누나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후드득 떨린다.

  사실 눈만 뜨면 마주 대하고 사는 그들의 일상이 아름다울 리가 있겠나. 어찌보면 심드렁하고 시답잖은 일 뿐이다.

  하지만 生活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어제 일이 오늘 일이고 또다시 내일 일이 되는 곳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生活은 오묘한 것이다. 生活을 버팅기는 힘은 바로 생활에서 나온다. 원미동은 바로 그런 곳이다.

~ 어딘가를 향해 매일매일 떠났다가 실패하고 다시 떠나고 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떠나온 곳이 원미동 23통이 아닐까. 한 사람에게는 멍에 같은 곳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새로운 내일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p221) ~

 

  원미동 사람들의 연작 11편은 평범하지만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관찰 보고서다. 변두리 계층의 힘겨운 삶의 행태는, 우리네 삶이 감내해야할, 감내할 수밖에 없는 자잘한 걱정거리와 惡意 없는 소란, 이에 대한 따스한 응시를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삶의 묘사에는, 만화경 같은 현실을 겨냥한 작가 정신이 살아 번득인다.

 

  원미동에는 여러 群像들이 나온다.

  ①으악새 할아버지 - 삼십초쯤의 간격으로 으악, 으악, 이렇게 소리를 내지르며, 아니 소리만 내뱉는 게 아니라 흡사 목젖 밑의 무엇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인 듯 양손바닥을 탁 치면서, 혹은 팔목을 내리치면서 으악, 외치는 영감이다.

 

  ② 몽달 시인 - 원미동 시인이라는 별칭과 함께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 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가 밤중에 보면 꼭 몽달귀신 같다고 서울미용실의 미용사 경자언니가 맨 처름 그를 ‘몽달씨’라 불렀다.

 

  ③ 지물포 주씨 - 무엇이든 간에 일단 두들겨 부숴놓았다가 부숴놓는 데 소요된 시간의 곱절을 들여서 다시 말끔한 물건으로 맞추어놓는 것이 그의 취미다.

 

  ④강남부동산 박씨 - 딱 한 잔만 어쩌구 하면서 술잔을 입에 대면 6.25때의 무용담이 나오는 그는 저 유명한 낙동강 전투에서 다친 허벅다리 총탄 흔적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서막을 열기시작하면 한 되 짜리 막걸리를 꼬박 비워야 한다

 

  ⑤노가다 일꾼 임씨 - 원래는 자주색이었을 티셔츠가 누런 빛이 배였고 얼굴은 왼통 검댕칠,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검정 고무줄이 삐져나온 추리닝의 허리께는 서툰 손바느질로 터진 실밥을 꿰맨 자리가 어지러웠지만, 사기당한 80만원을 받아 고향에 돌아갈 궁리를 하는 착한 사내다.

 

  ⑥김포슈퍼(경호네)와 형제슈퍼(김 반장) - 경호네가 연탄과 쌀을 팔아 김포 슈퍼라는 가게로 확장하자, 김 반장의 형제 슈퍼와 출혈 경쟁이 시작된다. 덕분에 동네 사람들만 신이 난다. 티격태격 하는 사이, 부식 일체와 완주 김까지 '싱싱 청과물'이 개업, 경호네와 김반장은 어안이 벙벙하다. 결국 두 사람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싱싱 청과물'의 도전을 막아내려 하지만 동네 인심이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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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동에 나온 인물들은 生活에서 흔히 만나는 甲男乙女다. ‘평범한 부류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희망과 절망의 다양성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홍정선)’. 희망과 절망의 변주곡이 바로 生活이란 이름의 판도라다. 곧 죽겠다고 울상을 짖다 금새 드라마 연속극에 혼이 빠지는 게 生活이다. 生活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그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삶의 공간이다. 양귀자는 이렇게 말한다.

 

  ~ 그러나 도처에 희망은 널려 있었다. 단지 그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다. 다만 한가지 위안이 있기는 하였다. 십구일이 지나면 때로 일요일도 오는 것이고 보너스를 탈 수 있는 날짜가 닥쳐오기도 하는 법이다.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하고 만에 하나라도 움직여보고자 한다면 추락하고야 말 것이란 위협도 새겨들으면 해롭지는 않았다(p27)  ~

 

  ~ 임씨의 기세에 눌려 그는 또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는 임씨 역시 맨션아파트에 살게 되고 달걀 프라이쯤은 역겨워서, 곰국은 물배만 채우니 싫어서 갖은 음식 타박에 비 오는 날에는 양주나 찔끔거리며 사는 인생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천 번 만 번 참는다고 해서 이 두터운 벽이 오를 수 없는 저 꼭대기가 발밑으로 걸어와즌 게 아님을 모르는 사람이 그 누구인가?(p168) ~

 

  ~ 원미동은 이사가 잦은 동네이다. 정들 만하면 이웃은 떠나고 그 자리엔 낯선 이웃이 자리를 잡는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진행의 현상이 축양되어 있음을 실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곳이 이 동네이다. 그것을 느끼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고달프다.(작가 後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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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가 고향으로 전주여고를 나와 원광대 국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한 양귀자는 학부를 졸업하던 1978년 문학사상에 단편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지금까지 「귀머거리 새」(1985)를 비롯,「원미동 사람들」(1987),「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1989),「희망」(1990),「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1993) 등 의 소설을 썼다.
  그러나 9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다 2000년 들어 웬일인지 작품 발표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녀는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현재 중학교 3학년 1학기 교과서에도 실렸다. 주로 작품을 발표하는 살림출판사의 대표 심만수氏(사진 왼쪽)가 작가의 ‘지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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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동 사람들」은 MBC 미니시리즈 8부작으로 방송,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확인이 안된 이야기지만 「원미동 사람들」이 드라마로 제작된 이후 오히려 판매부수가 떨어졌다는 풍문이 있다. 현재 이 작품은 1987년 11월 1판이 나온 뒤 꼭 10년 뒤인 1997년 2판이 나왔고 지난해 2월 3판을 출간됐으며 현재 3판11쇄를 찍을 정도로 문학계 내에서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한편, 「원미동 사람들」을 테마로 한 거리가 2003년 5월31일 준공되기도 했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71번지 원미구청 담장을 끼고 조성된 이곳은 소설이 중학교 3학년 1학기 교과서에 실린 것을 계기로 거리 조성이 추진됐었다. 

  거리에는 작가 양귀자의 얼굴이 그려진 장식벽과 벽천분수, 원미동 마을 모형을 축소 제작한 미니어처, 원미동을 대표적 케릭터인 몽달 시인의 동상과 김 반장, 강 노인, 인삼찻집 여자, 사진관 주인 동상 등 소설 속 인물들이 소설책 밖 세상으로 나와 원미동을 산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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