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유역을 지켰던 군사 요충지 구미 금오산 金烏山城
경북 구미시에는 10분 거리에 높이가 1,000m에 가까운 멋진 금오산(金烏山. 976m)이 있어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찍이 197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은 구미시 어디서나 고개를 쳐들면 올려다 보이는 산이다. 구미시 서쪽 스카이라인은 검푸른 금오산의 긴 산자락이 하늘을 가린다. 그런가 하면 동쪽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그 유역의 너른 벌판에 우리나라 산업화의 전초기지인 구미공단이 들어서 있다.
경북 칠곡군과 구미시, 김천시의 경계에 놓인 금오산은 평범한 육산이 아니라 바위산이다. 깊은 골짜기와 뽀족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산등성이가 사방으로 뻗어내렸다. 금오산은 동남쪽으로 팔공산(1,192.2m)과 마주보고 있고, 남쪽으로는 수도산(1,327.4m)과 가야산(1,430m), 북쪽으로는 황학산(1,111.4m), 서북쪽으로는 삼도봉(1,172m), 민주지산(1,241.7m)과 맥을 같이한다.
<해발 900m의 약사암에서 내려다 본 구미시 야경.>
낙동강을 끼고 있는 금오산은 옛부터 군사 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이어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군창(軍倉)과 군영(軍營)이 있었던 산성과 산성마을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나 임진왜란 때 군관민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성은 금오산 동쪽 계곡을 막은 외성과 정상 아래 너른 분지를 에워싼 내성으로 꾸며있다.
천혜의 지형을 잘 이용한 금오산성은 나공불락(難攻不落)으로 칠옹성이었다. 이러한 금오산이 지금 구미시와 김천시민들의 체력단련과 휴식처로, 역사 교육장으로 잘 가꿔놓았다. 주변의 유적과 자연 경관을 조화시켜 관광 자원화한 금오산 도립공원은 등산인들과 관광객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초생달이 걸리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현월봉(懸月峰)이라고 부르는 정상에서 본 약사암(藥師庵)과 종각. 약사봉 바위 밑에 자리잡은 약사암에서는 낙동강 유역의 구미, 칠곡, 선산 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금오산은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을 박정희대통령이 처음으로 공포한 곳이기도 하다. 금오산 자락인 구미시 상모동에서 태어난 박대통령이 해발 400m 고지에 있는 높이 27m의 대혜폭포에 들렀다가 계곡 바위틈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고 자연보호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할딱고개에서 내려다 본 대혜골. 케이블카 승강장과 해운사가 내려다 보인다.>
금오산성을 둘러보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외성을 지나 신라시대 창건된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925년에 신축했다는 해운사(海雲寺) 아래에서 부터 시작된다. 총연장 805m의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한다. 해운사 뒤편 100m쯤 되는 수직 절벽의 중턱에는 신라 말 도선선사의 수도처라고도 하고 고려말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이 머무르기도 했다는 도선굴(道詵窟)도 둘러본다. 임잔왜란 때는 주민 500여명이 피신하기도 했다는 이 거대한 동굴은 쇠줄 난간을 잡고 아슬 아슬하게 절벽을 비껴서 올라간다. 당시 피난민들은 칡넝굴을 잡고 오르내렸으며, 동굴 옆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물을 나무가지로 받아서 식수로 썼다고 한다.
<도선굴. 대혜폭포 우측 절벽 한가운데 있는 자연동굴로 신라 말 도선선사와 고려 말 야은 길재선생이 수도하였던 곳으로 전해온다.>
도선굴에서 내려와 대혜(大惠)폭포를 거처 할딱고개를 오른다. 정상 밑 분지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물이 산아래 마을 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해서 대혜폭포라고 부른다는 명금(鳴金)폭포는 요즈음 성안의 계곡물이 말라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가는 실폭처럼 됐다. 금오산을 울린다는 명금폭포의 이름에 걸맞지는 않으나 비오는 날 대혜폭포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숨이 턱에 찬다는 할딱고개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과 약사암과 정상으로 오른 길과 갈라진다. 약사암으로 가는 비탈길에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돌담사이를 빠져나간다. 금오산성 내성 문지(門址)다. 낮아졌는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안쪽은 요즈음 군대의 참호처럼 깊게 파놓아 6.25 때 판 참호가 아닌가 착각하게 한다.
