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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김경준의 가짜인생

[정밀분석] 한국검찰의 송환요구서·미국 법원 판결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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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博 후보와는)그냥 사회적인 관계였다. 연인 사이는 아니다』(에리카 김 변호사 미국 법정진술서)

죽은 동생의 여권으로 입출국

대학 동창 등 미국인 7명의 여권 위조, 위조 여권으로 10여 개 유령회사 만들어

금감원과 법원 등에 위조서류 19건 제출

유상증자 시 서류조작해 384억원 해외로 빼돌려

473차례 허위 低價 매도주문ㆍ107차례 주식 위장매매ㆍ31차례 高價 매도주문해서 주가조작


宋承鎬 月刊朝鮮 기자〈soonj@chosun.com〉
鄭蕙然 月刊朝鮮 기자〈hychung@chosun.com〉
김경준이 돌아왔다!
김경준 BBK 前 대표이사
  재미교포 사업가 김경준(41)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大選(대선)을 30일도 남겨두지 않은 政局(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汎여권은 김경준의 「BBK 株價(주가)조작 사건」을 李明博(이명박) 후보를 거꾸러뜨릴 「한방」으로 삼겠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합신당을 비롯한 汎여권 측은 『김경준씨가 저지른 株價조작 사건에 한나라당 李明博 후보가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했기 때문에 김씨가 국내로 송환돼 검찰의 수사만 받게 된다면 李明博 후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나라당 측은 『김경준의 주가조작 사건은 김씨의 단독 범행으로, 李明博 후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여권 측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맞서 왔다. 李明博 후보 본인은 『만약, 이 사건에 내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여야는 이번 「태풍의 눈」인 김경준씨의 국내 송환에 맞춰 一戰不辭(일전불사)의 태세를 갖췄다.
 
  1년 가까이 「BBK 株價조작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덤덤하다.
 
  「도대체 BBK 株價조작 사건이 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금융사고에 관련된 기업과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진데다, 株價조작에 동원된 금융사기 기법들이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야가 「김경준 한방이면 이명박은 간다」, 「한방이 아니라 헛방이다」고 연일 혈전을 벌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김종률 의원 주장은 터무니 없다』
 
에리카 김 변호사(김경준 前 대표 누나)
  최근 대통합민주신당 측은 김씨의 귀국 직전인 11월13일 한나라당과 김경준씨 측 간 「딜(dealㆍ거래)」 의혹을 제기했고, 한나라당은 「신종 공작정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통합신당 김종률 의원은 지난 11월13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 사무실의 이동연 前 사무장(現 LA 소재 한미신용정보 회장)이 한나라당 측과 이른바 딜을 끝냈고 김씨와 이야기가 마무리됐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흑색선전과 공작정치도 부족해서 이제는 신종 공작정치까지 하고 있다』면서 『국제사기꾼 김경준과 내통하고 있는 정치 세력이 어디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짐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은 『김씨 귀국 공작을 어디서 하는지 안다. 우리가 大選에서 승리할 경우 공작팀은 보름 내에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의원은 『(김씨 측으로부터) 140억원 소송 취소와 범죄인 인도를 취하해 달라는 협상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범죄인과 협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통합신당 김종률 의원이 한나라당과 김경준씨 사이의 「빅딜」 의혹을 제기한 지난 11월13일 이동연 회장과 국제전화를 통해 이같은 의혹의 진위여부에 대해 물었다.
 
  이동연 회장은 『김종률 의원의 주장은 한마디로 얼토당토 않은 얘기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어느 누구와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美 검찰, 李明博-에리카 관계 추궁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
  月刊朝鮮은 취재과정에서 김경준씨와 김씨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가 한 미국 법정 진술 녹취록을 입수했다.
 
  이 녹취록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美 검찰이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와 에리카 김 변호사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점이다. 美 검찰은 심지어 「에리카 김 변호사와 李후보 간에 性관계가 있었느냐」, 「만나는 자리에 李후보의 부인이 있었느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美 검찰은 에리카 김 변호사와 李明博 후보 간 관계를 밝혀내는 데 상당히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美 검찰 측이 자신과 李후보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李明博씨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이일 뿐 性관계를 가지는 관계는 아니다』고 진술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미국 법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힌 반면, 동생 김경준씨는 검찰 측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美 검찰 측은 김경준씨의 답변이 분명하지 않자, 『당신이 BBK의 사장인 것은 맞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정확하게 말하면, 김경준씨가 대표로 있던 코스닥업체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株價조작 사건」이다.
 
  김경준씨는 1997년 4월27일 서울에서 「BBK」란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BBK는 2001년 4월28일 금융감독원에 의해 「등록취소」됐다. 등록이 취소되면 회사설립이 취소되고, 투자자문업을 할 수 없다.
 
  김경준씨는 BBK의 등록이 취소되기 직전인 2001년 3월5일 「옵셔널벤처스 코리아(광은창투 후신)」라는 회사를 인수한 뒤 2001년 4월27일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누나인 에리카 김은 이사로 등재됐다.
 
  BBK라는 회사가 사라지기 하루 전 김경준씨는 「옵셔널벤처스 코리아」라는 회사로 갈아탔다.
 
  김경준씨는 이 「옵셔널벤처스 코리아」를 통해 株價를 조작했다.
 
  김경준씨는 株價조작과 함께 이 회사의 자금 384억원을 외국으로 빼돌렸고, 이 과정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국내의 개미군단(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김씨는 「주가조작 및 회사공금 횡령」에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미국에서 생활을 하던 김씨는 2004년 5월27일 미국 FBI(연방수사국)에 체포됐고, 한국으로 송환돼 오기 직전까지 美 캘리포니아 연방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한국의 大選정국을 소용돌이에 빠뜨린 김경준은 어떤 인물일까?
 
