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인센티브 포함해 6년 총액 1억 달러에 일찌감치 계약
⊙ 야구인생에 두 번의 좌절을 맞았으나 끈질긴 투지로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 반열에
⊙ 야구인생에 두 번의 좌절을 맞았으나 끈질긴 투지로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 반열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는 총 30개 팀이 있다. 그중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팀을 꼽으라면 단연 LA 다저스일 것이다.
다저스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의 전 소속팀이자 서재응과 최희섭 등 가장 많은 한국 선수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는 지난 2010년 입단한 인천 제물포고 출신의 남태혁(1루수)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향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신음하던 1990년대 후반,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박찬호의 역동적인 모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던 만큼 다저스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팀이다.
다저스에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전무한 까닭에 한국에서 그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메이저리그 하면 다저스를 떠올릴 만큼 다저스는 한미 양국 모든 야구 팬에게 여전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구단으로 손꼽힌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다저스에 박찬호는 없다. 하지만 비록 한국 사람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스타가 다저스에 등장해 과거 박찬호가 누렸던 인기 그 이상을 누리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안드레 이디어(Andre Ethier)’다.
우익수이자 팀의 중심타자로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이디어는 시즌 중이던 지난 6월 12일 다저스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포함해 6년 총액 1억 달러(한화 약 1112억원)에 계약했다. 다저스가 이례적으로 시즌 중에 서둘러 이디어를 붙잡은 것은 그가 얼마나 팀에 절대적인 존재인지를 말해 준다.
끝내기 안타, 끝내기 홈런으로 팬들 기억에 남아
2012년 정규시즌 단 2게임만을 남겨 놓은 10월 3일(한국시간) 현재 이디어는 타율(0.281), 득점(77), 타점(89) 세 부문 모두 팀 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홈런은 20개로 팀 내 2위.
이디어는 과거 ‘야구 열등생’이란 조롱과 역경을 이겨 내고 지금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었기에 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박수 갈채를 받는다. 그는 또 ‘최고의 해결사(captain clutch)’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유독 찬스에 강하다. 특히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자주 생산해 팬뿐 아니라 그를 향한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신임도 절대적이다.
이디어는 지난 2009년 홈런 4개를 포함, 총 6개의 끝내기 안타를 터트려 1974년 이후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가 됐다. 특히 한 시즌에 터트린 끝내기 홈런 4개는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기록으로 이는 이디어를 포함, 단 두 명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팀이 득점을 필요로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안타를 치는 선수를 가리켜 클러치 또는 클러치히터(clutch hitte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타자는 경기가 접전에 들어간 중요한 순간에 긴장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클러치히터는 오히려 이런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한국프로야구 두산의 김현수는 평소 타격기계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막상 플레이오프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침묵해 팬들로부터 ‘영양가 없다’는 조롱을 받는다. 반면 지난해 SK에서 은퇴한 김재현의 평소 타율은 김현수보다 낮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경기, 특히 득점찬스 때마다 맹타를 휘둘러 이디어처럼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클러치히터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나이로 올해 31세인 이디어는 미국 피닉스 애리조나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버지와 멕시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축구, 야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활동을 체험한 이디어는 유독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제가 야구에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는 틈날 때마다 저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야구장 근처로 데리고 가셨죠. (웃으며) 입장료가 비싸서 야구장 안에는 자주 들어가진 못했지만 밖에서 야구장을 가리키며 저곳이 장차 내가 야구할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그런 행동과 믿음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해 준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장차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이디어가 기자에게 건넨 어릴 적 기억 한 토막이다.
대학진학 후 2부 리그로 강등돼
강압적이지 않은 모친의 자연스러운 교육방식 속에서 성장한 이디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1년 오클랜드 구단에 37번째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 대신 애리조나 주립대(ASU)를 선택했다.
“지명순위가 너무 뒤쪽이라 마음에 들지 않은 점도 있지만 당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프로에 진출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판단했죠.” 이디어가 프로 대신 대학을 선택한 이유다.
이디어는 본인 판단에 따라 전미대학야구 1부 리그(NCAA)를 다섯 번이나 제패한 야구명문 애리조나 주립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자칫 그의 야구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야구부 코칭스태프는 이디어가 1부 리그에서 뛸 실력이 안된다며 그를 방출시켜 버렸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키워 온 이디어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다.
