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떠오르는 정권 실세들의 정치적 고향, ‘여당 사무처’ : 월간조선

지난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무성 대표는 전당대회 직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나는) 당 사무처 출신 최초의 사무총장이자 원내대표”라며 당무와 정당 생리, 정당 목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당 사무처가 어떤 곳이기에 김 대표는 ‘사무처 출신이라서’ 정당을 잘 안다고 자부한 것일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 7·30 재·보선에서 지역구도를 깨고 호남에서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40대 초반의 청와대 대변인 출신 재선 의원인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이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정도로 ‘잘나가는’ 현 정권 실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치적 고향이 바로 ‘당 사무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경로를 살펴보면 법조인 등 전문직 출신, 기업인이나 지역 유지 출신, 언론인 출신, 보좌관을 비롯한 정치권 출신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하나였던 ‘당 사무처 출신’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등을 배출하며 명맥을 이어 왔지만 다선(多選)에 성공하거나 고위 당직을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금처럼 당 사무처 출신들이 정권의 최고 실세로 등장한 것은 새누리당이 사무처 당직자 공채를 시작한 공화당 시절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당 사무처란 무엇인가

정당의 실무 조직인 사무처에 상근하며 정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처 당직자, 사무처 요원, 당료(黨僚)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 왔다. 현 정당법은 제30조에서 <정당에 둘 수 있는 유급사무직원은 중앙당 100명 이내, 시·도당 총 100명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유급사무직원’이란 월 15일 이상 정당에 고용돼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봉급·수당·활동비 등 어떤 명칭으로든 그 대가를 제공받는 자를 말한다고 정당법은 명시하고 있다. 이 유급사무직원에는 정책연구소 연구원과 대표·최고위원·사무총장 등 흔히 ‘당직자’로 불리는 정당 간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는 유급 직원을 ‘사무처 당직자’로 명명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의 당규는 9조(사무처 규정)와 10조(사무처 당직자 인사 및 복무에 관한 규정)에서 사무처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중앙당 사무처 조직은 총장 및 부총장 산하에 기획조정국, 총무국, 조직국, 여성국, 홍보국, 정책국 대변인행정실 등 정당이 해야 하는 다양한 업무가 실·국 체제로 갖춰져 있다. 기획조정국은 당무기획과 당 운영계획, 선거계획 등을 수립하고, 총무국은 당 주요 행사를 집행하고 지원하며, 조직국은 당 조직활동을 지원한다.<표1 참조>

또 중앙위원회를 지원하는 직능국과 청년활동 및 청년위원회를 지원하는 청년국, 재외국민활동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재외국민국과 홍보계획을 수립 및 시행하는 홍보국, 당의 정책방향을 만드는 정책국, 민원업무를 맡는 민원국 등이 있다. 이 밖에 국회 안에서 입법활동을 돕는 원내기획국과 원내행정국이 있고,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고위 당직자의 활동을 지원하는 당직자실도 주요 부서다. 현재 새누리당의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정직원) 수는 100여 명이다.

일반적으로 대졸 공채로 사무처에 들어오면 과장-차장-부장-부국장-국장을 거치게 되며 연차가 쌓이면 국회에 파견돼 2급 상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연봉은 비슷한 연차의 국회사무처 및 보좌관, 비서관과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수준이다. 당규에 정해진 정년은 55세다.

與黨 사무처의 역사

지난 7월 전당대회 직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당 대표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무처는 어느 정당에든 존재하지만 새누리당 사무처가 야당 사무처와 다른 점은 쭉 공개채용(공채)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 창당 시 김종필 총재가 중앙당 당직자 공채제도를 만들었다. 1965년 공화당 사무처 1기 공채가 실시됐는데 이때 선발된 인물이 정창화 전 의원이다.