  김씨는 ▲미국의 교수 및 정치인 7명의 명의를 도용해 위조여권을 만들어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었고,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를 수십 개나 만들었으며, ▲19건의 각종 공문서를 위조했고, ▲株價를 조작하고 회사 공금 384억원을 횡령했다.
 
한국 검찰의 김경준 범죄인 인도요청서(왼쪽)와 미국 법원의 김경준씨 송환 판결문.
 
  김경준의 가정환경
 
  김경준씨의 가정환경부터 살펴보자. 김경준씨의 누나이자 在美 변호사인 에리카 김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1995년 刊), 김경준씨의 知人(지인) 등의 진술에 토대를 둔 것이다.
 
  김경준씨는 1966년 6월6일生이다. 김씨의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에리카 김(본명 김미혜) 변호사와 남동생 경모(1999년 12월3일 질병으로 사망)씨 등 다섯 명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연세大, 어머니는 이화女大를 졸업했다고 한다.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다섯 살 때인 1970년 美國으로 이민을 떠났다. 김씨의 가족은 이민을 가기 전까지 서울 효창동의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에서 살았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간 뒤 얼마간 외삼촌 집에서 머물렀다가 따로 집을 구해 독립을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큰이모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일을 했고, 어머니는 공장에 다녔다고 한다.
 
  김경준씨는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코넬大와 시카고大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펜실베이니아州立大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김씨는 이후 미국의 모건스탠리와 한국의 동방페레그린, 「환은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 서울지점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했다.
 
  김씨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는 코넬大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김변호사는 대학 1학년 때 「영원히 강하다」라는 뜻의 「에리카」라는 이름을 스스로 만들어 불렀고, 이때부터 「김미혜」는 「에리카 김」이 되었다.
 
  1987년 대학을 졸업한 에리카 김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UCLA 법과 대학원(3년 과정, 입학생 300여 명)에 진학했다. 김변호사는 대학원 1학년 여름방학 때, LA 검찰총장실에 근무하는 검사들의 서류보조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5명 정도에게만 주는 우등상을 받았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법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변호사 시험에 응시했고, 이때 수험번호는 「90066번」이었다. 김변호사는 이 시험에서 합격해 변호사의 오랜 꿈을 성취했다. 1990년, 27세 때였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신경내과 의사와 결혼을 했고, 결혼식 리셉션 사회는 동생인 김경준씨가 맡았다. 김변호사의 남편은 의사 집안의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고, 컬럼비아大와 텍사스 의과대학원을 졸업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혼한 정확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에리카 김 변호사는 이혼소송을 주로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무실과 두 시간 정도 떨어진 LA 연방교도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이 교도소는 김경준씨가 한국으로 송환되기 전까지 수감돼 있었던 곳이다. 김변호사는 현재 탈세 등의 혐의로 미국 FBI에 의해 수사를 받고 있으며, 변호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김경준 가족과 李明博의 질긴 악연

 
  李明博 후보가 김경준씨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4년부터였다. 李후보는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혐의를 받게 되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을 방문했다. 이 기간에 李후보는 LA소재 한인교회에 초청받아 신앙간증을 했다.
 
  이 자리에서 在美 사업가 이동연(한미신용정보 운영)씨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됐고, 이동연씨의 소개로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와 만나게 됐다고 한다.
 
  李明博 후보는 이후 1995년 11월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에리카 김 변호사의 자전적 에세이집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李明博씨가 에리카 김 변호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이 행사를 실질적으로 주최한 이동연씨의 초청에 의해서였다.
 
  李明博 후보는 1998년 11월 미국 조지워싱턴大 객원연구원으로 공부하던 중 LA를 방문했고, 이때 한 파티에서 에리카 김 변호사와 다시 만났다.
 
  김경준씨는 당시 「환은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의 서울지점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김경준씨는 그때까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던 신생 금융기법을 활용하는 펀드매니저로 통했다.
 
  김경준씨는 증권회사를 그만둔 직후인 1999년 4월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했다. 회사 사무실은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150번지 삼성생명 빌딩 8층이었다.
 
  李明博 후보는 미국 조지워싱턴大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1999년 12월 중순경 귀국했다. 李후보는 1999년 12월 말경 일시 귀국한 에리카 김 변호사의 소개로 김경준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李후보는 김씨로부터 미국의 선진 금융기법에 대해 소개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李후보는 김씨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李후보의 김경준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은 두 사람 간 동업관계로까지 발전을 하게 된다. 李후보와 김경준씨는 2000년 2월18일 「인터넷 증권회사(LK e-Bank)」를 설립했다. 이때가 李明博 후보로서는 김경준씨 가족 간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고, 김경준씨로서는 李후보의 명성을 기반으로 한 첨단기법을 통한 금융사기 행각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에리카 김 변호사와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나는 언제나 한국인」.
 
  李明博과 김경준이 만난 시점
 
  汎여권은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와 김경준이 BBK의 동업자이며, 따라서 김경준이 저지른 株價조작 과정에 李후보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李明博 후보 측은 『김경준이 BBK를 설립한 때에는 그를 알지 못했다』면서 『따라서 김경준과 李후보가 동업자 관계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김경준씨가 BBK를 설립한 시점은 1999년 4월27일다. 이 당시 李明博 후보는 미국 조지워싱턴大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할 때다. 李후보는 1999년 12월11일 연구원 생활을 끝내고 귀국을 했고, 1999년 12월 말경∼2000년 1월 사이 에리카 김 변호사를 통해 동생인 김경준씨를 소개받았다. 따라서 李明博 후보가 김경준과 BBK를 공동으로 운영해 왔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한국 검찰의 「김경준 송환요청서」와 미국 법원의 판결문에는 김경준씨와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 그리고 김씨가 운영하던 회사 직원들의 이름들이 거명돼 있다. 그러나 李明博 후보의 이름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다섯 개의 이름 사용

 
  한국 검찰이 작성한 「김경준씨 송환요청서」와 미국 법원의 「김경준 송환 판결문」을 중심으로 김경준씨의 행적을 살펴보자.
 
