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름에 대한 생각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5-12-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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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난 시골 마을 이름은 움골입니다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름이라 동네 노인들도 마을 이름이 웅골인지, 움골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이 우리 말 동네 이름도 관청에 등록할 때는 한자를 써야 했기에 한자로는 '우음(牛音)'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가난한 일부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마을 부근에 움막을 치고 살았고, 그 후 사람들이 움골로 불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움골이란 마을 이름은 빈곤한 시골 골짜기’를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동네가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고, 수 백년을 농사만 지으면서 가난하게 살아온 마을입니다. 동네에 400년 된 기와집이 한 채 있는데, 비록 지금은 기와집이 많다고 해도 우리 동네에서 기와집이라고 하면 400된 그 집 하나를 가리킵니다. 이 유일한 기와집 덕분에 우리 동네가 최소한 400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움막 마을이었다고 해도, 움골이란 동네 이름은 그 나름대로 역사성을 가지고 수백년을 이어온 이름입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노인들이 멋있고, 때깔나는 이름을 새로 짓지 않고 빈곤한 골짜기를 연상시키는 움골이란 이름을 버리지 않고 수 백년을 지켜온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 대부분은 우리 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말 이름을 가진 동네는 신라, 고려, 조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행정적인 이유로 대부분 한자로 된 지명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골 노인들은 한자로 된 지명보다 우리말로 된 지명을 더 선호 합니다.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꿀 때, 움골우음으로 바꾼 것처럼 한자의 음을 빌려와서 쓰는 경우와, 샘마천리(泉里)라고 바꾸는 것처럼 지명이 원래 가진 뜻을 살려 한자로 바꾼 경우가 있습니다.

 

잠시 저의 고향 面에서 실제 동네 사람들이 즐겨 쓰는 지명과 행정용으로 등록된 이름을 살펴 보겠습니다.

 

새마-신촌(新村), 안골-내동(內洞), 새마-신동(新洞), 양지마-양촌(陽村), 모산-지내(池內), 못뒤-(지후)池後, 담바우-담암(淡癌), 새랄-본동(本洞), 가른밭-기전(岐田), 범우리-호명(虎鳴), 새터-신기(新基), 잿마-성촌(城村), 새내비-산합(山合), 솔무듬(쇠무듬)-송곡(松谷), 번개-반계(磻溪), 안찔-원곡(原谷), 솔리미-송림(松林), 가느미-간산(艮山), 어지리-어촌(漁村), 골마-곡촌(谷村)

 

위에 예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 지명을 한자로 바꿀 때 대체로 본뜻을 살려서 표기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한자로 된 지명이 더 강세를 지닌 곳도 있고, 한자 이름은 형식적이고 우리말 지명만 사용하고 있는 동네도 있습니다.

 

관청에 등록할 필요가 없는 동네 내의 골짜기, 논밭, 산 이름은 아직도 거의 우리 말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동네인 '움골' 주위의 골짜기와 논밭에 붙은 이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부치고(부처골, 부근에 부처상이 있었는 듯), 하이고(어원 모름), 반절(옛날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함), 큰메뚜(큰 뫼뚝이라는 뜻일 것), 성개미(어원 모름), 새장골(어원 모름), 동산말래(동산마루) 등등입니다.

 

만약 위에 열거한 지명도 조선시대에 관청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면, 적당한 한자를 찾아서 지명을 썼을 겁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위 지명에서 한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위에서 ‘동산이란 지명은 예외).

 

몇 개월 전 서울 성북구가 미아리라는 지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름을 바꾸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미아리'가 눈물의 미아리 고개’, 집창촌’ 등을 연상시켜 좋지 않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미아동'이 있는 강북구가 "왜 남의 좋은 동네 이름까지 도매금에 넘기려 하느냐"며 항의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성북구처럼 따지고 들었다면 움골이라는 누추한 움막을 떠올리지만, 정겨운 우리 동네 이름은 수백년을 내려오지 못했을 겁니다.

 

옛날에 청계천 다리 밑에 거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청계천 다리 밑에 얼마나 거지가 많았으면 이 말이 전국적인 속담이 되어 제가 어렸을 때도 이 말을 하고 다녔을 정도입니다.

 

미아리 이름을 바꾸자는 것은 청계천이란 이름이 거지를 연상시킨다고 이름을 바꾸자는 것과 똑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제에 의해 명백하게 왜곡된 이름이라면 모를까 정겹고 역사성이 있는 이름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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