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族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중국어 현지음 표기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9-10-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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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月刊朝鮮 해외 통신원(中國)인 김봉술 선생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金 선생님은 朝鮮族으로 중국 길림공업대학 졸업한 후 회사 생활을 했고, 현재는 동북과학기술 신문을 창간해서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祖國에 대한 사랑이 아주 깊은 분으로 조선족의 발전과 남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부 약물 기호와 오탈자만 손 보았습니다. 原文은 이곳 월간조선 홈페이지 해외 통신원 란의  ‘김봉술의 중국에서 본 고국의 정치문화’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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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현지원어’ 표기법은 폐지되어야

글쓴 날짜: 2008년 2월 2일

한자로 된 지명, 인명에 대하여 ‘한글어’ 로 표기할 것이냐, 아니면 중국어 ‘현지 원음’ 대로 표기할 것이냐를 놓고 우리는 최근 1년이 넘도록 옥신각신하였으나 지금껏 시원한 답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것은 우리 중국의 번역일꾼들이 한국 모 출판사의 청탁으로 도합 15권이나 되는 총서(시리즈)를 번역하게 되었는데 그 총서이자 바로 중국의 상고시대 신화로부터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분량으로서 거기에 나오는 고대, 현대 지명과 인명이 아마 수천 개는 넘다는 데서였다.

우리는 재래의 한글로 새겨야 한다는 원칙 하에서 그대로 번역하였더니 한국 측에서 신해혁명 후의 현대, 당대의 것은 ‘중국말 원음’ 대로 새기라고 원고를 되돌려 보낸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 ‘국립국어원’의 ‘성지’가 없는데다 설사 있다 해도 그 많은 인명, 지명을 우리로선 ‘현지원어로 창작’ 해낼 ‘수준’이 없었다.

그리하여 항변하였더니 한국 출판사 측에서는 ‘원칙’이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현지 원음’을 ‘창작’해내는 하였지만 ‘현지원음’에 비교적 숙달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로선 흡사 ‘개구리를 삼킨 듯’ 꺼림직 함을 금할 수 없다. 꼴불견이란 느낌이 온 몸을 휩싸 제절로도 부끄러운 감마저 난다.

사실이지 곤란은 한두 가지만 아니었다.

우선 방대한 역사책이다 나니 5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인명, 지명이 혼잡해 있다는 것이었다. 한 페이지 안에도 고대와 현대가 뒤섞여 있었다. 이를테면 고대 지명을 쓴 후 괄호 안에 현대 지명을 밝힌 것이나 현대지명과 같은 고대지명이 한 페이지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같은 지명, 이를테면 ‘南京’을 한 페이지에서 ‘남경’과 ‘난징’ 두 가지로 표기해야 되니 번역일꾼이 진땀을 빼는 것은 물론 독자들도 오리무중에 처하고 말 것이다.

그 다음은 ‘원칙’ 대로라면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전후를 나누면 된다고 하였는데 이 책 15권에서는 신해혁명(1911년) 후의 3, 4년까지 더 기술하였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바로 신해혁명전후기에 생존했다.

이를테면 신해혁명을 직접 조직한 孫武는 기의를 직접 영도하고 그 후에도 생존하였는데 그럼 기의 전에는 ‘손무’ 라 하고 기의승리 후에는 ‘쑨우’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것을 기준으로 새겨야 하겠는가? 난감한 일이다.

셋째로는 중국 근, 현대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1911년 무창기의 전에 출생하였는데 그때에 이름을 지었으니 ‘한글어’로 새김이 마땅하고 그 후에도 오래 생존하였으니 ‘현지원음’ 으로 바꿔 표기하여야 되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毛澤東’은 1893년에 태어났으니 1911년까지는 ‘모택동’으로 표기하고 그 후부터는 ‘모우쩌뚱’으로 새겨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가령 ‘모택동전 毛澤東傳’ 을 번역한다면 1911년을 기준으로 다른 새김 이름의 인물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박식가’들은 물론 일목요연하겠지만).

또 다른 한 가지는 ‘현지원음’에는 한국 ‘국립국어원’의 어른들보다 못지않다고 ‘자부’ 할만한 우리들이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게 만드는 ‘현지원음’들이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한어개혁에서 창안한 병음 ‘R, F, SH...’ 등과 같은 음들로서 ‘融, 飛, 上’ 따위이다.