  한국 검찰은 미국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김경준 범죄인 인도 청구서」에서 김경준씨의 외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경준의 머리는 검정색이고, 눈은 쌍꺼풀에 안구는 검정색임. 눈이 나빠 평소 렌즈를 착용하며, 집에서는 안경을 착용한다고 함. 얼굴은 달걀형에 통통한 편이며 코는 날카롭고 비교적 큰 편이다. 얼굴 색깔은 흰 편이며 머리 스타일은 주로 짧으면서 뒤로 빗어 넘겨 다님. 키는 약 172cm이며, 몸무게는 90kg 정도로 뚱뚱한 체격임>
 
  김경준씨는 미국 이름으로 서로 다른 5가지를 사용해 왔다. 그동안 김씨가 사용해 온 영문이름은 「Kyung Joon Kim」, 「Kyungjoon Kim 」, 「Kyung June Kim」, 「Christopher Kim 」, 「Chris Kim」 다섯 가지다. 미국의 경우 性과 이름을 붙여 쓰거나 띄워서 사용하거나, 영어식 발음이 비슷해도 영문 표기가 다르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된다.
 
  김경준씨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하면서 7종류의 위조 여권을 만들어 사용했다. 위조여권은 「유령회사」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됐다. 김경준은 미국의 정계인사, 영화배우, 대학교수 등의 명의를 도용하고, 이들의 여권을 만들어 관공서에 제출하는 각종 자료에 첨부했다.
 

 
  대학교수ㆍ영화배우 명의 도용해 여권 7개 위조
 
  김경준씨는 자신이 경영하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서울 강남구 대치동 1002 코스모빌딩 8층)의 웹디자이너를 시켜서 여권을 위조했다. 김씨는 자신의 여권을 스캐너로 복사하게 한 뒤 이를 컴퓨터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붙이도록 했다. 이같은 사실은 2001년 검찰이 김경준의 株價조작 및 공금횡령 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 직원들의 진술에 의해 밝혀졌다.
 
  김경준씨가 도용한 여권 명의자 중 「스티브 발렌주엘라」씨는 美 LA 의회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경준씨가 명의를 도용한 「지오반니 리비시(Giovanni Ribisi)」라는 인물은 영화배우 「지오반니 리비시(Giovanni Ribisi)」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배우는 유령회사의 브로커로, 엄청난 거액을 만지는 증권가의 유명 펀드매니저 활약상을 그린 영화 「보일러 룸」의 주인공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19세의 이 영화 주인공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으로 주식을 중개하는 회사에 취직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목표를 백만장자가 되는 것과 언제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아버지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각고의 노력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주식 브로커 시험에 합격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으나, 그의 끝없는 욕망은 결국 자신을 범죄의 수렁으로 빠뜨리면서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내용이다.
 
  「보일러 룸」은 주식 거래의 정상적인 법적 규정을 제쳐 두고 투자가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투자하도록 유도해 유령회사나 위험성이 높은 주식을 사고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사기 브로커 조직을 뜻하는 단어다.
 
  김경준씨가 여권명의를 도용한 인물 중 에릭 에드먼스, 스티븐 벤티, 콘 마이어, 피셜 윌리엄이라는 인물들은 모두 미국 「다트머스大」 교수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에릭 에드먼스 교수(경제학부)는 김경준씨와 시카고大 동창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릭 에드먼스 교수는 미국 LA 교포 대상 주간지인 「선데이 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김경준과 시카고大에서 함께 수업을 받은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김경준씨는 이처럼 위조한 여권을 금융감독원 등 한국 정부기관에 제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2001년 10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옵셔널벤처스코리아) 명의로 중소기업청에 창업투자사 등록변경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위조한 여권을 함께 제출했다. 이때 제출한 위조여권의 원래 명의자는 LA 의회 의장을 지낸 「스티브 발렌주엘라」씨였다.
 
 
  사망한 동생 여권으로 10차례 입출국
 
  김경준씨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질병으로 사망한 동생 경모씨의 미국 여권을 10차례나 사용해, 한국과 미국을 오갔다. 동생 경모씨의 미국 여권 이름은 「Scott Kim」이다. 경모씨는 1999년 12월3일 질병으로 사망했다.
 
  동생 경모씨가 사망한 시점은 김경준씨가 국내에서 투자자문회사인 BBK를 설립(1999년 4월27일)해 한창 영업을 하고 있을 때이며,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가 귀국(1999년 12월11일)하기 전이었다. 다음은 김씨가 동생 경모씨의 여권을 사용한 부분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결내용이다.
 
  <김경준에게 反한 증거는 문제의 범죄행위들의 상당수가 일어난 핵심 기간 중에 한국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여행을 위해 그의 형제 Scott Kim의 여권을 명백하게 사용함에 의해 강화된다.
 
  1999년 12월3일 Scott Kim이 사망한 후, 김경준은 2001년 3월16일 한국 입국시에, 2001년 5월17일 출국시에, 2001년 5월22일 입국시에, 2001년 5월25일 출국시에, 2001년 5월27일 입국시에, 2001년 6월28일 출국시에, 2001년 7월25일 입국시에, 2001년 9월27일 출국시에, 2001년 10월4일 입국시에, 2001년 11월15일 출국시에 Scott Kim의 여권을 사용했다.
 
