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정을 바라보며 죽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코피가 흐르도록 사랑하고
코피가 멈출 때까지 사랑하였다
바다가 아주 멀리 있었으므로
바다 쪽 그 집 벽을 허물어 바다를 쌓았고
강이 멀리 흘러나갔으므로
우리의 살을 베어내 나뭇잎처럼
강의 환한 입구로 띄우던 시절
별의 강줄기 별의
어두운 바다로 흘러가 사라지는 새벽
그 시절은 내가 죽어
어떤 전생으로 떠돌 것인가
알 수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
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
내려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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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문과 출신의 이문재가 쓴 시다. 1988년 민음사에서 나온 詩集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에 실렸다. 詩集은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나왔다. 서른 살 답지 않는 사유의 깊이와 詩的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詩語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行間이 만드는 오밀조밀한 상상력과 알듯말듯한 슬픔이 나타내는 형상미가 빼어났다. 적어도 경험이 없이는 이런 시가 나오지 못하리라는 느낌.
詩集의 첫 머리에 실린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을 읽다보면 게오르그 루카치의 글이 생각난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였던, 그리고 그 길을 별빛이 비춰주던 시대는 행복했었다···」 빈손으로 길 떠난, 行者의 地圖란 하늘을 밝히던 수많은 별자리가 전부였다. 그 별을 지도삼아 산을 타고, 강을 넘던 시대가 있었다. 그 광경은 김환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둥글고 키 작은 나무처럼 아름답다.
작가는 빈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과거를 반추한다. 과거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고통이 극심할수록 기억은 선명하다. 옛집을 떠나오며 門에다 박은 못이 자라나 벽과 담장을 허물더라도, 기억은 자꾸 사랑 쪽으로 허물어진다.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는 기억은 견고하게 삶을 쓰다듬는 법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살을 베어낸 나뭇잎이 환하게 기억의 강으로 떠오른다.
내가 살던 옛집 초록색 지붕은 색이 바란 채로 서른 해를 보냈다. 가난밖에 없는, 새간 틈으로 쏟아지던 겨울의 寒氣. 가족은 몸을 붙여 겨울 한철을 지냈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나는 거친 콧김을 뿜어내던 막내의 잠 속을 헤엄치고 싶었다. 막내는 지금 키가 2m나 자랐다. 지저분한 수염을 훈장처럼 자랑하며 그 시절이 아프다고 한다. 가끔 아파서 잠을 깨기도 한다. 잠바의 자크를 목 끝까지 채우고, 웅크려 잠을 청하던 누이는 시집가서 딸만 셋이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누이의 주름살이 어린 시절 나이테처럼 둥글다.
그 시절, 코피를 흘리고 싶은 적이 있었다. 양 콧속으로 몇 시간이고 흘려버리고 싶은 게 있었다. 속옷이 젖어들면, 몸도 식어가겠지, 하고 상상했다. 웅크려 허벅지를 배 가까이 당기며, 눈이 점점 감겨오는 몽환을 느껴보고 싶었다.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은 어떨까. 방 한가득 피로 물들 수 있을까, 옷장이며 벽장까지. 그때 뭉클하게 떠오르는 얼굴, 나를 번쩍, 번쩍 들어 올려 병원으로 달려가는···어머니.
이문재는 1988년에 나왔던 시집을 2001년 재출간했다. 출판사도 민음사에서 문학동네로 바
꾸었고, 시도 조금 고치고(그는 ‘20년만에 다시 만나는 시들도 있다’고 했다) 시 배열도 달리했다. 왜 출간했을까. 물어보고 싶다. 길 떠난 行者가 똬리를 틀고 다시 집을 지은 셈이다. 마치 푸른 기억에 목책을 두르고, 낡은 옛집의 지붕을 엎는 것 같아 쓸쓸했다. 먼지 덮힌 책장에 꽂힌 낡은 옛 시집을 꺼내 들었다. 눈물이 나왔다. (사진은 http://www.dfstory.info/에서 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