“1부 리그에서 뛸 실력이 안된다는 말에 기분도 상했지만 당시에 받았던 충격이 정말 컸죠. 내가 정말 야구를 계속하는 게 옳은 일일까? 이 길이 정녕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디어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몇 날 며칠을 진지하게 고민한 이디어는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야구부가 있는 2년제 대학으로 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 가기로 했다. 비록 2부 리그지만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명색은 같은 ‘대학야구’이지만 미국대학야구 1부와 2부의 차이는 엄청나다. 코칭스태프의 자질뿐 아니라 야구장 시설이나 야구용품 지원 유무 등 환경의 차이가 매우 크다.
“방출로 인해 받은 충격 때문에 잠시 좌절했지만 장차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야구장에 가서 해 주셨던 말씀이 제 마음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거든요.”
본의 아니게 2부 리그로 강등된 이디어는 다시 야구화 끈을 조여 매고 잠시 내려놓았던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두고 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그리고 전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간절하게 야구에 전념했다. 그 결과 대학야구 2부 리그에서 무려 0.468의 고타율과 최다안타 기록을 달성하며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됐다.
이디어의 맹활약 소식을 전해 들은 애리조나 주립대는 그해 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서둘러 이디어를 다시 야구부로 영입했다. 이디어에게 애리조나 주립대로 돌아갔을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코칭스태프가 저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더군요. 그리고 바로 주전자리도 마련해 주었죠.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좌절.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역경을 이겨 낸 경험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진입 눈앞에 두고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애리조나 주립대 유니폼을 다시 입은 이디어는 ‘야구 열등생’이란 꼬리표를 떼어 내고 대학통산 0.371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팀 내 주축선수로 맹활약했다.
2년 연속 대학야구 올스타에도 뽑혔다. 그 결과 3학년이던 2003년 메이저리그 신인지명에서 오클랜드 구단에 두 번째로 지명을 받았다. 2년 전 37번째로 지명을 받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였다.
이디어는 프로에 입단해서도 대학시절 보여주었던 맹활약을 이어 갔다.
마이너리그에서 통산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올스타 MVP와 오클랜드 구단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만큼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디어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메이저리그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던 2005년 12월, 오클랜드 구단은 이디어를 LA 다저스로 트레이드시켰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머니볼(Moneyball)>에 등장하는 오클랜드 구단은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팀 중 재정상태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이디어 같은 유망주를 다른 팀과 일대 다수 또는 현금트레이드 등을 통해 근근이 구단을 운영한다.
“트레이드를 좋아하는 선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대학시절 겪었던 좌절의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죠. 새로운 환경에 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있긴 했지만 야구는 어디에서 하든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남보다 일찍 겪었던 시련으로 인해 이디어의 내면세계는 나이보다 더 성숙했다. 그는 또 좌절을 이겨 내며 긍정의 힘도 배웠다.
오클랜드에서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다음 해인 2006년 5월 2일, 이디어는 프로진출 3년 만인 약관 23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해 0.308의 시즌 타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가장 행복했던 날은 메이저리그 데뷔하던 날”
이디어에게 야구를 시작한 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던 날이었어요. 어릴 적 어머니가 야구장을 가리키며 제 마음속에 심어 주었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애리조나로 원정경기를 가면 늘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자신의 고향이자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이 많아서일까? 이디어의 소속팀은 LA이지만 그는 아직도 애리조나 주 길버트(Gilbert)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 그 어렵다는 3할 타자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그는 그 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겪는다는 2년 차 슬럼프도 이디어를 피해 갈 정도였다. 메이저리그 3년 차였던 2009년 이디어는 물오른 타격감을 선보이며 그해 31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타점도 106점이나 기록했다. 당시 기록한 6개의 끝내기 안타로 이디어는 LA뿐 아니라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0년에도 0.292의 준수한 타율과 홈런 23개를 기록한 이디어는 2011년 30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달성하며 수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박수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 결과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음은 물론 시즌 후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에게만 주는 골드글러브(Goldglove)도 수상했다.
이디어는 클러치히터이자 홈런타자이기도 하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선수생명은 5.6년으로 6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많은 선수가 그 어렵다는 메이저리그에 힘들게 입성하지만 반면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이디어는 분명 매력적인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의 인기도, 그리고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지 현재에 만족하지 말라”
올해로 메이저리그 7년 차인 이디어에게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야구를 시작하고 단 한 번도 현실과 타협하거나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야구가 고팠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항상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오늘 경기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거기에 만족하거나 그것으로 내 한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나는 늘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노력했습니다.”
