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시가 서울의 漢字 표기를 ‘首爾’(수이: 중국음=서우얼 혹은 셔우얼)로 정하고 중국에 이를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중국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서울 시가 ‘서울’을 원음에 가깝게 불러 달라는 데야 이의를 달 생각 없지만, 그간의 과정을 보면 뭔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수천년 간이나 漢字를 國字로 사용해 온 나라로서 한자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중국은 그 동안 서울을 서울의 옛 이름인 ‘漢城’(한성: 중국음=한청)으로 불러 왔습니다. 중국이 애당초 우리의 ‘서울’을 표기할 때 서구의 관례를 적용해서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한자를 채택해서 표기해 왔다면 별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서울을 굳이 ‘한성’이 아닌 다른 한자로 표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중국이 우리와 국교를 수립한지 이제 겨우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전에는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北京이 중국에서는 '베이징'으로 발음된다는 것을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미디어가 발달한 극히 최근의 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양국의 교류가 늘어나고, 서울의 지명도 '한성'이나 '한양'이 아니니까 이제는 중국이 서울을 ‘수이(서우얼)’로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프랑스를 '불란서'라고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아예 원음인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오브 아메리카’하고는 전혀 다른 ‘미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사람들이 “남의 나라 국명을 왜 너희들 마음대로 발음하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발음인 '코리아'라고 표현합니다. ‘코리아’는 우리의 국명이 고려일 때도, 조선일 때도 ‘코리아’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명이 또 다시 바뀐다고 해도 서구 사람들은 우리를 역시 ‘코리아’로 부를 확률이 높다 하겠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Dae Han Min Kook'(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해서 우리가 항의하지 않을 것도 확실합니다.
이처럼 남의 나라 국명을 전 혀 다른 소리로 표현해도 서로 따져 들지 않는 것은 문명국끼리 서로의 문화와 언어가 자라온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 ‘한국’을 '한궈' 라고 발음 한다고 합니다. 일본은 ‘한국’을 '칸코쿠'라고 발음 합니다. 우리도 본토 발음대로 부르자면 중국은 ‘중궈’, 일본은 ‘니혼 혹은 니폰’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 나라를 ‘중국’ ‘일본’이라는 우리식 한자음으로 발음합니다.
이를 두고 동양 3국이 서로에게 “왜 그렇게 너희 멋대로 나라 이름을 발음하냐”고 항의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한자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3국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각국의 국명이 소리만 다를 뿐 그 근본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지 ‘한성’이 아니지 않느냐. 따라서 음은 다르지만 의미는 동일한 ‘국명’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시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성이 서울로 바뀌었으니, 서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중국이 우리의 서울을 ‘한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원래 우리나라 서울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존재하지도 않던 엉뚱한 이름을 지어내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현재 서울은 한자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한성은 곧 대한민국 수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중국어를 번역할 때 한성을 ’서울‘로 번역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성이 오래된 호칭이나 지명이라도, 당사자가 싫어하면 부를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몽골 사람들은 '몽고'라는 중국식 표기를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이 자신들을 깔보기 위해 그렇게 불렀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인 몽골이 ‘몽고’라는 단어에 모욕감을 느끼는데도 우리가 계속해서 그렇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에반해, 중국이 서울을 서울의 원래 이름인 '한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우리가 무슨 모욕감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이 국제 도시이고, 전 세계가 '서울'이라고 부르는데 중국 너희들은 왜 굳이 '한성'으로 부르느냐"고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저는 서울시의 이런 주장 자체가 한자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나온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 바탕에는 ‘한성’에 중국 ‘漢나라’를 뜻하는 ‘漢’ 자가 들어가서 기분 나쁘다는 의식도 한몫 있다고 봅니다.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으려면, 한성 이전 명칭이자, 또 다른 명칭인 ‘한양(漢陽)’이란 지명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제나 신라 고구려 사람들이 ‘한양’을 어떻게 불렀는지, ‘한양’이란 이름은 어떻게 나왔는지, ‘한’이란 발음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먼저 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성’과 '한양'의 ‘漢’ 자는 우리말 ‘한’을 한자로 빌려 쓴 것에 유래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례로 ‘한강’은 한자로 ‘漢江’으로 표기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강의 ‘한’에 담긴 본 뜻은 우리말 ‘한’ 즉 ‘크다’, ‘밝다’, ‘넓다’, ‘하나’ 라는 것이라는 알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漢’이란 글자는 소리만 빌려서 쓴 것이란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성’, ‘한강’의 ‘한’자는 ‘중국 한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북경', '동경'에는 서울을 뜻하는 '京'자가 들어는 데 '漢城'에는 '城'자가 들어 있어 북경과 동경보다 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중국이 일부러 자기들 수도(북경)보다 격이 떨어지는 ‘한성’을 선호하고 있을 것"이라는 '애국심 강해 보이는' 주장도 합니다.
한마디로 '아전인수'의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한자에 대해 이해가 높은 사람들이 왜 후손들의 한자교육에는 무관심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城’자가 들어있는 지역은 천만년이 가도 우리나라에서는 수도 후보지에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도시가 가진 역사 발전 잠재력을 漢字가 가진 뜻에 얽어매어 놓는 우스운 꼴이 됩니다.
