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 김광선 교수가 독일 함부르크로 찾아가 미래학자 호르스트 오퍼쇼브스키(horst opaschowski) 교수를 만나 나눈 대화가 6월 20일 <서울시니어스포럼 2025>에 소개되었다. 호르스트 오퍼쇼브스키 교수는 독일언론에서 종종 ‘미스터 미래(Mr. Zukunft)’로 불릴 만큼 통찰력이 있는 학자다.

'노후의 삶과 비전'을 주제로 나눈 두 사람의 대화는 모두 밑줄을 칠 만큼 의미 있는 구절이 많았다. 오퍼쇼브스키 교수는 1941년에 태어나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75년에서 2006년까지 함부르크대 교육과학과(educational science)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1979년에 ‘BAT 여가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는 후에 ‘미래 연구 재단’으로 발전했는데 2014년에는 딸과 함께 ‘Opaschowski Institut für Zukunftsforschung(오퍼쇼브스키 미래연구소, O.I.Z.)’를 공동 설립했다.

그는 빌리 브란트부터 앙겔라 메르켈까지 독일 총리들에게 정당을 초월하여 조언을 제공하며, 여가 정책과 시민 참여 등에 관해 자문해 왔다. 2010년, 독일 연방공로훈장 1등급 수훈했다.

강남대 대외교류센터 김광선 교수는 “오퍼쇼브스키 교수가 직접 방한하기 어렵기에 제가 직접 함부르크까지 가서 만나 뵙고 함께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인터뷰 자체는 3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는데 이날 서울시니어스포럼에서는 10분으로 압축해 소개됐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교육-직업-은퇴라는 삶의 단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김광선 : 오퍼쇼브스키 교수님께 100세 시대를 넘어 이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삶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사회가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세대 간의 역할과 연대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퍼쇼브스키 : 지금 우리는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시대, 일종의 조용한 혁명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독일,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순간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절반은 100세까지 살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긴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전통적으로 이어진 교육-직업-은퇴라는 삶의 단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청년기가 아니라 40~50대 중년이 삶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올 겁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인생은 자녀가 독립한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 활동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냐”

▷김광선 : 과거 은퇴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노년기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에 계속해서 기여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노령"을 위해 개인과 사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재취업이나 사회공헌 활동 등 노년층의 활발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제도적 문화적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퍼쇼브스키 : 직업 활동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은 본래 가만히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저 역시 독일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안에서 일대일 멘토링 제도라든지 지역사회 곳곳에 서로 돕는 네트워크, 즉 "세대 간 도움 주고받기 장터"와 같은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이런 곳에서는 청소년들이 어르신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드릴 수도 있고, 단순한 자원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증서로 이어집니다.

이런 경우는 단순한 활동 증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역량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이후 진로 선택에도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디지털 기술이 삶의 시간을 빼앗지 않아야”

▷김광선 :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노년층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디지털 격차 해소와 함께 미래의 기술이 노년층의 삶 질 향상에 어떤 긍정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AI 로봇 기술 등이 노년층의 독립적인 삶과 건강 관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오퍼쇼브스키 : 디지털이라는 흐름은 이제 거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이며 노년 세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새로운 미래 기술들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기술이 삶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삶을 더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큰 반면 동시에 새로운 위험도 함께 수반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물음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 기술이 삶의 시간을 빼앗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을까요?

함브르크대 호르스트 오퍼쇼브스키 명예교수.

“노년의 시간은 ‘남은 시간’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

▷김광선 : 노년기의 여가는 단순히 시간이 많아지는 것을 넘어 노년층의 여가가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이나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노인층의 행복한 여가 생활을 위한 독특한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퍼쇼브스키 : 고대 로마의 지혜가 다시 떠오릅니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누려라!’는 말이죠.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다잡으며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고자 합니다.

이 시기의 시간은 단지 ‘남은 시간’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 ‘얻어낸 시간’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시니어들이 청강생으로 대학을 찾고 철학이나 기술 관련 강좌에 참여하거나 대학 외부의 평생 기관에서 컴퓨터 같은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 등을 통해 세대 간 교류가 일어나고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갑니다.

“전례 없는 장수 시대 준비해야”

▷김광선 : 교수님께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변화의 흐름을 읽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예상치 못한 사회적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퍼쇼브스키 : 미래학자라고 해서 미래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책임을 사회에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바로 미래학자의 역할입니다.

최근 스위스에서 있었던 기후 관련 사례는 대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산사태와 빙하 붕괴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스위스는 인공지능과 정교한 기술로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회 전체에도 필요하지만 결국엔 우리 각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전례 없는 장수 시대를 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미 글릭(semiglück), 위기 속에 삶의 의미 찾기!”

▷김광선 : 독일을 한번 살펴보면 그곳의 노년층은 노후 대비에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까요? 건강, 재정적 안정, 가족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요?

▶오퍼쇼브스키 : 독일의 노년 세대가 추구하는 건 결국 한 가지입니다. 잘 살고 오래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노년의 갑자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간 시기부터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제적 대비, 즉 물질적인 준비입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리스크를 줄이고 미리미리 대비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중요한 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신적인 준비"입니다.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될 여러 상황에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죠. 물론 그 과정은 어려움도 따릅니다. 여기서 독일적 특성이 하나 나타납니다.

독일에는 ‘세미 글릭(semiglück)’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태도입니다.

참고로 세미 글릭은 '부분적인 행복', '절반의 행운'이란 뜻이다. 완전한 행복이나 행운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만족스럽거나 긍정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덧붙여, 독일 광부들이 서로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나누는 인사말은 '글릭 아우프(Glück auf!)'이다.

“세대 간 연결과 공동체의 지속성”

▷김광선 : 독일에서의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어르신들에게도 도움이 되거나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시니어들이 독일의 모델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퍼쇼브스키 : 노년은 더 이상 결핍의 시기로만 인식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노화를 보다 긍정적인 삶의 과정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과 친구 관계에서 삶을 함께 나누며 이어가는 방식이 노년기의 삶의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세대 간 연결과 공동체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이런 ‘함께 살아가는 문화’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국이 독일보다 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호기심,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태도 배워야”

▷김광선 : 어떤 국가이든지 세대 갈등은 존재하는데, 후속 세대와 노인 세대가 갈등 없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지요?

▶오퍼쇼브스키 : 자주 회자 되는 ‘세대 간 전쟁’이라는 개념은 이제 한물 간 이야기입니다.

그 대신 오늘날에는 ‘세대 간 연대’, 심지어 ‘세대 간 우정’까지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어르신으로부터 존중, 인내, 관용,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고,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호기심,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태도에서 삶의 활력을 느끼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바로 이런 상호 존중과 믿음, 배움의 흐름이 노년기에도 삶을 생기 있게 유지해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서울시니어스포럼에 전하는 메시지 - “정신건강이 신체건강보다 더 중요해”

▷김광선 :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실버타운을 가장 크게 운영하면서 바람직한 노후의 삶의 방향에 대해 정답을 찾고자 하는 이런 국제 포럼을 개최한 서울시어스타워에 한 마디 남겨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요?

▶오퍼쇼브스키 : 우리는 모두 오래 살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시간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합니다. 연구를 보면 고령기에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꾸준히 자신을 갖고 온 경우가 많습니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고 가능한 한 오래 자립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정신적으로도 깨어 있고 유연하게 사고하려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정신 건강이 신체적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년기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함께 지탱해 줄 ‘사회적 동반자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 관계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정신적 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92세에 왜 여전히 매일 첼로를 연습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인간은 어떤 나이에서도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