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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리뷰 ①] 사랑 시, 엄마 시, 아부지 시

홍찬선 시인의 14번째 시집 《살아 보니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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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DB

사랑의 노래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시를 읽든 설렌다. 사랑을 둘러싼 노래를 듣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홍찬선 시인의 14번째 시집 《살아 보니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스타북스 간)는 무슨 종교인의 거룩한 메시지 같은 표제(標題)지만, 시집을 읽다 보면 각각의 사랑 변주(變奏)가 진지하고 절절하다.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사유와 시적 체험이 골고루 묻어 있는 좋은 시들이 가득하다.

‘사랑1’에서 ‘사랑100’으로 이어진 100편의 연작 연시(戀詩)를 읽는다. 사랑의 정의가 이렇게 다양하고 저렇게 다르지만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삶은 부부가 함께

아침 밥 먹는 일입니다

팔십 대 할아버지는

치매로,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내와, 매일 아침 9시에 아침식사를 합니다

아내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 지 벌써

7년이나 됐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비록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내가 아직 아내를 알아보니

함께 식사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멋진 사랑학 교재 되었습니다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와

매일 아침밥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홍찬선의 시 ‘사랑학-사랑8’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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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슈룹을 함께 쓰고

비에 젖지 않는 것이더라


아쉬움을 속으로 삭이고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으며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더라


사랑은,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며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이더라


어려움은 내가 짊어지고

비바람을 이겨낼 울타리 만들어

마침내 함께 웃음 짓는 것이더라


사랑은 말뿐만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피는 것이더라


나대로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눈을 보고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나와 너의 마음 하나로 슈룹 쓰는 것이더라

 

-홍찬선의 시 ‘슈룹-사랑1’ 전문

 

 

슈룹은 우산(雨傘)의 순우리말이다. ‘나와 너의 마음 하나로 슈룹 쓰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함께 슈룹을 쓰고 비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함께 웃음 짓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상징하는 도구 중에 우산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참고로 슈룹은 훈민정음해례본에 슈룹이라고 나온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를 방문하고 남긴 《계림유사》(1103)에는 ‘산왈취립’이라고 나오고, 조선 초중기 때 나온 《조선관역어》에는 ‘속로’라고 나오는데, 슈룹의 한자 발음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집 《살아 보니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에는 부모에 대한 연작시도 담겨 있는데 매우 아름답다. 시 ‘열무 광주리-엄마2’를 소개한다.


무거운 건

물 통통한 열무단 만은 아니었다


해 뉘엿뉘엿해서야 뽑아

밤 이슥하도록 볏짚으로 엮어

입분수로 마무리하는 걱정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손발 부르트고

허리 꼬부라져도

육남매 삶은 펴져야 했기에


이십 리 새벽길, 소갈미고개를

별을 벗 삼아 비지땀 흘린 것이었다

 

-홍찬선의 시 ‘열무 광주리-엄마2’ 전문

 

 

홍찬선 시인은 ‘충북 아산시 음봉동 산동리’(시 ‘신트리고개-엄마11’)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수저 두 벌 논 두 마지기 살림 밑천 받아/ 하루하루 힘겨운 보릿고개 넘었’(시 ‘울타리-엄마9’)던 엄마는 ‘농사지으며 육남매 키운 고생 끈 놓자마자/ 서울대 앞 건영아파트에서 하늘 소풍 떠나’셨다.

그러니까 엄마가 소천하신 장소는 막내아들이 서울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바람에 ‘더 이상 농사짓기 어려워져’ 서울로 올라오셔서 아들을 뒷바라지하시던 ‘서울대 앞 건영아파트’(시 ‘울타리-엄마9’)이다.


잃은 건 허리였고

얻은 건 지팡이였다


일흔에서 한 해 모자라는

평생 동안, 모두 떠나보낸 뒤

믿을 건 오로지 막대기 하나였다


꼬부랑 ㄱ자 허리는

육남매 키운 계급장이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아비 일찍 여윈 뒤에도

올곧게 자란 애들 보며 당당히 짚었다


멋들어진 단장이 아니라

나를 닮은 나무 줄기였어도


지팡이 집고 후들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은 그래도 행복이었다

구들장 귀신은 못할 짓이었다

 

-홍찬선의 시 ‘나무 지팡이-엄마12’ 전문

 

 

시인은 말한다. ‘엄마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시 ‘눈물주머니-엄마6’)고.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없다. 시인은 ‘교감, 부교감 신경이/ 작동할 틈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엄마는/ 유통기한이 없는/ 눈물주머니’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어렸을 때부터 때로는 회초리로, 때로는 밤 세 톨로, 때로는 열무 광주리로, 때로는 젖으로, 때로는 눈물주머니로 가르치신 분이 어머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도 곱게 빚어져 있다. 아버지는 시인이 14살 사춘기 때 세상을 떠났다. 비록 소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지만 ‘낫 하나로 육남매를 키우며’(시 ‘낫-아부지4’), ‘오로지 삽 한 자루로 무서움을 기대고’(시 ‘수멍-아부지10’), ‘막걸리/ 벗을 삼아’(시 ‘사부곡-아부지9’) 사셨다. 하지만, ‘유신헌법 국민투표 때 반대표 던졌다고,/ 왜 반대했냐고 물으니 막걸리 잔뜩 취해/ 어린 네가 뭘 알겠냐고 하’(시 ‘아부지는 ○○○-아부지12’)시던 깨어있던 분이셨다. 


시대를

잘 못 만나


울분을

삼킨 세월


막걸리

벗을 삼아


마음을 달랬어도


온몸이

먼저 망가져


막내 두고 떠났네

웃으면서 떠났네

 

-홍찬선의 시 ‘사부곡-아부지9’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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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시인

 

이 시집은 시인이 환갑을 맞아 펴낸 시다. 시인이 열네 살 철부지 때, 쉰넷으로 서둘러 하늘로 여행을 떠나신 ‘아부지’가 맞이하지 못했던 그 환갑이다. 스물일곱에 결혼해 딸 둘, 아들 둘을 낳아 기른 뒤 쉰넷에 자퇴(자발적 은퇴)하고 일곱 해가 흐른 뒤에 맞는 환갑이라 생각이 많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환갑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할 새 삶으로 나가는 첫발입니다. 부모님 울타리에 기대 살던 유소년기와 가장으로 한 가족을 책임진 장년을 마미리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2 인생의 설렘입니다.”


시인의 환갑론(論)은 좀 더 연구하고 확장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제2 인생’이란 표현에 공감하며 응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제1 인생’ 역시 누구보다 드라마틱 하게 열심히 살았음에 틀림이 없다. 


환갑은 새로운 시작이란다

예순 해 동안 물들인 무지개 바탕에

예순 해 동안 익힌 단맛 쓴맛 버무려

예순 해 동안 갈고 닦은 몸과 마음으로

온 해 꽉 차게 만들려고 나서는 새 걸음,

삶은 그렇게 물들고 익어가는 것이란다

 

-홍찬선의 시 ‘살아 보니 모두가 사랑이었습니다-서시’ 부분 

입력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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