  이 정보는 이 날짜들 중 상당수가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의 여행과 완벽하게 일치된다는 사실과, 김경준이 「Scott Kim」의 여권을 사용해서 여행할 당시, 김경준·이보라와 함께 하와이로 여행했던 두 사람의 옵셔널벤처스 코리아의 직원인 오와 김윤경의 여행 기간이 완벽하게 일치된다는 사실로 보강된다.
 
  김경준이 이 기간 중 여행을 위해 「Scott Kim」의 여권을 사용했다는 것은 김경준이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김경준이 고의로 한국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은닉하려고 했다는 것을 보여 주며, 한층 더 개연적인 사유를 성립시키는 증거를 뒷받침한다>
 

 
  서류 19건 위조
 
김경준씨가 금감원의 조사과정에서 제출한 서면답변서.
  김경준씨는 한국의 금융감독원 등 금융관련 기관에 제출한 서류 19건도 위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미국에 있던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의 사무실로부터 美 네바다州 국무장관 명의의 법인설립인가서를 팩스로 받았다. 김씨는 누나로부터 받은 인가서의 상호 및 설립일자 등 인정내용란에 임의로 만든 사항들을 오려 붙인 뒤 복사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김씨는 이렇게 위조한 美 네바다州 국무장관 명의의 법인설립인가서를 2001년 5월경 국내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김씨가 위조된 인가서를 제출한 것은 금감원으로부터 외국인투자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이 때 위조된 서류상 옵셔널벤처스의 새로운 대표는 LA 市의회 의장을 지낸 스티브 발렌주엘라였고, 이 당시 발렌주엘라의 위조여권이 함께 제출됐다.
 
  LA 정계 인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회사 대표이사로 등재된 것이다.
 
 
  위조서류로 유령회사 수십 개 설립
 
  김경준씨는 이같은 방법으로 수십 개의 유령회사를 만들었다. 이 유령회사들의 본사는 모두 미국이었다.
 
  김씨가 설립한 유령회사는 「맥그로 인베스트먼트」, 「지이 인베스트 캐피탈 파트너스」, 「로드스 캐피탈」, 「에이에스엑스 캐피탈」, 「앤도 아셋」, 「프라임 캐피탈」, 「스펙트라사이트 홀딩스」, 「파파스」, 「트더」, 「서만 셀스」, 「코플리 캐피탈」, 「래추아이트 칼만 앤드 어소시어트」, 「브라스코 카스트리그아노 앤드 코」, 「에프엠씨」, 「메드 패턴트 테크놀로지」, 「스피어커뮤니케이션즈」 등이다.
 
  김경준씨는 2001년 9월3일경 「지오반니 리비시」 명의의 위조여권을 이용해 「메드 패턴트 테크놀로지」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서울지방법원 상업등기소에 제출했다. 김씨는 2002년 1월25일경 「스피어커뮤니케이션즈」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스티븐 벤티」 명의로 위조된 여권을 서울지방법원 상업등기소에 제출했다. 서류는 김경준씨 회사의 직원들이 제출했다.
 
  이때는 김경준씨가 한국 검찰의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2001년 12월)한 이후다.
 
  미국 법원은 「김경준씨가 2001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옵셔널벤처스 직원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김씨의 지시하에 유령회사를 계속 설립했다」고 판시했다.
 
  김경준씨는 이렇게 설립한 유령회사들을 주가조작 및 공금횡령의 창구로 사용했다. 한국 검찰이 美 사법당국에 요청한 범죄인인도 요청서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김경준 前 옵셔널벤처스 코리아 대표는 2001년 11월1일∼12월11일 사이 유령회사인 주식회사 「메드 패턴트 테크놀로지」, 「스피어커뮤니케이션즈」, 「워튼스트레터지스 인코퍼레이티드」 등 8개의 유령회사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주)옵셔널벤처스의 자금 180억원을 횡령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하게 됐음.
 
  위 첩보를 입수한 직후 서울중앙검찰청에는 (주)옵셔널벤처스의 소액 주주 27명 명의의 별도 고소장이 접수되었음. 고소의 요지는 이 회사 대표이사 스티브 발렌주엘라 등 임원이 공모하여 제3자 배정방식에 의한 유상증자 대금을 미국계 유령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가장해 증자대금 180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는 것임>
 
 
  김경준, LA 市의회 의장 명의 도용
 
김경준씨가 미국 도피 3개월 만인 2002년 3월 320만 달러에 매입에 베벌리힐스의 저택.
  LA 市의회 의장을 지낸 스티브 발렌주엘라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횡령혐의로 한국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르는 처지가 됐다.
 
  김경준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1999년 4월) 하기 이전인 1997년부터 「환은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 서울지점에 근무했다. 김씨는 다음해인 1999년 2월 이 회사에서 쫓겨났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회사의 허락 없이 다른 펀드를 설립해 운영해 오다 회사 측에 발각됐다」는 이유였다. 김경준씨와 함께 이 증권회사에 근무했던 전직 직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김경준씨는 당시 연봉이 8억원을 상회할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 이유는 김씨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위험 펀드 운영기법을 도입해 높은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김씨의 펀드운영 기법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효과적인 기법은 아니었다.
 
  김씨의 「차익 거래기법」이라는 것은 일정 시점에 주식을 매입한 뒤 株價가 떨어지거나 높아질 때 주식을 매각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김씨는 마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 선전을 하곤 했다』
 
  김경준씨는 환은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에서 쫓겨난 지 2개월 뒤인 1999년 4월에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했다. 「BBK」의 첫 「B」는 김씨 부인 이보라 씨의 「보(Bo)」에서, 중간의 「B」는 회사 설립에 참여한 김씨의 친구 吳모(환은 살로먼 스미스 바니 증권 근무시 동료)씨의 미국식 이름 「Bobby」에서, 그리고 마지막 「K」는 자신의 姓(Kim)에서 각각 따온 것이라고 한다.
 
