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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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가 돌아오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여전히 돌아가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어디론가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절실함, 그는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문 춘천을 떠나 돌아오기 위해 서울행 직행 버스에 앉아 있었다.

  로 시작되는 『낯선 시간 속으로』는 4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이인성의 첫 소설집이다. 이인성은 이성복·황지우·김정환 등과 동연배로 서울대 불문과 교수였던 故 김현 先生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나이 서른 되던 1983년 6월 초판이 발행된 뒤 14쇄를 찍고 1997년 재판을 발행했다. 2005년 6월 현재 6쇄가 찍혔다. 1쇄에 2000부 정도 찍는다고 가정할 때 최소 4만부 이상 팔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놀랍다. 문지(文學과 知性社)의 힘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룩될 수 없는 ‘낯선’ 성과다.
  왜냐면, 그만큼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大學의 소설 전공자나 문학을 공부하듯(배우듯) 하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면 엄두를 내기 어렵다. 긴장해서 읽으면 쏙 빨려드는 맛이 있지만,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나(혹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헤매고 만다, 진땀을 흘리면서 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90년대 초의 일이다. 기자가 대구 50사단 훈련소를 빡빡 길 때, 고참 기관병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껌을 딱~딱~거리며 만화책을 읽듯 소설을 읽던 기억이 난다. 그는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이오네스코의 초현실주의적인 눈빛을 하고 책에 집중했다. 나중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그의 인사카드를 들춰보았다. 세상에. 겨우 商高 졸업이 고작이었다. 그 商高라는 것도 문제아들이 주로 가는 3류였다. 그런 그가 이런 무지막지한이 책에 매료됐던 것이다.
   『낯선 시간 속으로』는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지원을 받아 지난 2004년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제목은 『유배의 계절들(Saisons d'exil)』. 장 벨맹-노엘이 최애영이 공동 번역해 출간했다.
   왜 ‘계절들’이란 이름이 붙었는가 하면, 소설을 다루고 있는 사건의 연대 때문이다. 「길, 한 이십 년」(1973년 겨울~1974년 봄), 「그 세월의 무덤」(1974년 여름), 「지금 그가 내 앞에서」(1974년 가을), 「낯선 시간 속으로」(1974년 겨울)로 구성돼 있다.
  비평가 알랭 굴레(Alain Goulet)의 평은 이렇다.(작품 보다 더 현학적인 평이어서 그리 귀담을 것이 못 된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로브-그리예의 '고무'를 생각나게 하는 글쓰기 방식을 통해 이인성은 지드의 熱病의 계보를 잇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의 형상화를 통해 사르트르의 嘔吐의 계보를 잇고 있는데, 세계내의 이방인을 그린다는 점에서 카뮈적이기도 하며, 도박의 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베케트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아의 안과 밖의 좌표, 현실 감각과 가치가 상실된 세계, 돌이킬 수 없이 해체된 세계다.
  어쨌든 그가 주목받는 것은(이성복과 마찬가지로) 기존 문단의 관습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과거 李箱의 소설이 당시 문단에 차지하는 좌표를 생각하게 만든다.
 독창성(외국문학과 비교하면 어쩌면 독창적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과 실험적 방법론은 김현을 중심으로 한 文知사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의식으로부터 연유하는 삶의 막연함 그 자체를 밀고 나가는 소설적 모험(김동식)’은 좀체 대중적 호응을 얻긴 힘든 법이다. 또 그가 영향 받았을 법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은 보편성(嗜好라는 점에서)을 일구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또 주제를 밀고나가는 문체의 힘이 느껴지지만 현학적인(언어의 유희로 느껴질 정도의) 문체 때문에 주제와 감동이 멀어지게 됐다. 깨어진 유리조각을 맞추듯 줄거리를 엮기도 쉽지 않다. ( 사진은  작가의 거실에서,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창간 작업을 하며 (1982). 왼쪽부터 작가, 시인 이성복, 평론가 정과리)

나는 흡사 영사막 앞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영사막 앞에서 빛을 받으면 화면 속에 비쳐진 입체감 위에 평면의 그림자가 그냥 거려지듯, 나의 그림자조차 이 거리의 입체 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p193 중에서)

