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무급’ 자원봉사자가 대부분인데도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대선 캠프라면 넘쳐날 정도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면에는 후보가 당선되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있다. 선거캠프에서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개월만 고생하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몇 곱절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후보가 당선될 경우 정부 고위직이나 선출직 후보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정부 산하기관 요직이나 공기업 임원 등으로 갈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있다. 캠프의 모든 사람들이 이같은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선거판에 뛰어든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기에 선거판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경선후보가 2007년 8월 27일 오후 서울시내 식당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을 마친 뒤, 2000여명의 참석자들을 일일이 악수로 환송했다. 사진=조선일보DB

과거 대선에서 제대로 보상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 잘나가던 때를 잊지 못해 여의도에 얼굴을 다시 내밀고 캠프를 비집고 들어간다. 대선이 끝나면 낙선 후보 캠프의 참모들은 절치부심하며 5년 후를 또 벼른다. 모두들 ‘선거꾼’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 캠프에 몇 차례 참여했던 지인의 경우 정부 부처에서 요직을 차지하거나 정부 산하기관장, 공기업 감사 등을 연이어 거쳤고 이번 대선 캠프에서도 어김없이 요직을 맡았다.

선거꾼은 자신이 밀었던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 정부 출범후 캠프내 초짜들보다 우선적으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보면서 체득한 ‘촉’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 줄을 서야 이문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재빠르게 간파할 수 있다.

이런 선거판 생리를 모르는 초짜는 일만 열심히 하다 논공행상에선 밀려나기 일쑤다.

선거꾼은 캠프 내에서 누가 실세라는 걸 빠르게 감지하고, 그 쪽으로 줄을 대는 데 ‘선수’다. 실세와 직접 닿지 않아도 그와 가까운 사람과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줄을 대고야 만다. 실세 등과 함께 활동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쪽 업무를 간접 지원하는 ‘공’을 들이면서 연(緣)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선거판 생존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캠프에서 남들이 하기 꺼리는, 표나지 않는 일만 묵묵히 하다가 후보가 낙선하자 조용히 선거판을 떠난 선거운동원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선후보로 결정된 2007년 8월 20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이명박후보 선거대책위 사무실에서 이재오 전 원내대표 등 지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선후보 사무실 해단식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번 대선에서 한 후보캠프에서 활동했던 60대 초반의 사례다.

그는 캠프에서 제대로 된 직책도 맡지 않았고 누구와 줄이 닿아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후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선거사무소로 매일 출근했다고 한다.

맡았던 일은 선거캠프에 뛰어들 사람들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사무실 내부 청소였다.

그에게 어떻게 캠프에 참여하게 됐냐고 물어도 별 말없이 웃으며 자신이 하던 일에만 전념했고 마무리되면 곧바로 사무소를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경력을 나중에 전해듣고 또 한번 놀랐다.

청소를 맡은지 보름여 지나 캠프의 한 참모가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면서 신원을 알아봤더니 대사를 지냈던 전직 외교부 고위 공직자 출신이었다. 이런 경력이라면 캠프에서 영입해야 할 정도이지만 그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후보가 좋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청소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좋아했던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자 조용히 선거판을 떠났고, 그 후로는 여의도에서 그에 관한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선거꾼들에겐 후보를 선택하는 일차적인 기준이 당선 가능성이다. 후보가 인간적으로 좋다는 이유만으로 캠프에서 청소하는 일을 자원한 전직 대사가 이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비쳐질 것이다.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 확신이 안 설 경우에는 이쪽, 저쪽 캠프에 모두 적(籍)을 올려두기도 하는 게 이들의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전직 대사의 행보는 너무나 달랐다. 양쪽을 놓고 어느 쪽이 바람직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아수라판 같은 선거판에서 전직대사와 같은 경우도 있어야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