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집 아이인고?“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6-01-1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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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동네 노인들을 마주쳐 인사를 하면 저를 잘 못 알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야 매일 동네를 휘젓고 다니니까 서로가 알지만, 장기간 객지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내려오면 동네 노인들은 '저게 누군가' 하고 한참을 쳐다 봅니다. 

 

어쨌든 길에서 마주친 노인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면 저는 "누구입니다" 혹은 "누구 동생입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노인은 "맞다"하며 맞장구를 치고 반갑게 인사를 받습니다. 그래도 모를 경우는 아버지의 함자를 대고 "누구 집 몇째입니다"하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저같은 젊은이들은 동네 고향 사람들에게 이름보다도 '누구 동생' 혹은 '누구 집 몇째 아들'로 더 잘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칭찬하는 말을 할 때도 노인들은 "뉘 집 아이는 어떻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럼 아직도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하거나, 잘 할 경우 그 아이의 아버지를 같이 끌어 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대방에게 하는 욕 중에 제일 심한 욕이 '천하에 배워 먹지 못한 놈'이란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상놈의 자식'이란 말보다 더 심한 표현일 것입니다. 배워 먹지 못했다는 것은 공부를 덜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육을 잘 못 시켜서 저렇게 버릇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한마디로 '호로자식'과 비슷한 욕인데, 아이가 잘못하면 그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요즘 "어디서 막 배워 먹은 행동이냐"는 말을 쓰는데, 이 말도 따지고 보면 "너는 어미 애비도 없이 막 자랐냐, 왜 그리 버릇이 없냐"는 뜻을 포함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에 배워 먹지 못한 놈'과 비슷한 꾸지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자식의 잘못된 행동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 특히 손 위 사람 대할 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때문에 전혀 본 적도 없는 남의 동네 노인이 자기에게 아무리 기분 나쁘게 하더라도 노인에게는 쉽게 대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자기가 '뉘 집 자식'인가 밝혀지는 날에는 아버지에게 '초상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애비가 낯을 못 들고 다니게 생겼다"고 말입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별 이상한 일을 다 봅니다. 그 중에 가장 한심한 광경이 자리 때문에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 '네 내'하며 싸우는 모습입니다. 

 

대개의 경우 노인이 먼저 "젊은이가 버릇없이 자리를 안 비킨다"고 야단치면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노인이라도 남이 차지한 자리를 "비키라"고 할 권리는 없는데, 간혹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노인들이 그렇게 나온다고 같이 대들면서 싸우는 젊은이의 모습도 보기 좋지 않습니다. 

 

리 모두 '뉘 집 아이'인지 한번쯤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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