<구미시 형곡동에서 올려다 본 금오산. 거인이 옆으로 누워서 북두칠성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어서 금오산 자락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난다는 설이 있다.>
정상에는 폐허가 된 미군 통신기지와 무인 방송 중계탑과 무인 이동통신기지국이 24시간 웅웅거리는 기계소리를 내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무학대사가 금오산 밑을 지나면서 산세를 보고 언젠가 왕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명산인 금오산 정상을 까뭉개고 안테나들를 세우고 양 옆으로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대형 헬기장을 닦아 놓았으니 금오산의 기(氣)가 제대로 살아있을까 의문이 된다. 어떻든 예나 지금이나 금오산은 군(軍) 요충지로 큰 몫을 해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 관리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고려 말 충신이자 대학자인 야은 길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조 영조 44년(1768년)에 지은 채미정. 경내에는 경모각, 구인제, 비각등이 있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성안에 화전민들이 몇 집 살았고 감자술을 파는 집도 있었다고 하는 내성터는 계곡을 끼고 있는 거대한 분지다. 집터며 논밭터가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데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빈들 한가운데 일년 내내 마르지도 얼지도 않는다는 샘물인 금오정(金烏井)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산로 옆으로 고종 5년(1868년)에 금오산성을 중수했다는 이끼 낀 기념비도 있다. 정상에서 내성을 거처 다시 대혜골로 내려가려면 성안 한가운데로 흐르는 계곡 길을 따라 간다. 30분 정도 내려 가다보면 대혜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 옆으로 난 길이 있다. 할딱고개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금오산 등산 초입에 있는 금오산성 외성의 문루인 대혜문(大惠門)과 성벽.>
정유재란(1597년)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이 성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둘레 2,316m, 높이 4.2m의 금오산성은 낙동강 건너 천생산(天生山, 407m) 산성과 함께 왜적 침입을 막는 국방 요충지의 하나였다. 병자호란 뒤에도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영조 11년에는 금오진으로 승격하여 3,500명의 군사들을 상주케 했다.
험준한 계곡을 낀 바윗길을 쌀가마를 지고 오르내렸을 군사들의 노고 생각하면 오늘날 금오산 등산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금오산 산성을 둘러보는 산행은 서울서나 부산에서나 광주에서나 얼마든지 여유 있게 당일에 마칠 수 있다. 성터를 둘러보면서 산행을 하기에 좋은 가을 단풍철이 머지 않다.
<정상의 연봉인 보봉(普峰) 밑 절벽 모서리에 새겨진 마애보살입상.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고려시대 불상(보물 제490호)이다.>
경북 구미시에는 10분 거리에 높이가 1,000m에 가까운 멋진 금오산(金烏山. 976m)이 있어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찍이 197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은 구미시 어디서나 고개를 쳐들면 올려다 보이는 산이다. 구미시 서쪽 스카이라인은 검푸른 금오산의 긴 산자락이 하늘을 가린다. 그런가 하면 동쪽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그 유역의 너른 벌판에 우리나라 산업화의 전초기지인 구미공단이 들어서 있다.
경북 칠곡군과 구미시, 김천시의 경계에 놓인 금오산은 평범한 육산이 아니라 바위산이다. 깊은 골짜기와 뽀족한 봉우리,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산등성이가 사방으로 뻗어내렸다. 금오산은 동남쪽으로 팔공산(1,192.2m)과 마주보고 있고, 남쪽으로는 수도산(1,327.4m)과 가야산(1,430m), 북쪽으로는 황학산(1,111.4m), 서북쪽으로는 삼도봉(1,172m), 민주지산(1,241.7m)과 맥을 같이한다.
<해발 900m의 약사암에서 내려다 본 구미시 야경.>
낙동강을 끼고 있는 금오산은 옛부터 군사 요충지로 한양과 부산을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이어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군창(軍倉)과 군영(軍營)이 있었던 산성과 산성마을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나 임진왜란 때 군관민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성은 금오산 동쪽 계곡을 막은 외성과 정상 아래 너른 분지를 에워싼 내성으로 꾸며있다.