수도라는 것은 한 나라의 수도 자체로서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지 ‘京’이란 글자가 들어가고 아니 들어 가고에 따라 품격이 높아졌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京자 없이도 수도 역할을 훌륭히 해낸 도시가 많습니다. 국내성, 개성, 한양, 평양, 사비, 웅진, 금성 등이 그 예입니다.
옛날에는 전국에 있는 넓고 큰 중심 도시를 京이라 불렀습니다. 오히려 서경, 동경, 북경식의 지명은 나라 중앙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 도시들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북경보다 한 수 아래 느낌을 주는 한성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속 좁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서울시가 한자 표기를 ‘수이'로 해 달라는 주장에 대해 “힘 있고 기백이 넘치는 '한성'이란 이름대신, 힘없고 (중국인에게) 아무 의미 없는 '수이(서우얼)'로 불러달라는 것을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너희들 스스로 역사와 무게가 실려 있는 한성이란 이름을 포기하겠다는데 우리가 협조 못할 일이 없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불러주겠다’하며 은근히 반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성의 또 다른 이름인 ‘한양’도 백성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불려 왔습니다. 수도를 뜻하는 순 우리말인 ‘서울’이란 이름도 똑같이 사랑스럽게 사용해 왔습니다. 해방 후 ‘서울’이 행정용어로 살아남는 바람에 서울의 원래 이름인 ‘한양’이 사라지게 됐지만, ‘한양’은 지명으로서는 포기하기 아까운 이름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천년 이상 된 도시 명칭이 지금도 수없이 많다).
'한양'은 그 이름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수도를 뜻하는 '서울'을 같이 사용해 오는 과정에서 '어이없게' 사라진 이름입니다. 통일 후 만약 서울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 그곳도 또한 ‘서울’로 불러야 합니다. 서울을 ‘수이’로 바꾸기보다 서울 제 이름 찾아주기를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후기--------------
중국 지명과 이름 한자 발음에 대해
최근 언론은 윤동주 시인의 중학교가 있는 중국 ‘용정’을 ‘룽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동포가 많이 사는 친숙한 이름인 ‘연변’도 ‘옌벤’이라고 합니다. ‘흑룡강성’을 ‘헤이룽장성’이라고 합니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학교를 다닌 윤동주는 자신이 한번도 외국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겁니다. 더구나 윤동주의 중학교가 있는 용정은 우리 민족이 개척한 곳이고, 우리가 이름 지은 곳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청의 영토 야욕에 맞서 간도 관리사가 파견된 곳입니다.
우리가 개척하여 우리가 이름짓고, 윤동주 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이 유서 깊은 땅을 우리는 너무 쉽게 중국식 발음인 ‘룽징’이라고 해 버립니다. 졸지에 윤동주를 비롯 수많은 독립지사가 중국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중국은 우리의 지명이나, 사람 이름을 우리의 발음으로 부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든 지명을 순 우리말로 다 바꾼 후 '서울'을 '수이'로 불러달라는 것처럼 중국에 따지면 비슷한 발음으로는 불러 줄 것이다). 그것이 중국 문자의 한계입니다. 중국이 문자를 알파벳으로 바꾸지 않는 한 중국인에게 우리 식 발음을 요청하기는 어렵습니다.
의미가 같은 한자를 사용하고, 수천년 굳어온 자기 식 한자음이 있는데 “너희 음은 틀렸으니 우리식대로 발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일견 낯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중국 지명을 우리 한자식으로 부른다고 중국사람 화낼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발음하든 그 뜻은 똑 같기 때문입니다. (최근 인기있는 '대장금'을 중국 중국에서 어떻게 발음하는지 보면 알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중국 지명이나 인명을 말할 때 너무 쉽게 중국식으로 해 버립니다. 우리끼리 의사전달을 하는데 그처럼 정확한 중국음 발음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남경사범대학(南京師範大學)을 '난징 스판 다쉬에'라고 하고, 남경장강대교(南京長江大橋) 를 '난징창지앙타치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표기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언어 생활에 혼란만 줄뿐 아니라, 어차피 다시 '남경 사범대학''남경 장강 대교'라고 옮겨 줘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 듣습니다.
한류스타 안재욱이 중국에서 ‘안짜이쉬’라고 불리며 사랑받으면 그뿐이라고 봅니다. 인기스타 ‘성룡’은 우리에는 ‘성룡’으로, 중국에서는 청룽으로 불리면 됩니다. 그런다고 그들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국인들도 통일시키지 못한 한자음을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글자의 형성원리와 발음규칙 따라 매우 섬세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일 시킨 것입니다. 더 이상 국내 사람끼리 '우스운 중국 발음'을 '흉내내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큽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멀지 않아 이웃 아저씨처럼 친숙하게 불리던 삼국지의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도 어느 날 리우 베이(유비), 관 유(관유), 장 파이(장비), 차오차오(조조)로 부를 날이 올까 걱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