  김경준씨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그의 아내 이보라씨와 옛 직장동료 吳모씨는 이사를 맡았다.
 
  김경준씨는 BBK가 금감원에 의해 등록취소되기 10일 전인 2001년 4월18일 BBK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김씨는 BBK의 등록취소 하루 전인 2001년 4월27일 (주)옵셔널벤처스 코리아의 대표이사직에 취임했다.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 맡으면서 유령회사 만들어 공금 횡령 시작
 
미국 LA 소재 에리카 김 변호사의 저택.
  김경준씨는 (주)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직을 맡은 직후부터 외국계 유령회사를 만들어 (주)옵셔널벤처스와 유령회사들 간에 거래를 하는 것처럼 꾸며 회사 자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금융감독기관들은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국내 금융감독기관들은 김경준씨가 외국계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의 명의를 도용한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다. 국내 금융감독 기관들은 위조된 미국 네바다州 법무부 장관 명의의 법인설립인가서와 위조된 여권이 첨부된 서류를 토대로 인ㆍ허가 도장을 꾹꾹 찍어 준 것이다.
 
 
  부인 명의로 219억원 빼돌렸다
 
에리카 김 변호사가 미국 법정에서 나오는 장면.
  김경준씨는 치밀하게 株價를 조작하고 회사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김씨는 자기 부인 이보라씨의 이름을 이용해 회사자금 219억원을 「전도금」이나 「가지급금」 명목으로 해외로 빼돌렸다. 이같은 사실을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 부분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결내용이다.
 
  <옵셔널벤처스의 계좌로부터 인출은 김경준이나 그의 부인에 대한 「전도금」 또는 「가지급금」으로 장부에 기장되었다. 김경준의 이름으로 옵셔널의 계좌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인출이 행해진 후에 2001년 10월9일부터 이보라의 이름으로 추가 인출이 행해졌다. 이보라가 이를 알게 되자 그녀는 질색을 하고 자기 이름을 사용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2001년 10월 중에 219억원이 옵셔널의 계좌로부터 인출되고, 이보라에게 가지급금으로 지급된 후, 2001년 12월에 육대권(옵셔널벤처스 직원으로 추정됨)은 김경준과 그의 부인에게 지급을 뒷받침하는 서류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보라는 육대권에게 「그 금액은 대여금이나 투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그에 대해 육대권은 그러한 사실의 증빙을 요구했다.
 
  2002년 1월에 에리카 김은 육대권을 해고하고, 회사 출입열쇠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육대권은 이보라에게 「옵셔널은 의심스러우며, 이보라가 그의 남동생을 회사로 데리고 들어 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2년 2월14일 옵셔널벤처스가 금감원에 분기 보고를 할 때, 옵셔널벤처스는 아마도 김경준과 이보라에 대한 219억원의 가지급금 지급을 공개하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옵셔널벤처스」의 자본금을 증자한다고 발표한 뒤, 『미국의 회사(실제로는 유령회사)가 자본금 증자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고, 투자하기로 했다』고 직원들에게 발표했다. 김씨는 이후 외국의 자본참여 업체에게 넘겨 줄 주식(증자분)을 빼돌린 뒤 이를 주식시장에서 매각했다.
 
 
  금감원 등에 허위서류 제출
 
  외국 회사(유령회사)가 자본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주식을 외국회사(유령회사)에 지급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사기였다. 김씨는 (주)옵셔널벤처스 자금을 해외로 빼돌려 가공의 펀드를 통해 유상증자 대금을 입금하면서, 마치 외자를 유치한 것처럼 발표했다. 다음은 한국 검찰의 김경준씨에 대한 범죄인인도 요청서 내용 중 일부다.
 
  <김경준은 2000년 7월30일경 유상증자 등으로 금융기관에 (주)옵셔널벤처스 명의로 예치되어 있던 회사자금을 대표이사로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해 법률상의 지배ㆍ처분이 가능한 보관자의 지위를 남용해, 가지급금 명목으로 50억원을 인출하여 같은 달 31일 이를 (주)오리엔스에 임의로 채무 변제하여 이를 횡령한 것을 비롯하여 총 22회에 걸쳐 (주)옵셔널벤처스의 회사자금 384억4776만953원을 (주)옵셔널벤처스 설립 이전의 김경준의 개인 채무 등으로 변제하거나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계좌를 통하여 국외로 빼돌림으로써 회사대표이사로서 보관하고 있는 회사자금을 자기의 소유인 것과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였으므로 한국법상 횡령죄가 성립됨>
 
  김경준씨는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에 「옵셔널벤처스 회사자금을 투자했다」며 금융감독원에 허위보고서를 제출했다. 김씨가 금감원에 제출한 허위 투자보고서(2001년 4∼12월말)에는 (주)옵셔널벤처스가 미국의 「메드 패턴트 테크놀로지」에 29억원, 「(주)바이오 리소스인터내셔널 코리아」에 17억원, 「스피어커뮤니케이션즈」에 30억원, 「워튼스트레터지스인 코퍼레이티드」에 21억원, 「딩네에이리서치」에 27억원을 투자한 것처럼 기재돼 있다.
 
  김경준씨는 (주)옵셔널벤처스의 株價를 조작하기 위해 가장매매, 高價(고가)매매, 허수주문 등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각종 편법ㆍ탈법 株價조작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옵셔널벤처스 주식에 투자를 한 소액투자자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았다.
 
  <검찰의 범죄인 인도 요청서 요약분 참조>
 
김경준씨가 운영하던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이 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코스모빌딩과 김씨 사무실이 있던 이 빌딩 내 8층 모습.
 