 총 천연색 시네마코프(現實)에서 흑백의 그림자에 불과한 ‘나(혹은 그)’가 自我를 찾아간다. 흑백의 ‘나’는 처음부터 현실 속에 안착할 수 없다. 영화관 영사막 앞을 지나가는 行人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냥 行人으로 그치지 않고 도저한 삶의 여정을 밀고 나간다. 밑도 끝도 없이 걸어가는 ‘나(혹은 그)’의 존재방식이 눈물겨울 뿐이다. 하지만 소설 속엔 어느 하나 눈물겨운 게 없다. 바게트 빵처럼 딱딱하고 윤기 없으며 불완전해 보이는, 생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수채화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물방울이 색을 번져 엷게 만들듯, 물방울은 점점 커져 現實을 번지게 만든다. ‘나(혹은 그)’가 걷는 길이 바로 물방울의 색(現實) 번짐이다. 그 과정은 ‘1974년 23살 혹은 24살 나이에 이르는 상처받은 청춘의 전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김현)’.
『낯선 시간 속으로』가 나오기까지 작가 이인성에게 영향을 준 動因은 무수히 많다. 가까이는 文友 이성복·황지우·김정환·권오룡·정과리·진형준 같은 이들이 있었고(김정환을 빼고 대부분 文知사단이다) 뒤에는 스승 김현이 자리잡고 있다.

 김현은 이인성이 대학 3학년 때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이인성의 말을 빌리자면, ‘1975년 갓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김현 선생을 처음 뵙게 되고 문학다운 문학과 술다운 술을 배웠다’.( 사진은  문막에서 문학과 지성사 신년간담회를 마치고 (1989). 왼쪽부터 임우기, 김치수, 오생근, 정과리, 김주연, 김현, 김병익, 홍정선, 권오룡, 작가, 진형준)

  또 방위병 시절도 그에게 불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낯선 시간 속으로』에는 (일등병 계급장을 단) 병정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방위병 당시 무허가 빈민촌이던 불광동 산42번지를 비롯해서 전혀 낯선 환경 속에 내던져졌던 체험은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방위시절 결혼을 했으며 ‘전혀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소설의 구상의 얼개가 이때부터 짜이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사뮈엘 베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두 작가가 이인성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적지않다. 이인성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해 ‘작가의 길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기억했다. 또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도 ‘나로 하여금 언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밖에 만들었다’고 했다.
  1978년 5월 복학을 한 이인성은 불문과 조교를 하며 소설습작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1974년 자신이 겨울 강릉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썼던 150매 정도의 단편을 해체시키고 여기다 방위 시절 기억과 메모를 보태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의 말이다.(사진은 김현 선생 묘에서, 1994년)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꾸리며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에 복학하여 과 사무실에서 조교 노릇을 하면서부터였다. 과 사무실에서의 내 생활은 완전히 이중적이었다. 학과 사무를 처리하고 수업 준비를 하는 정신에서 소설을 쓰는 정신으로 시간 날 때마다 넘나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막판에 몰려있다는 어떤 오기가 아니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이었는지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지금은 못 그러지만, 그때는 술이 내 머릿속의 때를 씻어주는 윤활유 구실을 했다고나 할까.····(中略)···처음에 아주 개략적인 구성을 했었지만 나는 그때그때 소설의 흐름이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 새 구성을 짜서 그때까지 쓴 앞부분을 다시 해체시켜 고쳐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 후, 다시 그 다음 단계에서 전체를 재조정해서 뒤풀이 앞부분을 고쳐쓰는 식으로 일관했다. 예정대로 쉽게 쓰여지는 소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왠지 소설의 생명을 박탈하는 자기기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600매 정도를 완성하는 데 원고지와 씨름한  시간만 1년8개월이 걸렸다. 첫 구상과 준비에서부터 3년만의 ‘끝’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 역시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것으로 남아있다.(작가의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2000·열림원 刊)』중에서)
  이 작품은 굳이 줄거리기 필요없다. 굳이 줄거리를 알 필요도 없다. 문장이 韻文과 같아서 단락 단락이 詩로서 읽혀지기 때문이다. 서사시가 아닌 다음에야 詩에 무슨 줄거리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처럼 전혀 별개로 보이는 시 한 편이 전체를 관통하며 아우르는 유적 흐름을 지니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낯선 시간 속으로』 는 시적 자아의 세계가 종국에 가서 하나의 ‘소설 箱子’를 이루고 있다.(기자 역시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
  김현 先生은 이 소설의 핵을 4가지로 분류했다. ①아버지가 죽자, 군복무 중이던 나-그는 의가사 제대를 하여 서울로 돌아온다 ②나-그는 아버지의 무덤에 간다 ③나-그는 아버지를 자기가 죽였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④자살을 하려고 미구시에 갔다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서울로 되돌아오려 했다.
  그래도 굳이 줄거리를 엮어보면 다음과 같다.(단언컨데 이 소설은 줄거리가 없다) 


