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VH1 선정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21~30위)

[阿Q의 ‘비밥바 룰라’] 엘튼 존, 아래사 프랭클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라디오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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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미스의 스티븐 테일러와 에미넴

미국의 음악전문 채널 VH1(Video Hits One)이 2010년 9월 10일 위대한 아티스트 100명(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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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자면 "록(로큰롤) 시대에 위대한 100인 아티스트"(100 Greatest Artists of the Rock Era)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혹은 "지난 60년 동안 가장 위대한 팝 스타100인"(100 Greatest Pop stars of the Last 60 Years)
 
1998년 발표한 리스트를 업 데이트한 순위다. 비평가와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20년 가까이가 지난 순위지만, 당대 팝 아티스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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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Aerosmith 미국 정통 하드록 밴드. 1970년에 데뷔한 장수밴드. 스티븐 테일러(Steven Taylor. lead vocals, harmonica, percussion), 조 페리(Joe Perry. lead and rhythm guitar, backing vocals) 같은 뮤지션이 먼저 떠오른다. 조 페리는 1979년 밴드를 떠났다가 1984년 돌아와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다.

그들이 부른 "Dream On"은 록 발라드의 명곡으로 기억된다. 에미넴(Eminem)이 이 곡에 퓨처링을 한 "Sing for the moment"를 불렀다.  "Dream On", "Toys in the Attic", "Walk This Way" (with Run-D.M.C.) 같은 곡을 들어 보세요.
 
 29 Radiohead 라디오헤드는 영국의 록 밴드. 1985년 옥스퍼드셔 주의 애빙돈에서 결성됐다. 톰 요크(Thom Yorke. vocals, guitar, piano, keyboards),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 lead guitar, keyboards, other instruments)와 콜린 그린우드(Colin Greenwood. bass) 형제,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 guitar, backing vocals), 필립 셀웨이(Philip Selway. drums, percussion) 등이 구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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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의 앨범 《Kid A》(2000)
1991년 EMI에 계약한 라디오헤드는 1992년 데뷔 싱글  "Creep", 데뷔 앨범 《Pablo Honey》(1993)가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그들의 인기와 비판적 지위는 두 번째 앨범 《The Bends》(1995)의 발매와 함께 상승했고 세 번째 앨범 《OK Computer》(1997)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산업사회의 복잡한 공정과 현대 소외의 테마로 한 이 앨범은 종종 1990년대를 아우르는 획기적인 음반이자 대중 음악에서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호평 받았다. 《Kid A》(2000)와 《Amnesiac》(2001)을 동시에 녹음해 실험적인 전자음악, 20세기 클래식 음악, 크라우트록(krautrock), 재즈 등의 영향을 통합해 극적인 스타일의 변화를 나타냈다.  《Kid A》는 롤링 스톤, 피치포크, 더 타임즈에 의해  지난 10년 중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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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

 28 Elton John 엘튼 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 어떤 뮤지션보다 70어년의 세월에 많은 것을 담은 사람이다.
 
그보다 많은 위업을 이루고 재앙을 겪고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와 멋진 노래를 선사한 뮤지션이 또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의 강점은 오랜 세월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1947년에 태어난 엘튼 존은 재능 있는 인재들이 쏟아졌던 록의 황금기에 데뷔하여 음반업계가 완전한 산업의 면모를 갖춘 1970년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데뷔한 지 50년이 된 지금도 스튜디오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스타 가운데서 이렇게 오래도록, 이렇게 많은 음반을 발매한 뮤지션은 없다. 게다가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빌보드 차트 톱40에 이름을 올렸다. 양과 질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음악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삶에서도 그는 수많은 뉴스거리를 몰고 다녔다. 열네 살 때부터 직업 연주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10대에 이미 야망과 추진력, 경쟁심이 과할 만큼 대단했고 젊은 나이에 너무 갑자기 스타가 되어버린 탓에 그 중압감을 견디다 못해 마약에 절어 살기도 했다. 스타로서 남보다 작고 통통한 신체적 결함을 커버하기 위해 시작한 무대 위에서의 과한 치장들은 때로 음악성에 방해가 될 정도였고, 그의 쇼핑 중독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명성의 절정에 있을 때 오히려 커밍아웃을 했고, 오래된 동성 연인과 보란 듯이 결혼식을 올린 것은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는 영국에서 음반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소문난 음반 컬렉터다. 저 많은 음반을 과연 들어볼 시간이 있을까라고 데이비드 보위가 의문을 품었을 만큼 음반을 게걸스럽게 탐닉했고, 음악적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또한 몇 년에 한 번씩 그동안 욕심껏 사들인 물건들을 대대적인 경매에 붙이고 엄청난 수익금을 에이즈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데이비드 버클리가 쓴 《엘튼 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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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사 프랭클린