  473차례 허위 低價 매도주문
 
  김경준씨는 22차례에 걸쳐 회사자금 384억원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38개의 증권회사 계좌를 이용했다. 자금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 이들 계좌 간의 입출금 내역을 복잡하게 얽히도록 꾸몄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경준씨는 107회의 주식 위장매매와 31차례의 허위 高價 매수주문, 32차례의 허위 高價 매도주문, 473차례의 허위 低價 매도주문을 내는 등의 방법을 통해 (주)옵셔널벤처스 株價를 조작했다.
 
  김경준이 운영하던 (주)옵셔널벤처스의 경리담당 중간간부였던 吳모씨는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김경준이 법인등기부상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기간인 2001년 4월27일부터 9월6일까지 당연히 (주)옵셔널벤처스를 직접 경영하였고, 2001년 9월6일부터 2002년 3월 초순경까지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던 스티브 발렌주엘라는 이 회사에 한 번도 출근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업무지시도 받은 적이 없어 이 기간 중 실질적으로 김경준이 회사를 경영하였다.
 
  김경준은 (주)옵셔널벤처스를 경영하는 기간 동안 신규투자를 한 사실이 없으며, 김경준은 가지급금 명목으로 인출하여 간 회사자금을, (주)옵셔널벤처스 설립 이전에 김경준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고 있던 채무 등을 변제하는 데 사용하거나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계좌에 송금하여 국외로 빼돌렸다>
 
김경준씨 소유의 회사 BBK 사무실이 있던 서울 중구 태평로2가 삼성생명빌딩.
 
  「김경준 주가조작」, 李明博 알고 있었나
 
  汎여권 진영은 『김경준이 국내에 투자자문회사 등을 설립해 株價를 조작하는 과정에 한나라당 李明博 후보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김경준 명의로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李明博 후보라고 주장해 왔다.
 
  김경준씨는 미국 법정 진술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해 왔다.
 
  『BBK의 실제 소유주는 李明博 후보이며, 株價조작 과정에 대해서도 李후보가 알고 있었다. 나는 李明博 후보에게 고용된 전문 경영인일 뿐이고, 미국으로 가지고 간 돈(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384억원)은 경영성과에 대한 인센티브적 성격의 자금이다』
 
  한나라당 李明博 후보 측은 『김씨가 株價를 조작하고 회사자금을 횡령한 시기는 동업취소 이후이기 때문에 李후보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경준씨와 동업(인터넷 증권회사 LK e-Bank)을 하려고 했으나, 김씨가 그 이전에 설립해 운영해 오던 투자자문회사 BBK의 등록이 금감원에 의해 취소됨에 따라 동업을 하려던 것 자체를 취소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우선, 김경준씨와 李明博 후보가 어떻게 사업을 놓고 얽혔는지 시기별로 따져 보자.
 
  연대기별로 정리하면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1999년 4월27일 김경준 BBK 설립→2000년 2월18일 李明博 후보 LK e-Bank 설립→2000년 3월 삼성생명 BBK에 투자→2000년 4∼12월 (주)다스ㆍ심텍 등 김경준에 투자→2001년 4월18일 李明博 LK e-Bank 대표이사직 사임ㆍ김경준 BBK 대표이사직 사임→2001년 4월27일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 선임→2001년 4월28일 금감원, BBK 등록 취소→2001년 7∼12월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자금 384억원 횡령>
 
 
  李明博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인가
 
지난 11월14일 LA 연방교도소 앞에서 김경준씨의 귀국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뉴라이트부정선거추방운동본부 회원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중 우선, BBK의 실질 소유주가 李明博 후보라는 의혹부터 살펴보자.
 
  김경준씨가 BBK를 설립한 시기는 1999년 4월이다. 그러나 이때 李明博 후보는 부인과 함께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李후보의 미국 체류기간은 1998년 11월∼1999년 12월이다. 회사이름 「BBK」도 김씨와 그의 부인(이보라), 전 직장 동료 吳씨(미국 이름 Bobby)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 회사 설립에 李明博 후보가 관여한 정황을 찾기는 어렵다.
 
  김경준씨는 2001년 3월10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BBK는 해외법인인 BBK 캐피탈이 절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그 해외법인의 현재 지분(2001년 3월10일)은 내가 100% 소유하고 있다. 결국 BBK는 나의 사실상 영향력에 있는 법인』이라고 진술했다(김경준 진술서 참조).
 
  BBK 직원들은 검찰에 불려가서 김경준씨와 같은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김경준씨가 관할 세무서에 제출한 「BBK 주식보유 명세서」에 李明博 후보 소유의 주식은 한 株도 없었다.
 
  김경준씨가 株價를 조작하는 과정에 李明博 후보와 상의했거나, 사전에 이같은 내용을 통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李明博 후보가 인터넷 증권회사 「LK e-Bank(李후보 100% 지분 소유)」에 관여한 시기는 2000년 2월∼2001년 4월 사이의 1년2개월이다. 김경준씨가 株價를 본격 조작한 시기는 2000년 12월∼2001년 11월30일이다. 즉, 李明博 후보가 인터넷 증권회사에 관여한 시기와 김경준씨가 株價를 조작한 시기를 비교해 볼 때, 중첩되는 시기는 2000년 12월∼2001년 4월 사이의 5개월이다.
 
