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 전망과 그에 따른 고액 성과급 지급이 가시화되고 있다. 반도체 기업이 흑자를 내자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성과를 국민과 나누자”고 말한다. 기업이 손실을 볼 때는 침묵하던 이들이, 이익이 나자 배당의 주체가 되겠다고 나선 셈이다.
12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의 수익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이른바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김 실장은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끌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과실의 일부는 구조적으로 국민에게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의 발언은 마치 2011년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를 떠올리게 한다. 대기업이 목표치를 넘긴 이익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나누자는 것이 골자다.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이를 두고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강하게 성토했다고 전해진다.
김 실장의 발언은 2011년 논란보다 더 급진적이다. 김 실장의 발언은 곧장 외신인 블룸버그 통신에서 대서특필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한 고위 정책 당국자가 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활용해 국민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식’ 주식시장에 발을 들인 외국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꿈의 8000피’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코스피 지수는 장중 5% 이상 폭락했다.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폭락을 주도했다. 이날만 외국인들은 5조6075억원을 팔아치웠다.
지난달 4월 28일에는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반도체 호황은 특정 산업만의 성취가 아니라 여러 차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농축수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막대한 부담을 감내해 온 농어민들의 희생”이라며 “기업의 성과는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국가 정책과 사회적 비용, 농어민의 희생이 결합한 결과인 만큼 분배 역시 보다 넓은 책임과 균형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정책실장과 여당 국회의원은 국민의 안보와 성장을 맡고 있는 주요직이다. 이런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 사기업의 이익을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마치 공정한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연 한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의 이익은 기업의 소유자인 주주의 몫이다. 반대로 손실도 주주가 감당한다. 주주는 회사에 자본을 투자한 소유자로서, 기업 경영을 통해 발생한 순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사기업 이윤은 주주·투자·연구개발의 결과물이다. 정부가 배당 주체처럼 개입하는 순간 자유시장 원칙 자체가 흔들린다.
김 실장이 언급한 ‘초과이익’이라는 표현 자체도 모호하다. 얼마부터가 초과인가? 정치권 기준에 따라 많이 벌면 환수 대상이 되고, 적게 벌면 지원 대상이 되는 구조라면 기업은 어떤 식으로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가.
반도체 업황은 몇 년 주기로 급등락을 반복한다. 호황기의 이익만 떼어내겠다는 발상은, 불황기의 손실 역시 국민이 함께 책임지겠다는 의미인지 되묻게 만든다. 메모리 업황이 꺾였던 시기, 수조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정치권은 ‘국민 손실분담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결국 ‘성과급 국민배당제’ 논의는 장 원칙보다 표 계산에 가까워 보인다. 청와대는 “김 실장의 발언은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장관급 참모이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보좌하는 핵심 책임자의 개인 생각이면 시장은 당연히 정부의 정책 구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기업 이익을 겨냥하면 박수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은 결국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기업을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세금 창구’ 정도로 보는 인식 아래선 어떤 기업도 장기 투자를 결심하기 어려울 것이다.
글=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