끝으로, 야구 열등생에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이디어에게 방황하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무엇을 하든지 현재 위치나 실력에 연연하지 말고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 꾸준히 노력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다저스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의 전 소속팀이자 서재응과 최희섭 등 가장 많은 한국 선수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는 지난 2010년 입단한 인천 제물포고 출신의 남태혁(1루수)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향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신음하던 1990년대 후반,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박찬호의 역동적인 모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던 만큼 다저스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팀이다.
다저스에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전무한 까닭에 한국에서 그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메이저리그 하면 다저스를 떠올릴 만큼 다저스는 한미 양국 모든 야구 팬에게 여전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구단으로 손꼽힌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다저스에 박찬호는 없다. 하지만 비록 한국 사람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스타가 다저스에 등장해 과거 박찬호가 누렸던 인기 그 이상을 누리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안드레 이디어(Andre Ethier)’다.
우익수이자 팀의 중심타자로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이디어는 시즌 중이던 지난 6월 12일 다저스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포함해 6년 총액 1억 달러(한화 약 1112억원)에 계약했다. 다저스가 이례적으로 시즌 중에 서둘러 이디어를 붙잡은 것은 그가 얼마나 팀에 절대적인 존재인지를 말해 준다.
끝내기 안타, 끝내기 홈런으로 팬들 기억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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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디어는 적시에 제 몫을 하는 ‘클러치히터’로 평가받고 있다. |
이디어는 과거 ‘야구 열등생’이란 조롱과 역경을 이겨 내고 지금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었기에 팬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박수 갈채를 받는다. 그는 또 ‘최고의 해결사(captain clutch)’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유독 찬스에 강하다. 특히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자주 생산해 팬뿐 아니라 그를 향한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신임도 절대적이다.
이디어는 지난 2009년 홈런 4개를 포함, 총 6개의 끝내기 안타를 터트려 1974년 이후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가 됐다. 특히 한 시즌에 터트린 끝내기 홈런 4개는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기록으로 이는 이디어를 포함, 단 두 명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팀이 득점을 필요로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안타를 치는 선수를 가리켜 클러치 또는 클러치히터(clutch hitte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타자는 경기가 접전에 들어간 중요한 순간에 긴장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클러치히터는 오히려 이런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한국프로야구 두산의 김현수는 평소 타격기계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막상 플레이오프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침묵해 팬들로부터 ‘영양가 없다’는 조롱을 받는다. 반면 지난해 SK에서 은퇴한 김재현의 평소 타율은 김현수보다 낮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경기, 특히 득점찬스 때마다 맹타를 휘둘러 이디어처럼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클러치히터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나이로 올해 31세인 이디어는 미국 피닉스 애리조나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버지와 멕시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여느 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축구, 야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활동을 체험한 이디어는 유독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제가 야구에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는 틈날 때마다 저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야구장 근처로 데리고 가셨죠. (웃으며) 입장료가 비싸서 야구장 안에는 자주 들어가진 못했지만 밖에서 야구장을 가리키며 저곳이 장차 내가 야구할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어렸을 땐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그런 행동과 믿음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해 준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장차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이디어가 기자에게 건넨 어릴 적 기억 한 토막이다.
대학진학 후 2부 리그로 강등돼
강압적이지 않은 모친의 자연스러운 교육방식 속에서 성장한 이디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1년 오클랜드 구단에 37번째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 대신 애리조나 주립대(ASU)를 선택했다.
“지명순위가 너무 뒤쪽이라 마음에 들지 않은 점도 있지만 당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프로에 진출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판단했죠.” 이디어가 프로 대신 대학을 선택한 이유다.
이디어는 본인 판단에 따라 전미대학야구 1부 리그(NCAA)를 다섯 번이나 제패한 야구명문 애리조나 주립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자칫 그의 야구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야구부 코칭스태프는 이디어가 1부 리그에서 뛸 실력이 안된다며 그를 방출시켜 버렸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키워 온 이디어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다.
“1부 리그에서 뛸 실력이 안된다는 말에 기분도 상했지만 당시에 받았던 충격이 정말 컸죠. 내가 정말 야구를 계속하는 게 옳은 일일까? 이 길이 정녕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디어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몇 날 며칠을 진지하게 고민한 이디어는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야구부가 있는 2년제 대학으로 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 가기로 했다. 비록 2부 리그지만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명색은 같은 ‘대학야구’이지만 미국대학야구 1부와 2부의 차이는 엄청나다. 코칭스태프의 자질뿐 아니라 야구장 시설이나 야구용품 지원 유무 등 환경의 차이가 매우 크다.