새누리당은 공화-민정-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로 이름이 바뀌도록 거의 매년 대졸 신입 공채를 거르지 않고 실시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이회창 후보의 낙선으로 처음 야당이 된 1997년 말부터 3년간만 공채를 실시하지 못했고 야당 시절에도 꾸준히 공채를 실시했다. 매년 선발인원 수는 10~20명 선이며 법학, 정치학, 논술 등 다양한 필기시험과 면접으로 선발한다. 경쟁률은 평균 수십대 일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사무처가 공채 출신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합당으로 합당의 대상이었던 정당의 당직자들도 유입됐다. 김무성 대표는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였던 통일민주당의 사무처 총무국장이었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설립되면서 여당 사무처에 유입된 케이스다. 김 대표는 민자당에서 의원국장과 의사국장을 지냈고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이 되면서 청와대를 거쳐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민자당 통합 당시 사무처 당직자 수는 36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 밖에 이종찬 총재의 새한국당,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 최근에는 자유선진당까지 새누리당에 합당되면서 이들 정당의 사무처 당직자들도 자연스레 흡수됐다.

오랜 기간 여당 사무처는 국회사무처와 비슷한 수준의 연봉과 처우를 받으며 안정된 직장으로 여겨졌고 주로 정치학 등 사회과학을 전공한 명문대 또는 지방국립대 출신들이 지원해 입당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이후 야당으로 탈바꿈하고 외환위기로 경기가 악화되면서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1997년 여의도 국회 앞에 새로 지어 입주했던 7층짜리 당사를 몇년 만에 매각하고 다시 다른 건물에 세들어 살기도 하고, 천막당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상당수의 당직자가 당을 빠져나갔는데 비슷한 업무를 하는 국회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가 많았고 법조, 언론, 기업 등 다른 직종으로 진출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의 야당생활 끝에 다시 여당으로 회귀하면서 당의 형편도 나아졌고, 사무처 당직자의 직업안정성과 업무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 사무처 노동조합도 생겨 고용안정성과 복지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사무처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이준우 조직국장은 “수십 년간 여당생활만 해 왔던 선배들과 달리 90년대 중반 이후 입당한 사무처 당직자들은 많은 고생을 하며 당을 지켜 온 만큼 이들에 대한 노조 차원의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며 “다만 사무처는 정치인들과 같은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립보다는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원칙”라고 말했다. 사무처 노조는 기본적으로 급여나 육아휴직 등 당직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지난 7·30 재·보선 당시 성명을 통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출마를 요청하는 등 정치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정치권의 노동조합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준우 국장은 “당 사무처라면 일반인들 보기엔 국회 보좌진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의원 한 명을 위해 일하는 국회 보좌진과 달리 여당 사무처는 국정에 바로 반영되는 여당의 정책과 조직을 만들어 나간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다”며 “정치지망생이라면 넓은 시야로 정치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생활은 경험할 만하다”고 말했다.

주로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

당 사무처는 정치의 실무조직이다. 따라서 실무직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꿈을 갖는 당직자도 많다. 정치인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사무처에 지원하는 인물도 적지 않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면 정치에 뜻이 있는 사무처 출신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곤 한다. 김무성 대표가 당선되기 전까지 그동안 가장 높은 ‘정치적 성과’를 이뤘던 사무처 출신으로는 5선의 정창화 전 의원이 꼽힌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공화 1기로 정당에 입문한 정창화 전 의원은 공화당 청년국장과 훈련국장을 거쳐 1980년 민정당 창당 후 1981년 1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이후 5선에 이르며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을 두루 거쳐 현재는 새누리당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다.

윤원중 국회 사무총장도 적지 않은 사무처 당직자들이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다. 1970년 공화 6기로 정당에 입문한 그는 노동사회국장, 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정무1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고 15대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21세기정책연구원장,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를 지냈던 박창달 전 의원(16·17대)은 중앙당 사무처 공채 출신은 아니지만 시·도당 사무처 출신으로 재선까지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민정당 경북도당에서 조직부장과 청년부장 등으로 일했던 박 전 의원은 2000년 한나라당 전국구 순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고 2014년에는 대구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박 전 의원은 지난 7월 열린 전당대회에 원외당직자 및 사무처를 대변하겠다며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정창화·윤원중·박창달 전 의원 모두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이는 새누리당이 전통적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발 시 사무처 주요 실·국장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고경화 전 의원, 2008년 비례대표 김금래 전 의원은 둘 다 한나라당 여성국장이었다. 현직인 이운용 의원도 원내기획국장 등을 지내고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반면 사무처 출신이 처음부터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된 경우는 흔치 않다. 총선 때면 밀려드는 화려한 경력의 외부 영입인사들로 인해 당을 지켜 온 사무처 출신들이 공천경쟁을 뚫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또 정당에서만 일해 온 만큼 외부 영입인사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부족하다 보니 여당에 유리한 지역에서 공천받기는 더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무처는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당을 지켜 온 사무처를 배려해 달라’ 또는 ‘공천심사위원들의 사무처 경시 현상을 개선해 달라’고 당 지도부에 강력하게 주장하곤 했다. 이 같은 구도를 극복한 인물이 17·19대 김희정 의원과 18대 김태원·정양석 의원이다.

