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김태동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 첫 공립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자 서남권 첫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을 12일 개관한다. 서소문본관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서서울미술관 개관으로 8개 본·분관 체제를 완성하게 됐다.
금천구 독산동 금나래중앙공원 인근에 들어선 서서울미술관은 단순히 새 전시장을 하나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곳을 뉴미디어 예술을 중심으로 전시와 연구, 교육, 창작 실험이 동시에 이뤄지는 전문 미술관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공공미술관이 회화나 조각, 사진 중심의 전시 기능에 머물렀다면, 서서울미술관은 영상과 음향, 조명, 퍼포먼스, 인터넷 아트, 코딩 아트, 소프트웨어 기반 작업 등 동시대 미디어 환경 전반을 다루는 실험적 플랫폼을 지향한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김태동
미술관은 연면적 7186㎡ 규모에 지하 2층, 지상 1층으로 조성됐다. 겉으로는 낮고 수평적인 저층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높은 층고의 전시실과 미디어랩, 다목적홀, 옥상정원, 잔디마당 등이 유기적으로 배치됐다. 설계는 김찬중 건축가가 맡았다. 그는 건물을 공원 속에 놓인 별도의 기념비적 구조물이라기보다, 시민들이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길 같은 미술관’으로 구상했다. 공원과 미술관의 경계를 최소화하고 여러 방향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열어둔 것도 그런 이유다.
외벽은 해머드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을 사용했다. 울퉁불퉁한 금속 표면이 하늘과 나무, 계절의 변화를 은은하게 비추면서 건물이 주변 풍경에 녹아들도록 했다. 공원의 녹지가 실내로 스며드는 듯한 개방감, 그리고 화이트 큐브와 개방형 공간을 오갈 수 있는 가변형 전시실 구성은 이 미술관이 추구하는 유연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제시한 서서울미술관의 정체성은 세 가지다. 새로운 매체와 언어를 실험하며 뉴미디어 아트의 미래를 여는 미술관, 서남권 중심의 지역 문화 연구와 열린 협력 위에서 공진화하는 미술관, 그리고 문화소외계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상의 공공미술관이다. 단지 최신 기술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과 세대,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이 되겠다는 뜻이다.

황수현 세계, 사진 이지영
접근성 강화도 개관 초기부터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다국어 안내, 쉬운 글 해설, 수어 및 문자 통역, 화면 해설, 디지털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관람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관람객들이 소외 없이 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뉴미디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이지만 기술 친화적인 일부 관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과 예술이 낯선 시민에게도 열려 있는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관 특별전은 세 갈래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12일부터 4월 12일까지 열리는 세마 퍼포먼스 ‘호흡’은 미술관의 출범을 알리는 대표 전시다. 감동환, 곽소진, 그레이코드·지인, 김온, 남정현, 이신후, 정세영, 조익정, 탁영준, 황수현 등 27명(팀)의 작가가 참여해 인간과 환경, 공기와 신체, 사회와 예술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제목처럼 ‘호흡’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유기적 운동이면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같은 대기 속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매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퍼포먼스 기반의 창작 지원 플랫폼 ‘세마 퍼포먼스’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김태동,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_ CHAPTER. 1, 2024-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같은 날부터 시작되는 건립기록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는 미술관 개관을 축하하는 통상적인 개관전과는 결이 다르다. 완성된 건물의 외양보다, 이 미술관이 세워지기까지 쌓여온 시간과 지역의 기억을 보여주는 전시다. 김태동, 무진형제, 브이엔알, 신지선, 컨템포로컬이 참여해 건립 기록 사진, AR 프로젝트, 장소 특정 설치, 워크숍 등을 통해 서남권의 장소성과 미술관의 생성 과정을 겹겹의 기억으로 풀어낸다. 작품은 전시실뿐 아니라 로비와 잔디마당, 하역장 셔터 등 이른바 ‘틈새 공간’에 배치돼 관람객의 이동 동선 자체를 전시 경험으로 바꾼다.
이어 5월 14일부터 7월 26일까지는 뉴미디어 소장품전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가 열린다. 이 전시는 서서울미술관의 장기적 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획으로 평가된다. 안성석, 안은미, 양아치, 최수련, 우주+림희영 등 15명(팀)의 작가가 참여하고, 미술관이 보유한 주요 대형 뉴미디어 소장품 10여 점이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청소년’을 정보와 신체가 공생하는 포스트휴먼 주체로 바라보며, 네트워크와 코드, 사회 구조가 어떻게 동시대의 몸과 감각에 스며드는지를 묻는다. 여기에 ‘유스 스튜디오’를 결합해 청소년이 단순한 전시 관람객이 아니라 새로운 담론과 감각의 생산자로 참여하도록 했다.

얄루, 신인호 랜딩, 2026
야외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3월부터 6월까지 미술관 앞 잔디마당에서 펼쳐지는 ‘세마프로젝트V_얄루’는 서서울미술관의 외연을 전시장 밖으로 확장하는 첫 시도다. 작가 얄루의 ‘신인호 랜딩’은 86세 K팝 아이돌이자 데이터 뱅크를 침략하는 ‘할머니 해적’이라는 설정의 신인호를 전면에 내세운다. 노동 집약 산업의 과거와 IT 서버 및 플랫폼의 현재가 중첩된 서남권의 도시 지층을 배경으로, 노년 여성의 신체와 데이터, 기억과 기술을 뒤섞는 미래 서사를 펼친다.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라는 기관 정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야외 프로젝트다.
서서울미술관의 의미는 입지에서도 읽힌다. 미술관이 들어선 금천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이후 문화 인프라 확충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온 지역이다. 미술관 부지는 과거 군부대가 있던 자리였다. 서울시는 서남권의 문화 불균형을 완화하고, 서울형 네트워크 미술관 구상을 완성하기 위해 이곳에 새 분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2015년 기본 구상 이후 국제지명 설계공모, 착공, 준공을 거쳐 10여 년 만에 문을 여는 셈이다.
운영 계획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미디어랩을 중심으로 작가 대상 창작 실험과 기술 워크숍을 지원하고, 남부교육청과 연계한 뉴미디어 틴즈랩 프로그램으로 서남권 청소년 대상 예술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인근 대학과의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체험형 AI 생성형 플랫폼 구축과 맞춤형 접근성 향상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국내외 뉴미디어 기관과의 협업, 주요 작가 개인전과 기획전 유치도 중장기 과제로 제시됐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서서울미술관을 “지역과 세대,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서남권 시민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가까운 곳에서 세계적인 뉴미디어 아트를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관람료는 무료다.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하며, 토·일·공휴일은 계절에 따라 마감 시간이 달라진다. 서서울미술관이 서울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실험을 서울 서남권이라는 지역성과 연결하고, 공공미술관의 접근성과 포용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미술관의 출범은 단순한 공간 개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