「길, 한 이십년」
  ● 1973년 겨울 : 아버지의 죽음으로 의가사 제대한 그는 춘천을 떠나 서울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오는 도중 조부가 가르쳤던 시골학교(풀무배움터)에 들린다. 그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으나 자신이 주도한 조직에서 스스로 이탈했고 스스로 학생신분에서 벗어나 가야할 곳은 軍이었다고 회상한다. 또 대성리를 지나며 지금은 헤어져 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곳을 떠나오며 언젠가 다시 피어날 단단한 씨앗을 확인한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집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계셨던 산골학교를 들러 오느라고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길 지나왔으니, 이제 아버질 또 지나가야지요”라고 읊조린다.
  ● 1974년 봄 : 홍화문 근처에서 버스를 내린 그는 창경원과 고궁, 종묘를 헤매다 피키다리 극장 앞 건널목에서 창녀를 만난다. 종로 신천 제2한강교 화곡동 김포행 버스에 무의식적으로 오른다. 이 버스는 늘밤학교(야학)으로 가기위해 타던 버스였다. 문득 갇힌 마음이 몸을 세 배로 더 답답하게 얽어 묶어오자 버스에서 내린다. 내린 곳은 절두산 성지였다. 그는 순교자가 죽음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한다. 조각상이 신부로 치환되는 상상 속에 오늘날의 순교는 '더 살아서 고통받는, 말하자면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형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절두산 성지를 내려오며 비에 젖은 성모 마리아의 석고상 앞에 마주섰다. 그가 다시 성모상을 돌아보았을 때 성모상이 희게 빛났다.


「그 세월의 무덤」
  ● 1974년 여름 : 나(그)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기로 했다. 집에서 연극공연을 준비 중인 학교에 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림자가 길게 연극 무대를 가로지르고, 그 그림자가 누워 잠들어 있는 투명한 내 몸을 자른다, 고 느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방황한다. 학교를 나와 교문 맞은편 골목의 ‘술과 음악/地下室’에서 (그림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스스로가 이끌고 다녔을지도 모를 그 그림자(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제 떨쳐내고 싶다고 느낀다. ‘지하실’에서 나온 나(그)는 빌딩 ‘판매촉진과’에 들린 뒤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무덤으로 간다. 문득 버스가 영구차로 오버랩되고 아버지가 버스에 탔다고 상상한다. 아버지의 침묵과 독서, 글쓰기는 일제 치하를 견디는 나름의 방식이었고 할아버지 역시 당신의 신앙을 마지막으로 시험해보이시려 하셨다고 생각한다.  나(그)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할아버지처럼 행동했어. 나는 당신들에 대한 반항을 통해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버지의 책을 베고 잠자며 할아버지와 같은 믿음을 꿈꾸고 그 핏줄의 밥을 먹은 거야’  그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 파여진 흙구덩이에 들어가 눕는다. 그의 두 눈빛이 노을처럼 타오른다. 나는 부삽으로 그의 몸 위에 흙을 뿌린다.


「지금 그가 내 앞에서」
● 1974년 가을 : 무대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나는 관객이면서도 연출자 이자 주연배우이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 묻는다. ‘내가 나이기 이전에, 나는 그였다’ 다시 말해 그는 나의 분신이자 내 의식의 척후병이다. 따라서 그는 현실 속엔 없지만 나에겐 그의 ‘없음으로-있음’ 혹은 ‘비어-있음으로-있음’이다.   나는 객석의 어둠 속에 어둠으로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더듬는다. 아버지는 연극을 싫어 하셨지만 당신은 마지막 순간을 철저한 연극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되뇌인다. 그(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상상에 시달린다. 살인자 라는 바닥에 깔린 벌레들의 소리 덩어리를 듣게 된다. 그는 외친다 ‘ 아니야, 난 아니야 난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을 뿐이야’   호외 기사와 라디오 뉴스에 ‘父親 살해범이 윤락가에서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온다. 웅성이던 군중들의 뒤를 따르던 그는 ‘내가 붙잡혔어? 내가?’라며 허황된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는 그에게 ‘네 죄는 더 멀고 깊다’고 말한다.  무대 밑 객석에 불이 들어오고 잠시 후 2막이 시작된다. 연출이 채찍질을 한다. 배우들이 일렬로 늘어서기 시작했고, 칼에 찔려 죽은 사내가 시체처럼 뻣뻣이 일어나 줄 속에 낀다.