제일 잘나가는 국장은 여성국장?

사무처 내 실・국에는 서열이 없지만 순번은 있다. 기획조정국-총무국-조직국 등으로 이어지는 순이다. 일반적으로 여당이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에 사무처 출신을 포함시킬 때는 기획조정국장이 1순위라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실제로 실·국장들이 안정권에 배치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국장 출신으로 비례대표에서 금배지를 단 경우는 다른 국장에 비해 여성국장이 많다. 비례대표 후보의 50%는 여성에게 할당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양경자 전 의원, 김금래 전 의원, 고경화 전 의원 등이 당 여성국장 출신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이 밖에 여당 여성국장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 강현희 전 청와대 2부속실장, 서미경 전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 신계용 과천시장, 강월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 등이 있다.

17대부터 지역구에도 진출

17대에서 당선, 18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9대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1995년 입당한 민자당 공채 4기다. 33세였던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연제) 공천을 신청해 사무처 선배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동기들은 “설마 진짜로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공천을 받는 것을 보면서 당이 정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의원은 당시 공천희망자 면접에 현역인 권태망 의원, 유력한 신인후보였던 김정훈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참석해 “(나는) 젊고, 한나라당을 10년간 지켜 왔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당당하게 답해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결국 김 장관은 김정훈 변호사를 다른 지역구로 ‘밀어내며’ 공천을 받아 출마, 당선됐다.

김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9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19대 총선 공천 당시 김희정 의원의 지역구에는 수많은 유력 남성 후보들이 공천신청장을 내밀었다. 김 의원은 18대 낙선으로 주변에서 경쟁력에 의구심이 불거진 데다 전형적인 친이(親李)로 불렸고 설상가상으로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만큼 김 의원이 공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공천권을 따내 당선, 재선에 성공해 당으로부터 여성 몫 최고위원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한편 사실상 이벤트에 가까운 공천이었던 김희정 의원과 달리 사무처에서 국장까지 지내며 정당에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 온 인물이 지역구에 출마해 성공한 케이스로는 2008년 총선에서 당선된 김태원 의원(고양 덕양을)과 정양석 전 의원(서울 강북갑)이 꼽힌다. 1981년 민정당 공채 2기로 당에 들어온 김태원 의원은 재정국장, 직능국장 등을 거쳐 고양 덕양을 당협위원장을 맡으며 정치 현장으로 뛰어들었고,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다.

1984년 민정당 공채 5기로 입당한 정양석 전 의원은 의원국장, 홍보국장, 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쳐 강북갑 당협위원장으로 활동, 2008년 총선에서 48%의 득표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19대 총선 당시 강원도 원주에서 당선된 김기선 의원은 사무처 정책국장, 청년국장 등을 거쳐 강원도당 사무처장 등으로 일하다 퇴직 후 강원도 정무부지사와 강원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강원희망포럼 대표 등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을 해 왔고 2012년 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 당선됐다.

7·30 재·보선 때 대전에서 당선된 정용기 의원도 꾸준히 정치적 경력을 쌓아 성공한 케이스다. 정 의원은 민자 1기로 대전 대덕구청장을 연임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1년 공채로 입당해 사무총장 보좌역과 대표 보좌역 등으로 활동했던 정 의원은 당내 위원회 부위원장과 당협위원장 등 정치경력을 쌓아 2004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덕구청장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재선을 거치며 8년간 지역에서 인지도와 명성을 쌓아 왔고 대전시장에 출마한 박성효 전 의원의 지역구에서 이뤄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사무처 출신 현직 의원 중 공채 기수로는 가장 막내인 서용교 의원(신한국 1기, 1996년 입당)은 사무처에서 사무총장 보좌역, 정책위의장 보좌역으로 근무하는 등 주요 당직자들을 보좌하며 인맥과 정치역량을 쌓아 왔다. 이후 당을 나온 후 사업을 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이어 갔다. 서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김무성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후 김 대표의 지역구(부산 남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서용교 의원은 “사무처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들은 당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또다른 성과를 이루고 나서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정치권 전반을 지켜보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사무처는 정치지망생이라면 꼭 거쳐갈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대변인행정실 지킴이였던 이정현 의원

