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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하노이 日記5] 베트남의 근대사와 하노이의 석촌호수

김승열  한송온라인리걸앤컨설팅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IP ART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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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국민영웅은 호치민이다. 권좌에 올라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유언에서 《목민심서》를 자신의 관에 넣어달라고 한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베트남의 사회경제구조는 오랜 전쟁으로 남자보다 여자들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하노이 구(舊) 시가지에는 서울의 석촌호수 같은 곳이 있어서 주말에는 차량을 통제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한다. 그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베트남의 ‘오늘’을 알기 위해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의 침입으로 중국에 병합되면서 오래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독립 투쟁이 이어져 서기 939년에 응오 꾸엔 장군이 중국을 물리치고 천 년 이상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1883년 다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중국 지배에 항쟁했던 것처럼, 프랑스 식민지가 된 뒤에도 독립 운동을 계속한다. 1930년에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자들이 베트남 공산당을 결성하였는데, 공산당을 이끈 이가 호치민이다.
 
우리나라처럼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이 물러가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 호치민을 주석으로 하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계속하여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지역의 지배권을 주장하였고, 1946년 두 나라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시작한다.
 
8년간의 오랜 전쟁 끝에 1954년 베트남은 공식적인 독립을 이룬다. 그리고 제네바 회의의 결과로, 베트남은 북위 17도 선을 기준으로 북부는 호치민의 민주공화국, 남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 공화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통킹만(東京灣) 사건이 발생하였다. 월남전이 발발한 것이다. 당시 한국군은 월남전에 8년동안 31만명을 파병했다.
 
1974년 4월 30일 지금의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었다. 절대적인 공을 세운 이가 호치민이다. 호치민은 싱글로 알려져 있으나 과거 서른 살 때 중국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투옥과 수감생활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다. 그는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이다. 그의 시신은 바딘광장의 묘에 방부처리되어 보관되어 있다. 1년간 방부 처리비용만 10억원 이상 든다고 한다.
 
호치민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시신을 3군데로 나누어달라고 했다. 또 방문객에게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달라고 청했다고 전한다. 호치민의 집은 번호가 붙어 있는데 그가 처음 숙소로 사용했던 연도를 써서 54, 58 건물이라 부른다. 그가 숨을 거둔 곳은 58호 건물이다.
 
호치민은 평소 113찬 이상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호치민은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방에는 칼 마르크스와 레닌 사진이 걸려있었고, 평소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고 관에 같이 넣어달라고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베트남 국민의 평균 나이는 27세라고 한다. 오랜 전쟁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활동은 여자가 주로 한다. 남자는 짜다 라는 녹차를 먹고 물 담배를 피고 산다. 여자와 남자의 일이 81이라고 한다. 농사일은 여자가 한다. 전쟁이 끊이질 않으니 집안 경제를 여자들이 주로 맡았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그래서 국제결혼을 선호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먼저 나이에 비하여 젊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단정한 복장이어서 깔끔해 보이며 돈도 잘 쓴다고 한다.
또한 오토바이를 주로 타다가 보니 교통사고가 많다. 부모의 교통사고로 고아들이 많다고 한다. 식사는 주로 외식을 한다. 사서 먹거나 집에 싸가지고 가서 먹는다. 채식위주로 먹어서 그런지 살찐 사람이 없다. 여자는 가사일을 하지 않는단다.
 
하노이의 호안키엠 호수가 인상적이었다. 이는 하노이 구()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는 데 마치 서울의 석촌호수와 같은 호수였다. 주말에는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여 시민들이 호수가 주변을 거닐면서 커피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 크기는 석촌호수의 대략 2배 정도의 크기로 비교적 컸다.
호수가 바로 옆에 호수가 보이는 아담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커피 한잔 값이 3000원정도 였다. 별도로 경관값을 받지는 않는 모양이다.
 
호수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베트남 가게의 특성은 가게앞에 야외 공간이 있어서 이곳에서 커피도 마시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햐였다. 아무래도 프랑스의 테라스 커피숍 영향을 받은 듯하다. 비록 의자 등은 열악하였지만 모여 앉아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이국적이다.
 
여전히 미세먼지가 심각하였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인지 조금은 머리가 덜 아팠다. 어두움이 까리면서 호수주변에 가게 불빛이 들어오자 좀 더 화려하게 보였다. 주말에 가족이나 지인들과 같이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마치 하노이의 석촌호수 같아서 그리 낯설지는 않아 보이기도 했다. 차량통행이 제한되어서 인지 그나마 덜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 때문에 조금 복잡하였기는 했지만 호수가 옆의 커피삽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한 안정감과 평온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하노이에서의 이국적인 밤이었다.

입력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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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의 지식재산과 문화예술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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