 27 Aretha Franklin
그녀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미국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62년 미국 아칸소 주지사 포버스는 5년에 걸친 연방정부와의 싸움 끝에 패소했지만 옥스퍼드의 미시시피 관습을 위배한 흑인 학생 제임스 메러디스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만 했다. 이듬해 11월 인권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캐네디 대통령이 사망했다. 1963년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는 개학하자마자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1964년 필라델피아의 로체스터 할렘가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급진적 흑인해방운동을 이끌던 말콤X가 살해되었다. 1965년 캘리포니아의 와츠, 1966년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에서도 폭동이 일어났다.
상처받고 박해받으며 가끔 분노에 몸을 떨던 흑인들이 권리주장을 위해 ‘대장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몇몇 뮤지션들은 미국의 문화 엘리트에 맞서기보다 단순하고 감각적 효과의 재즈, 즉 리듬 앤 블루스, 또는 그 변형 중 하나인 힘에 넘치는 로큰롤을 계속하며 흑인 노동자들을 자신의 대화 상대로 삼았다. 흑인들만을 위한 이 대중예술이 인종의 벽을 넘어 백인 청중에 의해 히트 퍼레이드에 오른 적도 없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아래사 프랭클린이 있었다.
 
프랭클린은 자신이 태어난 멤피스나 그녀가 데뷔한 디트로이트에서 스타가 될 수 있었으나 운명은 그녀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 그녀는 뉴욕의 ‘애틀란틱’ 그룹의 일원이 된 것이다. 침례교 목사의 딸인 아래사는 레이 찰스처럼 리듬 앤 블루스의 가스펠 송을 섞어 노래했다. 가는 곳마다 노래와 춤, 음악과 볼거리를 선사한 그녀의 그룹은 레이 찰스 그룹과 마찬가지로 125번가의 전통, 아폴로 극장과 할렘가의 전통을 유지했다. 다시 말해 남성 위주의 팝 뮤직에서 거부했던 여성 가수의 중심적 위치가 아프리카 음악이나 리듬 앤 블루스에서는 허용되었던 것이다.(루시엥 말송이 쓴 《재즈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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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영

 26 Neil Young 
1945년 11월 12일 출생.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1960년대부터 캘리포니아에 살았지만 캐나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1966년 Buffalo Springfield를 결성했다. 영은 1969년 Crosby, Stills & Nash 에 합류할 때쯤 두 장의 솔로 앨범과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멤버로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었다.

깊이 있는 개인적 삶을 담은 노랫말과 시그니처한 테너 가창력은 그의 오랜 경력을 상징한다. 많은 앨범에서 피아노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데, 그의 앨범들은 포크, 록, 컨트리 그리고 다른 음악 스타일을 자주 결합한다. ‘그런지 록(Grunge Rock, 얼터너티브 록의 한 장르)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1995년 솔로 가수로서 그리고 1997년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일원으로 그를 두 번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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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척 베리

 25 Chuck Berry 1926년 10월 18일 生~ 2017년 3월 18일 歿.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로큰롤 선구자 중 한 사람. 혹은 "Father of Rock and Roll(로큰롤 아버지)".
 "Maybellene"(1955), "Roll Over Beethoven"(1956), "Rock and Roll Music"(1957),"Johnny B. Goode"(1958)  같은 곡으로 로큰롤을 특색 있게 만드는 주요 요소로 리듬 앤 블루스를 다듬고 발전시켰다.