이정현 의원은 당 사무처 출신으로 청와대 수석, 재선 국회의원, 지역장벽 극복 등 적지 않은 정치적 성과를 이뤘다.

이처럼 당 사무처 출신의 수많은 정치인이 있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사무처 출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입을 모으는 인물은 단연 이정현 의원이다. 사무처에서 그를 지켜봤던 선후배들은 모두 “조용히 일만 했지만 언젠가는 성공할 줄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현 의원은 사무처에서 오래 일했지만 공채 출신이 아니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곡성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구용상 의원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1980년대 말 구 전 의원이 민정당 사무처 제2차장직을 맡으며 이정현 당시 비서는 당 사무처에서 일하게 됐고,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고위 당직자들의 추천에 의해 특채로 사무처 당직자가 됐다.

이후 이정현 의원은 ‘성실함’ 하나로 당 사무처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공채로 들어온 한 당직자의 회고다. “당시 사무처 당직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공화-민정 기수 선후배들이었고 명문대 또는 지방국립대 출신이었습니다. 호남 출신 특채이며 학교 선후배도 거의 없었던 이 의원은 어찌 보면 하나의 ‘섬’ 같았고, 그래서 더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죠.”

이정현 의원은 사무처 시절 주로 대변인행정실에서 일했다. 대변인행정실은 대변인의 업무를 지원하는 곳으로, 모든 언론보도 내용을 모으고 분석해 자료를 만들고 대변인 논평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도 있었다. 24시간 뉴스와 신문을 모니터해야 하고 기자들을 응대하는 등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곳이라 인기부서는 아닌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정현 의원은 당 생활의 대부분을 겪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이 의원이 있는 대변인행정실이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한 후배 당직자는 “정말 사적인 말 한마디 안 하고 소처럼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또다른 후배 당직자는 “당내 비주류인 호남-비명문대-특채 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그를 몰입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정부기관 등으로 파견도

전당대회에서 사무처 당직자들은 투표권을 갖는 것은 물론 각 위원회 소속 당원들을 이끄는 실무 역할을 맡는다.

사무처 당직자 중 정치인을 지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목표가 꼭 국회의원인 것은 아니다. 정년까지 당을 지키는 사람도 많고 청와대와 정부기관, 공기업 등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 여당은 민정-민자당 시절부터 청와대와 정부기관 등에 사무처 당직자를 파견해 왔지만 그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으면서 사무처 당직자들이 대거 청와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활동한 장다사로 기획관리실장, 강현희 제2부속실장, 이재환 정무비서관은 사무처 민정 5기 동기다. 비서관의 아래 직급인 행정관의 경우 당 사무처 출신이 워낙 많이 진출해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최상화 춘추관장, 신동철 정무비서관, 서미경 전 문화관광비서관 등 당 사무처 출신을 중용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사무처 출신 행정관도 적지 않다. 이 밖에도 당 사무처 출신은 정부기관 별정직인 장관 정책보좌관, 정부 산하기관의 감사 또는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별정직 공무원 2~4급인 고위직 자리다. 당 생활을 통해 정무감각을 익혔고, 정책심의위원이나 전문위원을 지낸 경우 관련 분야 전문성도 습득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기관 산하 공기업에서 감사로 근무 중인 한 사무처 당직자 출신 인사는 “정당 출신이 공기업이나 기관에 파견이나 감사로 가는 것에 대해 낙하산이라는 등 비난도 많지만, 정무감각이 뛰어나고 입법기관에 인맥이 넓은 당직자 출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공기업에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기업 입장에서도 환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야당 사무처는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처는 지난해 김한길 대표가 구조조정을 실시한 후 160여 명에서 100명선으로 줄어들었다. 조직 형태는 여당과 유사하지만, 공채가 없이 대부분 당 고위직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의 보좌진 출신으로 구성돼 있었다. 당 사무처 직책을 맡았다가 다시 국회로 돌아가거나 ‘보스’인 의원이 관련된 기관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부터 인사시스템선진화정책의 일환으로 결원이 생길 시 공개채용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야당의 당직자 출신 현직 의원은 김현미·윤호중·안규백·김현·진성준 의원 등이 있다.

