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낸 추수감사절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5-12-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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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말 여름 휴가를 미뤄 놓았다가, 한 열흘 가량 미국의 누나 집에 다녀왔습니다. 누나는 1984년에 미국 사람과 결혼하여 현재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외곽에서 바(bar)를 두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머무는 동안 콜럼버스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흩날린 눈발이 겨우 몇 밀리미터 쌓일까 말까 했는데, 온 길이 새하얗게 될 정도로 소금을 뿌려댑니다. 바람이 조금 분다 싶으니까 시내에 경고 싸이렌이 울립니다.


흩날리는 눈. 눈이 이 정도만 와도 길에 소금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뿌린다.

 

이때쯤 소형 픽업 트럭을 개조한 제설차들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바쁩니다. 이 소형 제설차는 민간인들 소유입니다. 소형 제설차 주인은 눈이 많이 올 경우 쇼핑몰이나, 아파트 주차장의 눈을 치워주고 시간당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눈 오는 날이 이 사람들의 대목이지만, 이날 흩날리는 눈발로 봐서 일거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도착한 날이 때마침 추수감사절 주간이라 모두들 명절 준비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누나는 추수감사절 전날 바에 손님을 100명 정도 초청했습니다. 많은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쇼핑이 이어졌습니다.

파티를 위해 칠면조를 다섯 마리나 구웠습니다. 누나는 수완이 좋아 네 마리는 손님들에게 맡기고, 한 마리만 자기가 구웠습니다.

 

미국 음식은 만들기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100인 분의 음식도 파티 당일 날 오후 2시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세 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누나 친구 한 명과 바의 단골 여자 손님 두 명이 와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자 손님들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식구들과 같이 보내기 때문에 주로 그 전날 친구들과 밖에 나와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누나의 남쪽 바 모습. 오전 11시 청소를 마친 후. 첫 손님이 오기 직전이다.

 

요즘 미국 술집에서 제일 잘나가는 것이 에너지 음료(레드불)와 양주를 섞은 술입니다(이름은 잊어 버림). 이 에너지 음료는 우리로 치면 박카스 정도 되는데, 알미늄 캔에 담겨서 나옵니다. 손님들은 이 에너지 음료 반에 양주 약간 섞은 술을 즐겨 찾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바에서 이 음료에 술을 섞어 먹기 때문에 레드불 만드는 회사는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술 마시는 이야기는 제가 월간조선 2004년 9월호에 「현지 르포- 술집 巡禮로 확인한 美國의 무서운 술 문화」라는 기사를 통해 자세히 소개 한 바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사 쓰려고 작년에 미국 누나 집에 갔을 때 술집을 10여개나 돌아 다녔습니다.


바에서 연 추수감사절 저녁 파티. 100인분의 음식을 준비했다.

 

저녁 늦게 누나가 운영하는 또 다른 바인 북쪽 바에 갔습니다. 북쪽 바는 남쪽 바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콜럼버스 시 북쪽에 있습니다. 1998년 누나가 이 북쪽 바를 살 때 만해도 이 주변에 백인들이 많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흑인동네로 바뀌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관행적으로 흑인바와 백인바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누나 바는 백인 바입니다. 

 

이날 북쪽 바에 들리니, 밴드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바에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누나 말로는 『평소에는 파리만 날리는 데 오늘은 밴드가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복작복작 한다』고 합니다. 이날 장사한 돈으로 밴드 값 주고, 종업원 임금 빼고, 술값 원가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돈이 남지 않아도 밴드를 부르는 것은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입니다. 

 

밴드를 한번 부르는데 500~ 600불 정도 줍니다. 이날 누나가 부른 밴드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누나 바에서만 연주를 해 왔다고 하는데, 이 밴드가 인기가 많아 손님들을 많이 끌고 다닙니다. 밴드를 잘 못 쓰면 그날 손님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밴드 멤버들은 직업으로 음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평소에는 각자 다른 일을 하다가 명절 때나, 바에서 부르는 날 모여서 연주를 합니다. 바에서 받는 돈을 자기들끼리 나누면 겨우 술값 벌어 가는 정도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북쪽 바의 모습. 밤 10시경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재미있습니다. 모두 자기 흥에 겨워 놀고 있었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시는 아버지와 딸, 밴드 연주에 따라 춤을 추는 여자, 술이 흥건히 취한 청년... 이렇게 바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잡담을 하면서 추수감사절 전날 저녁을 보냅니다. 

 

1차, 2차, 3차에 노래방까지 가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우리의 술 문화를 생각해 보면 미국 사람들 술 마시는 모습이 상당히 양반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맥주 한병 들고 무슨 재미로 저러고 놀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북쪽 바에서 추수감사절, 새해, 크리스마스 등 명절에 밴드를 부르지만, 남쪽 바에서는 밴드 대신 일 주일에 한번씩 DJ를 부릅니다. DJ는 바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누나 바에서 가까운 어느 바는 백인 DJ가 「이상하게」 흑인 음악만 계속 틀기 시작하자 몇 달만에 흑인바로 변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 바에 가보니 손님의 4분의 3정도가 흑인이었습니다. 아직은 간간히 백인들이 찾아 오지만, 이 상태로 가면 얼마 안 가서 완전한 흑인바가 될 거라고 합니다. 

