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파사산성에 가보셨나요?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 업데이트 2005-08-03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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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읍 한가운데에 있는 정림사지와 백제왕릉들 말고 백제의 흔적들은 어디가면 볼 수 있습니까?”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을 오르면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부여의 전통문화학교의 이도학교수에 물었다.
“부여읍 땅밑에 묻혀 있습니다.”
부여 부소산에 오르고 공주 공주산성에 오르면서 백제 유적들을 둘러본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산기슭과 들판을 두리번거리면서 백제 유적들을 둘러본다.

우리나라 어느 산엘 가든 선사시대 이후의 선조들이 살아온 흔적들이 남아있다.  악산(岳山)이든 구릉지든 계곡과 산기슭, 산언저리는 먼저 간 선인들의 삶의 터전이였다. 산기슭과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서 선인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산길을 걸으며 그들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그들의 고난과 번영을 보면서 우리들이 과학 문명속에서 깜박 잊기 쉬운 오만함과 편리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본다.  그냥 높이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경기도 포천군 운악산(936m)에는 언제 누가 쌓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석성터가 있다. 정상 못미처에서부터 포천군 화현면의 무지치폭포를 감싸고 축조된 거대한 산성이다. 산성은 많은 등산인들이 운악산을 오르면서 지나쳤을 돌무더기들이었다. 깊고 험한 산속에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석성을 왜 이곳에 쌓았을까? 성곽의 일부는 산 중턱에 산재한 무허가 암자들을 오르내리는 계단과 추춧돌로 쓰이는 바람에 성곽의 일부는 다 흩어지고 무너져 내렸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류 최대의 역사 현장은 아니어도, 민초들이 난리를 피해서 이불 보따리, 쌀 주머니를 지고 피난을 했던 산성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산에는 잊혀진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 현장이 남아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발부리에 채이는 사기그릇 조각이나 무너져 내린 성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산속에 숨어든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일부는 실존적인 삶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위해 집을 짓고 살았던 불교나 기독교인들이나 철인들의 터전들일 수도 있다. 배낭을 내려 놓고 잠시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삶과 철학을  되새겨 본다. 산등성이에 끊임없이 이어져 둘러쳐진 토성이나 산성들을 둘러보면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다가 산에 묻힌 백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강을 끼고 있거나 넓은 들을 끼고 있는 산등성이에 올라보면 언제 쌓았는지 모를 산성터가 사방에 널려 있다. 전략적인 요충지들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기려면 요충지에 성을 쌓아야 했을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지인 충청남북도의 산줄기마다에는 보루였거나 산성이었던 흔적들이 수없이 많다. 1700년 전, 원삼국시대 때부터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의 역사 속에 민초들은 피땀을 흘리면서 석성과 토성을 쌓았다. 무너져 내려 돌무더기로 남아 있거나 도랑이나 고갯길이 되었어도 그 아우성은 여전히 울려퍼진다.
 
 무조건 산을 오르기보다 내가 밟고 있는 이길, 이 산자락에 무슨 사연들이 얽혀있으며 이 땅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겨본다. 1000m가 넘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산자락 곳곳에 널려 있는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산행은 더욱 재미가 있다. 산을 찾아 가기 전에 산에 얽힌 역사를 읽어보는 인도어 클라이밍(Indoor Climbing)도 해본다. 진짜 산행을 하면서 훑어볼 수 있는 유,무형 문화재들도 미리 조사 해보고 떠나자. 산은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한 정치, 경제, 문화, 역사에 얽힌 다양한 교훈도 터득하게 해준다. 목숨을 걸고 성터를 지키다가 죽은 이들과 처자식을 놔두고 무거운 돌을 져 날라 일일이 다듬어서 차곡 차곡 성을 쌓았을 민초들을 생각하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무지치폭포를 가운데 두고 적이 오르지 못하는 가파른 바위지대 구간 사이에 튼튼하게 쌓은 포천 운악산성.>
 

<충주 남산(636m) 서문자리에서 내려다 본 서쪽 성벽. 뒤에 보이는 산은 계족산(775m)이다.>
 

<백제 계백장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논산 노성산(348m)의 노성산성.>
                                          
경기도 여주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해발 230m의 산등성에는 신라 제5대 파사왕이 쌓았다고 전해오는 파사산성(婆娑山城)이 있다. 이포(梨浦)대교 건너 천서리 막국수집들이 있는 동네 뒷산에 있다. 둘레 935m인 파사산성은 남한강을 끼고 있는데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고 충주와 조령으로 이어지는 교통요지라는 점등에서 신라가 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주측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굴 결과 신라보다 더 빠르며 백제가 축조한 삼국시대 돌성임이 밝혀졌다.

