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아시아 선비들은 왜 ‘매화’를 사랑했을까요

눈을 뚫고 봄을 알리는 雪中梅, 선비 문화의 精髓
  • 김석규 한반도 안보전략연구원 고문·행정학 박사
  • 업데이트 2026-02-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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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매. 사진=뉴시스

동아시아 선비들은 유독 매실나무의 꽃, 매화(梅花)를 좋아했습니다.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주희(朱熹1130~1200)는 매화를 주제로 시 80여 편을 남겼고, 조선의 퇴계 이황은 117수의 매화 시를 매화시첩에 담았습니다. 추사 김정희도 매화를 사랑했습니다. 매화 속에서 자신의 학문과 예술의 이상을 찾았습니다. 매화는 그들에게 단순한 자연의 꽃이 아니라, 군자의 덕성과 도학적 이상을 투영하는 거울이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 피어난 매화는 동아시아 선비들에게 절개와 지조, 투혼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매화는 눈을 뚫고 피어나 가장 먼저 봄을 알립니다. 온대 식물들은 보통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긴 겨울 동안 저온을 견뎌야 하는데, 매화는 400~600시간 동안 저온을 견디면 꽃을 피웁니다. 복숭아는 1000시간, 배꽃은 1200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매화보다 늦게 핍니다. 매화의 꽃눈 속엔 ‘PmDAM6’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휴면을 유지하다가 저온이 충분히 누적되면 발현이 줄어들지요. 이때 꽃눈의 생장을 억제하는 아브시스산(abscissic)’ 호르몬은 감소하고, 개화를 촉진시키는 사이토카인(cytokine)’지베렐린호르몬이 증가합니다. 이 순간, 매화는 눈 속에서도 꽃눈을 깨우며 기지개를 켭니다. 한중일(韓中日)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대륙 동안(東岸) 기후에 속합니다. 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꼭 오늘처럼 눈은 자주 내리지요. 매화의 식물학적 특성과 이런 기후가 기적처럼 맞물려 설중매(雪中梅눈 속에 핀 매화)’라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공자와 맹자 이후 유교는 성리학으로 발전하며 절개와 지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선비들은 매화를 애호하며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고, 자연 속 사물에 도덕적 이상을 투영했습니다.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군자(君子)의 덕성과 성리학적 이상을 형상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도덕적 이상이 매화 속에서 하나로 만난 것이지요. ‘동방의 주자(주희朱熹), 성리학의 최고 수장이라 불린 퇴계 이황도 평생 매화를 사랑했습니다. 임종 직전 그는 곁을 지키던 이에게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매화가 그의 삶과 학문을 관통하는 상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후대(後代)는 그를 매화 선생이라 불렀지요. 매화는 퇴계의 도학적 정신과 고결한 인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꽃이었습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관기(官妓) 두향과 교유(交遊)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공식 기록이나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소설가 정비석의 작품에서 매화분을 두향이 선물했다는 설정은 문자 그대로 소설적 창작일 가능성이 큽니다. 학문적으로는 설화적 요소가 강한 일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요. 다만 대중은 퇴계의 고결한 성리학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인간적 면모를 흥미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어느덧 음력 정이월(正二月)입니다. 북풍한설(北風寒雪)에 머리가 시려 옵니다. 맑고 장엄한 울림을 느낍니다. 이맘때쯤 매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극복과 고결의 서사를 품은 하나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선비 문화의 정수(精髓)를 품은 눈 속 매화를 보며 희망을 느껴보시면 어떠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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