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provisation 1, 2026, Aluminium, h 150 x 160 x 143 cm
쇳물을 공중으로 던진다. 1200도짜리 금속 액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흩어지고 엉겨붙는 그 순간, 조각가는 결과물을 통제하지 않는다. 그저 반응할 뿐이다. 이 긴장과 불확실성 속에서 형태가 태어난다.
리안갤러리 서울(종로구 자하문로12길 9)이 5월 14일부터 6월 30일까지 조각가 윤희(Yoon-Hee, 1950년생)의 개인전 《Improvisation》을 개최한다. 일·월요일 휴관. 문의: 02-730-2243.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회화를 공부한 윤희는 1980년대 초 파리로 건너가 정착했다. 흙을 굴리고 던지고 문지르는 행위에서 시작한 그의 조각은 이후 주석·납·알루미늄 같은 금속으로 재료를 넓혀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쇳물 작업이 중심이 됐다.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허리디스크였다. 금속덩어리의 무게가 몸을 상하게 해 더 이상 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던 그는 오히려 애초에 몸으로 들어 올릴 수 없는 규모의 재료를 선택했다. 고온의 금속 액체를 녹여 부어내거나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방식으로 조각의 언어를 바꾼 것이다. 2003년작 〈Les Trois Ombres〉에서는 1200도에 달하는 청동 액체 250~300킬로그램을 원추 주형에 단번에 부어내는 극도로 위험한 작업을 감행했다.

Improvisation 20250819, 2025, Acrylic on canvas, 227 x 182 cm
이번 전시 제목 'Improvisation'은 단순히 즉흥을 뜻하지 않는다. 윤희가 말하는 즉흥은 충동이나 우연이 아니라 오랜 감각의 축적 위에서 이루어지는 고도의 집중에 가깝다. 통제하되 완전히 통제하지 않는 것, 흐름에 반응하되 그 흐름을 설계하지 않는 것 — 그 균형 어딘가에 작품이 생성된다.
1층에는 쇳물 조각 신작들이 놓인다. 〈Improvisation 1〉(알루미늄, h 150×160×143cm)은 작은 원뿔 형태를 기본 구조로 삼아 금속이 녹아 흐르고 응고되는 찰나의 형상들을 포착·접합한 작품이다. 연약하고 섬세한 생김새지만 공간에 강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총 4점으로 구성되며 장소에 따라 수와 배치를 달리하는 가변적 설치 방식을 취한다. 〈Creusé〉는 쇳물을 반복적으로 공중에 던지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흩어지고 엉겨붙는 수많은 찰나의 시간이 하나의 덩어리 안에 응축되어 있다.
지하 1층은 회화다. 붓을 쓰지 않는다. 물감을 붓고 뿌리고 던진다. 〈Improvisation 20250819〉(227×182cm)와 〈Improvisation 20251202〉(180×180cm) 등 신작들에서 윤희의 호흡과 움직임은 끊기지 않는 흐름이 되어 화면에 그대로 새겨진다. "때로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혹은 그림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작가의 말이 이 일련의 캔버스들을 요약한다.
작가와 물질의 협공 결과가 작품이라는 철학은 조각과 회화 모두를 관통한다. 윤희에게 조각, 회화, 드로잉은 서로 다른 물질적 조건 속에서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조각에서 얻은 감각이 회화를 바꾸고, 회화에서 발견한 구조가 다시 조각의 변화를 이끈다.
윤희의 작품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FNAC),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022년에는 독일 코블렌츠의 루트비히 뮤지엄에서 《non finito》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서울 전시는 2024년 리안갤러리 대구 개인전 《Sculpture to Painting》에 이은 후속 무대로, 서울 관객을 위한 첫 대규모 쇳물 조각·회화 동시 공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