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많이 듣지만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 '저희'라는 단어입니다. 특히 야구 중계나 축구, 올림픽 등과 같은 국민적 관심을 끄는 스포츠 중계가 이루어 질 때면 방송은 그야말로 '저희'란 말로 도배가 됩니다.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도 '저희 팀' '저희 선수'..., 해설자도 '저희 팀' '저희 선수'..., 심지어 선수와 감독들도 '저희 팀', '저희 선수'란 말이 입에 배어 있습니다. 저번 동계올림픽 쇼트트렉 중계에서 아나운서가 하도 '저희 선수'라고 하기에 도대체 '저희'란 말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수첩에 적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교수라는 분이 TV에 나와서는 '저희 사회'라고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이거 진짜 큰일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케이블 TV 프로그램 중 다큐멘터리 관련 채널을 좋아합니다. 이들 방송에는 역사, 자연, 문명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아 교육적이고 재미가 있어 자주 보는 편입니다.
이들 프로그램의 자막을 볼 때마다 늘 거슬리는 것이 바로 이 '저희'라는 단어입니다. 몇일 전에는 2차 대전 중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치열했던 해전을 회고하는 미군 노병의 말 중에 '우리'를 뜻하는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로 자막처리 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전우들은 용감했죠"
"저희 부대는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은 저희 함대가 다가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죠"
이런 식으로 한문장 건너 한 문장마다 '저희'라는 단어가 나오니 도무지 문장이 힘이 없고, 전쟁 다큐멘터리 맛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적군하고 싸운 이야기를 하는데, 말끝마다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으니 그 어감이 참으로 우습게 들렸습니다.
또 다른 날은 미국 나사의 화성 탐사 계획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프로그램에는 화성 탐사에 참여 했던 수십명의 과학자들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나사 과학자들이 말한 수많은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눈을 부릅뜨고 보았으나, '우리'라는 단어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때 제일 먼저 배운 단어가 '나' '너' 다음에 '우리'라는 단어였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나' '너' 다음에 '저희'라는 단어를 배워야 할 판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생각해 봐도 제가 어릴 때 어른들 앞에서 '저희'라는 말을 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선생님이 동네를 물어보면 "우리 동네는 어디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동네 노인이 아버지 이름을 물어볼때도 "우리 아버지는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어른들이 물을 때 '우리 동네',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 '우리 누나', '우리 회사', '우리 학교'라고 대답했지 '저희 동네', '저희 아버지', '저희 삼촌', '저희 누나', '저희 회사', '저희 학교'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집에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 아이들도,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
어린이날 노래 가사에서도 '우리들 세상'이라고 했지, '저희들 세상'이라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손잡고'를 '저희 모두 손잡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래전에 작곡된 MBC 로고송에서도 '우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저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하고 부처님한테 기도할 때조차 '우리 집, 우리 가족 잘 돌봐달라'고 했지, '저희 집' '저희 가족' 이라고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 만큼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런 정겨운 '우리'라는 말이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라는 한 단어 빼고는 거의 전부 '저희'란 말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란 단어를 써야 할 경우 마저 열에 서너 번 정도는 '저희 나라'라는 단어가 들릴 정도로 '저희'란 말이 입에 배어 있습니다.
나의 낮춤말은 '저'입니다. 그래서 손 윗 사람에게는 나를 칭할 때는 '저'라고 하는 것이 예의 바른 어법입니다. '저희'라는 말은 나를 낮추어 부르는 '저'라는 단어서 파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저'라는 말로 낮추기 때문에 '우리'도 '저희'로 낮추어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희'라는 말이 비록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사람을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저희'의 높임말이 '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낮춤말 높임말이 적용되지 않는 중립적인 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밥과 진지', '집과 댁', '보다와 뵙다', '주다와 드리다' 등은 명백한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말이지만, '우리'와 '저희'는 이런 식의 관계가 아니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고찰해 보면 '저희'라는 말이 우리 언어 생활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진 것은 1990년 대 들어서 입니다.
당시 10대, 20대 들 연예인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은 자신들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말끝마다 '저희'를 남발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많은 국민을 접해야 하는 TV 진행자, 아나운서 등 방송관계자들은 '안전심리'에 의해 '저희'라는 말에 쉽게 물들었고, 결국 우리의 언어 생활에서 '우리나라' 빼고는 전부 '저희'를 갖다 붙여야 뭔가 마음이 놓이는 사태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희 사장' '저희 회사' '저희 사회' '저희 삼촌''저희 사회' '저희 아버지' '저희 팀'.... 이런 말은 어법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지금까지 사용해 온 우리의 언어 감각과도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같이 마구잡이 겸양어 사용은 말의 품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립니다.
머지않아 일상 생활 용어에서 '우리'라는 말이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당분간이라도 의도적으로 '저희'란 말의 사용을 줄였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