천혜의 지형을 잘 이용한 금오산성은 나공불락(難攻不落)으로 칠옹성이었다. 이러한 금오산이 지금 구미시와 김천시민들의 체력단련과 휴식처로, 역사 교육장으로 잘 가꿔놓았다. 주변의 유적과 자연 경관을 조화시켜 관광 자원화한 금오산 도립공원은 등산인들과 관광객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초생달이 걸리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현월봉(懸月峰)이라고 부르는 정상에서 본 약사암(藥師庵)과 종각. 약사봉 바위 밑에 자리잡은 약사암에서는 낙동강 유역의 구미, 칠곡, 선산 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금오산은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을 박정희대통령이 처음으로 공포한 곳이기도 하다. 금오산 자락인 구미시 상모동에서 태어난 박대통령이 해발 400m 고지에 있는 높이 27m의 대혜폭포에 들렀다가 계곡 바위틈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고 자연보호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할딱고개에서 내려다 본 대혜골. 케이블카 승강장과 해운사가 내려다 보인다.>
금오산성을 둘러보려면 케이블카를 타고 외성을 지나 신라시대 창건된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925년에 신축했다는 해운사(海雲寺) 아래에서 부터 시작된다. 총연장 805m의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한다. 해운사 뒤편 100m쯤 되는 수직 절벽의 중턱에는 신라 말 도선선사의 수도처라고도 하고 고려말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이 머무르기도 했다는 도선굴(道詵窟)도 둘러본다. 임잔왜란 때는 주민 500여명이 피신하기도 했다는 이 거대한 동굴은 쇠줄 난간을 잡고 아슬 아슬하게 절벽을 비껴서 올라간다. 당시 피난민들은 칡넝굴을 잡고 오르내렸으며, 동굴 옆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물을 나무가지로 받아서 식수로 썼다고 한다.
<도선굴. 대혜폭포 우측 절벽 한가운데 있는 자연동굴로 신라 말 도선선사와 고려 말 야은 길재선생이 수도하였던 곳으로 전해온다.>
도선굴에서 내려와 대혜(大惠)폭포를 거처 할딱고개를 오른다. 정상 밑 분지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린 물이 산아래 마을 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해서 대혜폭포라고 부른다는 명금(鳴金)폭포는 요즈음 성안의 계곡물이 말라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가는 실폭처럼 됐다. 금오산을 울린다는 명금폭포의 이름에 걸맞지는 않으나 비오는 날 대혜폭포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숨이 턱에 찬다는 할딱고개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과 약사암과 정상으로 오른 길과 갈라진다. 약사암으로 가는 비탈길에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돌담사이를 빠져나간다. 금오산성 내성 문지(門址)다. 낮아졌는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안쪽은 요즈음 군대의 참호처럼 깊게 파놓아 6.25 때 판 참호가 아닌가 착각하게 한다.
<구미시 형곡동에서 올려다 본 금오산. 거인이 옆으로 누워서 북두칠성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어서 금오산 자락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난다는 설이 있다.>
정상에는 폐허가 된 미군 통신기지와 무인 방송 중계탑과 무인 이동통신기지국이 24시간 웅웅거리는 기계소리를 내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무학대사가 금오산 밑을 지나면서 산세를 보고 언젠가 왕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명산인 금오산 정상을 까뭉개고 안테나들를 세우고 양 옆으로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대형 헬기장을 닦아 놓았으니 금오산의 기(氣)가 제대로 살아있을까 의문이 된다. 어떻든 예나 지금이나 금오산은 군(軍) 요충지로 큰 몫을 해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 관리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고려 말 충신이자 대학자인 야은 길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조 영조 44년(1768년)에 지은 채미정. 경내에는 경모각, 구인제, 비각등이 있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성안에 화전민들이 몇 집 살았고 감자술을 파는 집도 있었다고 하는 내성터는 계곡을 끼고 있는 거대한 분지다. 집터며 논밭터가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데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빈들 한가운데 일년 내내 마르지도 얼지도 않는다는 샘물인 금오정(金烏井)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산로 옆으로 고종 5년(1868년)에 금오산성을 중수했다는 이끼 낀 기념비도 있다. 정상에서 내성을 거처 다시 대혜골로 내려가려면 성안 한가운데로 흐르는 계곡 길을 따라 간다. 30분 정도 내려 가다보면 대혜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 옆으로 난 길이 있다. 할딱고개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금오산 등산 초입에 있는 금오산성 외성의 문루인 대혜문(大惠門)과 성벽.>
정유재란(1597년)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이 성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둘레 2,316m, 높이 4.2m의 금오산성은 낙동강 건너 천생산(天生山, 407m) 산성과 함께 왜적 침입을 막는 국방 요충지의 하나였다. 병자호란 뒤에도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영조 11년에는 금오진으로 승격하여 3,500명의 군사들을 상주케 했다.
험준한 계곡을 낀 바윗길을 쌀가마를 지고 오르내렸을 군사들의 노고 생각하면 오늘날 금오산 등산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금오산 산성을 둘러보는 산행은 서울서나 부산에서나 광주에서나 얼마든지 여유 있게 당일에 마칠 수 있다. 성터를 둘러보면서 산행을 하기에 좋은 가을 단풍철이 머지 않다.
<정상의 연봉인 보봉(普峰) 밑 절벽 모서리에 새겨진 마애보살입상.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고려시대 불상(보물 제490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