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 거지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6-02-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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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을 보면 광화루에서 열린 변학도 생일잔치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또 생일잔치에 남원 주민을 비롯 인근 고을 거지까지 죄다 모여 들었습니다. 단언은 못하겠지만, 일종의 ‘귀족’의 생일잔치에 거지까지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을 허용한 나라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상가집이나, 혼인, 환갑 잔치집에서 거지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안보이던 거지들까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삼삼오오 모여 들어 한곳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이날만큼은 거지들도 따로 상을 받고, 음식까지 싸가지고 돌아갑니다. 그야말로 거지에게는 ‘최고의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당시 시골 거지들 모습은 그야말로 '거랭뱅이' 그 자체입니다. 터벅한 머리에, 여기 저기 기운 옷, 꼬질꼬질한 손, 다 떨어진 신발, 칭칭 몸을 감은 이불에, 음식을 담는 ‘거지 자루’까지 둘러메어 누가 보아도 한 눈에 거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 거지가 동냥을 얻기 위해 동네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걸뱅이다" 하면서 도망가거나, 여럿이 짝을 지어 뒤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동네에 들어온 거지는 그런 것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을 합니다.
 
거지에게 쌀을 줄 때는 접시에다가 그것도 손으로 윗 면을 평평하게 한 후 주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접시는 일반 접시가 아니라 주로 밥사발을 덥는 뚜껑입니다. 그 작은 밥사발 뚜껑으로 푼 쌀을 그나마 윗면을 쓸어버려 평평하게 한 후 거지에게 주었기 때문에, 실제 거지가 받아가는 쌀은 한 홉도 채 안되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거지에게 쌀을 주는 모습을 보고 “이왕 주려면 한 밥그릇 퍼다 주지 왜 그렇게 적게 주냐”고 한 마디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이놈의 자식아, 농사 지어서 동네 거지 다 퍼줄래?”하고 나무랐습니다. 궁핍한 시골이라 서로서로 살림살이가 어렵기 때문에 거지에게 쌀을 넉넉하게 줄 수가 없었나 봅니다. 
 
거지는 이처럼 적은 양의 쌀을 얻기 때문에 쌀밥 한번 지어 먹기 위해서 수 많은 동네를 돌아 다녀야 했을 겁니다. 때문에 잔치날은 거지가 평소 구경도 잘 못 하던 쌀밥에 고기, 과일까지 먹을 수 있는 날이었기에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빠지지 않고 찾아 왔나 봅니다. 지금도 안개 낀 이른 아침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잔치집이나 초상집에 오던 거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동네 어느 집에 잔치나 초상이 있으면 온 마을이 며칠 동안 요란스럽습니다. 할일 없는 꼬맹이들도 괜히 흥분되어 잔치집을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닙니다. 잔치 집 마당 한 켠에는 동네 아낙들이 솥두껑을 엎어 놓고 전을 부칩니다. 기름은 돼지비계 덩어리를 씁니다. 제가 살던 경북 북부 지방에서는 주로 배추로 전을 구웠습니다. 배추전은 밀가루가 적게 들고, 양이 많이 나오면서 맛도 좋습니다. 
 
전을 부치는 도중에 자기 아들이나 딸이 오면 어머니들은 갓 부쳐낸 뜨거운 전 하나를 얼른 앞치마에 둘둘 말아 아이들 손바닥 위에 덥석 얹어 놓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가라는 손짓을 합니다. 전을 받은 아이는 집으로 달려가서 누나나 동생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잔치집과 가깝다면 어머니가 직접 앞치마에 전을 말아 집까지 와서 주고 가기도 합니다. 어차피 서로 지켜보는 공간에서 잔치집 음식을 앞치마에 싸서 자식에게 '몰래'  건네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남의 집 음식이니 염치를 알고, 고맙게 먹으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잔치 전 날이 되면 청년들은 마을 공동 우물가에서 돼지를 잡습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중단하고 돼지 잡는 곳으로 우르르 달려가 둘러싸고 구경을 합니다. 아이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돼지 잡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돼지 오줌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른들이 돼지 내장에서 오줌보를 떼어 낸 후 ‘옛다’하고 아이들에게 던져 줍니다. 오줌보를 받아든 아이들은 보리 대궁을 꺾어 빨대를 만 든 후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그리고 실로 주둥이를 막으면 훌륭한 축구공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줌보 축구공은 아이들이 바라는 만큼 그렇게 질기지를 못해 흙 마당에서 몇 시간 차고 놀면 이내 터져 버립니다. 
 
현대식 축구가 비록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돼지 오줌보를 찬 경력까지 친다면 우리나라의 축구 역사는 아마 삼국시대 보다 더 올라 갈 것입니다. 삼국시대라고 해서 그 ‘요긴한’ 돼지 오줌보를 그냥 버리지는 않았을 테고, 어쨌든 바람을 넣은 후 발로 차고 놀았을 테니까요. 
 
이제는 거지도, 잔치집의 흥겨운 풍물 소리도 희미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후기: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이 삼시 세끼 쌀밥을 마음 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통일벼(정부미)가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입니다. 통일벼가 상당히 보급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보리밥이 섞인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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