“방출로 인해 받은 충격 때문에 잠시 좌절했지만 장차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야구장에 가서 해 주셨던 말씀이 제 마음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거든요.”
본의 아니게 2부 리그로 강등된 이디어는 다시 야구화 끈을 조여 매고 잠시 내려놓았던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두고 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그리고 전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간절하게 야구에 전념했다. 그 결과 대학야구 2부 리그에서 무려 0.468의 고타율과 최다안타 기록을 달성하며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됐다.
이디어의 맹활약 소식을 전해 들은 애리조나 주립대는 그해 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서둘러 이디어를 다시 야구부로 영입했다. 이디어에게 애리조나 주립대로 돌아갔을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코칭스태프가 저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더군요. 그리고 바로 주전자리도 마련해 주었죠.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좌절.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역경을 이겨 낸 경험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진입 눈앞에 두고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애리조나 주립대 유니폼을 다시 입은 이디어는 ‘야구 열등생’이란 꼬리표를 떼어 내고 대학통산 0.371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팀 내 주축선수로 맹활약했다.
2년 연속 대학야구 올스타에도 뽑혔다. 그 결과 3학년이던 2003년 메이저리그 신인지명에서 오클랜드 구단에 두 번째로 지명을 받았다. 2년 전 37번째로 지명을 받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였다.
이디어는 프로에 입단해서도 대학시절 보여주었던 맹활약을 이어 갔다.
마이너리그에서 통산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올스타 MVP와 오클랜드 구단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만큼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디어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메이저리그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던 2005년 12월, 오클랜드 구단은 이디어를 LA 다저스로 트레이드시켰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머니볼(Moneyball)>에 등장하는 오클랜드 구단은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팀 중 재정상태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이디어 같은 유망주를 다른 팀과 일대 다수 또는 현금트레이드 등을 통해 근근이 구단을 운영한다.
“트레이드를 좋아하는 선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대학시절 겪었던 좌절의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죠. 새로운 환경에 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있긴 했지만 야구는 어디에서 하든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남보다 일찍 겪었던 시련으로 인해 이디어의 내면세계는 나이보다 더 성숙했다. 그는 또 좌절을 이겨 내며 긍정의 힘도 배웠다.
오클랜드에서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다음 해인 2006년 5월 2일, 이디어는 프로진출 3년 만인 약관 23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해 0.308의 시즌 타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가장 행복했던 날은 메이저리그 데뷔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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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디어는 “나는 늘 야구가 고팠다”고 말한다. |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던 날이었어요. 어릴 적 어머니가 야구장을 가리키며 제 마음속에 심어 주었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애리조나로 원정경기를 가면 늘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자신의 고향이자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이 많아서일까? 이디어의 소속팀은 LA이지만 그는 아직도 애리조나 주 길버트(Gilbert)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 그 어렵다는 3할 타자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그는 그 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겪는다는 2년 차 슬럼프도 이디어를 피해 갈 정도였다. 메이저리그 3년 차였던 2009년 이디어는 물오른 타격감을 선보이며 그해 31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타점도 106점이나 기록했다. 당시 기록한 6개의 끝내기 안타로 이디어는 LA뿐 아니라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0년에도 0.292의 준수한 타율과 홈런 23개를 기록한 이디어는 2011년 30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달성하며 수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박수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 결과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음은 물론 시즌 후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에게만 주는 골드글러브(Goldglove)도 수상했다.
이디어는 클러치히터이자 홈런타자이기도 하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선수생명은 5.6년으로 6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많은 선수가 그 어렵다는 메이저리그에 힘들게 입성하지만 반면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이디어는 분명 매력적인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의 인기도, 그리고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지 현재에 만족하지 말라”
올해로 메이저리그 7년 차인 이디어에게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야구를 시작하고 단 한 번도 현실과 타협하거나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야구가 고팠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항상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오늘 경기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거기에 만족하거나 그것으로 내 한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나는 늘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노력했습니다.”
끝으로, 야구 열등생에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이디어에게 방황하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무엇을 하든지 현재 위치나 실력에 연연하지 말고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 꾸준히 노력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