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가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 주인공은 밴드 설(SURL)이다. 이들이 다시 선보인 산울림의 명곡 ‘여기 있어 그대’는 지난 10월 23일 오후 6시 공개됐다. 원곡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41년이 흘렀다.

김창완 1인 체제의 실험, 그리고 명곡의 시작

1984년에 출시된 산울림 10집은 그룹의 역사 속에서 독특한 실험기로 기억된다. 김창훈과 김창익이 자리를 비운 사이, 김창완이 홀로 음악의 방향을 주도했다. 당시 김정택(키보드), 박광민(기타), 김이훈(베이스), 강윤기(드럼) 등 당대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바로 ‘너의 의미’, ‘동화의 성’, 그리고 김창훈이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던 ‘지금 나보다’와 ‘여기 있어 그대’였다. 특히 ‘여기 있어 그대’는 딥 퍼플의 록 발라드 ‘Soldier of Fortune’을 연상시키며,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에 한국적 정한(情恨)을 머금은 발라드로 평가받는다. “가지 말아요”를 반복하는 후렴은 ‘아리랑’의 슬픔과 ‘공무도하가’의 비애를 겹쳐놓는다.

설, 템포를 높이고 감정을 가라앉히다

2018년 등장한 밴드 설(SURL)은 ‘눈’, ‘Cure’, ‘Detox’ 등을 통해 차갑고 서늘한 감성의 록 스펙트럼을 그려왔다. 이번에 그들이 다시 해석한 ‘여기 있어 그대’는 원곡의 정서를 정면으로 뒤흔든다.

텁텁한 이별의 울분 대신, 도시의 밤처럼 차가운 리듬이 스민다. 펑키한 기타 리프와 느긋한 드럼이 도입부를 채우며, 설호승의 보컬은 절제된 감정으로 “가지 말아요”를 내뱉는다.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고개를 드는 듯한 담담한 슬픔. 템포는 올라갔지만, 온도는 한층 내려앉았다.

결국 설의 ‘여기 있어 그대’는 원곡이 품었던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새 시대의 감각으로 다시 그려낸다.

41년의 시간 협곡, 서로를 비추는 두 탑

산울림과 설의 ‘여기 있어 그대’는 41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응시한다. 하나는 1980년대의 아날로그적 정한, 다른 하나는 2020년대의 디지털적 고독이다. 같은 멜로디와 가사를 품고 있지만, 감정의 결은 완전히 달라졌다.

리메이크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같은 노래를 통해 전혀 다른 도시, 다른 계절, 다른 온도를 느끼게 한다. 설의 버전은 ‘그대’를 붙잡는 대신,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세대의 태도를 드러낸다.

산울림 50주년, 이어지는 음악의 유산

이번 리메이크는 산울림 데뷔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29번째 싱글로 진행됐다. 김창훈은 2027년까지 산울림의 대표곡 50곡을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새롭게 잇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부활, YB, 데이브레이크, 터치드, 롤링쿼츠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왔으며, 설의 합류는 그 흐름 속에서도 특별한 울림을 남긴다.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음악은 여전히 “여기 있어 그대”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이 기사는 임희윤 음악평론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