  이같은 상황에 비춰 볼 때, 李明博 후보가 김경준씨의 株價조작 행위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다. 나머지 12개월 중 7개월은 적어도 김경준씨가 단독으로 株價를 조작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李明博 후보 측은 『李후보는 김경준씨가 株價를 조작한 사실 자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며 연루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李明博 후보는 과연 김경준씨의 株價조작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지금으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가 『BBK의 실제 소유주는 李明博 후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株價조작과 李明博 후보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李明博 후보가 김씨의 주가조작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李明博 후보가 대표이사로 있던 LK e-Bank 역시 정상적으로 영업한 적이 없는 「휴면법인」 상태에서 폐업을 했다는 사실 역시 李후보의 주장이 진실에 가깝다는 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李明博과 에리카 김 변호사
 
에리카 김 변호사를 李明博 후보에게 처음 소개해 준 LA 한미신용정보 이동연 회장.
  김경준씨를 李明博 후보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였다. 李후보가 에리카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94년 4월경이었다. 두 사람을 소개해 준 것은 LA에서 사업을 하는 한미신용정보 이동연 회장이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李明博 후보와 에리카 김 변호사 간 「부적절한 관계」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동연 회장은 에리카 김에 대해 『1993년에 미국內 이민 1.5세대들 모임에 참석해 金변호사를 처음 만났는데,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잘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李明博 후보와 에리카 김 변호사는 몇 차례 만나 식사를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변호사의 부모는 李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자식들을 잘 돌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기자는 지난 3월 미국 LA의 에리카 김 변호사 사무실로 국제전화를 했다. 한국말이 다소 어색한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에리카 김 변호사로 추정되는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에리카 김의 웃음소리가 국제전화선을 타고 귓전에 울렸다. 에리카 김의 목소리는 맑고 상냥했다.
 
  ─요즘 동생 김경준씨 일로 마음이 편치 않겠습니다.
 
  『괜찮아요』
 
  ─李明博 후보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할 것이 있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대답을 하겠다는 얘기는 못 하겠는데요. 그리고 전화를 주신 분이 정말 月刊朝鮮 기자인지도 알 수 없고요. 月刊朝鮮 기자인 줄 모르고 전화받았어요. 만약 누구신지 알았으면 안 받았을 겁니다』
 
 
  『기자인 줄 알았다면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겁니다』
 
에리카 김의 미국 법정 진술서.
  ─김변호사는 상당히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너무 솔직해요』
 
  ─에리카 김변호사와 李明博 후보를 둘러싼 갖가지 얘기들에 대해 듣고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일단, 문제는 물어보신다고 다 대답할 입장도 아니고, 그러니까 아시고 싶은 게 뭔가를 저한테 얘기해 주세요.
 
  그 다음에 제가 생각을 해보든지 답을 할 수 있나 없나, 아니면 제 동생 변호사한테 얘기해서 결정할게요. 아시고 싶은 게 뭐예요』
 
  ─김변호사와 李明博 후보는 어떻게 만나게 됐고, 李후보와 동생 김경준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동업을 하게 됐는지 그 내용을 알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왜 그걸 듣고 싶으세요』
 
  ─한국에서는 김경준씨와 李후보의 사업부분에 대해 아주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제가 연락처를 받았으니까, 변호사들이 하겠다고 하면 전화를 드리도록 하죠』
 
  에리카 김 변호사가 전화를 서둘러 끊으려고 해, 긴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한때 李후보와 에리카 김 변호사의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밝힐 것은 밝혀야겠지요. 정말 미안합니다만, 이제는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에리카 김 변호사는 月刊朝鮮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李明博 후보와의 관계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李明博 후보와) 연인 사이 아니다』
 
에리카 김 변호사.
  김변호사는 2006년 5월3일 김경준씨 사건과 관련, 미국 법원에서 진술을 할 때에는 기존의 입장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에리카 김 변호사의 법정진술 내용 중 일부다.
 
  <질문: (李明博 후보와는)어떤 관계였습니까.
 
  에리카: 사회적인 관계였습니다.
 
  질문: 어떻게 사회적인 관계였습니까. 연인 사이 같은 것이었습니까.
 
  에리카: 아닙니다.
 
  질문: 그의(李明博 후보) 부인이 없을 때, 그의 회사에 간 적이 있습니까.
 
  에리카: 예.
 
  질문: 어떤 때였습니까.
 
  에리카: 조언을 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질문: 분명히 하죠. 이곳에서의 당신 권리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할 생각이 있습니까.
 
  에리카: 당신은 이씨의 부인이 없을 때, 이명박씨와 있었느냐에 관해 구체적으로 물었고, 저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겁니다.
 
  미스터 호그니(편집자 注: 누구인지는 정확히 표기돼 있지 않다): 지속적인 관계인지 묻는거라면, 이것은 그녀가 답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지속적 관계」라는 것은 여기서만 관심거리입니다. 우리가 반대하지 않는 얘기들은 그녀가 답할 겁니다.
 
  질문: 언제였습니까?
 
  에리카: 몇 년인지는 기억 나지 않습니다. 과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토론했을 당시보다 앞선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질문: 거기서 봤던 사람들 중에서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에리카: 아니오.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이, 그저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뿐입니다.
 
  질문: 그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때가, 그의 부인과 함께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에리카: 자꾸 당신이 그의 부인이 없었을 때를 맞춰서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 맞습니다.
 
  에리카: 제가 (이명박씨와) 지속적으로 만난건 아니구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나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무리를 지어서 나갔습니다. 그가 우리를 저녁식사에 데리고 나가곤 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걸렸을 때예요. 그가 워싱턴DC에서 출발해 LA에 잠깐 들렀을 때, 그가 LA의 소피텔 호텔에 머물렀었습니다. 부인과 두 분이 함께요.
 
  하지만 제가 그를 가끔 1층 라운지에서 만났기 때문에, 부인은 방안에 있었죠.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을 때, 그가 거기 있었고, 부인은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요.
 
  질문: 당신이 이명박의 회사에 있었을 당시에, 당신이 그가 있는 장소에서 한 번이라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상태로 있었던 적 있습니까.
 
  에리카: 아니오.
 
  질문: 당신이 이씨의 측근들과 애인 사이이거나, 성적 관계를 맺은 적이 있습니까.
 
  에리카: 뭐라구요?
 