아마 ‘국립국어원’의 ‘박사’ 들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 한글 발음에 이런 음이 존재하지 않으니깐. 방법이라면 이런 음과 비슷한 음에다 어떤 기호를 붙이고 유치원 애들부터 교육을 주어 기억토록 하든지 아니면 문장 한가운데에 ‘국제음성기호’를 박아 넣던지.... 그리고 ‘北京BEIJING’을 ‘베이징’이라 표기하였는데 기실 한어에서의 ‘B’는 영어에서와 달리 ‘ㅃ’에 해당함으로 ‘현지원음’으로 하면 ‘뻬이징’이 더 가깝다.

번역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어데서 이런 ‘한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한 ‘현지원음’ 원칙이 등대하여 사람을 괴롭히는지 투덜거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것이 권위성적인 한국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것이라 하니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어찌하여 한자를 이용하기 시작하여서부터 2, 3천년 이상은 실히 되고 <훈민정음>이 1453년에 출범되어서도 600년에 가깝게 고정된 한자 ‘한글법’을 헌신짝 버리듯 던지고 이런 ‘사불상四不象’의 ‘원칙’을 재창조하였는지? 그 ‘한글법’이 중국과의 교류에 무슨 지장을 끼치었는지? 한어를 배우는데 불리한지?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다.

남과 북을 망라한 한반도는 우리 한글(중국에서는 조선글이라 함)의 모체로서 거기에서 우리말에 맞는 새로운 단어들이 창출되지 않고 ‘사용원칙’이 확고하지 못해 이리저리 뒤흔들리면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말이 정체되고 갈팡질팡하고 말 것이다.

우리 중국의 조선족 언어 상황을 놓고 보더라도 한자 ‘현지원음’의 영향으로 지어 신문지상과 출판물에서까지(한국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는 부간 신문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이런 거북한 ‘현지원음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 ‘현지원음’에 익숙한 ‘현지 사람’ 마저 곤혹에 빠뜨린다.

한어에 그리 능숙치 못한 농촌에 가면 신문을 들고 ‘칭도우. 다롄, 원쟈바오....’ 처럼 익숙한 지명이나 이름도 물어보는 이가 수두룩하다.

개탄할 일이 아닌가!!! 거기에 한자어의 ‘사성四聲’ 마저 어리숙하면 당신이 아무리 진땀을 빼며 ‘현지어’를 구사해도 ‘현지원어’에 능숙한 한족은 물론 웬만한 ‘현지어’와 ‘한글어’를 장악한 우리 조선족일지라도 멍청해지고 말 것이다. 지금은 외래어표기법을 수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따위를 쟁론할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이런 법을 과감히 팽겨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천박한 소견만으로도 모두어 보면 한자 ‘현지원음원칙’은 아래와 같은 치명적인 폐단이 존재한다.

첫째는 수천 년 생산과 생활 가운데서 우리 민족이 한자를 자기의 언어습관에 알맞도록 받아들이기 위해 고명하게 창조하고 고정시킨 우리말 한자 ‘한글법’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다. 우리 민족은 우리글인 ‘훈민정음’이 창출되기 전인 썩 전부터 ‘이두’, ‘향찰’ 등 형식으로 한자를 우리 언어습관에 맞게 이용하여 왔다.

그때도 비록 우리문자는 없었지만 읽을 때 “孔子曰, 孟子曰...”을 “공자 왈, 맹자 왈...”로 읽었을 것이지 결코 ‘쿵즈왈, 멍즈왈..’이라 하지 않았음을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오늘날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를 명백히 지적한 <훈민정음>이 창출된지도 근 600년 되고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친 ‘천자문’도 일찍 그 새김을 우리말로 고정 시킨 지 오래 거침없이 쓰이고 있는데 어찌하여 새삼스레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 하는지 그 심사를 알바 없다.

둘째는 어르신들께서 ‘옥편玉篇’을 심심하면 들춰보시라. 우리 현명한 조상들은 수천수만 개에 달하는, 그처럼 어렵고 낙후한 한자를 우리말에 맞도록 한글자도 빠짐없이 새겨 후손들에게 넘겨준 데서 한자를 우리말로 들여오는데 지름길을 개척하여주었다.

