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는 왜 도끼에 찍혔을까요

  • 김석규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고문·행정학 박사
  • 업데이트 2024-07-22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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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나무. 사진=뉴시스

저는 개인적으로 맨발걷기를 즐겨합니다. 그 효능에 대해서야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제 기분에 좋으면 그만일 테지요. 엊그제도 여느 날처럼 집 근처 공원 산책로를 맨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늘 가던 길 양옆으로 듬직하게 서서 저를 반겨주던 나무들이 손도끼로 보이는 듯한 도구에 여러 차례 찍힌 채 관다발을 드러내놓고 있었습니다. 관다발은 나무의 영양분과 수분이 오가는 통로입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산책로 나무들에 도끼질을 해대는 웬 미치광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 길을 자주 걷는 아내 걱정이 앞섰습니다. 산책로에 있던 주변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이 길에 산책을 나왔습니다. () 산하 공원관리소 직원이 숲속을 돌아다니며 상처가 난 나무들을 조사하고 있더군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 직원, 상처 입은 나무들이 모두 아까시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간혹 아까시나무를 혐오하거나 안 좋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공원관리소 차원의 대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알아보니, 사실 아까시나무는 아주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5000여 년 동안 나무를 땔감으로 삼아 난방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지요. 헐벗은 산은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북미가 원산지인 아까시나무가 처음 이 땅에 들어온 시기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일제는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 주변에 처음으로 아까시나무를 심었습니다. 중국을 통해 들여와 토사가 드러난 곳에 심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아까시나무는 주로 사방공사(沙防工事·흙과 모래 등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공사)에 쓰였다고 하지요.

 

여하튼 아까시나무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건 6·25 전쟁 이후입니다. 가뜩이나 땔감용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마당에 전쟁까지 터졌기 때문에 정부는 황폐해진 산을 푸르게 하기 위해 여러 외래종 나무를 들여왔습니다. 이때 아까시나무와 함께 리기다소나무, 오리나무, 낙엽송, 미루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외래종 나무가 전국에 심어졌지요.

 

그중에서도 아까시나무는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우리 땅에 잘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나무의 뿌리에 붙어있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굳이 질소비료를 주지 않더라도 헐벗고 메마른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일각에선 이러한 아까시나무의 왕성한 생명력을 보고 음모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아까시나무가 다른 나무의 생장에 방해를 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며 오히려 해로운 식물, 즉 독수(毒樹)로 지목되기도 하였습니다. 나아가 일제가 우리나라의 상징적 나무인 소나무를 모두 죽이려고 아까시나무를 심었다는 식의 음모론까지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잘못된 정보에 의한 거짓이고 오해인 셈이지요.

 

아까시나무는 이 땅에 뿌리내린 이래, 고맙고 이로운 존재였습니다. 아까시나무는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뛰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까시나무는 연간 250만 탄소톤(TC)을 저장합니다. 이는 승용차 약 380만 대의 온실가스를 흡수·처리하는 수준입니다. 또 국내 꿀 생산의 74%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화분매개(花粉媒介)라고 하는 꿀벌의 역할까지 도와주는 셈이니 우리나라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그리고 아까시나무가 다른 나무를 죽인다는 건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선 잘 자라지만, 반대로 땅이 비옥해지면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둥산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였고 이젠 숲이 우거진 우리 땅에서 수명이 50~70년인 아까시나무는 이제 이 땅의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1980년 아까시나무의 면적이 32만 헥타르였는데, 2010년 들어서 36000헥타르로 급격히 줄었습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한국의 밀원수(蜜源樹·벌꿀의 원천이 되는 나무)를 지금보다 2배 이상 확보해야 꿀벌의 집단 폐사를 막을 수 있다고 제언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황폐화된 우리 땅을 푸르게 한 일등 공신아까시나무, 박수를 다 치기도 전에 떠날 채비를 하는 반가웠던 손님입니다.

 

저는 산책로에서 겪은 일을 통해, 한 개인의 잘못된 신념과 왜곡된 시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지역 사회 주민들이 다 함께 이용하는 공원이자 공공재산에도 속하는 나무를 함부로 훼손한 건 개인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이었습니다. 독선적 행위이자 공동체에 위해로운 요소이지요. 엄연한 불법행위임은 두 말 할 것도 없고요. 나무를 훼손한 이가 지역 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아까시나무가 잘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내년 5월이 오면 천수보살(千手菩薩)’ 수많은 손처럼 아까시나무가 가지들마다 하얀 꽃송이를 들고 공원길에 늘어서서 내방객이나 꿀벌들을 환영할 겁니다. 현기증 날 정도로 아찔한 아까시 꽃 향기가 아련히 그립습니다.

 

나무를 훼손한 이를 찾게 된다면, 그에게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기 보단 그를 잘 설득시켰으면 합니다. 잘못된 신념이지만, 그도 나름 공원을 바르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행동을 했을 테니까요. 그에게 잘못된 생각을 일깨워주고 소통하여, 함께 공원을 아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석규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고문·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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