  미스터 호그니: 이의 있습니다. 막연한 얘깁니다. 지금 직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에리카 김 변호사는 미국 법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힌 반면, 동생 김경준씨는 검찰 측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김경준씨의 미국 법정 진술내용이다.
 
 
  『저한테 물으셨죠』(김경준)
 
김경준씨의 미국 법정 진술서.
  <김경준: 먼저 물으셨잖습니까.
 
  질문: 네. 제가 물었죠.
 
  김경준: 저는 이미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언제 처음 들었느냐고 물으시기에, 그것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질문: 어떻게 듣게 됐는지는 기억납니까?
 
  김경준: 아시다시피, 저는 언제, 무엇 때문에 듣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당연히 어떻게 듣게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질문: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어떤 순간에, BBK의 사장(매니지 디렉터)이었다는 것은 기억납니까.
 
  김경준: 사장(매니지 디렉터)이요?
 
  질문: 네.
 
  김경준: 그러니까, 정확히 뭘 물어보시는 거죠.
 
  질문: BBK 캐피탈 파트너 리미티드라는 곳의 사장(매니지 디렉터)이었던 적이 있습니까.
 
  변호사(류씨): 의뢰인의 타이틀이 뭐라고 하셨죠.
 
  증언자(편집자 注: 누구인지는 정확히 표기돼 있지 않다): 지금 묻는 것이…
 
  질문: 서류가 보여 주고 있잖습니까.
 
  변호사(류씨): 저는 타이틀이 뭐였는지에 대해 묻고 있을 뿐입니다.
 
  김씨(편집자 注: 누구인지 정확히 표기돼 있지 않다): 다수의 서류가 말하는 바죠. 하지만 만약에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다.
 
  증언자(편집자 注: 누구인지는 정확히 표기돼 있지 않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질문: 잘 알겠습니다. 사장(매니지 디렉터)인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BBK 캐피탈 파트너 리미티드는 기억나죠.
 
  김경준: 어떤 건지 설명을 좀더 해주시겠습니까.
 
  질문: 좋습니다. 그럼 이 질문을 해보죠. 디렉터들의 이사회는 들은 적이 있습니까.
 
  김경준: 디렉터 이사회요?
 
  질문: 네.
 
  김경준: 미국에서 있는 거요?
 
  질문: 맞습니까?
 
  김경준: 법률적인 용어 아닙니까?
 
  질문: 아니오. 하지만…
 
  김경준: 아닙니까?
 
  질문: 말하십시오.
 
  김경준: 미국에서 사용되는 디렉터 이사회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후진적 금융시스템이 김경준 사기행각 부추겼다
 
김경준 前 BBK 대표이사.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여권을 위조하고, 공문서를 허위로 만들고, 위조여권을 통해 수십 개의 유령회사를 설립, 운영해 왔다. 김경준씨는 또 유령회사 수십 개의 법인 계좌와 38개의 증권회사 계좌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던 (주)옵셔널벤처스 자금 384억원을 미국과 스위스로 빼돌렸다.
 
  국내로 송환돼 온 김경준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BBK 주가조작」사건 관련 자료에 드러난 김경준의 행적은 「가짜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아이비 리그」의 하나인 명문 코넬大을 졸업하고, 시카고大에서 MBA를 한 엘리트 청년이 어떻게 이런 「위조」, 「사기」, 「횡령」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금융인은 이런 얘기를 했다.
 
  『김경준씨가 미국의 엄격한 금융시스템下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금융사기 기법을 한국에서 마음대로 구사했습니다. 당시 우리 금융감독기관은 김경준의 「하이테크」 금융사기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김경준은 사기수법이 일단 먹혀들자 겁없이 계속 써먹었죠. 한국에서 크게 「한탕」을 하겠다는 그의 욕심이 문제지만, 이걸 제어하지 못한 우리의 후진적인 금융시스템이 그의 사기행각을 부추겼다고 봐야 합니다』 ●
 
 

  ▣ 김경준 사건 일지
 
  1994년 4월: 李明博 후보, LA 한인교회 방문 시 이동연 한미신용정보 회장 소개로 에리카 김 소개 받음
  1995년 10월11일: 李明博 후보, 「에리카 김 자서전」 출판기념회 참석
  1998년 11월5일: 李明博 후보, 美 조지워싱턴大 객원연구원 근무 위해 출국
  1999년 4월27일: 김경준 BBK 설립
            12월11일: 李明博 후보 귀국
            12월 말: 李明博 후보 에리카 김 소개로 김경준 만남
  2000년 2월: 삼성생명 BBK에 투자(2002.1.11까지 총 880만 달러)
            2월18일: 李明博 후보 LK e - Bank 설립
            10월23일: 심텍 BBK에 50억원 투자 결정
  2001년 1월16일: 김경준 옵셔널벤처스(광은투신 후신) 주식 매집
            3월2일: 금감원 BBK 조사 착수
            3월5일: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경영권 확보
            4월18일: 李明博 후보 LK e-Bank 대표이사 사임
            4월27일: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 에리카 김 이사 등재
            4월28일: 금감원 BBK 등록 취소
             9월6일: 김경준 옵셔널벤처스 대표이사 사임
            12월20일: 김경준,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
  2002년 2월3일: 옵셔널벤처스 소액투자자 29명 김경준 고소
            2월6일: 李明博 후보 서울시장 취임
  2003년 3월1일: (주)다스 서울지검에 김경준 고소
  2004년 4월1일: 한국 검찰 美 정부에 김경준 범죄인인도 요청
            5월27일: 김경준 美 FBI에 체포
  2005년 10월21일: 美 LA연방법원 김경준 환국 송환예비 판결(김경준 항소)
  2007년 1월18일: 美 법원 김경준 한국송환 결정
            11월16일: 김경준 한국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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