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꾸 공순이, 공순이, 캐샇지 말어예. 어디 뭐 대학생이 씨가 따로 있어예? 우리도 눈·코 있고 귀 있고 입 있어예. 뭐시 굽었고 뭐시 바른동 분간할 줄 알고, 어디가 썩는지 어디가 뭉개(무너) 지는지 냄새 밭고 소리 들어예. 그런데 입는 입 가지고 와 말 못 하겠어예?···
로 시작되는 『九老 아리랑』은 노동운동을 하는 대학생과 ‘시다’인 女工의 이야기다. 경상도 방언을 구사하는 女工의 입담이 절절하다. 경찰 취조실에서 자백하는 형식의 1인칭 소설인데, 80년대 현장 노동운동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김현식은 다디던 대학에서 퇴학맞은 이유에다 위장취업 사실까지 밝히며 女工들에게 접근한다. 계급투쟁의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서다.
당시 80년대 대학생들의 지하노동운동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적지 않은 수의 대학생들이 강제징집을 피해, 경찰 수배를 피해, 공장으로 흘러들었다. 학생들이 노동 현장을 거점지역으로 활용한 것은 부르조아로부터 억압 받던 노동계급만이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마르크시즘에 영향 받은 것이 크다.
이는 ‘전태일 분신의 영향 등으로 노동자의 벗이 되고자 했던 1970년대 소박한 접근과는 차원이 달랐다(洪晋杓)’. 김현식도 그런 부류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女工의 말이다.
우리를 동지로 불러주데예. 물론 감격했지예. 생각해 보이소. 그 꼴 같잖은 대학생들 말입니더. 가아들 어데 저끼리 있으믄 우리를 사람택이나 여깁니꺼? 서로 잘모를 때는 죽자살자 따라 댕기다가도 공순이 라는 걸 알믄 천장만장 달라빼는 게 가아들이라예.
김현식은 시위를 주도하다 쫓기는 몸이 돼 女工의 자취방에 들어가 몸을 섞는다. 물론 결혼을 약속하지도 않았거니와 <그저 이념의 동지 간에 있는 작은 로맨스>일뿐이다. 또 고향 노부모에 보낼 돈과 함께 적금통장을 깨 ‘나중에 받기로 하고’ 김현식에게 돈을 건네기도 한다.
이쯤되면 다소 도식에 가까운 넋두리 新派調와 다를 게 없다. 마치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1973)』에 등장하는 버스 여차장, 공장 노동자, 군인, 개 도둑, 식모 등 산업화, 근대화 과정의 소외 群象 얘기에 좌표상 근접해 있다.
하지만 스토리는 다소 엉뚱하게도 김현식이 노동운동 하는 대학생이 아니라 女工을 등쳐먹는 사기꾼으로 묘사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대학은커녕 재수·삼수하다 대학을 포기하고 학생 행세까지 하며 공장을 떠돌다 노동운동이니, 의식화니 하는 말로 女工을 꾀어 희롱하는 놈이란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겠다”며 도리질 칠뿐이다. 그 도리질은 절규에 가깝다. (사진은 70년대 구로공단 벌집촌. 네이버 블로그 sonjabi5 에서 퍼옴)
아까부터 사람 불러놓고 엉뚱한 소리만 실실 해대는 게 내 보기에는 아저씨가 오히려 우째 된 거 같심더. 쓸데없는 소리 해 쌓지 말고 요점만 물어예. 현식이 오빠 얘기, 아무리 나쁘게 꾸며대도 말짱 헛일이라예. 뭐라 캐도 아저씨(형사) 말은 안 믿어예.
혹 이걸로 노동운동 하는 대학생들 몽조리 도맷금으로 우째볼 생각이믄 그건 틀렸어예. 우리가 아무리 몬 배우고 덜 됐다 캐도 그만 일로 흔들리지는 않아예.···그 오빠는 우리한테 우리 권리하고 노동의 존엄을 깨치준 사람이라예. 우리가 어떻게 억압받고 무엇을 착취당했는지를 알려준 사람이고, 무엇으로 우리 스스로를 회복시켜야 되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라예.···그 사람의 동기야 우쨌건 인자 우리는 한번 출발한 이 길을 갈 꺼라예.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구로 아리랑』의 스토리 전개가 이문열식 특유의 비틀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안티 이문열’ 집단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노동운동을 하러 뛰어든 학생들을 풍자시켜 야유를 보내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女工의 마지막 독백(‘흔들리지 않게’)도 학생운동을 비꼰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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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구로 아리랑』은 89년 박종원 감독에 의해 영상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검열과정에서 무려 21곳이 잘려나가 상당한 이목을 받았다. 소설 내용 중에는 잘릴만한 내용이 없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영화 <구로 아리랑>이 四肢切斷된 이유는 박 감독이 작품을 새롭게 각색, 스토리 전개를 바꿨기 때문이다. 영화 <구로~>는 소설 제목과 현식(이경영 扮)이라는 남자 주인공 이름만 나왔을 뿐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박 감독 말을 빌면 “노동자는 사용자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女工(옥소리 扮)이 사장 딸하고 자기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인지 ‘문제 장면’을 21곳이나 잘라냈다. 다만 영화가 지하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위해 ‘센치’한 요소를 많이 가미시켰다고 한다.
박 감독은 노동운동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서울 가리봉동에서 3주간을 살다시피 보냈다. 산업 선교회에 기웃거려 활가(노동 운동가)를 만나거나 女工얘기도 듣고, 상식적 관점에서 勞使간 문제도 생각해 봤단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다룬 시나리오에 대해 원작자인 이문열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 감독의 말이다.
이문열 씨도 수긍하면서, 자기 원작으로 영화화한 것 중에서 제일 좋다고 그랬다.
관객은 얼마였을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2만2천명이 입장했단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성적표다. 무려 21곳이나 잘라냈으니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국내 최초로 실제 노동자들을 영화에 출연시키는 정성을 쏟았지만 설익은 구호나 도식적 운동성을 강조하다보니, 노동현장을 냉철히 담지 못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女工으로 나온 여배우(옥소리, 윤예령)들이 한결 같이 예쁘고, 노동하는 손과는 거리가 먼 ‘새하얀’ 부르조아의 손이었다. 또 노동계급에 대한 고민이 생경스럽고, 나치게 작위적인데다가 성격묘사도 구두선에 그쳤다. (사진은 <구로 아리랑>에서 옥소리와 최민식)
<구로 아리랑>은 공권력의 폭력과 치열한 노동운동을 다룬 장산곶매의 16밀리 필름 <파업전야>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파업전야> 역시 작품성에 높은 점수를 받을 순 없지만, ‘피 끓는 절절함’을 찾아 볼 수 있다는 평가다. <파업전야>는 시중 영화관에서 개봉되지 못한 채 전국 대학을 돌며 상영됐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학번 중 대부분이 <파업전야>를 학교 강당에서 본 기억이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