「낯선 시간 속으로」
  ● 1974년 겨울 : 迷口市에 도착한 나는 송파(松波)여관에 여장을 푼다. 미구 관광호텔에서 이언길런(deep purple)의 보컬에 심취한다. 바닷가에서 병정(경계병)을 만나 여관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튿날 아침에 다시 일어나 바다에 나가 김민기 노래들을 가만히 불러보고 ‘내가 기억하던 어떤 구절들을 되뇌어 본다’. 해수욕장의 간이 우체국을 지나 성심약국 옆 조그마한 술집에 들렸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다. 나는 도시가 ‘현실이 아니다’고 느낀다. 마치 영사막 앞에서 빛을 받으면 화면 속에 비쳐진 입체감 위에 평면의 그림자와 같다. 다방 ‘탈’에 들러 벽에 걸린 환각화와 흘러나오는 a day in the life(beatles) 음악에 빠져든다. (무)의식이 학교로 달려가 연극반에 들렸지만 아무도 없이 나홀로 만난 뜻밖의 낯선 느낌을 받는다. 학림에 들러 ‘너’를 만나 夢鶴先生 운명감정소에 들린다.
  그날 저녁 강둑 어귀 포장 술집에서 미구大 영문과 졸업반 여자와 만난다. 그녀와 잠자리까지 갔지만 그녀의 몸에 오바이트를 하고 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잠자리 한 팔 거리쯤 떨어진 곳에 ‘너’를 보았다. 나는 미구에 오기 이틀 전 ‘너’와 함께 인천 겨울의 유원지에 갔던 기억을 더듬는다.
  다시 현실로 들어와 미구 해수욕장의 도깨비집에 들린다. 그곳에 있는 ‘거울의 방’에서 거울들이 무한한 반복과 연속의 면 속에서 분리된 우리(나)의 모습이 한없이 어지럽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본다. 다시 길을 걷다가 일등병 계급장을 단 병정을 만난다. 그는 나의 분신이다. 병정은 손에 면도칼이 나 있다.

  나는 여러차례 병정(‘그’이자 ‘너’)과 만난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 그를 버리고 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여자 때문에 괴로워했다. 모든 것을 끊어 버리듯 자신의 손목에 면도칼을 그었다. 그때 느닷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그는 가족에게 지독히 반항적이었고 가족과 인연을 끊는다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란 사실 그 인연이 끊을 수 없는 숙명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보이던 숙명의 실체가 그때 진짜로 사라지게 되었다. 면도칼로 그은 한 줄의 칼길 너머로 언뜻 제 의식의 밖인 다른 하늘을 본다. 그 상처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제 몸의 상처를 영원히 열어놓고 그것들을 보고자 할 때 곧 죽음과 맞닿게 된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그렇다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만드는 넋굿이라고나 할까.···그 아픔의 과거가 ‘여기’에 살아나고 미래인 다른 하늘이 ‘지금’속에 가득 펼쳐지는 곳. 시간의 직선적인 흐름이 무너져 솟구치며 소용돌이치는 곳. 상처를 통해 마침내 우리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죽음을 부유하는 의식을 몰아낸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구驛의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이인성의 친구인 시인 황지우는 이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사실 이  소설집의 속표지 그림 및 작가 소묘는 모두 황지우가 그린 것이다. 또 그의 작품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과도 유사하다.


  벽 2 
  ----낯선 시간 속으로 
                              황지우
 

이 벽은 이인성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이 표지와 같다이 벽은 신문이다, 보다시피

이 벽은 지방 일간지 7면 문화면이다, 보다시피

이 벽은 파스텔로 회칠한 벽이다

금이 가고

애매모호하다

냉담하고

덮어도 덮어도 다 덮여지지 않는 세속이다

이 벽 속에는 신문 소설,[인스탄트 러브]의 달라붙은 남녀의 삽화가 있다

이 벽 속에는 부동산 광고가 있고

이 벽 속에는 에프킬라와 제주도 관광 안내문이 있다

돈 급히 쓰실 분

댄스 빨리 배우실 분

여종업원 금방 필요한신 분

독신녀 진실남 구하시는 분

뭐, 이러 분들오 있을 수 있지만

이 벽 속에는 보다시피, 단식 투쟁한 舊정치인의 소문이 없다

보다시피, 원풍毛紡의 후문도 미국인 쌀장사 이야기도 없다

그렇지만 이벽은 금이 가 있다

아 그래, 금이 가 있다

금이 가고 가운데가 뻥 뚫리고

그 틈틈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

아 그래, 시원한 바람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어떤 싸움의 記錄
              이성복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아버지는 주먹을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아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중략...
이 동네는 法도 없는 동네냐 法도 없이 法도 그러나
나의 팔은 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市場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
  지난해 기자는 이인성에게 ‘나의 문학청년 시절’ 원고 청탁을 두 번 했지만 모두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이성복·이인성·황지우·김정환 등의 文靑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성복에게 연락하니 이인성에게 바통을 넘겼다. 다시 이인성에게 연락하니 “밀린 소설로 도저히 쓸 수 없다”고 토로하며 김정환에게 미루었다.(김정환에겐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 황지우에겐 별도로 연락했지만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준비로 바쁘다며 “내년(2006년)에나 보자”고 했다.
  올해엔 이들의 문청 시절 이야기가 月刊朝鮮에 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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