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석 보내십시오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4-09-23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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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습니다. 추석 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 오릅니다. 혼자 부엌에서 밤새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음식을 만드시는 어머니를 보면 나도 50년 후에 저런 정성으로 가족이나 조상을 돌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추석 선물을 사 들고 집에 들어서던 작은 누나 생각도 납니다. 누나가 사 왔던 선물이라야 무슨 과자나 비누, 샴푸 셋트였지만 참 신나는 선물이었습니다. 누나가 떠날 때면 동산에 올라가 누나를 싣고 떠나는 버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기억도 납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 공장에 다니는 누나가 도시에서 돈을 굉장히 많이 버는 줄 알았습니다. 누나에게 다음에 집에 올 때는 만화책을 꼭 사오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추석 다음 날 온 가족이 낫을 한 자루씩 둘러 메고 논에 벼베기를 하러 가던 모습도 떠 오릅니다. 아침 일찍 무 논에 맨발로 들어가노라면 발이 시려 한참을 종종 거립니다. 아주 어릴 때는 짐승 소리 벗삼아 오솔길을 걸어 큰 집에 제사 지내러 가던 기억도 납니다. 그것이 추석이었는지 할아버지 제사 날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밤길을 걸어 제사를 지내러 가기도 했습니다. 10월이 되면 ‘시사’라는 것을 지내는 데, '문중 시사'의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어른들이 제사 음식을 이고 지고 산을 오르면, 우리들도 대단한 지위를 얻은 양 어른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 다니며 온 산에 흩어진 산소를 찾아가 절을 했습니다. 10월이면 산길을 따라 길게 늘어지던 시사 행렬도 최근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국민학교 때 시사를 지내기 위해 친척들이 많이 모였는데 평소 못되게 굴던 다른 동네 사는 학교 선배 하나가 평소처럼 저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어른들이 저를 때린 선배를 불러다 놓고 '삼촌을 때리는 놈이 어딨냐'며 혼을 내는 모습을 보고 '고놈 고소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번 추석에서 TV에 두루마기 입지 않은 한복 차림으로 출연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남자들이 두루마기를 입지 않고 TV에 나오는 것을 보면 '천하에 경우 없고, 못 배운 자들'이라고 욕을 퍼붓습니다. 아직도 시골에는 '고리타분한' 노인들이 많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즐거운 추석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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