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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

세계유산 등재 눈앞에 둔 서울의 要塞, 南漢山城

글·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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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와 200여 개의 문화재, 우수한 자연환경이 잘 남아 있는 남한산성. 수려한 산 능선을 타고 길게 뻗은 성곽이 위풍당당하다.
  서울을 지키는 요새 중 북쪽의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남쪽을 든든하게 지키고 선 남한산성(南漢山城). 광주산맥 주맥에 쌓은 남한산성은 해발 490m의 산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야트막한 성곽이다. 호시탐탐 왜적들이 노렸던 곳이자, 병자호란(1636~1637) 당시 청나라 군대가 진을 쳤고, 청나라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기 직전 인조가 머물렀던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전체 길이 11.76km, 2.3km2 면적의 남한산성은 내부가 평탄하고 80여 군데가 넘는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해 수만명의 병력도 수용 가능할 수준의 산성이다. 본성은 인조 2년에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의 성 돌을 활용해 쌓았고 외성은 후에 쌓아서 시대별로 성을 쌓은 기법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소나무가 우거진 고즈넉한 성곽길.
  문화재청은 지난 4월 남한산성이 곧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평가한 결과 보고서에서 남한산성을 ‘등재 권고’로 평가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남한산성이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어우러진 군사유산이고,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한 포곡식(包谷式·성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 산성이라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6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리는 2014년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우리나라는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불국사, 종묘 등 모두 11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국가 사적 제480호인 남한산성 행궁.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1626년 건립됐다가 인조 2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곳에 피란해 47일간 싸웠다. 이후에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머물러 이용했다.

남한산성을 끼고 난 하남 위례 둘레길. 하남시청에서 샘재~남한산성(벌봉)~금암산~이성산성을 거쳐 덕풍골에 이르는 39.7km의 구간이다. 남한산성 성곽과 벌봉, 객산, 금암산, 이성산 등을 지나면서 하남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남한산성의 북문(北門)인 전승문(戰勝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당시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군을 공격했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했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 성문을 개축할 때 이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승문이라 이름 지었다.

남한산성의 서문 인근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서울 중심을 관통해 흐르는 한강 줄기와 더불어 서울 시내가 발밑으로 펼쳐진다. ‘S’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한강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인 우익문(右翼門).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에 개축했다.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경기도 기념물 제111호인 망월사. 조선시대 탄압받던 불교 부흥의 시발지다. 남한산성 동문 인근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인 장경사. 남한산성 안에는 9개의 사찰이 있는데, 1907년 일본에 의해 대부분이 파괴됐고 장경사만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

지난 5월 경기도 지정 문화재로 확정된 장경사 동종. 남한산성을 보수한 1624년부터 축성과 관리를 담당한 10대 사찰 중 하나인 장경사가 1682년 중량 300근(180㎏)을 들여 만든 중간 크기의 종이다. 이 종은 1899년 봉은사(서울)로 옮겨졌다가 100여 년이 지난 2013년 5월 원래 자리인 장경사로 다시 돌아왔다.

수어장대의 아름다운 단청.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하도록 군사적 목적으로 인조 2년에 지은 것으로, 함께 지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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