10대들의 삶과 유행, 소비에 초점을 맞춘 가사를 쓰고, 기타 솔로와 쇼맨십을 포함하는 음악 스타일을 개발하면서 이후 록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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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

 24 The Velvet Underground 196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선두주자로 꼽혔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이미 오래 전 해체됐으나 팀이 사라진 후 오히려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그제야 팬들과 음악평론가, 후배 음악인들이 번뜩였던 실험적 음악성에 주목했고 2장의 초기 음반이 희귀 소장품 목록에 오를 정도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보여준 진보적 색채의 음악은 1967년 발표된 첫 앨범 《Velvet Underground and Nico》에서 확인할 수 있다. 〈European Son〉 같은 곡에서 기차소리,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를 비롯한 음향효과는 60년대 음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담한 실험적 사운드를 보여준다. (《월간팝송》 1986년 5월호 참조)
 
이전의 팝 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이후 David Bowie, New York Dolls, Patti Smith, Mott The Hopple, Roxy Music, Sex Pistols, Cars 등 수많은 초기 펑크그룹, 한창 때의 펑크그룹, 후기 뉴 웨이브 그룹, 헤비메탈 그룹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전한다.
유명한 에피소드는 첫 앨범(《Velvet Underground and Nico》)이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도움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워홀은 프로듀서로 음반제작에 직접 관여했다.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본 앤디 워홀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워홀의 제안으로 독일출신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니코(Nico)가 1966년 앨범 녹음에 참가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니코는 1960년대 앤디 워홀이 구축한 예술인 집단인 ‘앤디 워홀 슈퍼스타(Andy Warhol Superstar)’에서 활동했다. 또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 앤디 워홀의 《첼시 걸즈》(1966)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니코는 쉰 살이 되던 1988년 사망했다.
 
첫 앨범은 절망적인 소재, 특히 죽음이나 모독에 관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밴드 리더인 루 리드(Lou Reed)가 니코를 위해 작곡했다는 "Femme Fatale"과 "Sunday Morning"을 담은 싱글과 니코가 부른 〈I'll Be Your Mirror〉가 발매됐으나 너무 앞선 음악성 때문인지 전혀 대중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음반 판매도 그닥이었다. (훗날 첫 앨범이 재평가를 받았으며 팀 해체 후 라이브 앨범과 각종 편집앨범, 해적음반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어찌됐든 첫 앨범 발표 후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멤버들 간의 불화가 생겨 니코가 먼저 그룹을 떠나고 프로듀서 앤드 워홀과도 결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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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리더 앵거스 영

 23 AC/DC 밴드가 1974년에 결성됐으니 마흔여섯. 밴드의 리더 앵거스 영(Angus Young)은 지금 61세, 형인 말콤 영(Malcom Young)은 64세 일기로 2017년 사망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원로 밴드가 되었다.
 
호주 출신의 이 밴드는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과 다르다. 세련미나 고급스러움보다는 거칠고 대담한 메탈에 가장 가깝다고 할까. 블루스의 영향을 받아서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열정과 코드 선율의 우아함, 절제미까지 갖추고 있다. 혹자(배철수)는 “8비트로 초지일관하는 단순 메탈의 마력, 언뜻 보면 별 특출한 것이 없는 듯 들리지만 가공하지 않은 생음악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본 스콧(Bon Scott)의 거친 보컬과 늘상 반바지 교복을 입은 리드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과 그의 형 말콤 영의 기타 리프가 메탈 팬들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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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록 밴드 클래쉬

 22 The Clash 1976년에 결성된 영국 펑크 그룹 클래쉬(The Clash)는 결코 가볍거나 충동적인 음악을 지향하지 않았다. 성숙하고 진보적인 메시지로 시대의 소리를 발산했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표방한 노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진 좌파 사회주의 밴드라는 말이 클래쉬 주변에 들려왔다.
 
클래쉬가 지향한 음악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8번째 앨범 《애니멀스(animals)》(1977년 1월 발매)와 함께 1970년대 후반의 영국이 처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파업 등의 경제위기를 풍자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밴드의 두 핵심 멤버는 조 스트러머(Joe Strummer)와 믹 존스(Mick Jones)인데 스트러머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클래쉬는 1970년대 중반의 주류 음악인 록이 거대 비즈니스화 되고, 사운드가 쓸데없이 거창하고 복잡해진 데에 환멸을 느껴 록 음악의 본래 모습인 타이트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200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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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블루컬러의 삶을 노래한 브루스 스프링스틴

 21 Bruce Springsteen 1973년 데뷔 앨범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를 발표했으니 올해로 데뷔 47년째다. 1949년생이니 올해로 70세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자신의 모국인 미국을 블루컬러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를 ‘보스(Boss)’로 지지한다. "Born to Run"(1975), "Hungry Heart"(1980), "Street of Philadelphia"(1993) 같은 곡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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