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현지시간) 실시된 2025년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우파 성향의 공화당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 59)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칠레 선거관리당국에 따르면 오후 11시 현재 개표율 99.89% 기준, 카스트 후보는 58.16%를 얻어 좌파 후보인 자넷 하라(Jeannette Jara, 51)를 큰 격차로 제쳤다. 하라 후보의 득표율은 41.84%에 그쳤다.

1차 투표에선 좌파 하라 후보가 2%P로 앞서

칠레의 대통령 선거는 1차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득표율 50%를 넘기지 못할 경우, 최다 득표를 한 상위 두 명의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다시 맞붙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11월 실시된 1차 투표에서는 총 8명의 후보 가운데 자넷 하라 후보가 26.63%, 카스트 후보가 24.25%를 득표해, 두 사람이 이번 최종 2차 결선에 진출했다.

카스트는 강경 보수 노선을 표방하는 공화당(Partido Republicano) 소속으로, 선거 과정에서 치안 강화, 불법 이민 통제, 국가 질서 회복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기존 좌파 정부 시기의 범죄 증가와 경제 불안을 집중 부각하며 중도층과 보수 유권자 결집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하라 후보는 칠레 공산당(Partido Comunista de Chile) 소속으로 좌파 연합 진영을 대표해 출마했다. 그는 사회복지 확대와 노동권 강화, 공공부문 역할의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결선 국면에서 나타난 우파 진영의 결집 흐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특히 사회당 출신인 현 보리치 대통령과 정책적으로 유사한 노선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지지율이 28%에 머물고 있는 보리치 정부에 대한 피로감과 회의가 하라 후보의 대선 패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현지 비평가들의 분석이다.

<표> 1990년부터 2025년까지 칠레 대선 결과

연도  |    성향    |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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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중도좌파 | 파트리시오 아일윈

1994 | 중도좌파 | 에두아르도 프레이

2000 |   좌파     | 리카르도 라고스

2006 |   좌파     | 미첼 바첼레트

2010 |   우파     | 세바스티안 피녜라

2014 |   좌파     | 미첼 바첼레트

2018 |   우파     | 세바스티안 피녜라

2021 |   좌파     | 가브리엘 보리치 

2025 |   우파     |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이번 선거 결과로 칠레는 다시 한 번 우파 정권으로의 방향 전환을 선택하게 됐다. 변호사 출신이자 9자녀의 아버지인 카스트 당선인은 내년 3월 11일 취임해 향후 4년간 국정을 이끌 예정이다. 중남미 전반에서 치안과 이민 문제를 앞세운 보수·우파 정치세력이 재부상하는 흐름 속에서, 칠레의 선택 역시 이 같은 지역적 정치 지형 변화의 한 단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라 후보는 개표 결과가 사실상 확정되자 패배를 인정하고,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과 수용 의사를 밝혔다.

민주화 이후 칠레 대선, 좌·우파 정권 교체 흐름

칠레는 1990년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 독재 종식 이후 좌파와 우파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정권을 교체해 온 나라로 평가된다. 민주화 직후에는 기독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중도좌파 연합이 장기간 집권하며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다. 파트리시오 아일윈과 에두아르도 프레이 정부를 거쳐, 리카르도 라고스와 미첼 바첼레트로 이어진 이 시기는 사회민주주의적 개혁과 시장경제의 절충이 특징이었다.

2010년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당선은 민주화 이후 첫 본격적 우파 정권의 출현이었다. 이후 좌파 바첼레트 정부가 다시 들어섰지만, 이후 2018년 피녜라가 재집권하며 좌우 교차 집권 구도가 굳어졌다. 2021년에는 청년 좌파 지도자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돼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사회 불안과 치안 악화 논란 속에서 지지 기반이 흔들렸다.

이번 대선 결과는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집권해 온 칠레 현대 정치사의 흐름 속에서, 유권자들이 다시 한 번 보수 진영에 국정 운영의 키를 맡긴 선택으로 읽힌다. 사회 개혁과 제도 변화에 무게를 둔 좌파 정부 이후, 범죄와 치안 문제, 경제 불안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카스트 당선은 변화보다는 질서와 통제, 국가의 역할 회복을 강조한 정치적 요구가 표출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카스트는 대선 승리 수락 연설에서(현지시각 12월 14일 오후 9시 55분)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특정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칠레와 희망이 이겼다’”고 말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그가 줄곧 강조해 온 불법 이민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법을 준수하고 칠레에 기여하는 이민자들은 언제든 환영하지만 칠레에서 범죄 조직을 형성하며 치안을 위협하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카스트는 연설에서 광부 33인 구조와 대지진 극복, 팬데믹 대응 성과를 언급하며 “칠레는 지구상에서, 나아가 우주에서 가장 좋은 나라”라고 표현해 시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그는 이러한 나라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피로와 정책 성과 따라 유권자 선택 달라져

민주화 이후 칠레 정치의 특징은 특정 진영의 장기 집권보다는 사회적 피로와 정책 성과에 따라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선택의 방향을 조정해 왔다는 점이다. 2010년과 2018년의 피녜라 정부에 이어 이번 카스트 정부의 출범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다만 이번에는 기존 중도우파보다 정책 노선이 한층 분명한 보수 정치세력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정 운영 방식과 사회적 긴장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가 새로운 지도자 아래에서 어떤 방향으로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다시 그려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