그 ‘옥편’ 대로 한자를 우리말로 옮긴 ‘한자어’는 떳떳한 우리말이지만 ‘현지원음법’에서의 새김은 우리말을 되돌려 ‘외국어’로 퇴화시키는 반동이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말에 한자어가 70% 이상을 점한다고 하는데 ‘현지원음원칙’이라면 그 것들도 한어원음대로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지명, 인명만, 그 것도 ‘신해혁명’ 이후의 것만 그렇게 새긴다고 하는데 이건 무슨 ‘원칙’을 근거로 한 ‘원칙’인가? 다른 지명들은 ‘현지원어’로 새겨야 한다면서 유독 가장 돌출한 지명인 국명 ‘중국’만은 또 외따로 빼놓고 ‘현지원음’으로 표기하지 않는 ‘원칙’은 또 무엇인가? 납득이 도무지 가지 않는 ‘원칙’이다.

셋째는 간단한 지명 따위를 ‘현지원어’로 몇 개 외워도 별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옛적의 지명은 그래도 둬 글자씩 간단하였지만 지금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지역이 넓어지고 사회가 세분화되고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일떠서면서 상세한 지명은 장 바 마냥 길어졌다.

원음 대로의 ‘베이징, 샹하이’ 따위는 말은 얼버무려도 그런대로 배, 비행기를 타면 어기지 않고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릴 것이다. 문제는 도착한 후 어떻게 지점을 찾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북경에 내려서 한 고장을 찾는데 구, 구역, 청사, 번지 등 상세한 것을 ‘원칙’에 따라 ‘현지원음’으로 구사하면 듣는 자는 아마 중이 염불하지 않나 할 것이다.

‘원칙’에서 배운 대로 구사하느라 애를 먹지 말고 종이쪽지에 주소를 적어가지고 다니다 보여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편의 지명을 책에 싣는다면 보는 사람은 ‘천서’를 읽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넷째는 중국도 외국인데 지명이나 성명을 ‘현지원음’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고 반론할 것이다.

그 말은 옳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영국의 ‘런던’을 ‘현지원음’에 가깝도록 표기해야 함은 에누리 없는 ‘원칙’이다. 다른 방법으로 표기할 수 없으니깐.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중국에서 통용하는 한자와 우리민족의 고유 언어인 한글 사이에는 다른 언어와는 있을 수 없는 ‘혈연’ 관계가 있어 한글로는 한자어로 중국지명을 보다 정확하고 확실하게 표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태여 이미 기성된 우리말 한자어를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으로 퇴화시킬 하등의 필요성도 없다. 중국도 그렇다 하여 무슨 반발을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을 종래로 ‘쭝궈’라 부르지 않아도 종래로 가타부타 말썽이 없지 않는가!

다섯째는 현대적 공구인 컴퓨터사용에 막대한 어려움을 안겨준다. 이를테면 ‘북경’을 ‘베이징’으로 새기고 한자 北京‘을 찾기가 막심해진다. 반대로 북경을 한자로 써놓고 음독을 찾으려면 베이징이 나올 리 만무하지 않는가?

“컴퓨터를 통틀어 다시 새기면 되지 그 것이 무슨 대수냐” 하고 반기를 들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호박 쓰고 기어코 돼지 굴로 들 가겠다’면 그 발상부터가 안쓰럽다. 또한 범민족의 견지에서 보면 남한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원칙’을 쓰지 않으니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민족언어의 통일에 해가 되지 않겠는가?

한자 한글새김은 재래로부터 써온 완벽한 ‘법칙’으로 이미 우리민족의 언어습관에 깊이 슴배였기에 생뚱 같은 한자 ‘현지원어’ 법을 철폐하여도 혼란이 생길 걱정이 없으며 설사 얼마간 생기더라도 장래의 ‘혼전’에 비하면 추리는 대가가 썩 적을 것이다.

여섯째는 중국에서도 한때 좌적 경향으로 조선글에 한어명사를 마구 직역하여 쓰거나 원음대로 써버리는 돌풍이 불었댔는 데 지금은 습관상관계로 일상용어에서 한어말을 섞어 쓰는 현상이 존재하지만 출판물에서는 엄금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그러나 구두어에서도 지방명을 섞어 쓰는 것은 극히 희소하다.

그 외에도 이러저런 폐단이 많은 데 일후에 더 토론키로 하고 여기서 줄인다. 많은 견해들을 종합하여 시비를 가림으로써 한자 현지원어법이 하루 속히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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