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my spring to come.
한국 근대시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김영랑(金永郞, 1903~1950년) 시인의 시 전편 86편이 15년의 긴 여정 끝에 완역본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준서림에서 펴낸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은 안선재(Brother Anthony of Taizé) 수사의 헌신적 번역과 이승연 편집자의 정성스러운 편집이 빚어낸 결실이다. 한국어 원문과 영역을 나란히 배치한 한영 대역본으로, 김영랑 시의 음악성을 온전히 살려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김영랑 시인
번역을 맡은 안선재는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언어를 공부한 번역가이자 영문학자, 교수, 떼제공동체 수사다. 1988년 한국 현대문학 번역을 시작한 이래 37년간 시집 60여 권과 소설 10여 권, 논픽션 4권을 번역 출간하며 세계에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의 헌신은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옥관장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대산문학상 번역상, 만해문예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 번역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선재 수사
그런 안 수사가 김영랑의 시 전편 번역에 15년을 바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김현철 선생이 처음 제게 찾아와서 시인 김영랑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지 어느새 15년도 더 지났습니다."
안선재 수사는 시집 뒤편에 실린 ‘번역자의 말’ 첫머리를 이렇게 열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김현철 선생의 소망은 간절했다. 한국에서 많이 사랑받는 아버지의 시가 영어로 올바르게 번역되어 다른 나라 독자들도 읽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는 아버지 김영랑 시인의 모든 시를 영어로 출간할 수 있게 번역하고 출판사까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영랑 시인은 일제강점기 무렵에 글을 썼고, 그가 쓴 언어는 지금과 달랐다. 더욱이 그는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그곳에서 살았으며, 고유한 사투리와 어휘를 사용했다. 무엇보다 한국 독자들이 김영랑의 시에서 높이 사는 점이 언어가 담고 있는 음악성이었는데, 이는 번역하면 쉽게 사라져버리는 특징이었다.
음악을 사랑한 시인, 그의 시는 왜 노래인가
김영랑의 시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 특별히 어려웠던 이유는 그의 시가 본질적으로 '노래'였기 때문이다. 안선재 수사는 김영랑이라는 인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김영랑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항상 느껴왔습니다. 그는 놀랄 만큼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김영랑은 직접 고수로 북을 치면서 어린 김소희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다. 클래식 음반을 수집하여 감상했고, 도쿄에서 뉴욕 필하모닉 콘서트에 가려고 기꺼이 논밭을 팔기도 했다. 성악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윌리엄 예이츠와 존 키츠의 시를 애정하며 직접 영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승연 편집자는 ‘편집자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그때 시인이 즐겨 듣고 애정했던 베토벤, 슈베르트 등 클래식 음악과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이 똑같은 것처럼" 김영랑의 시는 시간을 초월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판소리와 클래식을 동시에 사랑했던 김영랑. 그의 시는 우리말의 가락과 리듬, 음악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영어로 옮기는 일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음악을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강진 사투리와 시대어, 그리고 음악성
안 수사가 마주한 난관은 구체적이었다. "사투리와 시적 표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한국인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친분이 있던 한두 명이 특정 질문에 기꺼이 답해 주었지만, 그들조차 정확한 뜻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다들 몹시 바빴으니까요.“
강진 출신인 목포대 김선태 교수가 미발표 연구를 공유해주었고, 서울여대 이승원 교수가 김영랑 시 전편을 새로 출간한 참이어서 한국어 텍스트에 도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안 수사는 자신의 번역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출판은 미국의 한 신생 출판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김현철 선생은 강진에 거주하며 영랑생가 옆 영랑문학관 관장직을 맡고 있었다. 강진군이 한국에서 책을 여러 권 구입했고, 안 수사는 감사패도 받았다. 하지만 신생 출판사는 홍보와 유통에 필요한 자금이 충분치 않았고, 정작 독자들은 이 책을 잘 알지 못했다. 얼마 안 되어 책은 절판되었다.
"도움을 좀 받았더라면 좀 더 정확한 번역에, 가독성 좋고, 더 서정적인 책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전환점은 하준서림 최성훈 대표와의 만남이었다. "최성훈 대표로부터 더 완성도 있는 책으로 출간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승연 편집자를 소개받고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승연 편집자는 안 수사가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이 편집자는 제가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일을 해낼 수 있었고, 오류나 오해가 없는지 일일이 제게 확인했습니다. 함께 작업하여 김현철 선생이 내고 싶어 했던 책을 드디어 이번에 출간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이 편집자는 자신의 편집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초판본을 확인하고 여러 버전으로 출간되어 있는 시들을 대조하는 지난한 작업을 거치면서 여러 연구자 선생님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남겨놓으신 글들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시의 순서를 다시 엮고 부마다 제목을 새로 넣는 작업을 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꼭꼭 담아서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 수도하듯 다른 언어로 그 시를 옮겨 적는 역자의 마음, 두 마음을 함께 엮어 읽는 우리들 독자의 마음, 이 마음들이 부디 섬세하게 부딪는 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정성을 기울였다.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안장된 김영랑 시인 추모공간
물결이 섬세한 바다, 강진에서 태어난 시인
이 편집자는 최근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 강진을 발견하고 이렇게 적었다.