유력정치인에 ‘줄서기’ 지적도

청와대에서 장관 임명장을 수령하고 있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33세의 사무처 당직자로 공천을 신청해 주변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본연의 업무보다 유력 정치인에 줄서기에 관심이 더 많다는 지적도 있다. 사무처 당직자는 핵심 당원으로 전당대회 투표권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실무자인 만큼 각 실·국 산하 각종 위원회 소속 당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당내 경쟁구도가 생기면 해당 정치인들이 주요 사무처 당직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당직자들 역시 ‘줄서기’를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정치에 뜻이 있는 당직자라면 유력 정치인에게 충성해 공천 받기를 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90년대까지만 해도 여당 사무처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공채 없이 대부분 인맥으로 입당한 만큼 이 같은 줄서기 현상이 나타나는 편이지만 여당 사무처는 공채 중심이어서 조직 자체가 반(半)공무원 성향을 갖고 있었다. 1990년 3당합당(민자당) 직후 나타났던 계파 간 갈등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해결됐고 민정계·민주계라는 말도 차츰 사라졌다.

그러나 여당 사무처도 줄서기를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는데, 199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9룡(九龍: 이회창·이인제·김덕룡·박찬종·이수성·이한동·이홍구·최병렬·최형우 등 대선후보 9명을 일컫는 말)’의 등장이다. 통일민주당 출신 당직자들은 김덕룡·최형우계로 헤쳐모였고 일부 민정계는 이한동계로 결집했다.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며 박찬종, 이인제 후보에게 줄을 선 당직자도 있었고 이인제 후보가 경선 낙선 후 탈당하자 따라서 탈당하고 이인제 신당에 합류한 당직자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 줄서기는 이회창 후보의 압승으로 대략 마무리됐지만 정작 더 심각한 줄서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친이-친박 대결구도에서 나타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서로를 상처 내는 혈투에 나서면서 사무처도 양분되는 분위기였다. 당시 친박 당직자들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당직자들은 정치권의 내막과 비화를 워낙 잘 알고 있어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공천적합자 명단이나 계파갈등에 따른 명부, 이른바 ‘살생부’ 명단을 당직자가 유출했던 사고도 있다.

그러나 사무처 출신이 당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이른바 ‘양심선언’은 없었다. 새누리당 당규 제3조 20항에는 사무처 당직자의 비밀엄수와 관련된 조항이 있다. 당규가 아니라도 사무처 당직자들이 업무상 비밀을 누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무처의 한 국장은 “사무처는 정치적 신념을 기본으로 돌아가는 조직인 만큼 내부에선 계파갈등이 있을지언정 외부로 갈등을 표출하지 않는다”며 “최소한 공채 출신 당직자가 문서를 유출하거나 내부 고발하는 사례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하려면 “진심이면 통한다”

한나라당은 2004년 박근혜 대표 취임 당시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설치했고, 사무처 당직자들은 천막당사에 상주했다.

사무처 공채 출신이 청와대 비서관 등 사실상의 실세로 일한 경우는 많았지만 재선 이상 국회의원이나 당 최고위원, 장관 등 고위직을 맡은 적은 거의 없었다. 사무처 당직자들은 최근 사무처 출신이 실세로 떠오르는 데 대해 “사무처 출신이 대우를 받는다기보다는 이정현 의원이나 김희정 장관의 캐릭터가 워낙 특별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연이야 어쨌든 이정현 의원과 김희정 장관이 ‘사무처 출신도 고위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사무처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고무되는 분위기다.

당에서 20여 년을 보낸 한 당직자의 얘기다. “솔직히 이정현 의원이 성실한 참모가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정치적 성과를 이뤄 낼 줄은 몰랐다”며 “요즘 후배들에게 이정현 의원의 자서전 《진심이면 통합니다》를 권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진심이면 통한다’라는 말을 명심하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