성내에는 동문과 남문등 2개의 성문과 배수구, 우물지, 건물지등이 있다. 이곳 파사성은 다른 성에 비해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성을 쌓은 방식이나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쌓은이후 계속 사용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이 황해도 승군 도청섭 의암(義巖)에게 다시 쌓도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벽을 보면 삼국시대 쌓은 성은 바른 층 쌓기로 밑돌과 윗돌이 정연하게 맞물리도록 쌓았지만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부분은 상태가 조잡하고 각 층이 흐트러져 있다.
 
이곳 파사성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신라 제5대 파사왕(婆娑王) 때 남,여 두 장군이 내기를 하였는데 男장군이 나막신을 신고 중국을 다녀오고, 女장군은 지금의 파사성을 쌓기로 하였다. 여장군이 축성을 마치기 전에 남장군이 먼저 중국에서 돌아와 이겼다. 그 때 여장군은 개군면 석장리(石墻里)까지 가서 돌을 치마폭에 담아 오던 중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치마폭의 돌을 떨어렸다. 그 돌들이 그 마을에 돌담(石墻, 돌데미)이 됐다. 그래서 파사산성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통일 후 신라군과 唐군과의 7년 전쟁중 대접장이었던 매초성(買肖城)이 이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파사산성을 오르는 길은 사방으로 나 있다. 북쪽 능선을 따라 높이 5-6m로 높게 쌓은 것으로 봐서 북쪽을 주로 방어하기 쌓은 성으로 보여진다. 성채를 따라 돌아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쯤 걸린다. 성채 북쪽에 기슭에는 전설 속의 女장군을 새긴 바위와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키를 넘는 무성한 풀숲에 가려 찾을 수가 없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은 일년 중에서 역사 유적을 답사도 겸한 산행에 가장 적합하지 못한 시기이다. 3-5월이 가장 좋은 때다.
 
남한강의 수운(水運)의 길목을 지켜왔던 요충지인 파사성 일대는 지금도 군사전략의 요충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해마다 이 일대에서 육해공군 합동으로 기계화 부대 도하(渡河)훈련을 실시한다.
 
<파사산성 위치 지도>
 

 


<산성 장대(將臺)에서 내려다 본 최근 복원공사를 마친 북쪽 성채. 성 너머로 남한강이 흐른다.>
 

<남문 근처 성벽. 주변 성안에는 병영터와 우물터등이 있다.  사진속의  양철지붕 집은 복원공사 현장 사무소다. 서쪽으로 이포대교가 내려다 보인다.>
 

<이포다리 건너 천서리 막국수 동네 뒤 파사산성이 있는 파사산.>
 

<무너져 내린 파사산성. 최근 발굴 조사에서 6세기 이후 삼국시대 산성에서 흔히 보이는 오각형 모양의 철 화살촉을 비롯해 돌칼등 청동기 시대 유물과 함께 고려 및 조선시대 유물도 많이 나와 삼국시대 이후 졸 곧 성으로 기능을 다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파사산성 둘레 풀숲에 살며시 고개를 내민 산나리와 원추리와  산딸기.>
 

<이포대교 아래 남한강 여울에서 늘어선 견지낚시꾼들.>
 

<한강 수운의 요충지인 파사산성이 올려다 보이는 남한강 이포다리 일대에서는 매년 육해공군 합동 도하(渡河)훈련을 실시한다.>
 
[찾아가는 길]
 
1) 서울서 6번 국도를 따라 양평을 거처 여주로 가는 37번 국도를 따라 이포대교 사거리 200m 못미처 오른쪽 파사산 자락에 차를 주차시키고 안내 표지판을 따라 산을 오른다.

2)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를 나와 여주, 양평으로 가는 44번 국도를 가다가 만선리 갈림길에서 송현-금사로 가는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이포대교에서는 다리 건너자 마자 좌회전, 양평 쪽으로 200m쯤 가다가 파사산성 안내판 바로 못미처서 마을로 들어서는 시멘트로 된 농로를 따라 올라간다. 외길로 산으로 올라가는 차길은 막아 놨다. 근처에 주차장이 없다. 산성으로 향하는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성 남문터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숲 사이로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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