"파도가 억세지 않은 것을 보니 동해는 아니었다. 해남 강진 어디쯤의 다도해처럼 물결이 섬세했으나, 섬이 한 점도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물결이 섬세한 바다를 지척에 둔 강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 김영랑은 섬세한 물결처럼 마음의 미세한 떨림까지 포착해 시로 빚어냈다.
김영랑은 서울 휘문의숙과 도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유학했다. 유학 후 한동안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했던 시절, 그는 86편의 시를 지었고, 5편의 영시를 번역했으며, 10편 넘는 산문을 발표했다. 생전에 《영랑시집》과 《영랑시선》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김영랑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장엄한 시였다. 일제강점기 내내 그는 항상 긴 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고 지내며 저항했다. 본인과 자녀들의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고, 시를 쓰지 않고 침묵으로 저항하는 기간도 길었다.
자신의 땅을 20년 넘게 경작한 소작농에게는 그 농지의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나중에는 팔 땅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지주라는 낙인이 찍혀 해방 후 얼마 안 되어 좌익 세력에 의해 강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안선재 수사는 감격스럽게 말했다. "그는 1950년 가울 서울에서 북한군이 철수하던 중 유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영웅적인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한국 시인 중 그런 일생을 산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왜 김영랑 시는 영어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김영랑 시인의 첫 시집 《영랑시집》 초판본을 펼치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구절이 있다.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 김영랑과 박용철이 존 키츠의 ‘엔디미온’에서 따온 에피그라프다.
100년 전 영문학을 공부하고 예이츠와 키츠를 사랑했던 젊은 시인이 선택한 이 문구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시가 영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김영랑은 단순히 한국어로만 시를 쓴 시인이 아니라, 세계 문학과 교감하며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인이었다.
이승연 편집자의 말처럼 "100년 전쯤 영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던 젊은 이십대 시인에게 와닿았던 그대로 이 말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여전히 생생하다." 김영랑의 시가 담고 있는 아름다움은 한국어라는 특정 언어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다.
시인은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
이승연 편집자는 김영랑의 시 ‘우감’(1940)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행복을 찾노라 모두들 환장한다.“
"어느 시인이 '시인은 다른 이들보다 미래를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이라고 했던가요. 한 구절 한 구절 시를 가만히 읽어 나가면서 시인이 살았던 미래가 어쩌면 지금인 건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편집자는 "한없이 서정적인 시어에 살포시 젖어들다가도, 감격과 분노의 말이 거침없이 터져 나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라며 "한없이 과거에 속해 있었던, 교과서 안에서만 살아 있다고 생각했던 시인이 어딘가 가까이에서 가만히 속삭였다가 우렁우렁 호통쳤다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 시집의 끝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김영랑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한국어 원문과 영역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는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my spring to come"으로,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는 "for three hundred and sixty gloomy days I sadly lament"로 옮겨졌다.
마지막 구절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은 "I just go on waiting for a spring of glorious sorrow"로 번역되었다. '찬란한 슬픔(glorious sorrow)'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영어에서도 그대로 살아 숨 쉰다.
최성훈 하준서림 대표는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한 소회를 밝혔다.
"굳이 제 소감이랄 건 없지만, 우리 詩가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이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승연 편집자도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그간 많은 한국시를 아름답게 번역해온 안선재 수사님 덕분에 이런 새로운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되어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조금씩 아껴가며 되도록 영시와 번갈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시에 담긴 아름다움이 여러분에게도 기쁨이 될 수 있기를요.“
15년의 긴 여정 끝에 완성된 이 시집은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다. 아들의 간절한 소망, 번역가의 헌신적 노력, 편집자의 세심한 손길, 출판사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낸 문화적 성취다. 김영랑이 사랑했던 키츠의 말처럼,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다. 그의 시가 이제 영어로도 노래하며 세계와 만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Until Peonies Bloom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my spring to come.
On the days when peonies drop, drop their petals,
I finally languish in sorrow at the loss of spring.
One day in May, one sultry day
when the fallen petals have all withered away
and there is no trace of peonies in all the world,
my soaring fulfillment crumbles into irrepressible sorrow.
Once the peonies have finished blooming, my year is done;
for three hundred and sixty gloomy days I sadly lament.
Until peonies bloom
I just go on waiting for a spring of glorious sorr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