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마을의 겨울철 모습(2002년 설날).
마을 이름인 '움골'이라는 지명은 동네가 골짜기를 따라 길게 들어서서 붙혀졌다는 설이 있다. 동네 노인들도 마을 이름에 대한 유래를 정확하게 모른다.
(관련 기자수첩 글 참조->동네 이름에 대한 생각). 설날이라서 그런지 사진 왼쪽 아래 고향을 방문한 젊은 사람 세 명이 걷는 것이 보인다.
우리 동네 집들은 예전부터 담이 없었다(물론 몇 집은 예외). 심지어 그 흔한 싸릿대문이 있는 집조차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아무 집 마당이나 들어가서 터잡고 놀면 다 우리들 놀이터였다.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만 20년 전과 비교해서 완전히 사라진 집이 5채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5채의 집이 사진 속에 더 있었다는 뜻이다. 트랙터가 서 있는 공터에 한 채, 사진의 맨 윗부분에 2채, 붉은 색 지붕이 있는 양옥집 뒤가 2채의 집이 더 있던 장소.
지금 사진에 6채의 집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 3채가 빈 집이다. 트랙터 너머 붉은 색 집 옆의 약간 고풍스런 기와집(현재는 흰색 슬래트 지붕), 사진 맨 위쪽의 집, 붉은 색 양옥집 뒷집이 현재 빈집이다.
트랙터 너머의 기와집은 지금은 슬래이트 지붕을 이어 놓았으나, 원래 우리 동네의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지은지 400년이 넘는 데도 아직 멀쩡하다. 저런 집이 바로 문화재다. 현재 동네에서 '기와집' 이라고 하면 이 집을 가리킨다. 저렇게 빈 집으로 두면 몇 년 안가서 무너질텐데 좀 걱정이다. 무너지면 400년 세월이 말짱 끝이다.

우리 마을의 여름철 모습. 여름 철에는 수풀과 나무에 가려서 동네가 잘 안 보인다. 이 사진은 위의 사진 찍은 곳보다 약간 아랫쪽 마을 모습(윗 사진의 붉은 색 지붕의 양옥집이 사진 오른편 나무 사이로 언듯 보임) 한 때 50~60가구가 넘던 동네에, 지금은 열 대 여섯 채의 집에만 사람이 살고 있고, 대부분이 70이 훨씬 넘은 노인들이다.

작년 여름, 모내기 철 일하다가 점심 때 잠시 집에 들러 마당에 앉아서 찍은 사진.(사진 속에 표시된 날짜는 잘못됨)
요즘은 기계로 모를 심는다. 모를 심기위해서는 먼저 모판을 못자리에서 떼어낸 후 논마다 옮겨놓아야 한다. 이날 대구에서 일 도우러 내려온 자형(사진 오른쪽)은 지게로 모판을 하루종일 져 날라서 어깨가 다 벗겨졌다. 자형이 없었으면 70이 넘은 우리 아버지가 모판을 다 져 날랐을 것이다. 나는 지게질이 서툴러 손으로 날랐다. 사진 속에 바지가 흙탕물 투성이가 된 것은 모판을 나를 때 논 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은 몇 년 전 여름 휴가 때 시골에 내려가서 모내기 일을 돕는 모습. 기계로 모를 심으면 중간중간 모가 잘 심기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사진처럼 손으로 다시 심어주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에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모가 벌써 너무 많이 자랐고, 심어 놓은 모도 파릇파릇한 것이 뿌리가 내려 제법 자란 모습이다. 원래 저렇게 늦게 모를 메우면 안되는데, 시골에 일손이 모자라 부모님이 미처 일을 덜 끝냈기 때문이다.
모 메우기 작업은 보통 모를 심고 난 직후 하거나, 늦어도 모를 심은 지 1~2주일 안에는 끝내야 한다. 너무 늦으면 모 메우기 작업을 해봐야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논 바닥이 듬성듬성 빈 곳을 눈 뜨고 못 보는 성격이라, 모내기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끝까지 모를 메운다. 아버지는 또 논에 풀이 자라는 것도 그냥 못 보는 성격이다. 모 메우기 작업이 끝나면 7~8월 땡볕에 동네에서 혼자 김메기를 하신다. 요즘 시골에서 무논 바닥에 구부리고 업드려서 손으로 김메기 하는 사람 없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한 해도 안 거르고 논 바닥의 김을 메신다.
8월의 김메기는 푹푹찌는 더위에다, 거의 다 자란 벼 잎사귀가 눈과 목을 자주 찌르기 때문에 무척 힘든 작업이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논에 풀이 가득자라도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많다. 사진에서 옷이 깨끗한 것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나면 흙투성이가 된다.
(기계로 모내기 후 이렇게 빠진 곳에 모를 다시 심는 것을 '모들구다'라는 용어를 쓴다. '모를 논에 추가로 들인다'는 뜻이다.)

마당에서 곡식을 만지시는 어머니. 여름 뙤약볕에 밭고랑을 메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평생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해 왔다. 어머니가 다듬고 있는 것은 '양대'(강남콩) 나 '불콩' 같고, 멍석에 널어 놓은 것은 들깨 같다.(참깨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