 

저는 미국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누나 바에 나가서 청소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바텐더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고, 청소인원을 따로 고용해야 합니다. 

 

누나 바에서는 기존에 청소를 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운전면허가 취소되어 지금은 누나가 직접 바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차에 대마초를 싣고 다니다 경찰에 몇번 걸려서 면허가 취소 되었습니다. 

 

가 바 청소를 해보니 대강 이렇습니다. 11시에 바 문을 열면 바닥에 흩어진 팝콘과 휴지를 쓸고, 밀대질을 합니다. 카페트로 된 바닥 부분은 진공청소기로 밀어야 합니다. 그 후 화장실을 청소하고, 바 안에 있는 곳곳의 휴지통을 비웁니다. 마지막으로 홀에 있는 통에 얼음을 채우면 한 시간 정도가 지나갑니다. 청소를 마칠 그때쯤 대개 첫 손님이 들어옵니다. 바에 오는 손님들은 주로 누나 바의 단골들입니다.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종업원들도 가족과 보내려고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바는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누나는 바에서 청소를 하다가 운전면허 취소로 그만 둔 남자를 일일 바텐더로 세워 추수감사절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 남자는 명절 때만 누나 바에서 바텐더를 한다고 합니다. 

 

이날 새벽 2시, 누나는 운전면허가 박탈된 이 일일 바텐더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콜럼버스 시 남쪽으로 한 시간 가량 차를 몰자 흑인 빈민촌이 나왔습니다. 그는 이곳 빈민촌 어디에서 친구랑 500불 짜리 방을 얻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남자는 자기가 어디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집도 없는 허허벌판 교차로에서 자꾸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누나는 최대한 그 사람 집과 가까운 곳에 내려다 주었습니다. 불빛도 없는 어느 빈민촌 주유소 앞에 내려주자, 그는 춥고, 컴컴한 길을 걸어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남자가 왜 이렇게 먼 곳에서 그것도 버스를 타고 술 마시러 누나 바까지 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날은 누나가 일일 바텐더로 불러서 온 것이지만, 평소에도 술 마시러 누나 바에만 온다고 합니다. 누나 말로는 손님들이 단골집을 잘 바꾸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절 저녁(대개 점심 무렵부터 먹는다)에는 누나의 친구가 자기 부모님 집에 식사 초대를 해서 갔습니다. 

 

나 친구 부모님 집은 콜럼버스에서 동쪽으로 좀 벗어난 한적한 곳에 있었습니다. 작고 지은 지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40~5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이처럼 작은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옛날 집들은 요즘 주차장을 방으로 개조해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작은 집은 잘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 집, 큰 차 좋아하는 것은 한국 사람과 너무 닮았습니다. 

거실에 있는 당구대 위에 가죽 천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흰색 테이블 보를 깔고, 색깔 띠 수건을 테이블 가운데 두르니 멋진 추수감사절 디너 테이블이 되었습니다. 이날 자기 부모 집을 방문한 자식들은 모두 다섯 명, 며느리와 손자 손녀까지 오니 좁은 집이 북적거렸습니다. 부모 집을 방문하는 자식들은 저마다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 왔습니다. 누나는 불고기를 해서 가져갔습니다. 

 

남자들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미식축구를 보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요리가 다 되자, 온 가족이 테이블에 둥글게 모여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후 요리를 한 접시씩 담아 들고 먹으며 잡담을 나눕니다. 이날 저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한국도 여기처럼 춥냐』는 것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부터 크리스마스 때까지 미국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쇼핑입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빅 세일」이 있는데, 추운 날 새벽 4시부터 쇼핑몰 앞에 줄을 길게 서는 미국 사람들의 모습을 TV로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새벽 5시에 문을 연 쇼핑몰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고 싸움박질하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이날부터 TV는 온 종일 쇼핑 이야기 밖에 하지 않습니다. 쇼핑... 쇼핑... 쇼핑... 

 

 누나는 『먹고 쇼핑하고, 먹고 쇼핑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큰 낙』이라고 했습니다. 주변에 온통 살찌는 음식 밖에 없고, 그나마 짧은 거리도 모두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비만이 미국 사회의 가장 큰 적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성인들의 70% 가까이가 심각한 비만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한 쇼핑몰에 가보니 전날 까지만 해도 온통 추수감사절 용품밖에 없던 곳이, 금새 크리스마스 용품으로 싹 바뀌어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오하이오 주립대와 미시건주립대의 미식축구 경기 때 바에 온 손님들끼리 내기를 기록한 대전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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